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아 솔아 푸른 솔아
-百濟. 6
박영근
부르네 물억새 마다 엉키던
아우의 피들 무심히 씻겨간
빈 나루터, 물이 풀려도
찢어진 무명베 곁에서 봄은 멀고
기다림은 철없이 꽃으로나 피는지
주저앉아 우는 누이들
옷고름 풀고 이름을 부르네.
솔아 솔아 푸른 솔아
샛바람에 떨지 마라
어널널 상사뒤
어여뒤여 상사뒤
부르네. 장마비 울다 가는
삼년 묵정밭 드리는 호밋날마다
아우의 얼굴 끌려 나오고
늦바람이나 머물다 갔는지
수수가 익어도 서럽던 가을, 에미야
시월비 어두운 산허리 따라
넘치는 그리움으로 강물 저어가네.
만나겠네. 엉겅퀴 몹쓸 땅에
살아서 가다가 가다가
허기 들면 솔닢 씹다가
쌓이는 들잠 죽창으로 찌르다가
네가 묶인 곳, 아우야
창살 아래 또 한 세상이 묶여도
가겠네, 다시
만나겠네.
*
"밀린 카드값과 아파트중도금, 그리고 빠꾸당한 결재판 앞에서/ 이십대가 꿈꾸던 대동세상은 끝났다,고 말하긴 싫은데// 새로운 세상을 꿈꾸기에는, 혁명을 꿈꾸기에는 너무 늦은/ 그냥 그냥 묻어가기에는, 절망하기에는 너무 이른/ 그 사이에서 절뚝거리며 저기/ 저기 서른들이 걸어간다"(졸시, 「서른」부분)
85학번들이 모처럼 모였습니다. 취하기 전까진 다들 잘 살고 있는 것처럼 떠들어댔습니다. 중국 갔던 얘기, 미국 갔던 얘기, 인도 갔던 얘기, 아들놈 자랑, 딸 자랑 다들 잘 살고 있는 것처럼 떠들어댔습니다. 적어도 취하기 전까진 말입니다. 하나 둘 취하기 시작하더니 너나 할 것 없이 취했습니다. 취하고 보니 다들 그게 아닙니다. 아파트 중도금이니, 밀린 카드값이니 해서 다들 푸념이 시작됩니다. 대동세상? 알고 보니 꿈이여. 누군가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를 부르기 시작했고 우리는 다같이 불러 제낍니다. 주인이 나가라고 할 때까지 우리는 그 날의 기억을 모두 들춰내며 기억나는 모든 노래를 불러제꼈습니다. 취하고 나니 다들 똑같았습니다. 빠꾸당한 결재판에 바둥거리는 생애들. 취하고 보니 우리들은 비틀거리는 걸음새도 닮았다는 걸 알았습니다.
서른 무렵에 쓴 시와 서른 무렵에 쓴 일기를 다시 꺼내 읽습니다.... 그리고 마흔 무렵... 갑작스럽게 박영근 시인의 부음을 들었던 기억을 떠올립니다... 나이 오십이 되어 되돌아보는 세월은 켜켜이 슬픔이고 켜켜이 아픔입니다... 무슨 말이냐구요... 요즘 세간에 하도 응팔 응팔 해서... 저도 "응답하라 1988"을 보고야 말았는데... 통과해온 그 시절이나 앞으로 통과해야 할 시절이 응팔처럼 따뜻하지는 않다는 거지요...
내 두 딸이 살아갈 세상은 좀 더 나은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는데...글쎄요... 잘 모르겠습니다... '창살 아래 또 한 세상이 묶여도/ 가겠네, 다시/ 만나겠네'... 바깥은 삼동 한파에 칼바람이 부는데 그래도 푸르른,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박영근 시인이 문득 그리운 아침입니다.
2016. 1. 25.
박제영 올림
첫댓글 춘천은 많이 춥죠? 호수가 꽝꽝 얼었을 것 같습니다.ㅠ,ㅠ
주페도 어제부터 응팔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하두 사람들이 응팔 응팔 노래를 불러서 매일 한편씩 보려고 합니다.^^*
응팔이 보다 찬팔이 보러 인사동에 오이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