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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렌시안,
브라만 대신관이 셀르시드에서 라키아 황제와 레이아 여왕의 혼례에 참석하고
그곳에서 하루를 보내고 돌아온 날의 깊은 밤이었다.
며칠에 걸친 긴 여정이 고단하였을 터인데도 대신관은 곧장 신관으로 가지 않고 곧장 히우투네스 재상의 저택을 방문하였다.
불이란 불은 모조리 꺼놓은 어두컴컴한 서재에서 촛불 하나의 작은 불빛을 가운데에 두고 그들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혼례는… 잘 마치었습니까?”
재상이 물었다.
대신관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군요”
짧막한 대답뿐, 더 이상 두 사람 사이에 또 다른 대화가 오가지는 않았다.
.......
........................
“이제 남은 일은 새로운 여왕을 이 세계로 데려오는 일뿐이군요”
“한 시라도 빨리 데리고 와야 할 것입니다.
혹여라도 저 교활한 셀르시드인들이 먼저 선수를 치는 날에는 모든 게 끝입니다”
두 사람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엘렌시안은 공식적으로 현 여왕 레이아 7세의 지배 아래에 있다.
그리고 현 여왕은 지금 공식적으로는 이웃 나라인 셀르시드에 국빈 자격으로 ‘방문’중으로
현재 나라의 키는 브라만 대신관과 히우투네스 재상의 손 안에 있다.
그리고, 원래의 선주가 자리를 비운 틈을 타 지금 이들은 나라의 주인을 바꿀 계획을 도모하고 있다.
“각성 전에만 새 여왕을 모셔온다면 자동적으로 여왕의 힘은 새 여왕에게 부여될 것입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따로 힘을 뺄 것도 없이 일이 수월하게 진행될 것입니다”
“만약 현 여왕의 각성 전에 새 여왕을 세우지 못한다면…”
“새 여왕은 빈 껍데기 뿐인 허수아비가 될 것이고… 엘렌시안은 현 여왕의 시간이 끝날 때까지
여왕 없이, 혹은 매우 곤란한 상황에 처할것 입니다”
“네, 만약 각성을 한 여왕이 훗날 우리와 엘렌시안에 앙심을 품기라도 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여왕의 손에 맥없이 무너지고 말 것이고 세상의 비웃음을 사게 될 것입니다”
“현 여왕의 각성의 반응이 다시 올 때까지 얼마나 남았지요?”
“정확하지는 않지만 몇 달 정도가 남았습니다.”
“이번이 두 번째 각성이니, 어떻게든 이번만 넘기거나 그 안에 새 여왕을 세운다면..”
“세 번째 각성까지 저지만 할 수 있다면 일은 더 수월할 지도 모르지요”
각성의 반응은 총 세 번.
그 세 번 안에 각성의 의식을 치루어야만 여왕이 살 수 있을 것이다.
만약 그렇지 못한다면 여왕은 자연스럽게 죽게 될 것이고..
현 여왕이 죽으면 자동적으로 여왕의 힘은 새 여왕에게 양도될 것이다.
재상과 대신관은 고심고심하며 최대한 조심스럽게 외부에 드러나지 않도록 은밀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어째서 셀르시드에서 여왕을 데려갔는지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재상과 대신관은 개의치 않았다.
그들이 현 여왕이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는 레이아의 보석을 노리는 것이든, 혹은 보석을 얻지 못하더라도 분명
막강한 도움이 될 게 분명한 엘렌시안 여왕의 힘 자체를 노리는 것이든, 어느 쪽이든 그들은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그들은 현 여왕에게서 가능성을 보지 않았다.
여왕의 힘이야 그녀가 각성 전에만 새 여왕을 세운다면 자연스럽게 자신들의 수중으로 들어올 것이고
결국 셀르시드는 빈 껍데기만 쥐고 흔들게 될 것이다.
“그 쪽에서 각성의 의식을 치룬다면 누가 움직일까요?”
“그쪽도 그 일에 관해서는 그리 쉽지 않을겁니다.
일단 의식을 치룰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것은 라키아 현 황제와 르메르 선황제.
이 두 사람뿐인데 알다시피 셀르시드의 권력이 이 두 사람을 중심으로 나누어져 있는 것은 아시겠지요.
