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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장 처절한 혈전
칙칙한 소나무가 숲을 이루며 에워싸고 있는 천불사.
검푸른 창공에 외롭게 걸린 달은 차가운 달빛을 내리뿌려 어둠에 묻
힌 천불사 일대를 비추었다. 간간이 들려 오는 산짐승들의 울부짖음
은 밤의 정적을 속절없이 깨뜨리며 으스스한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었다.
우우우우!
맞은편 산봉우리에 한 마리 늑대가 꼬리를 말고 앉아 목을 빼고 둥근
달을 향해 처량한 울부짖음을 빛어 내자 공포 속에 잠겨진 천불사에
는 한가닥 알 수 없는 긴장감이 흐르며 한차례의 혈풍을 예고하는 듯
했다.
파드득!
천불사 안에는 시커먼 박쥐들이 날개를 퍼드덕거리며 떼지어 날고 돌
조각, 깨진 기왓장들이 널려진 곳에 무성한 잡초들이 실바람에 우수
수 소리를 내며 흔들거렸다.
하나 대전 안은 오랜만에 휘황한 불빛이 밝혀졌다.
그런데 기이하게도 인간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았다. 공포의 성처
럼, 아니 마귀의 소굴처럼 등불이 휘황하게 밝혀진 아래 사람의 그림
자는 보이지 않고 다만 들판에서 쫓겨온 들쥐들과 동굴을 잃어버린
박쥐만이 일시적 휴식처로 이용하고 있을 뿐이었다
주위는 그야말로 적막에 잠겨 있는 것이다.
그때였다.
조용한 천불사에 난데없이 한 명의 방문객이 날아들었다. 귀신 같은
인영은 휘황한 등불이 어둠을 밝혀 주고 있는 대전 안을 두리번거리
다가 나직이 소리를 냈다.
"도 형!"
귀신 같은 인영은 바로 앙천적월 적위였다.
그가 입을 다물고 바싹 몸을 도사리고 있자 한 그루 거목 위에서 옷
자락 스치는 소리와함께 한줄기 인영이 훌쩍 내려서더니 이내 대전
안으로 들어왔다.
"무슨 일이오?"
나타난사람은 금포를 걸친 위엄있는 노인이었다.
바로 회서방의 온서 삼호인 금시조 도중웅이 아닌가!
적위는 그를 힐끔 바라보며 되물었다.
"지금 시각이 얼마나 되었소?"
도중웅은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이경이오."
"밖의 정세는 어떻소?"
계속되는 질문에 도중웅은 다시 짜증이 난 듯 잠시 동안 말이 없다가
냉랭하게 말했다.
"한마디로 쥐죽은듯 조용하오. 그러나 여절패의 말을 빌리자면 얼마
전 산 밑에 무림인들의 모습이 얼씬거렸다고 했소. 생각컨대 이곳의
비밀이 이미 밖으로 누설된 것 같으니 오늘밤 한차례 침습을 면치 못
할 것 같소."
적위는 도중웅의 말을 듣고 해연히 놀랐다.
"소문이 누설되다니…… 그럴 리가 없소."
도중웅은 싸늘한 눈으로 그를 쏘아보았다.
"그럼 여절패가 거짓말을 했단 말이오?"
적위는 당황하여 급히 머리를 내저었다.
"내 말은 그게 아니라…… 만일 그렇다면 미것은 필시 누남광이 중간
에서 수작을 부려 우리를 골탕먹이려는 것이오. 노부는 그에게 무서
운 맛을 보여 줘야겠소."
적위가 돌아서자 도중웅이 급히 불러 세웠다.
"잠깐!"
"왜 그러시오? 누남광 외에 이 일을 아는 사람이 또 누가 있겠소?"
"적 형이 이처럼 분별없는 행동을 계속하면 대사를 그르치기
쉽소. 한마디 묻겠는데, 누남광이 본 방과 무슨 원한이 있다고 그런
일을 했겠소?"
"……"
적위가 우물쭈물하고 대답을 못 하자 도중웅은 조금 누그러진 음성으
로 다시 말을 꺼냈다.
