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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시리즈 승부조작. 미 프로스포츠 사상 최악의 스캔들중 하나로 언제나 손꼽히는 대사건이고, MLB로 한정하면 단연 최악으로 꼽히는 사건이었습니다. The Black Sox Scandal 로 알려진 이 사건은 한 시대를 풍미한 스타플레이어 슐리스 잭슨 (Shoeless Joe Jackson)을 포함 9명의 메이저리그 커리어를 끝냈고, 시카고 화이트삭스라는 한 강팀 프랜차이즈를 지옥으로 떨어뜨려 향후 15년간 바닥을 기어다니는 non-factor 팀으로 만들었습니다.
사건개요
당시 화이트삭스의 1루수였던 칙 간딜은 개인적으로 알고지내던 도박꾼들에게 1919년 신시내티 레즈를 상대로 한 월드시리즈 승부조작 제의를 받습니다. 그 댓가로 도박꾼들이 제안한 금액은 선수당 1만달러. 지금이야 메이저리그 1류선수들에게 1만달러는 돈도 아니지만 그 당시 슈퍼스타 슐리스 잭슨의 연봉이 2000달러를 조금 넘는 수준이었다는걸 감안하면 거절하기 힘든 거액이었습니다.
간딜은 "이게 될것같아요? 말도안돼요." 라고 말했지만, 도박꾼들은 "이전부터 있어왔던 일이고, 이번 시리즈도 그런것들 중 하나일 뿐이야" 라며 간딜을 설득했습니다. 간딜은 구단주 찰스 코미스키에게 받던 자신의 연봉에 불만이 큰 상태였고, 많은 팀메이트들이 자신과 같은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는걸 알고있었습니다. 코미스키는 당시 MLB의 Reserve Rule를 악용, 자신의 선수들을 죄다 언더페이로 데리고 있었고 (reserve rule에 의해 한 팀에 소속된 선수는 다른 팀과 협상을 하는게 금지되어있었습니다. 때문에 선수들은 구단에서 얼마를 주든 그 액수를 받을수밖에 없었습니다) 대부분의 삭스 선수들은 코미스키에게 노골적인 불만을 표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간딜은 개인당 $10000달러라는 조건에 합의, 유격수 스위드 리스버그를 꼬드겨 에디 시카티, 해피 펠쉬, 벅 위버, 레프티 윌리엄스등을 모아 승부조작을 계획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대화를 우연히 듣게된 유틸리티 플레이어 프레드 맥멀린은 "나도 포함시켜주지 않으면 모든걸 폭로하겠다"고 이들을 협박, 승부조작에 가담하게 됩니다.
1919년 월드시리즈는 신시내티 레즈가 시리즈전적 5-3 으로 화이트삭스를 꺾고 우승을 차지하게 됩니다. 그리고 팀의 5패중 3패는 승부조작에 가담했던 레프티 윌리엄스가 선발투수였습니다.
그런데 이 월드시리즈의 승부조작 루머는 정작 경기가 시작되기 전부터 흘러나왔습니다. 월드시리즈 시작 직전 갑자기 시카고 화이트삭스에 배당이 치솟았고, 거기에 화이트삭스의 에이스 레드 페이버가 몸살을 이유로 월드시리즈 로스터에서 빠져버리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시리즈의 "정당성"을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블랙삭스 스캔들의 결과로 메이저리그에서 제명당한 9명의 선수
1. 찰스 아놀드 "칙" 간딜 (1루수) : 승부조작의 주축이자 브로커와의 연결고리
2. 찰스 어거스트 "스위드" 리스버그 (유격수) : 간딜의 어시스턴트.
3. 에디 씨카티 (투수) : 승부조작 가담 인정. 윌리엄스의 3패를 제외한 나머지 2패는 씨카티가 기록.
4. 오스카 "해피" 펠쉬 (중견수) : 승부조작 사실을 알고있었고 연루되었음을 인정. 가담했을것으로 추정.