어느 한 쪽도 여왕의 각성을 주도할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할거니 생각보다 쉽게 이루어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허나 여왕이 황후가 된 이상 아무래도 황제에게 조금 더 유리하지 않을까요?
생각보다 게임이 빨리 끝날 수도 있습니다”
“무슨 뜻입니까?”
“부부가 되었으니 여왕이 아무래도 시아버지인 선황제보다는 남편인
라키아 황제를 조금 더 믿고 의지하지 않겠느냐는 말입니다”
“대신관 님, 처음 이 혼사를 계획하고 추진한 사람이 누구였습니까, 바로 르메르 선황제입니다.
르메르 선황제는 자기에게 반하는 세력이 가라앉을 때까지만 방패삼으려
12살 어린 아들을 화살받이로 내세웠던 인물입니다.
일단 반대 세력이 가라앉으면 다시 자신이 복권하려는 의도로 말이죠.
아마 현황제가 몇 년 가지 못해 고꾸라질 것이라고 예상했었겠죠.
하지만 그의 예상과는 다르게 현황제는 승승장구를 달렸고 그 결과 셀르시드 역사상
최고의 황제라는 칭송을 듣고 있는 인물입니다.
그런 그를 지금에 와서 끌어내릴 구실이 르메르 선황제에게는 없지요.
또 지금 역사상 가장 강력한 황권을 구성한 라키아 현 황제에게 맞설만한 힘조차 그에게는 없습니다.
결국 남은 희망이라고는 레이아의 보석 또는 라키아 황제의 힘과 맞먹을 수 있는 지상 유일의
힘인 엘렌시안 여왕의 힘뿐인데 궁지에 몰린 선황제가 그를 쉽게 호락호락하게 내줄 것 같습니까?
내가 아는 선황제는 그리 만만한 인물이 아닙니다.”
“허나 라키아 황제도 그리 만만치 않은 인물인데.. 뻔히 그 속을 알면서도 쉽게 기회를 내어줄까요?”
“그러니 일이 쉽지 않을것이란 말입니다.
양쪽 모두 대등한 크기의 힘인데 그 두 힘이 부딪힌다면 쉽게 결판이 날 리가 없지요.”
재상의 말에 수긍하듯 대신관은 고개를 끄덕였다.
“재상, 지금으로서는 여왕의 각성에 대해서 희망적인듯 보이지만 만약에..
혹, 만약에라도 여왕이 각성하게 된다면.. 또는… 그녀가 진짜 마지막 레이아의 보석이라면 어떻게 하실 참입니까?”
재상의 새파란 눈이 대신관을 쳐다보았다.
대신관은 자신의 아들뻘 정도밖에 안 되는 젊은 재상이지만 늘 그가 저 눈으로
자신을 쳐다볼 때는 온 몸에 섬찟한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때가 되어도 별 다른 것이 있겠습니까?
그녀가 우리의 반대편에 선다면…
그 때는 그에 응당한 대가를 치러야겠지요”
그 때 구석에서 부스럭 하는 인기척이 들리었다.
“누구냐!!!”
재상이 매섭게 외치었고 대신관 또한 일순간 팽팽하게 긴장의 날을 세운 채 어둑어둑한 구석을 쳐다보았다.
“아버님, 저입니다”
벨벳처럼 부드러운 목소리.
어둠속에서도 새파랗게 빛나던 눈동자와 반짝거리던 짙은 금발의 머리칼의
주인공이 재상과 대신관에게 다가감으로서 점차 그 완전한 윤곽을 드러내었다.
“오, 카무엘 군. 어쩐일인가? 아직 몸이…”
“괜찮습니다”
대신관이 거북스러운 표정을 감추며 일부러 화제를 돌리었지만 카무엘은 그것에 넘어가지 않는다.
카무엘의 표정은 알 수가 없었다.
지나치게 예의 바른가 하면 그 끝에는 알 수 없는 반항감 비슷한 것이 자리하고
있기도 하였고 딱딱하게 굳어 철옹성 같아 보이기도 하는 동시에 바람만 불어도 허물어질 듯 약해보이기도 하였다.
재상이 여전히 날카로운 눈으로 아들을 쳐다보았다.