"누남광이 그럴 이유도 없거니와 그렇더라도 자신의 몸을 미끼로 쓰
면서까지 일을 벌이지는 않았을 거요."
적위는 그의 말이 옳다는 생각이 들어 멋쩍게 웃어 버렸다.
"도 형이 아니었다면 노부는 큰 실수를 할 뻔했소."
이때 밖에서 두 인영이 뛰어들어와 도중웅을 향해 허리를 굽혔다.
"온삼호님! 산으로 통하는 오솔길에서 미심쩍은 인물을 발견했습니
다. 그러나 그들은 사찰 쪽으로는 오지 않고 산 위에서 배회만 하고
있습니다."
도중웅의 두 눈에서 날카로운 광망이 번뜩였다.
"나타난 자들은 어떤 인물이냐?"
"모두 세 사람인데 얼굴을 흑건으로 가리고 있어서 알 수가 없
습니다."
도중웅은 자신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렸다.
"음…… 아무래도 내가 한번 살펴보는 게 좋겠군."
적위는 조금 머뭇거리며 물었다.
"그럴 필요가 있겠소?"
"그렇소. 정세는 우리가 예측한 것보다 훨씬 심각한 듯하오. 적을 치
려면 먼저 적을 알아야 하니 한번 살펴보고 옵시다."
적위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찰 내에는 경비가 삼엄하고 곳곳에 한번 빠지면 도저히 살아 나올
수 없는 함정이 배치되어 있으니 이곳은 잠시 비워도 무방하겠지요."
네 사람은 곧 대전을 벗어나 산 위로 통하는 오솔길을 택해 달려갔
다.
과연 산정에는 어깨에 병기를 멘 가 명의 경장인이 얼굴을 흑건으로
가린 채 무언가 밀담을 나누고 있었다.
도중웅은 적위에게 나직이 소곤거렸다.
"우리 둘이 가까이 접근하여 대화를 엿듣고, 만일 저자들이 적이라면
일격에 섬멸합시다."
적위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도중웅과 함께 포복하여 풀숲을 혜치
고 접근했다.
가까이 가자 그들의 말소리가 또렷하게 들려 왔다.
"이곳이 청요산이오? 그럼 천불사가 이 근방에 있겠군요?"
한 복면인이 말을 꺼내자 다른 복면인이 자신있게 대답했다.
"어찌 거짓일 리가 있겠소? 듣자 하니 오늘밤 성심장에서 천불사를
대거 침공하려 한다는데 우리가 이 일에 뛰어드는 것은 바로 죽음을
자초하는 결과밖에 안 되니 그냥 돌아가 버리는 게 어떻겠소?"
숨어서 이 말을 듣고 있던 도중웅과 적위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음을
느끼고 서로 얼굴을 마주보았다.
그때 다시 목쉰 음성이 들려 왔다.
"그 소식이 사실인지 매우 의심스러우니 우리는 헛걸음하는 셈치고
산 아래로 내려가 동정을 살펴봅시다. 정말성심장의 인물들이 몰려오
고 있는지……"
두 번째로 말을 꺼냈던 사람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건 절대 거짓이 아니오. 어제 개방의 제자 하나가 우연히 누
남광의 부하인 진호를 발견하고 미행을 하게 되었는데, 진호는 도중
에 누남광을 만나 몇 마디 나누고는 그의 지시를 받고 어디론가 가버
렸소. 당시 개방제자는 이 광경을 엿보고 큰 호기심이 발동하여 계속
지켜보았는데 진호가 떠난지 얼마 되지 않아 회서방의 온서 십이호인
앙천적월 적위가 십여 명의 전서들을 데리고 나타나 누남광을 에워싸
버렸소. 그는 누남광에게서 기서를 빼앗은 후 그를 데리고 청요산으
로 잠적해 버렸다는 것이오."
"그 후 어떻게 됐지요?"
"개방제자는 모험을 하고 싶지 않아 낙양으로 돌아왔소. 개방은 여러
분도 알다시피 천하에 이목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지라 곧 소
문이 파다하게 퍼진 것이오."
"그 말은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는 것 같구려."
다른 한사람이 웃으면서 말을 받았다.