5. 프레드 맥멀린 (3루수) : 원래 간딜이 모은 승부조작 멤버들중엔 포함되지 않았으나 우연히 대화를 듣고 가담.
6. 조지 "벅" 위버 (3루수) : 승부조작 사실을 알고있었음을 시인했으나 애초부터 가담하기를 거절했다고 살아생전 끝까지 주장.
7. 클라우디 "레프티" 윌리엄스 (투수) : 팀의 5패중 3패를 떠안은 선발투수. 1981년 뉴욕 양키스의 조지 프레지어와 함께 MLB 역사상 두명뿐인 월드시리즈 3패투수중 하나로 역사에 남았다.
8. 조 "슐리스" 잭슨 (좌익수) : 1920년 수사당시엔 승부조작사실을 알고있었고 돈을 받았다고 (5000달러) 시인했으나, 후에 철회하고 무죄를 주장. 죽기전까지 자신은 승부조작에 가담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 9. 조 기데온 (2루수) : 조는 시카고 화이트삭스 선수가 아니지만 (세인트루이스 브라운스 소속) 친구 리스버그에게 승부조작 사실을 듣고 돈을 베팅한 죄로 제명되었다.
주축인물
칙 간딜: 간딜은 승부조작의 주축멤버였습니다. 직접적으로 브로커들과 연줄을 갖고있던 인물이기도하며, 미팅을 주최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몇몇 사람들은 불우했던 어릴적 가정환경, 가출을 해서 막노동을 하며 성장했고, 어릴적부터 괴팍하고 난폭한 성격으로 유명했던 그의 성격과 환경이 그의 잘못된 행동에 영향을 미쳤을거라고 말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메이저리그에서 성공적인 선수로 자리매김한 후 칙 간딜은 많은 팀메이트들과 기자들에게 "좋은사람", "훌륭한 리더"라고 칭송받던 인물이었습니다.
간딜은 1919시즌 타율 0.290, 60타점을 기록했으나 월드시리즈에선 0.233, 5타점을 기록했습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팀이 승리한 경기에서 12타수 2안타로 더 부진)
간딜은 "우린 우리의 활약에 비해 터무니없어 적은 돈을 받고있었고, 개인당 $10000은 꽤 큰 돈뭉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 (도박꾼)은 그 사실을 잘 알고있었죠. 하지만 그들은 처음의 약속과 달리 시리즈 후엔 $5000만 지급했으며, 나머지 돈은 어디로 갔는지, 그들이 뭘 했는지 난 알지 못합니다. 분명한건 난 그 돈을 받지 않았어요." 라고 말했습니다.
추후 나이가 든 간딜은 당시의 결정을 후회하고, 잘못된 선택이었다고 인정했습니다. 하지만 "내가 아는게 사실이라면 우리 대부분은 승부를 조작하지는 않았습니다. 우리는 야구를 배신하는 대신, 돈을 받고 도박꾼들을 배신하는쪽을 선택했어요. (abandon gamblers) 그 당시 우리가 멍청한 실수들과 어설픈 플레이를 했던것을 기억하지만, 그건 우리가 승부를 조작하려고 한게 아니라, 승부조작에 대한 미팅 이후 다들 긴장해있던차에, 시리즈가 시작하기도 전부터 승부조작 루머가 나돌기 시작하면서 우리 대부분이 겁에질려있었기 때문이에요. 모든 관중들, 브로커, 갬블러, 미디어가 우리를 미심쩍은 눈으로 보고있다는걸 알고있었고, 우리의 플레이 하나하나가 그들의 눈에 수상하게 비쳐질 수 있다고 생각해 제대로 플레이하지 못했던겁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과연 이들은 유죄인가? 무죄인가?
