침상에 누워 자고 있는 막내 동생을 내려다보던 방화련은 발자국 소리를 듣고 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한 손엔 비파를 들고 자신처럼 기포를 입고 오는 여동생 수련이의 모습이 보였다.
"어서 깨워라."
수련이를 보자마자 방화련의 입에서는 그 한마디만 흘러나오고, 방수련은 고개를 끄덕인 다음 비파를 고쳐 잡으면서 언니를 향해 말했다.
"귀 막아."
고개를 끄덕이면서 방화련은 두 손으로 양 귀를 막고 수련이의 뒤쪽으로 가서 서서, 약간은 불쌍한 얼굴로 자고 있는 막내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백초당 전체에 울려 퍼지는 고함.
"모두 귀 막아!"
백초당의 경비 업무를 총괄하는 천궁 옥형진의 고함이 어디에선가 울려 퍼졌다.
다음 순간 요란한 소리가 소구의 방에서 터져 나왔다.
그것은 악기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폭음 같은 것은 아니었지만 유리 긁히는 소리보다 몇십배 거북하게 들리는 그 소리를 듣고, 아침부터 토하고 기절하고 비틀거리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재수가 없어서 그 시간에 백초당의 하늘 위를 날아가던 새들도 모두 바닥으로 추락했다.
방소구는 이불 속에 얼굴까지 파묻고 두 손으로 귀를 막았다.
'절대로 못 일어나! 난 자야돼! 기필코 자고야 말 거야!'
속으로 비명을 내지르면서 소구는 침상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해 악을 쓰고----.
소구의 두 누나 수련과 화련 자매가 그런 막내를 가만 놔둘 리 만무했다.
"이 정도면 깨어났겠지?"
비파의 현에서 손을 땐 방수련이 뒤로 시선을 돌려 언니를 바라보면서 물었다.
'푸드득'
지붕 위로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가 그 순간 들려왔다.
방화련은 그런 수련의 모습을 두려움에 찬 시선으로 바라보면서 어물거리면서 대답했다.
"으---응. 아마 그럴 거야."
다음 순간 방수련의 손은 비파 대신에 이번에는 소구가 뒤집어쓴 이불로 향했다.
이불을 침상에서 걷어버린 두 여자의 눈엔 몸을 쪼그리고 귀를 두 손으로 막고 있는 동생의 모습이 보였다.
"일어나라, 소구야."
낮고 잔잔하면서 음산한 음성이 방수련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소구는 꼼짝하지 않았다.
"일어나!"
다음 순간 방수련의 입에서는 고함이 터져 나왔다.
두 여자의 손에 귓불이 잡힌 채 질질 끌려가는 방소구의 모습을 발견한 사람들은 불쌍하다는 얼굴로 소구를 바라보았다.
'에구, 내 팔자야. 잠 한번 자기가 왜 이리 힘드냐? 에구---.'
속으로 그렇게 탄식을 토해내던 방소구는 불쌍하다는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을 발견하고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기, 누님들 그만 손을 좀 놓아주면---,"
말을 끝내기도 전에 자신을 무서운 눈으로 노려보던 두 여자의 시선에 쫄 아서 소구는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 귓불이 잡힌 채 질질 끌려서 가게된 곳은 방화련의 방이었다.
방화련의 초상화를 바라보면서 소구는 감탄했다.
"정말 잘 그린 그림이구나----."
"이걸 들고 네가 가야 할 곳이 어디인지 알겠지?"
소구는 볼 맨 얼굴로 누나를 쳐다보았다. 그러다가 그림 속의 누나와 현실의 누나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체, 화가도 눈이 삐었구먼---, 화련 누나의 어디에 이런 분위기가 있다는 거지?"
그림 속의 누나는 예쁘고 아주 품위가 있어 보이는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소구의 눈에 비친 화련의 모습은 동생 못 잡아먹어서 안달 난 마녀였다.
곁에서 멍하니 넋을 잃고 초상화를 바라보던 방수련의 입에서도 한마디 흘러나왔다.
"멋있다--, 나도 이렇게 그려달라고 해야지."
그 소리를 듣고 소구는 고개를 돌려 새삼스레 바로 위의 누나 수련의 모습을 머리에서 발끝까지 세심하게 살펴보더니 하는 말.
"꿈 깨."
얼굴을 찡그리면서 방수련은 막내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왜? 내가 언니보다 못 생겼어?"