“여기서 무얼 하고 있었느냐”
“전 다만 아까부터 이곳에서 책을 읽고 있었을 뿐입니다. 그러다가 도중에 잠이 들었는데
아버님과 대신관께서 와 계신 것을 미처 알지 못하였습니다.”
“이야기를 들었느냐?”
재상의 눈이 한 층 더 날카로워 지고 대신관은 그런 부자의 모습을 조마조마하며 바라보았다.
카무엘의 표정은 여전히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내 곧, 카무엘은 예전에는 한 번도 자신의 아버지에게 지어본 적이 없던
그 숨막힐 만큼 아름다운 미소를 지으며 세상의 어느것보다 더 부드러울 수 없는 목소리와 말투로 대답하였다.
“전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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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마, 마마- 일어나시어요! 일어나시어야 하옵니다”
엘렌시안에 있으나 셀르시드에 있으나 아침이면 어김없이 들려오는 시녀들의 모닝콜.
게다가 셀르시드에서는 엘렌시안에서보다 한 시간이나 일찍 일어나야 한다.
“아아… 나 좀만 더 자면 안될까? 10분, 아니 5분… 아니..1분만…”
“아니되옵니다, 조금 있으면 폐하께서 오실 것이라구요!”
내 하루는… 일단 엘렌시안으로 돌아가는 대신 내 옆에 남아 셀르시드에서도
내 시중을 들기로 결정한 충성스러운 레나의 우악스러운 손길에 이끌려 반쯤
깬 비몽사몽한 상태로 욕실로 들어갔고 오늘도 어김없이.
며칠 사이에 익숙해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풀 서비스, 셀르시드 황궁 시녀들의 목욕마사지를 받으며
따뜻한 물이 담긴 욕조에 들어가 온 몸을 시녀들에게 맡긴 채, 입으로는 시녀 한 명이
대주고 있는 사과요구르트 비슷한 맛이 나는 아침에 먹는 강장제 비슷한 것을 마시는 것을
시작으로 또 새로운 아침을 맞이하는 것이었다.
막 내가 허겁지겁 씻고 시녀들의 손에 의하여 입혀지고 꾸며지고 단장을 마치면
딱 때맞추어 라키아 황제가 황후전에 나타난다.
“황제 폐하 납시오!!”
영화에서 보듯 길잡이가 커다란 목소리로 외치었고 그 소리를 들은 모든 사람들은,
나를 제외한, 바닥에 납짝 엎드리는 것이었다.
그리고 오늘 아침도 드라이 아이스처럼 냉기가 철철 넘치는 동시에 뻔뻔함이
옵션으로 흐르고 있는 황제의 뺀질뺀질한 얼굴이 나타난다.
“아직도 준비가 안 된것입니까?”
내 머리 손질을 해주고 있던 시녀가 지금 황제가 내 앞에 다가옴에 따라 납작 바닥에 엎드려 있는 통에 결국
머리손질의 마무리는 내가 해야만 했다.
“거의 다 했습니다”
툴툴거리며 나는 황금 장식이 덕지덕지 붙어있는 비녀를 겹겹으로 틀어올린
무거운 머리에 맵시있게 꽂아 넣으려고 거울 앞에서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가며
용을 썼고 나중에는 팔도 아프고 짜증도 나 그냥 아무렇게나 냅다 꽂아버렸다.
“다 마쳤습니다”
하지만 황제는 뭔가 못마땅하다는 얼굴이었다.
“무슨 문제 있사옵니까?”
하지만 놈은 절레절레 고개를 흔들고는 다시 무표정한 얼굴이 되어 내게 손을 내밀었다.
오늘도 역시..
한숨을 내쉬며 나는 그 손을 덥석 하이파이브라도 하듯 철썩 소리를 내며 붙잡았고
황제는 움찔하였지만 별다른 말 없이 에스코트하며 결혼 생활 일주일 째,
이제는 하루의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과로 자리잡으려고 하는 신전에 아침참배를 드리러 가는 것이었다.
라키아 신을 형상화 한 거대한 석상이 놓여진 신관의 내부에 이른 아침마다
향을 피우고 절을 하는 것이 셀르시드의 황제와 황후의 하루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그 후에는 선황제에게 아침 문안 인사를 올리는 것.
