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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려타곤(懶驢 坤) 3-23
"황제를 알현하러 왔단 말이오?"
소구는 웃으면서 말했다.
"진작 말로 해결했으면 좋았잖소? 난 편해서 좋고 당신들도 죽을 사람도 기관도 파괴될 일이 없었을 테니--."
소구의 얄미운 말을 들으면서 그는 이를 갈았다.
'으---, 이 괴물을 빨리 이곳에서 보내야 돼.'
조금만 더 같이 있다간 미칠 것 같은 기분에 빠져든 그 위사는 바쁘게 걸음을 옮기면서 말했다.
"따라오시오. 역대의 황제들이 애용하던 비밀통로로 안내할 테니---."
뚜벅뚜벅 걸음을 옮기는 그 복면인을 따라 소구는 느긋한 걸음으로 뒤를 따라가고, 앞서가는 복면인의 머리 속에서는 지난 하루 동안 벌어질 일이 떠오르고 있었다.
처음 이자가 발견된 것은 어제 저녁 무렵이었다. 기관이 중첩되어 있고 너무나 복잡해서 아무도 사용하지 않는 북쪽의 미로를 통해 자금성의 지하로 들어온 뒤의 괴물에 대해 알게 된 것이 그 무렵이니 어쩌면 그 보다 더 일찍 들어왔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자가 자금성의 지하를 돌아다니는 방법은 아주 간단했다. 무조건 벽을 부수고 한쪽 방향으로 움직이는 이자를 막기 위해 지하를 지키는 모든 위사들이 동원되었다. 단순하고 무식한 방법으로 움직이는 이자로 인해 가장 먼저 죽은 동료의 모습을 떠올린 그 위사는 갑자기 고개를 흔들었다. 그 동료는 재수가 없었다. 이자와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던 그 위사는 무너져 내리는 벽에 깔려 죽었던 것이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이자의 앞을 가로막는 것은 사람이건 벽이건 기관이건 모조리 파괴되고 죽어갔다. 그것도 소리하나 없이 모든 것이 가루로 변해버렸다.
물 속에서 사람은 숨을 쉴 수 없으니 죽을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이자는 무려 두시진 이상 물속에 갇혀 있었지만 털끝만치도 괴로워하지 않았다. 오히려 편하다면 그곳에서 잠시 낮잠을 자기에 그 모습을 몰래 숨어서 보게 된 위사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물이 안 되니 그 다음에 사용한 것이 불이었다. 이 자를 불로 가득 찬 통로를 유인하기 위해 다섯 명의 위사들이 죽어갔다. 화염으로 가득 찬 통로를 지나가는 등뒤의 괴물은 휘파람까지 불어가면서 걸음을 옮겼다고 하니----. 하여튼 불로도 이자를 죽일 수는 없었다. 그 다음에 동원된 것은 독이었지만, 이자는 독의 종류와 성분을 말하면서 좀 더 센 독이 없냐고 물어보더라는 이야기를 들은 그였다. 이곳에 있는 독은 하나 하나가 단숨에 살아 있는 모든 것을 죽이고 녹이는 강력한 것이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마시는 것이 아니라 닿기가 무섭게 중독 되어 죽어야 하는 그런 강력한 독도 등뒤의 괴물에게는 조미료 취급밖에 못 받았던 것이다. 무쇠를 무처럼 베는 보검과 지금 당장 무림에 뛰어들어도 일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고수들이 공격을 퍼부었지만 옷자락 하나 베지 못한 상태였다.
흥얼흥얼 콧노래를 부르며 뒤를 따라오고 있는 자는 아무리 생각해도 괴물이었다. 아무리 고수라고 해도 그런 상황이라면 죽어도 수십번은 죽어야 하는 것이다.
무고를 지키는 위사 삼십팔호는 뒤를 쳐다보며 말했다.
"이제 다 왔소. 이쪽 통로를 따라 쭉 따라가면 용 모양의 작은 조각이 있을 것이오. 그것을 왼쪽으로 돌리면 황제의 침실 바로 아래에 있는 밀실이오."
"알려줘서 고맙소. 나갈 때도 부탁하오."
그는 끔찍한 소구의 말을 듣고 놀라 소리쳤다.
"당신 같은 괴물하고는 다시 상종하고 싶지 않소. 거기 가서 황제에게 통로가 어디 있는지 물어보시오."
말을 끝내기가 무섭게 복면인은 모습을 감추고 소구의 얼굴 위로 떠오른 것은 비웃는 표정이었다.
"세상 넓은 줄 모르는 하룻강아지들--, 작은 성취에 무적이나 되는 것처럼 자신을 드러내는 우물안 개구리들이 이곳을 지킨다니?"
가소롭다는 듯 그렇게 중얼거리던 소구는 느긋한 걸음으로 다시 통로를 따라 이동했다.