"오늘밤 우리는 이 일에 개입하여 살신지화를 초래하지 말
고 이만 돌아가는 것이 좋겠소."
그러자 나머지 두 사람은 서로 이마를 맞대고 의논을 하더니 몸을 돌
려 산 아래로 바람같이 달려갔다.
적위는 그들의 됫모습이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보고 어색한 미
소를 지었다.
"과연 도 형의 추측은 귀신과 같구려. 노부는 한때나마 누남광을 의
심했던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는 바이오."
도중웅은 마음이 무거워서 잠시 고개를 끄덕이고는 적위 등과 함께
천불사로 돌아왔다.
잠시 후 대전 계단 앞에 내려선 도중웅은 입을 모아 날카로운 휘파람
을 불어 냈다.
휙! 휙!
동시에 사방에서 세 명의 인영들이 날아들어 그의 앞에 나란히 섰다.
우측의 인물은 기이할 정도로 뚱뚱한 중년인이었는데, 허리춤에는 금
빛 찬란한 금도를 차고 있었다. 그는 회서방의 팔호 온서인 비
룡금도 하후패였다.
좌측의 인물은 그와는 달리 비깩 마르고 얼굴이 유달리 길쭉한 중년
인이었다.
한데 중년인의 허리춤에는괴상한모양의 암기들이 수십 개나 꽃혀 있
었다. 그것은 언뜻 보기에는 대추알 같은 강환이었는데 강환의
양쪽에는 날카로운 쇠침이 돌출해 있었다.
이 중년인은 오호 온서인 일발추혼수 종쾌였다.
종쾌는 별호 그대로 암기술의 명인으로, 그의 쇄혼금표
는 아직까지 단 한 번도 상대를 살려 둔 적이 없는 공포의 암기였
다.
적위는 급히 그들에게 조금 전에 자신들이 들은 이야기를 말해 주었
다.
여절패는 크게 놀라 다급히 말을 꺼냈다.
"비밀이 누설되었다면 우리는 독 안에 갇혀 싸우는 격이니 서둘러 이
곳을 철수합시다."
도중웅은 냉소를 쳤다.
"우리들 마음대로 쉽게 철수할 수는 없을 거요. 그리고 지금 누남광
이운공조식을 하고 있으니 적이 어떠한 맹공을 펴온다 해도 그
가 운공조식을 마칠 때까지는 이곳을 수호해야 하오. 만약 그렇지 않
으면 우리는 그야말로 십 년 공부 나무아미타불이 되어 버리오."
나머지 사람들은 일제히 도중웅의 말에 찬성을 표하고 각자 제 위치
로 돌아갔다.
도중웅은 누남광이 운공조식을 하고 있는 밀실로 향했다. 밀실 밖에
서 엄밀한 감시를 하고 있는 네 명의 경장대한은 그가 오는 것을 보
고 공손히 허리를 굽혔다.
도중웅이 창문 틈새로 밀실 안의 광경을 엿보니 불빛이 희미한 가운
데 누남광은 벽 구석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무아의 경지에
빠져 있었다.
그는 네 명의 경장대한에게 경비를 더욱 엄중하게 하도록 당부하고
대전으로 들어왔다.
이어 자신도 눈을 감고 앞으로 다가을 혈전에 대비해 운공에
들어갔다.
땡……!
어디선가 삼경을 알리는 은은한 종 소리가 들려 왔다.
일말의 구름이 달빛을 가린 가운데 청요산은 칠흑 같은 암흑 속으로
잠겨들었다.
이때 돌연 십여 줄기의 인영이 유령처럼 아무 기척도 없이 사찰 문을
통해 안으로 스며 들어왔다.
앞장선 사람은 은빛 찬란한 옷을 걸친, 칠대흥인 중의 백효 전력이었
다. 뒤이어 독비응 관륵과 탁천신수 진조영, 익호 사천흥, 만리표 계
대망등의 성심장 고수들이 안으로 들어왔다.
그 중 제일 사람의 눈을끄는 인물은 바로 매부리코에 입술이 비정할
정도로 얄팍한 문사 차림의 회의노인이었다. 한데 기이하게도
회의노인의 눈빛은 푸르스름한 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전력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차가운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이곳까지 초도록 아무도 보이지 않다니…… 혹시 회서방 놈들이 벌
써 도망친 게 아닐까?"