내가 살던 곳에서도 시집 오면 어떤 집은 이런걸 하기도 하는데 여기서도 이런 비슷한 것을 체험해 보니
뭔가 묘한 기분이 든다.
불을 붙여 향초를 향로에 꽂고 두 손 모아 잠시 합장하듯 기도를 하고 절을 하고 나면 짧막한 아침 참배가 끝이 난다.
그리고 공식적으로 이렇게 황제와 황후가 함께 다닐시에는… 우리 둘은 반드시 서로 손을 부여잡고 다녀야 한다는 것.
부여잡고 다닌다는 의미보다는 황제가 황후를 에스코트 한다는 의미이긴 한데..
어쨌든, 그것도 오래가다 보니까 예법적인 의미는 퇴색하고 그냥 귀찮기만 한 일이었다.
왠지 사귀는 연인 같다는 느낌도 들기도 하였고.
“있지요. 라키아 신이 정말 이 세상 어딘가에 살이있기 때문에 이렇게 아침마다 문안을 올리는 거야..요?”
공식적인 자리에서는 반드시 존댓말을 써야만 했다.
“무슨 말입니까, 황후?”
존댓말이 영 어색한 나와 달리 황제는 술술- 아무렇지도 않게 존댓말을 뱉어낸다.
“아니… , 이야기에 다르면 라키아 신은 이 세상에서 사라졌다고 하는데…
다른 나라에서도 그 신들은 모두 소멸하거나 그 자취를 감추었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어찌하여 그 신에게 이리도 정성을 들여 향을 피워 올리고 또 소원을 축원하기도 하는 것입니까?”
“…”
“네?”
“황후는 눈에 보이는 존재만 믿는 사람인 것 같군요”
“그게… 왜요?”
“신은… 우리의 조상입니다. 설사 그들이 이 세상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그들은 여전히
우리의 조상이고 창조주입니다. 우리가 그들을 숭배하고 의식을 올리는 것은
정말로 있을 그들의 존재를 위한 것이 아니라 과거,지금 이 세상을 이륙한
그들에 대한 찬양이고 존경을 표현하는 방식인 것입니다.
굳이 그들의 존재가 없다고 하여 지금 신전에서 행하고 있는 모든 일들이 다 쓸모 없는 일만은 아닌 것 입니다.”
“아…”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그 신의 환생이라고 일컫는 것도 그와 같은 이치입니다.
그들도 알고 있습니다. 우리의 신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다만 그들은 믿는 것이지요.
신이 그들의 직계 후손인 황족의 몸을 빌어 다시 한 번 이 땅에
그 거룩한 영광을 재현하러 다시 왔다는 것을 믿고 싶을 뿐이지요.”
Worship 숭배.
제 1세계에서나 4세계에서나 사람들의 불안한 마음은 모두 같다.
신의 존재가 4세계보다 더 사실적이고 실제로도 존재했던 1세계에서도 그들이 사라진 지금, 여전히
그들에게 매달리고 조언을 구하는 사람들의 불안한 마음은 모두 같다.
선황제에게까지 아침 인사를 올리고 난 후에는 황후는 황후만의 임무를 수행할 시간이 주어진다.
이건 뭐 어느 세계에서나 마찬가지인 듯, 황후는 우리나라 말로 하여 내명부, 즉 황궁의 모든 여성들을
관리하고 다스리는 여성 대장이다.
그 동안 황제의 신경이 미치지 못하여 훼손되거나 아름답지 못한 황궁 안의
모든 건물들이나 자잘한 소품들에 이르기까지 황후는 하나하나 모두 다 검사하여 시정토록 한다.
오늘의 미션 장소는..
“아들레이드 궁이옵니다”
젠장… 황제의 후궁들이 기거하는 장소가 아니던가.
이미 후궁들은 만나보았다.
모두 다 하나같이 꽃보다 더 아름다운 여인들이었고 그 앞에 서있는 나는..
내가 그들보다 훨씬 더 높은 제 1황후임에도 불구하고…(내가 대장인데)
자꾸 움츠러드는 느낌이야.
“황후 마마 납시오”
시종의 낭랑한 목소리가 울리었고 여전히 아름다운, 꽃이 만발하고 꽃향기가 사방에서 진동하는
아들레이드 궁의 정문에 들어서자 사뿐사뿐 깃털처럼 가벼운 걸음걸이의 후궁들이 뛰어나와
나를 맞이한다.