슐리스 잭슨: 슐리스 잭슨의 승부조작 가담여부는 아직까지 미궁에 싸여있습니다. 잭슨은 1920년 법정에서 5000달러를 받았음을 시인했으나, 승부조작에 가담하지는 않았다고 주장했으며, 후에는 돈을 받은적도 없고, 자신은 월드시리즈 fix와 아무런 관련이 없음을 주장했습니다. 슐리스 잭슨은 당대의 슈퍼스타 외야수로, 1919년 타율 0.382를 쳤으며, 커리어타율 0.356으로 1000경기 이상 출전한 선수중 메이저리그 역대 커리어타율 3위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잭슨은 클리블랜드시절부터 쭉 "좋은 팀메이트", "슈퍼스타답지 않게 순박하고 착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았으며, 때문에 블랙삭스스캔들 이후 "잭슨에게 죄가있다면 팀메이트들을 고자질할 수 없었던것 뿐일것이다" 라고 주장하는 기사도 나왔었다고 합니다.
슐리스 잭슨의 무죄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중 하나는 그의 월드시리즈 맹활약인데, 그는 1919년 월드시리즈 8경기에서 타율 0.375, 1홈런, 6타점을 기록했으며, 30번의 수비기회에서 단 하나의 에러도 범하지 않았고, 무려 5명의 주자를 외야에서 어시스트해 잡아냈습니다. 당시 "화이트삭스가 유독 많은 3루타를 허용했다"는 주장도 있었으나, 조사결과 대부분의 3루타들은 승부조작에 가담하지도 않았던 "Clean Sox"의 일원 니모 리볼드가 있던 우익수쪽으로 날아갔던것으로 밝혀져 잭슨의 승부조작 가담여부와는 관계가 없다고 결론지어졌습니다.
훗날 블랙삭스 스캔들에 가담해 제명된 팀메이트 에디 씨카티는 "잭슨은 fix와 관련된 어떤 미팅에도 참석한적 없다. 하지만 우리가 우리의 말에 좀 더 신빙성을 더하기 위해 슈퍼스타였던 잭슨의 이름을 넣었던 것" 이라고 말했습니다.
*잭슨은 평생 무죄를 주장했으나 MLB로 돌아오고싶은 마음은 없었던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야구계에서 제명당한 후, 아내와 함께 고깃집을 열었고, 고깃집이 성공하자 주류 상점 (liquor store)을 열어 장사를 계속했습니다. 소식을 들은 그의 친구 타이 캅이 그의 가게를 방문했으나, 잭슨은 아는체를 하지 않았습니다. 의아하게 생각한 타이 캅이 "조, 날 알지 않아?" 라고 물었고, 잭슨은 "타이, 물론 난 널 알아. 하지만 네가 날 알고싶어하는지 확신할수가 없었어. 많은 사람들은 그러고싶지 않아하더군"이라 대답했다고 전해집니다.
** 슐리스 잭슨의 고조 조카(?) -great-great-grand nephew- 는 텍사스 레인저스 마이너리그에 있는 조 잭슨 (풀네임 조셉 레이 잭슨) 입니다. 슐리스 잭슨이 제명당한 후, 그의 가족들중엔 야구선수가 없었고, 조 잭슨이 처음입니다.
벅 위버: 위버는 승부조작 사실을 알고있었고, 미팅에도 참여했었습니다. 하지만 애초부터 가담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실제로 참여하지도 않았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화이트삭스의 제명된 8선수중 한명이지만, 잭슨처럼 죽기 전까지 쭉 무죄를 주장했습니다.
위버는 3할언저리의 타격능력과 20개가량의 도루를 해내는 스피드를 갖춘 좋은 3루수 (유격수로 데뷔, 1917년부터 3루수비 시작, 10-20년엔 3루수로 활약)였지만, 그의 가장 빛나는 강점은 수비였습니다. 위버는 엄청난 수비범위와 총알송구로 유명했으며, 타이 캅이 "내가 리그에서 상대하면서 번트를 대지 않는 수비수가 딱 한명 있다. 그는 벅 위버다." 라고 말했을정도로 특출한 수비능력을 자랑했습니다. 위버는 1919년 월드시리즈에서 타율 0.323, 0홈런, 0타점을 기록했습니다. 비록 홈런 타점은 없었지만, 터무니없는 패배로 얼룩진 1919년 월드시리즈 이후, 지역 언론에서는 위버를 "시카고의 영웅"이었다고 언급했을만큼 시리즈 활약은 좋았던것으로 알려져있습니다. 다음은 당시 기사 전문 번역입니다.