"아니, 예쁘기야---, 사실 수련 누나가 훨씬 더 예쁘지만--. 그래도 수련 누나의 몸에는 기품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 봐도 없잖아? 어떻게 하면 좀 더 예쁘게 보일까만 생각하는 누나하고 화련 누나하고는 풍기는 분위기부터 틀리다고."
막내 동생의 말을 들으면서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화를 삭이면서 방수련은 이를 갈면서 말했다.
"내가 천하게 보인다고 하는 것이냐?"
"아--아니, 내 말은 그런 게 아니라--. 그러니까 누나는 밝고 깨끗하고 예쁜 분위기를 풍긴다는 것이고, 화련 누나는 어딘지 모르게 기품이 있어 보인다는 그런 말이지."
무서운 누나들의 시선을 견디면서 아부를 떨어야 하는 소구는 속으로 나오려는 구역질을 삼켜야했다.
"하여튼, 소구야. 밖으로 소리가 새어나가지 않도록 만들어다오. 이제부터 해야 할 말은 너만 들어야 할 말이니---."
방화련이 차분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방소구는 투덜거리면서 백초당의 정문을 걸어나왔다. 등에는 초상화가 들어있는 길고 동그란 통이 매달려 있는 상태였다.
"젠장, 아무리 급해도 그렇지---. 아침밥은 먹고 가야 될 거 아냐?"
아침밥도 못 먹고 쫓기다시피 해서 집 밖으로 나오게 된 소구의 입에서는 불평이 터져 나왔다. 소구의 소원은 아주 단순한 것이었다. 맘껏 자고 맘껏 먹는다라고 하는 단순한 것이었지만 오늘 아침은 잠도 못 자고 밥도 못 먹었다.
"아무래도 불안해--, 집에 돌아온 지 며칠이나 됐다고 벌써 집 밖으로 나가야 해? 게다가 잠도 계속 못 자고--, 불안하단 말야."
흘낏 뒤를 돌아보는 소구의 눈에 백초당(百草堂)이라는 현판이 걸린 집의 정문이 보였다.
"저기서 마음놓고 잘 수 있는 날이 오긴 오겠지--?"
불안한 눈으로 집을 바라보던 소구는 머리를 털고 시선을 동쪽으로 돌렸다.
현재 서 있는 곳은 개봉, 가야 할 곳은 북쪽 북경에 있는 자금성이었다.
'팡!'
갑자기 공기 터지는 소리가 백초당의 정문에서 터지고, 폭발음에 놀란 사람들이 백초당의 정문 앞으로 모여들 때 그곳에 서 있던 소구의 모습은 이미 사라진 뒤였다.
바람보다 빠른 속도로 동쪽으로 움직이는 소구의 몸을 발견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혼천독보(混天獨步)라 명명되어 있는 혼천문 최대의 보법이자 경공을 배우게 된 소구의 성취는 일성에 약간 못 미치는 수준이었지만, 그것만으로도 강호에서 가장 빠른 경공이라 할 수 있었다.
운남의 곤명(昆明)에는 천하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 중의 하나가 살고 있었다.
"처형하라!"
그 유명한 자의 입에서 그런 명령이 떨어지고 한 사람의 목이 몸에서 분리되었다.
이로써 전쟁은 끝이 난 것이다.
거처로 돌아온 운남(雲南)의 왕 오삼계는 자신의 애첩 진원원(陳圓圓)을 바라보았다.
연회가 벌어지는 그 건물 안에 있는 남자는 악기를 연주하고 있는 악사 몇 명과 자신뿐이었다. 오삼계의 비어있는 술잔에 옆에 앉아 있는 여자가 술을 따르고 앞에서는 진원원이 아름다운 춤을 추고 있었다.
그녀로 인해 오삼계는 청(淸)에 산해관을 열어주고 한족(漢族)의 배신자가 되어버렸다. 이자성의 부장인 유종민이 그녀를 데려가는 일이 벌어지지 않았다면, 자신이 한족의 배신자가 되는 일은 결코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커다란 술잔에 담긴 술을 꿀꺽 꿀꺽 들이키는 오삼계의 마음은 심란하기만 한 것이었다.
그 당시 청군과 이자성군 양쪽에 적을 두고 있는 상황이었다. 오삼계는 둘 중 한쪽의 편에 들어야만 하는 살아 남을 수 있다는 판단을 한 상태에서 그 소식이 들려왔다.
북경을 점령한 이자성의 부하 중에서도 가장 광폭 하다고 알려진 유종민이라는 자가 진원원을 데려갔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오삼계가 한 말은 <대장부가 한 여자를 구하지 못한대서야 말이 되는가?!> 이었고, 그 다음은 만주의 예친왕 도르곤과 손을 잡고 이자성과 싸워 북경을 점령하게 되고----.