탁천신수 진조영이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제가 관찰한 바로는 사내 곳곳에 기문
진이 설치되어 있어 놈들은 그 안으로 도피해 들어간 것 같
습니다."
전력은 잠시 생각에 잠겨 있다가 회의노인을 바라보았다.
"육 형!"
회의노인은 서두르지 않고 그에게 다가왔다.
"삼총관은 무슨 일이오?"
"육 형께선 사찰 내에 배치된 기문금제가 영사형인 누남광이
설치한 것인지 한번 봐주시오."
회의노인은 바로 배교의 반도인 천잔마사 육기였다.
그의 신분은 성심오로 중 하나로, 팔대빈객보다 높았고 전력과는 엇
비슷했다.
하나 전력은 실무적인 관리직인 총관인지라 오늘 일의 주재는
그가 맡고 있었다.
육기는 푸른 빛이 일렁거리는 눈으로 사찰을 쓰윽 훌어보았다.
그러다가 짤막하게 말했다.
"이건 누남광이 설치한 것이 아니오."
전력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다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내가 알기로는 회서방에서 이번 일에 투입한 인원은 온서급 인물 서
너 명과 전서급 십여 명 정도요. 그러니 그들 정도라면 지금 우리의
실력으로 충분히 박살낼 수 있을 거요."
이어 그는 독비응 관륵에게 시선을 돌렸다.
"관 아우, 자네는 남동쪽으로 독응화를 세 개 쏘아 보게."
"예 , 알겠습니다."
관륵은 남동쪽으로 돌아서서 손을 휘둘러댔다.
쐐액!
날카로운 음향이 터지며 그의 소매에서 세 줄기 불덩이가 날아갔다.
펑! 펑!
폭음이 터지며 대전 옆 나무기등에 독응화가 작렬되어 순식간에 불이
붙었다. 때마침 불어오는 바람을 타고 불길은 점점 거세게 타올랐다.
찰나,
파스스스……
시뻘건 혀를 낼름거리는 마귀처럼 화염을 일으키며 타오르던 불길이
찬물을 뒤집어쓴 듯 갑자기 꺼지떠 검은 연기를 바람에 날렸다.
관륵은 노기 등등하여 날카롭게 외쳤다.
"나는 사문이 그렇게 대단하다고는 믿지 않았다!"
그는 다시 전광석화처럼 쌍장을 놀려 일곱 가닥의 독응화를 다른 장
소로 퍼지도록 쏘아 보냈다.
펑! 펑!
곧 폭음이 일며 주위는 온통 불바다가 되어 버렸다. 그러나 이번에도
역시 불길은 감쪽같이 잡히고 말았다.
관륵은 어이가 없는지 멀거니 서 있다가 입술을 실룩거리며 얼굴이
제멋대로 일그러졌다.
이 광경을 보고 있던 전력이 크게 소리쳤다.
"아우, 경거망동하지 말게. 이 안에는 필시 곡절이 있을 것이니 노부
가 직접 살피겠네."
한데 바로 그때였다.
"크윽!"
돌연 관륵이 외마디 신음 소리를 내며 휘청하더니 비틀비틀 뒤로 물
러나는 것이 아닌가!
진조영이 급히 그를 부축했다.
"관 형, 왜 그러시오?"
관륵은 참담하게 웃으며 천천히 오른팔을 들어올렸다.
"진 형이 직접 보시오."
진조영은 눈을 크게 뜨고 자세히 살펴보다가 흠칫하며 안색이 크게
변했다.
관륵의 오른팔 곡지혈 부근에는 마치 대추알처럼 생긴 강환
이 박혀 있었는데, 팔꿈치 밑으로는 피부색이 시퍼렇게 변해 있었고
찌르면 터질 듯 팽창되어 있었던 것이다.
"으아아……!"
일순 관륵은 고통스런 표정을 지으며 입을 벌리고 괴성을 질러대면서
몸을 가늘게 떨었다.