: 시카고는 희망도, 의지도 없는 경기력을 보였지만 한명의 영웅을 갖고있었다. 그는 조지 위버이다. 그는 3루에서 플레이하고, 상대방에 맞서 싸웠다. 매일매일 위버는 자신의 역할을 충분히 수행했고, 항상 미소지었다. 화이트삭스에게선 희망이라는게 없어질 운명인가 싶을정도의 경기력을 보이는 와중에도 위버는 빛났다. 한명한명 그의 팀메이트들이 경기를 던지던 와중에도 위버는 미소를 잃지 않았고 끝까지 싸웠다. 그의 얼굴에서 미소는 사라지지 않았고, 그의 영혼은 흐려지지 않았다. 레즈는 모든 화이트삭스 선수들의 혼을 꺾었지만, 위버만은 꺾지 못했다. 그의 영혼은 누구도 건드리지 못했고, 그는 그라운드에서 죽을각오로 뛸 준비가 되어있었다. 벅은 시카고의 단 한명의 영웅이었다. 그의 투지와 미소가 영원하길...
*위버는 제명 이후로도 쭉 MLB에 돌아오고 싶어했습니다. 그는 사무국에 7차례나 복귀신청서를 보냈고, 가장 늦게는 1927년 (만 36세)에까지 복귀를 시도했지만 실패했습니다. 그는 죽기 전까지 그의 제명을 억울해했다고 전해집니다.
**05년 화이트삭스의 우승 이후, 시카고 트리뷴의 마이크 다우니는 커미셔너 버드 셀릭에게 위버의 제명을 철회해줄것을 요구했습니다. 그는 1919년 당시 화이트삭스의 포수였던 레이 셕의 글(블랙삭스 fix는 7명이다, 8명이 아니다)을 근거로 삼았습니다. 또한 03년 올스타전 당시 벅 위버의 여조카 마지 펄렛은 벅이 생전에 남긴 글 "살인자들은 감옥에 들어가서 선고를 살고 나오지만, 난 내 인생을 잃었다"을 읽으며 커미셔너에게 벅의 제명을 풀어줄것을 호소했습니다.
MLB 역사상 최악의 스캔들, 월드시리즈 승부조작 블랙삭스 스캔들.
이미 당시 선수들은 모두 고인이 되었고, 관계자들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그들이 유죄라고 주장하고, 반대로 많은 사람들은 슐리스 잭슨이, 혹은 벅 위버가, 혹은 저 둘은 무죄라고 주장합니다. 그들은 평생 자신들의 무죄를 주장했고, 죽기 직전까지 의지를 꺾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아직도 MLB의 영구 밴 리스트에 올라있습니다.
과연 누가 유죄이고, 누가 무죄일까요? 그리고 간딜에게 승부조작을 제의했던 브로커들의 말 "이전에도 있어왔던 일이고, 이것 또한 그것들중 하나일 뿐이다." 과연 1919년의 블랙삭스 스캔들이 MLB의 130년 역사에 유일한 승부조작이었을까요?