혼천문의 무학을 완전히 터득하지도 못한 상태이기는 했지만, 밖에 나와 느낀 것은 자신의 성취만으로도 무적이라는 것이었다. 그 어떤 것도 자신의 앞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세상은 넓으니 어딘가에 자신의 상대가 될만한 존재가 있겠지만 극히 드물 것이다. 진짜 강자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니 자신의 모든 실력이 드러나는 우를 범할 수는 없었다. 어디에선가 독고삼검(獨孤三劍)을 터득한 또 하나의 절대쌍천 - 독고류의 계승자가 자신을 지켜 볼 수도 있는 일이기에--.
그렇게 걸음을 옮기던 소구의 발걸음은 문득 멈춰졌다.
"음--, 이건가 보군."
허리 높이까지 올라오는 돌기둥의 위쪽에는 용이 조각되어 있었다.
강희제(康熙帝)라 불리는 청(淸)의 소년 황제는 자신의 방에서 소식이 돌아오길 기다리고 있는 상태였다. 심부름을 보낸 근보가 떠난 지도 벌써 몇 달이 흘러간 상태였다. 오늘 같은 날이면 근보가 하루라도 빨리 소식을 가지고 돌아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홍수처럼 밀려들었다.
오늘은 정말 기분이 더러운 날이었다.
신하가 황제를 오라 가라 하는 경험을 하게 된 날이었고, 게다가 한술 더 떠서--.
보정대신 중의 하나인 수크사하를 처형하기 위해 조서를 위조하여 처형한 일도 기분 나쁜 일이었지만 그 때도 힘없는 어린 황제는 모른 척해야 해야 했다. 그리고 오늘 강희제는 또 한번 참아야만 했다.
오늘은 병을 핑계로 조회에 참석조차 하지 않던 오배에게서 병문안을 와달라는 연락이 오고, 힘없는 어린 황제는 신하의 문병을 가야만했다.
강희제가 오배의 집에 가서 방문 안으로 들어서려는 순간 오배는 당황한 표정으로 덮고 있던 이불 끝을 다독거리고 있었지만, 그 눈은 일이 잘못되면 금방이라도 자신을 죽일 듯한 살기를 풍기고 있었다.
수행 무관 중의 하나가 오배를 수상히 여겨 이불을 젖히자 드러난 것은 예리하게 날이 선 하나의 큰 칼이 있었다. 자신을 따라서 오배의 집에 들린 수행무관들 모두가 칼을 빼어들고 오배를 둘러싸고 금방이라도 싸움이 벌어질 뻔한 분위기였다.
강희제는 어리기는 했지만 오배의 실력을 알고 있었다. 수행무관들의 힘으로는 만주 제일의 용사라고까지 칭해지는 오배의 무공을 당해낼 수 없다는 것을--.
"칼을 몸 곁에 간직하는 것은 만주의 전통이니 모두 물러서라."
그렇게 또 한번 신하에게 아부하는 말을 해야만 했던 강희제의 마음은 분노로 불타오르고 있었다. 붕당을 결성하고 황제를 위협하는 신하는 더 이상 강희제의 마음속에 신하가 아니라 반역도일 따름이었다. 그렇게 아슬아슬한 순간을 모면하고 다시 자금성으로 돌아온 강희제는 쏟아지려는 눈물을 참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했다. 오늘 죽을 수도 있었던 것이다.
실컷 울고 싶어진 강희제는 자신의 방에서 시중을 들어주기 위해 대기하고 있는 환관과 시녀들을 보면서 말했다.
"모두 물러가라. 내가 다시 부르기 전에 아무도 이 방에 들이지 말라."
그렇게 명령을 내리고 방에 아무도 없이 혼자가 되었지만 그것도 안심이 안되어서 강희제는 침상 아래의 밀실로 들어갔다.
이곳은 황제만의 비밀공간이었다. 아무리 어리다고 해도 황제는 절대로 울어서는 안 되는 존재였기에 아무에게도 우는 모습을 보일 수가 없는 것이다.
훌쩍 훌쩍 소리 죽여 울고 있는 소년을 밀실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발견한 소구의 얼굴 위로 짜증이 솟아올랐다.
지하의 비밀통로와 연결된 문이 열리고 들어온 낯선 사람을 발견한 강희제는 그 투박한 목소리를 잊을 수가 없었다.
"네가 현엽이냐?"
황제가 된 이래 자신의 이름을 불러준 사람은 지금 보는 사람이 처음이었다. 강희제의 고개가 끄덕여지는 순간 일은 시작되었다.
"그래, 네가 현엽이란 말이지?"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적어도 일장 정도는 떨어져 있던 그의 몸이 순식간에 강희제의 옆으로 달라붙고, 밀실 안에는 콩 볶는 듯한 요란한 격타음이 울려 퍼졌다.
불문곡직하고 강희제를 일단 두들겨 패는 소구였다.