진조영은 다시 눈을 돌려 보다가 다시 한 번 흠칫하고 말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아무렇지도 않았던 왼팔마저 새파랗게 변하며 퉁
퉁 부어 오르고 있었고, 역시 똑같은 강환이 팔꿈치에 박혀 있는 것
이다.
대추씨만한 강환 속엔 극독이 들어 있음이 분명했다.
이렇게 관륵을 정확히 노리고 암기를 날리고도 다른 사람이 전혀 의
식하지 못하게 하는 쾌속함과 신묘한 수법을 구사하는 상대방은 과연
누구란 말인가?
전력과 육기는 몸을 날려와 관륵의 독상을 살펴보고는 얼굴에 핏기가
싹 가시면서 서로 얼굴을 마주보았다.
"이건 분명히 일발추혼수 종쾌의 쇄혼금표요."
육기가 한눈에 강환을 알아보고 중얼거리자 전력의 눈에서 살광이 뿜
어 나왔다.
"종쾌, 그놈도 이곳에 와 있었군."
전력은 이를 부드득 갈았다.
전력은 갑자기 소도를 뽑아 들더니 한광이 번쩍함과 동시에 관
륵의 두 팔꿈치를 윗부분에서 잘라 버리고 신속하게 몇 군데 혈도를
찍었다.
"크으윽!"
관륵은 고통에 못 이겨 괴로운 비명 소리를 남긴 채 기절해 버렸다.
전력이 땅에 떨어진 팔에서 두 개의 강환을 꺼내 달빛에 비추어 보니
강환 양쪽에는 조그만 세침이 돌출해 있는데, 그곳을 통해 저
장된 독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전력은 자신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
"과연 악독한 암기로군! 종쾌마저 와 있다면 오늘 일은 성패를
속단하기 어렵겠구나."
돌연,
"이히…… 우후…… 이히히!"
징글맞은 괴소가 여기저기서 나직이 들려 와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모골이 송연케 했다.
전력은 눈에 불꽃을 튀기며 버럭 고함을 질렀다.
"종쾌! 비겁하게 몸을 숨겨 잔재주를 피우지 말고 정정당당히 나서
라!"
종꽤의 음침한 웃음 소리가 들렸다.
"흐흐흐…… 전가야! 네놈이 지금까지 저지른 악행을 생각하고 지껄
여라. 네놈의 입에서 정정당당히란 말이 나을 수 있느냐? 으핫핫!"
순간 전력의 옆에 서 있던 성심장의 고수 하나가 비명을 지르며 전신
을 휘청거렸다.
"으앗!"
그 역시 쇄혼금표에 격중된 것이다.
전력은 간담이 서늘함을 느끼며 즉시 칼을 휘둘러 그의 오른팔을 잘
라버렸다.
그러자 또 다른 인물의 조소 어린 음성이 들려 와 그들을 공포의 도
가니 속으로 몰아넣었다.
"흐흐, 그런 식으로 나가다간 팔이 성한 놈은 하나도 없게 될 것이
다."
전력은 눈살을 찌푸리며 무언가 생각하다가 안색이 홱 변했다.
"네놈은 흑시 금시조 도중웅이 아니냐?"
그러자 그 음성은 이내 대소를 터뜨렸다.
"하하하! 단번에 내 음성을 알아듣다니, 과연 전력 네 귀는 개처럼
영민하구나!"
상대가 도중웅임을 알자 전력은 화가 나기 이전에 가슴이 덜컥 내려
앉았다.
이때 육기가 신중한 안색으로 그에게 나직이 소곤거렸다.
'도중웅은 심계가 깊어서 상대하기 어려운 인물이오. 더구나 그들이
기문진에 숨어서 암습만 일삼으니 빨리 손을 쓰지 않으면 우리 편에
막대한 손실을 가져 오게 되오."
전력은 다급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육 형은 혹시 그들이 펼친 기문진의 허점을 아실 수 있겠소?"
"주위가 너무 어두워서 확실치는 않지만 기문의 방위로
보아 서쪽이 아무래도 수상하오."
전력은 고개를 끄덕이며 이를 부드득 갈아붙이고 수하들에게 공격 명
령을 내렸다.
"저쪽이다. 즉시 맹공을 퍼부어 동지들의 복수를 하라!"