“황후 마마 납시셨사옵니까”
하나같이 다 인형처럼 아름다운 얼굴에 가냘픈 체구… 여자가 보아도 이리도 사랑스러운데
남자들은 어떨까?
“아, 저, 오늘은 내 아들레이드 궁에 따로 보수하거나 또 그대들이 생활하는 데에 불편한 것이 없는지
살펴보러 왔습니다”
보기만 해도 살살 녹는 그녀들의 아름다움에 어떤 사람이 감히 권위를 내세워 엄한 표정과 말투를 지을 수 있을까?
“성은이 망극하옵나이다”
벨처럼 낭랑한 목소리들이 합창하듯 울리었고 나는 자연스레 터져 나오는 기분 좋은 웃음을 지으며
그녀들의 안내를 받아 아들레이드 궁 안으로 들어섰다.
아들레이드 궁은 후궁들이 거처하는 궁이다 보니 일단은 우아함보다는 화려함이 더 앞선 건물이었다.
내가 거처하는 황후궁이 화려함과 동시에 우아함이 넘친다면 아들레이드 궁은 정말 이름 그대로 쾌락을 위한
공간이라는 인상이 강하였다.
“황제께서 많이 신경을 써주시어 소녀들, 지금껏 불편함 없이 살아왔지만 황제께서
바쁘시어 그분의 눈길이 미치지 못할 때에는 불편함이 조금은 있사옵니다”
후궁들 중에 나이가 가장 많아 보이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름다운) 후궁 하나가 길잡이로 나를 안내하며
아들레이드 궁 안의 이곳저곳 보수해야 하거나 개선해야 할 것을 보여주었고 그것을 옆에 따라다니는 레나에게
적게 하며 아들레이드 궁 순방을 마친 나는 그녀들과 차 한 잔을 같이 나누기로 하였다.
화려한 색감과 모양이 눈에 띄는 찻주전자와 찻잔에 따라진 시원한 향내가 나는 민트티를 마시며 그녀들과 나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체로 내가 이야기 하는 것보다는 그녀들이 내게 이야기를 하는 편이었다.
그런데 그 중에 새침하게 생긴 한 후궁이 이런 저런 얘기를 하던 끝에 내가 지나가는
말로 물은 불편한 점이나 힘든 점이 없냐는 말에 이런 말을 꺼내었다.
“황제께서는 저희들을 싫어하시옵니다”
일순간 다른 후궁들이 긴장한 눈초리로 그녀를 쳐다보았으나 그녀는 그런 것 따위는 개의치 않는 듯 말을 이었다.
“여기에 있는 후궁들은 대부분 들어온 지 4~5년이 된 후궁들이옵니다.
하지만 그 기간 중 단 한 번도 황제폐하께 부름을 받아보지 못한 아이들도 태반이옵니다
제대로 첩지를 받거나 승은도 입지 못한 채 나이만 먹어가는 후궁이온데,
저희에게 무슨 희망이 있겠사옵니까?
이도 저도 아니고 이 아들레이드 궁에 갇혀 나이만 먹어간 후궁은 결국에는 궁 밖으로 쫓겨나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저희가 행복하다 할 수 있겠사옵니까?”
“황제가… 단 한 번도 방문을 하지 않은 후궁도 있다구요?”
“황제께서는 즉위 이후 후궁을 찾으신 적이 거의 없으시옵니다”
새침하게 생긴 후궁은 말을 하면 할수록 열이 뻗치는 지 점점 말에 힘이 실리었고
옆에서 조마조마한 눈으로 바라보던 후궁들도 그 동안 쌓인 것이 많았는지 굳이 그녀를 말리지는 않았다.
“사람들이 모두 이 아들레이드 궁 안에 있는 우리를 보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이라고 일컫지만
그러면 무얼합니까, 우리는 단 한 번도 나비님을 맞이하지 못하는 조화보다 더 못한,
한 번도 사랑받지 못하고 남모르게 시들어가는 꽃들인걸요”
후궁은 말을 잠시 멈추더니 나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나는 움찔할 수밖에 없었으니..
그녀의 검은 눈에 튀는 불꽃이 꼭 나에게 퍼붓는 원망인양 느껴져서 말이다.