베이스볼레퍼런스, 팬그래프, (실명, 포지션, 해당시즌 및 시리즈 스탯) 위키피디아 (스토리의 골자), 시카고T (당시 quote들), 그리고 수많은 인터넷의 기사들, 블로그들, 게시판의 글들에 올라온 정보들을 조합해봤지만 확실하게 결론을 내리기는 다소 힘듭니다. (물론그러니까 아직까지 controversy일것이며, 억울함을 주장하는 사람들과 냉정한 커미션의 갈등도 이어지고 있는거겠죠)
출처 : BaseBall-Reference (1919 World Series, Shoeless Jackson, Chuck Gandil, Buck Weaver, Eddie Cicotte, Happy Felsch, Swede Risberg, Lefty Williams), Wikipedia (the Black Sox Scandal, Shoeless Joe Jackson, Chuck Gandil, Buck Weaver), Fan Graph (1919 World Series, Eddie Cicotte), BleacherReport (Should baseball reinstate Buck Weaver and Shoeless Joe Jackson?), Baseball Historian (Joe Jackson Legend), ChicagoOHS (Shoeless Jackson), Chicago Tribune (Going to Bat for Buck Weaver), 그 외 Blogspot, Clearbuck, NotinHallofFame, Baseball Fever, MLB Discussion 등등
첫댓글 eight men out이란 제목으로 영화화 되었지요. 존 쿠삭에 찰리 쉰이 나오고, 예전에 주말의 명화에도 나오기도 했었고... 어떻게 다운받긴 했는데 한글자막은 죽어도 못구하겠어요 ㅠㅠ
에잇맨아웃은 걸작이죠.. 저도 엄청 어릴때 본 기억이 있는데 내용이나 메이저리그에대한 디테일은 이해 못하면서도 인상깊었던 기억이 있네요 ㅠㅠ
그리고 영화만 본 바로는 당시 화삭스의 에이스는 에디 시코티입니다. 30승 넘기면 보너스 받는다는 계약을 했는데 29승을 하자 구단주 코미스키가 감독에게 압력을 넣어 출전을 막아버립니다. 시즌 이후 보너스 요구도 씹어버렸고 이에 빡돌아 승부조작에 가담했지요
아 그렇네요. 당시 포수였던 쉬크가 후에 인터뷰에서 "사람들은 레드가 flu때문에 월드시리즈에 나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우리를 더 의심했지만 레드가 아프지 않았다면 승부조작은 없었을것이다. 레드가 있었다면 에디와 레프티의 등판의 일부를 레드가 했을것이기 때문이다"라고 했던 것 때문에 명전투수 레드 페이버가 에이스라고 생각했네요;; 당시 성적보니 19년 당시엔 말씀대로 씨코티가 에이스였네요.
@Mike Trout 영화에선 에디-레프티-신인(이름 까먹었네요)으로 3인 로테 돌렸는데 초반엔 신인 선수만 제대로 던졌다고 묘사됩니다. 이후 맘 고쳐먹지만 때는 늦었고... 아마 레드 페이버가 없어서 신인투수를 로테이션에 넣은거겠네요. 영화 다시 보면서 확인해 보고 싶은데 영어가 딸리니... ㅠㅠ
@원더KIDDy 딕키 커겠네요. 당시 신인으로 월시 두경기에서 10이닝 완투승포함 2-0, 1.42를 기록했죠. 사실 미국사이트들에서도 사이트마다 내용이나 추측에 차이가 조금 있어서 당사자들이 모두 고인이 되신 지금으로선 완전한 진실을 알기는 힘들것같습니다. 승부조작의 핵심이던 간딜조차 일부러 진건 아니라고 했지만 씨카티 본인은 승부조작을 인정했구요. 그나마 광범위하게 무죄일것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슐리스 잭슨인데 잭슨조차도 이긴경기와 진경기에서의 성적차이 등을 근거로 의심스럽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더군요. 다만 글에서도 느껴지겠지만 전 슐리스 잭슨은 결백하다고 생각하는데, 이긴경기/진경기 성적차이가 있다고 해도
@Mike Trout 이긴 3경기에서 4할5푼, 진 5경기에서 0.286을 쳤다는정도라서요. 팀이 질때 팀의 간판스타가 부진한건 어찌보면 당연한거라는 판단이구요.
@Mike Trout 개인적인 생각으로 승부조작여부는 당시 법정의 판단인 '증거 불충분'이 맞는것 같습니다. 다만 악덕 구단주 코미스키가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렸다는 게 의아하지요
브로커와 접촉한건 맞는데 그거대로 승부를 조작했는지는 증거가 불충분하고 기록을 봐도 앞뒤가 맞지 않는것도 있고 애매하긴하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