고함 소리의 여운이 가시기도 전에 지축을 뒤흔드는 함성이 일어나며
그가 가리키는 곳으로 성심장 무리들은 속속 몸을 날려갔다.
이윽고 사람 죽는 소리가 연이어 요란스럽게 울려 퍼졌다.
한차례 살육의 향연이 벌어진 것이다.
전력의 명령을 받은 성심장의 고수들은 노도와 같은 기세로 기문금제
구역 안으로 들어왔다.
과연 서쪽은 기문진의 유일한 생문으로, 회서방의 고수들은 그
안에 모여 있었다.
성심장의 고수들은 강호에 이름이 나 있는 일류급 고수들이었기 때문
에 사태의 엄중함을 뼈저리게 깨닫고 일신의 절학을 기탄없이 발휘하
며 암기들을 있는 대로 발출하여 공격을 퍼부어 갔다.
파파파파파……
차차창! 채앵!
"죽어라, 이놈들!"
"야압!"
천지를 진동하는 굉음과 호통 소리가 연거푸 터져 나왔다.
이에 대항하는 회서방은 다섯 명의 온서급 고수들이 있는 데다. 근
서른 명에 달하는 전서급 인물들도 뒤를 받치고 있어 조금도 겁을 먹
지 않고 자신만만하게 대적하였다.
쌍방 모두 승산을 확신하고 사력을 다하는 싸움인지라 가히 공
전절후의 혈전이었다. 살풍은 회오리바람을 일으키며 소용
돌이쳤고, 사방 여기저기서 고함 소리와 비명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끄아아악!"
피 어린 절규.
간담이 찢어지는 듯한 비명이 터져 나을 때마다 꼭 한 사람은 피를
뿌리며 쓰러져야 했고, 어떤 때는 두 명씩 혹은 세 명씩 무더기로 쓰
러지며 처참한 죽음을 맛보아야만 했다. 생사를 던져 버린 혈전장에
는 인영과 장영이 난무했고 여기저기서 풍겨 오는 피비
린내가 코를 찌르며 시체가 쌓여 갔다.
반 시진이 지나쓱 쌍방의 인원은 눈에 띌 만츰 감소되었다.
회서방 쪽에서는 북망귀왕 여절패와 비룡금도 하후태 등 두 명의 온
서급 인물과 아흡 명의 전서급 인물들이 차디찬 시신이 되어 쓰러졌
다.
성심장 또한 팔대빈객 중 만리표 계대망과 익호 사천홍, 그리고 독비
응 관륵과 열두 명의 고수들이 생의 종지부를 찍고 말았다.
특히, 관륵의 죽음은 전력에게 커다란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전력과 관륵은 지난 이십여 년 동안 크고 작은 수백 번의 싸움을 겪
으면서도 항상 같이 붙어 다니던 절친한 사이였던 것이다.
전력은 가슴이 철렁하여 육기를 돌아보았다.
"안 되겠소. 육 형은 어서 창명호혼대법을 전개하시
오."
육기 역시 사태가 예측할 수 없는 상활으로 발전해 나가는지라 침중
한 음성으로 답했다.
"그럴 도리밖에 없군요. 그러나 상대방의 생신팔자를 모르
면 효력은 절반으로 감소될 거요."
그러나 지금은 그런 것을 따질 만큼 여유가 남아 돌아가지 않는 형편
이었다.
육기는 말을 끝낸 즉시 소맷자락을 떨쳐 냈다.
어느새인지 그의 양손에 작은 요발악기가 쥐여져 있었다.
육기는 요발악기를 흔들면서 몸을 빙글빙글 돌렸다.
창! 차창!
요란한 괴음이 장내에 울려 퍼졌다.
동시에 윽기는 내력을 일으켜 괴성을 질러대기 시작했다.
"끼요요오오오……"
그 소리는 흡사 굻주린 늑대의 울음 소리 같기도 하였는데 요발악기
에서 흘러나오는 소리와 배합되자 듣는 사람의 심신을 울렁거리게 하
고 넋을 빼앗을 것만 같았다.