“황제께서는 황후마마께 당연히 잘해주시겠지요?”
“음?”
갑작스러운 질문에 당황하여 나는 말을 쉽사리 잇지 못하였다.
“황후께서는 고귀하신 엘렌시안의 여왕폐하가 아니시옵니까, 그러니 절대로 황제께서 황후마마께
등을 돌릴 일은 없지 않사옵니까”
딱히.. 그렇지 만도 않은데..
나는 인상을 살짝 찌푸리며 며칠 전 밤을 회상하였다.
분노의 첫날밤이 그렇게 지나간 후, 나는 그 다음날 온통 술에 쩔어서 퉁퉁 불은 너구리 면상을 하고
한 팔에는 술병을 꼭 끌어안고 침대에 널부러져 자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하였다.
이부자리를 정리하러 들어온 레나는 숙취로 떡실신이 된 것 외에는 너무나도 멀쩡한 내 모습을 보고
실망을 하였노라고 훗날 말했다.
알고 보니, 새벽녘, 내가 술병을 끌어안고 혼자서 잠에 든 그 시간에 황제는 다시 방으로 돌아와
해가 뜰 때 일부러 시녀들에게 자신의 모습을 보이고는 나간 것이었다.
자신이 지난 밤을 이곳에서 보낸 것으로 위장하기 위해.
어쨌든, 내 시중을 드는 시녀들은 모두 다 알았다.
간 밤에 황제와 나 사이에는 아무런 썸씽도 없었다는 사실을. 하지만 그들은 입이 있어도 없는 자들이었기에
사람들은 동이 틀 때에 방에서 나오던 황제의 모습만을 보고 눈에 보이는 사실만을 믿을 뿐이었다.
그리고 첫날 밤 이후로 황후전에서 자게 된 나를 황제는 매일 밤 찾아왔고, 늘 침대 옆의 의자에 밤새도록 앉아서
꾸벅꾸벅 졸지도 않고 졸린 티도 안 내고 눈 똑바로 뜨고 있다가 가끔 툭툭 뱉는 말마다
사람 염장을 뒤집어놓고는 동 틀 때에 사람들이 일어날 시각이면
일부러 눈에 띄게 나가는 것이었다.
그 일을 처음 나흘을 반복하길래 나중에는 어이가 없다 못해 저 인간은 잠도 없나 싶더라.
하지만 황제도 연속 며칠을 내리 잠도 자지 않고 의자에 앉아있는 게 힘들었는지 요 며칠 새에는 오지 않고 있었다.
사람들은 황제가 아침에 내 방에서 나갔다는 것만으로도 우리가 이미
서로에게 완벽하게 적응을 하였다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폐하께서는 황후 마마를 매일 밤 방문하신다 하지 않습니까?”
네, 방문은 해요.
염장 지르러요.
차마 입에 올리지 못하는 말을 차를 털어넣음으로써 꿀꺽 삼키고 나는 떨떠름하게 웃어보였는데
그것이 배고픈 후궁들에게는 마치 승자의 여유만만한 미소 정도로 보였는지 그녀들은 일순간 모두
굳은 표정을 지었다.
“저희가 안 그래도 할 일이 많으신 황후 마마를 붙잡고 쓸데없는 이야기가 너무 많았사옵니다.
죄송합니다.”
쌀쌀맞은 목소리로 후궁 한 명이 말하였고 그녀들은 곧 모두 합창하듯 예의
바르지만 노골적으로 내게 자신들의 세상에서 나가줄 것을 요구하였다.
결국 이건 아닌데 싶으면서도 말 한 마디 하지 못하고 나는 아들레이드 궁을 나올 수 밖에 없었다.
“아, 뭐야.. 이 나라 너무 이상해”
황제도 이상하고 그 후궁들도 이상하고.
에휴, 내 인생에 이런 요상한 일들을 겪고 엄마 아빠 모르게 결혼에 황후에.. 이런 게 닥칠 날이 오리라고
내 언제 상상이나 해봤을까?
한숨을 내쉬며 나는 레나에게 다음 일정을 물었다.
“아들레이드 궁에서의 일정이 생각보다 빨리 끝나서 시간이 남습니다.