"남자란 말이다, 아무리 괴롭고 힘든 일이 있어도 쉽게 눈물을 흘리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나도 어렵고 괴로운 시기가 계속 있었지만 결코 눈물을 흘린 적은 없다! 날마다 죽도록 얻어맞고! 굶어 죽게 되었을 때도! 온 몸이 아파서 움직일 수 없을 때도! 절대로 울지 않았다!"
그렇게 강회제를 두들겨 패면서 소구의 입에서는 성난 고함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뚝 그쳐!"
소구의 입에서 또 한번 고함이 터져 나오고 강희제는 나오려는 눈물을 꾹 참았다. 태어나서 맞아보기는 이번이 처음이었기에 온 몸이 아프고 쑤셔왔다.
"거기 무릎 꿇고 손들어!"
다시 또 한번 명령이 떨어지고 강희제는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씨-, 그래도 난 황제인데----."
"맞고 할래 그냥 할래?"
소구의 으름장이 또 터지고, 매에는 장사 없다고 어린 황제는 황급히 무릎 꿇고 두 손으로 하늘을 받쳤다.
"저--기, 그런데 누구세요?"
얼굴이 붉고 푸른 멍이 가득한 상태가 되어서 황제는 부풀어오른 입술 사이로 질문을 던졌다. 이곳은 결코 아무나 들어올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이곳에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은 자신과 이 세상에 단 한사람만이 있을 뿐이었다.
"나? 네 외삼촌이다."
"외--외삼촌요?"
"그래 네 외숙부란 말이다."
"저기 제 외숙부님 중에 당신 같은 분은 없는데요?"
"후--우, 이놈아 네 놈의 가짜 엄마 말고 진짜 엄마 방화련이 바로 내 누님이다. 덕분에 이곳까지 억지로 오게 되었지---."
아직도 이곳에 오게 된 것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소구는 불만이 가득 찬 얼굴로 대답했다.
소구의 말을 듣는 순간 강희제는 충격을 받았는지 조심스레 다시 질문을 던졌다.
"정말 그분이 진짜 제 어머님이란 말인가요?"
소구는 새삼스레 자신에게 얻어터져 엉망이 된 얼굴에 입가로 피를 흘러내리는 조카를 안쓰런 얼굴로 바라보았다.
"몹쓸 네 아비가 엄마가 누구인지도 제대로 알려주지도 않았구나."
"정녕 그분이 진짜 제 어머님이었군요. 다섯 살 때 단 한번 본 기억 밖에 없었지만 어쩐지 그분 얼굴이 계속 기억에 남아 있었습니다."
그렇게 말하면서 슬며시 팔을 내리고 있는 강회제를 바라보는 소구의 입에서 한마디 흘러나왔다.
"손 내리면 또 맞는다."
강희제는 내려오려던 팔을 다시 들어올렸다. 조금전의 경험은 다시 하고 싶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래도 난 황제인데-----."
볼멘 소리로 중얼거리는 조카의 말을 듣고 소구는 말했다.
"난 속세에서 벗어난 존재다. 속세의 법으로 날 구속하려 들지 말거라."
"외숙부님은 신선이라도 되나 보죠?"
벌받고 있는 황제의 입에서 불만이 가득 찬 말이 흘러나왔다.
"신선이라---? 글쎄 일단은 신선이라고 해 두자꾸나."
"에?"
소구의 엉뚱한 대답에 강희제의 두 눈은 동그랗게 떠졌다.
"내 누님이 왜 하고 많은 사람 중에 하필이면 날 보냈을 지를 생각하거라."
위엄과 기품이 있는 말이었지만 소구의 모습을 보면서 강희제는 머리 속으로 생각했다.
'으--, 더럽게--. 자신이 신선이라고 말하고 싶은 모양이지만 코나 후비지 말고 말씀하지지--. 아무리 그래도 행동이 그 모양이면 믿을 사람도 안 믿을 것 같은데--.'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던 강희제는 문득 생각이 난 듯 물었다.
"그런데 아직 이름도 안 가르쳐 주셨는데요?"
매의 고통이 아직도 몸 곳곳에 남아 있는 소년 황제는 문득 정신을 차렸는지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졌다.
"내 이름은 방소구다."
소구의 말을 듣고 난 후 갑자기 황제는 침묵하고 입을 꾹 다물었다.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참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이지만 얼굴 위로 번져 가는 웃음마저 가릴 수는 없었다.
그러다 참지 못하고 갑자기 웃음을 터트리는 조카를 보면서 소구는 눈을 깜박거렸다.
"갑자기 왜 웃는 것이냐?"
"푸- 하하하! 정말 이름이 소구란 말이에요?"
"그렇다니까?"
첫댓글 감사합니다
즐독하였습니다
소구에 활약은~
즐~~~~감!
감사합니다
감사 합니다
즐감
감사합니다
감
즐독 입니다
즐독 합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즐감하고 갑니다.
즐감합니다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0^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잘 보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잘읽엇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