전력과 진조영도 그 소리에 정신이 아찔해져서 견디지 못하고 비틀거
리다가 미리 준비한 솜뭉치로 귀를 틀어막고서야 겨우 신형을 바로할
수 있었다.
창명호혼대법은 배교의 수십 가지 대법 중에서도 그 위력이 가장 무
서운 오대대법 중의 하나였다.
창명호흔대법에서 울려 나오는 피성은 천불사를 마구 진동시켰고, 내
력이 막강한 도중웅조차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
앙천적월 적위와 일발추혼수 종쾌도 심신이 진동됨을 느끼고 황급히
도중웅의 곁으로 달려왔다.
"안 되겠소. 도저히 지탱할 수 없을 것 같으니 서둘러 이곳을 떠납시
다."
적위가 소리치자 도중웅은 일시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누남광은 어떻게 하겠소?"
종쾌가 급하게 입을 열었다.
"별 도리가 엄지 않소? 문을 부수고 들어가 데리고 떠납시다."
도중웅은 창명호혼대법을 펼치고 있는 육기를 힐끔 보다가 마음을 굳
혔다.
"좋소, 그렇게 합시다."
더 이상 이곳에 있다가는 제아무리 무공이 고강한 도중웅도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쓰러질 것만 같았다.
하나 만약 육기가 그들의 생년월일을 안 후에 창명호혼대법을 펼쳤다
면 그들이 아무리 발버등쳐도 벌써 고혼이 되고 말았을 것이
다. 그만큼 배교대법의 위력은 무시무시한 것이었다.
도중웅과 적위, 종꽤는 급히 누남광이 운공조식을 취하고 있는 밀실
로 달려갔다.
하나 도중웅은 눈앞에 벌어진 광경에 그만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
다.
밀실 밖을 지괴고 있던 네 명의 전서들은 모두 혈도를 제압당해 쓰러
져 있고, 밀실 문은 활짝 열려져 있는 것이 아닌가?
"야단났구나!"
마음이 불붙는 듯 다급해진 도중웅이 정신없이 안으로 들어가 보니
누남광의 모습은 이미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린 후였다.
밖으로 나온 도중웅은 쓰러져 있는 네 명의 전서급 고수플을 살펴보
고 누군가의 내가수법에 의해 심맥이 파열되어 죽었음을
알았다.
잠시 갈피를 못 잡고 쩔쩔매던 도중웅은 적위, 종쾌와 함께 황망히
몽을 날려 담장 너머로 사라져 갔다.
한편, 전력은 외마디 외침 소리를 들었다.
"삼총관님! 금제가 파괴되었습니다."
그는 크게 기뻐하며 수하들을 이끌고 기문진 안으로 깊숙이 들어갔
다.
육기는 계속 창명호혼대법을 펼쳐 내고 있었다.
전력은 대전의 안으로 들어섰다.
"어서 누남광이 있는 곳을 찾아라!"
살아남은 얼마 되지 않는 성심장의 인물들이 사방을 이 잡듯이 뒤지
고 다녔다.
하나 그들이 발견한 것은 밀실 앞에 쓰러져 있는 네 구의 시신뿐이었
다.
진조영으로부터 보고를 받은 전력은 맥이 탁 풀려 한동안 망연자실해
있었다.
"도중웅이 이미 누남광을 데리고 가버렸다고? 결국 우리는 헛수고만
한 채 아까운 인명만 희생시켰구나……"
그의 넋두리는 얼굴에 떠 있는 표정만큼이나 침통한 것이었다.
하나 도중웅도 누남광을 데려가지 않았다는 것을 안다면 그의 얼굴은
어떻게 변할까?
천불사……!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인적이 끊겨 폐허가 되다시피 했던 천불사
는 다시 이십여 년 전의 참상이 재현되고 있었다.
가는 곳마다 시체요, 피바다로 피비린내가 코를 감싸 쥐게 하고 있었
다. 그 처참한 광경은 차마 눈을 뜨고 볼 수가 없었다.
까악…… 까악……
어디서 알고 왔는지 한 떼의 까마귀들이 공지 위를 날아다니면서 기
분 나쁜 소리로 울어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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ㅈㄷ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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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전략! ㅡㅡㅡ이이제이(以夷制夷)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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