그 다음 일정은, 정원을 살펴보시는 것인데요. 미리 그 일정을 앞당기시렵니까?”
“정원? 아! 그냥 빨리 빨리 앞당겨서 오늘은 좀 빨리 편하게 푹 쉬고 싶다”
크기와 아름다움으로는 1세계 안에서도 유명한 셀르시드 황후의 정원.
이곳에 온 이후로 몇 번 둘러보기는 했지만 그 크기가 워낙 커 아직도 다 살펴보지 못한 것이었다.
딱히 정원에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 정원이 황후의 소유인 이상
주인인 내가 정원을 한 번이라도 제대로 보지 않는 다는 것은 어불성설이기에,
나는 썩 내키지 않는 걸음을 옮겨 정원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세상의 온갖 희귀하고 아름다운 식물들은 죄다 모아놓아 예술의 극치로 배치시켜 놓았다는 황후의 정원.
구불구불한 미로같이 끝도 없이 이어진 정원 안에서는 백 명이 넘는 노예들이 하루 종일 매달려 가꾼다고 한다.
대강대강 그 정원을 훑어보다가 나를 안내하던 시녀 한 명이 말한다.
“이곳까지는 일반에도 알려진 정원이고… 정말 아름다운 것은 바로 이곳, 비밀 정원이랍니다”
“비밀 정원?”
“네, 이 정원은 역대 황제 폐하께서 황후 마마들에 대한 사랑을 표현 하고자 한 분 한 분 정성을 들여 만든 것이옵니다.
하지만 조금 더 특별한 사랑을 표현하길 원하셨던 황제께서는 이렇게 따로 비밀 정원을 만들어 주셨답니다
그곳까지 오늘 보시겠사옵니까?"
비밀정원이라는 말에 구미가 확 당긴 나는 그러겟노라 하였고 시녀의 안내를 받으며
정원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가는 내내 본 것은 높다란 나무나 거대한 꽃나무에 매달려 열심히 일하고 있는
에스텔리카 출신의 노예들이었다.
"정원일은 대부분... 노예들이 하나봐?"
"네, 정원 일은 가장 고되고 궂은 일이기 때문에 노예들이 하옵니다"
노예라.
아무리 생각해도 어감이 역시 좋지는 않다.
하지만 내가 그 자리에서 그들을 위하여 해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들은 내가 옆을 지나갈 때마다 눈조차 마주치지 않으려고 고개를 푹 숙이었고 온 몸을 쭈그러 트리는 것이었다.
그 모습에 나는 어쩐지 무척이나 속상한 느낌이었다.
안타까운 눈길로 그들을 바라보다 나는 고개를 돌리었는데..
문득 내 발치 아래에 엎드려 있는 한 남자 노예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양의 타래처럼 구불구불한 아름다운 금발 머리.
무의식 중에 내가 그의 앞으로 다가서자 그는 흠칫 놀라며 얼굴을 들었고
나는 곧...
낯선 충격에 빠지었다.
저 푸른 눈...
첫댓글 ㅋㅋ시습시간인제 지금 이거 보고있어용`!ㅋㅋ 완전 조마조마ㅋㅋ다봤지만ㅋㅋ담편 기대하께용~!
학교에서 그러심 아니되어용~......-_-;;;;;전 지금 에세이 쓰면서 댓글 달고 있어요;; due가 오늘인데 후훗-_- 난 미쳤삼~난 막장이야~ 저처럼 이러지 마세요~-_-;;;;
1부 끝내신거 늦었지만 축하드려요 ^^ 재미있게 보고 있으니깐 열심히 써주세여
네^^ 최대한 늦춰지지 않게 올리도록 노력하고 있으니까 계속해서 지켜봐 주세요^^ 댓글 항상 남겨주셔서 너무 감사한거 아시죠?ㅎㅎ
ㅋㅋ오늘 셤보구 와서 당장 댓글 올려요~1부 끝내신거 축하드려염!!담편두 잘 부탁드려요
시험 잘 보셨어요? ㅎㅎ 시험 보구 피곤하실 텐데 바로 와주셔서 댓글도 항상 남겨 주셔서 너무너무 감사드리구 있어요ㅎㅎ
이거 어떻게 다운 받아요
다운은 좀-_-;; 제가 따로 파일을 만들지 않았거든요.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