이자성과의 첫 전쟁에서 승리했지만 만주인들은 포로로 붙잡혀 있던 자신의 가족들을 돌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 전투 뒤에 자신의 가족을 내걸고 이자성은 강화 협정을 맺으려고 했지만, 일체의 협정을 거부한 청군에게는 진격만이 있을 뿐이었다. 그래서 자신의 일족 서른 여덟 명이 이자성에게 죽임을 당했다. 북경에 들어와서 다시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진원원뿐이었다.
여전히 아름다운 진원원을 바라보며 오삼계는 어지럽게 떠오르는 생각들을 지우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지난 일을 가지고 여기서 후회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광서성(廣西省) 계림(桂林)에서 최후까지 청과 항전을 벌이던 명(明)의 황족 계왕 주유랑은 그곳에서 영력제(永曆帝)란 이름으로 즉위하고 마지막 명의 힘을 모아 청에 항전했지만---,
오늘 십팔년간의 영력제와의 싸움이 끝난 것이다.
패한 뒤에 미얀마까지 도망친 영력제를 추적해 붙잡아서 오늘 처형한 것이 바로 자신이었다. 과거에 주군으로 섬기던 자의 후손을 잡아다가 처형까지 하게 만든 청에 대해서도 오삼계는 기분이 좋을 수는 없었다. 청(淸)은 자신이 다시 명(明)으로 돌아설 수 여지를 전혀 남기지 않게 만든 것이다.
장수로서 충성의 대상이 사라져 버린 오삼계였다. 명에 대해서도 충성을 할 수 없었지만, 비록 왕으로 봉하고 운남 일대의 지배권을 준 청이었지만, 청에 대해서도 오삼계는 진심으로 충성할 수는 없었다.
이 모든 것이 저기 눈앞에서 춤을 추며 자신을 위로하려 하고 있는 애첩 진원원으로부터 시작된 일이었다. 나라가 바뀌고 한족이 여진족에게 지배당하는 일이 벌어진--, 현재의 모든 일은 진원원만 없었다면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오삼계는 다시 술잔을 내밀었다.
'쪼르륵'
곁에 대기하고 있던 또 다른 여인이 다시 조심스레 술을 따르고, 오삼계의 머리 속에서는 계속 생각하고 싶지 않은 일들이 떠오르고 있었다.
한족(漢族)을 위해 싸우던 장수가 한낱 애첩으로 인해 나라를 배반하고 주군을 죽게 만들었으니 그와 그의 자손들은 대대로 욕을 얻어 먹어가며 살게 될 것이 뻔했다. 자신으로 인해 그렇게 만주의 오랑캐들이 명을 정복하고 난 후에 오삼계를 더욱 고통과 절망에 빠트리는 일은 이년 뒤에 벌어졌다.
양주 십일이라고 불리는 순치 2년(1645년)의 4월에 벌어진 대학살 극은 팔십여만명의 한족이 청군의 손에 죽음을 당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같은 해 칠월에 또 한번의 학살극이 일어났다. 강음이라 불리는 작은 소도시에 살고 있는 사람들 구만 칠천명이 죽임을 당하고 생존자는 겨우 오십명이 갓 넘었다는 소식은, 오삼계를 절망과 비탄에 구렁텅이에 몰아 넣기에 충분한 일이었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무자비한 살인과 약탈을 감행한 청군의 그림자에는 자신 오삼계가 있는 것이다. 자신이 산해관을 청군에게 열어주지 않았다면 결코 벌어지지 않았을 일이기에 그 두 가지 사건에 대해서도 오삼계에게 책임이 있는 것이다. 나라와 민족의 배신자라는 멍에를 뒤집어쓰고 살아야 하는 그였기에 하루도 마음 편할 날이 없는 오삼계였다.
"전하, 제 춤이 마음에 안 드시는지요?"
오삼계의 가슴에 살며시 안기는 진원원의 붉은 입술 사이로 속삭이는 듯한 달콤한 목소리가 그의 귀속을 파고들었다.
"아니다. 보기 좋구나."
오삼계의 입에서는 무뚝뚝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반청복명을 외치면서 산발적으로 청군에 대항해서 싸우는 무리들은 분명히 자신의 손으로도 꽤 많이 죽었지만, 그들은 죽어서 살게 되었지만 오삼계 자신은 살아 있어도 죽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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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읽엇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