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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길 제10길 이천옛길
이천옛길은 총 10개의 코스로 구성된 영남길의 마지막 구간으로 아름다운 우리네 농촌의 들길을
즐길 수 있는 길이다.
안성의 금산리를 출발하여 이천의 산양리로 들어서면 영남길에 얽힌 재미있는 설화들을 만나 볼 수 있다.
산양리를 지나 석산리의 부래미마을은 이천의 정보화마을로 조성된 후 성공적으로 안착하여 지금은
다양한 농촌체험 프로그램을 즐길 수 있는 아름다운 마을이 되었다.
부래미마을을 지나면 충북으로 이어지는 길의 종점에서 외세의 침입에 용감히 싸웠던 어재연 장군
생가를 만날 수 있다.
언제:2023년 1월 7일 토요일
날씨:흐림 기온: 3도C
어디를:경기옛길 영남길 제10길 이천옛길(역 방향걷기)
어재연 고택- 산성2리마을회관-부레미마을- 산양리-금산 버스정류장 <약9.4 km>
누구와:아내와 함께
트레킹시간:2시간 35분<휴식시간 포함>
▲영남길 제10길 트랭글 기록
▲남부터미널에서 ↔ 진천을 운행하는 경일여객 시간표, (죽산터미널 경유) 요금:7100원
▲남부터미널 출발해 죽산터미널에 우리를 내려주고 출발중이다.
▲08:20분 죽산 터미널 도착, 원래 서울에서 한 시간 코스인데, 도로에 눈 비로 10분 늦게 도착 한다.
▲어재연 장군 생가를 가기위해 죽산 터미널에서 37번 버스(안성↔여주)로 반월성으로 이동, 택시를 타려고 전화를 하니
개인택시 두 대가 모두 운행중이라 포기하고, 장호원에서 09:20분에 출발하는(장호원↔산성1리) 27번 버스를
반월성 삼거리에서 09:34분에 타고 종점 (회차지점)에서 09:46분 하차한다.
27번 버스 승객이라고는 한 명도 타고 내리는 사람이 없고,논스 톱으로 종점까지 달랑 우리 부부가 유일하다. ㅠ
▲어재연 고택 입구 산성1리 종점 정류소에 9시 46분하차,어재연 고택으로 올라간다.
▲경기옛길 앱, 램블러, 트랭글앱을 켜고, 어재연 고택 가는 길
▲아무도 밟지않은 하얗게 눈 덮힌 고택 가는길 풍경
▲고종 때 무관으로 미국 로저스 제독이 지휘하는 군함과 강화 광성진에서 전투를 벌이던 중 전사한
어재연(魚在淵1823-1871)장군의 생가이다.
1800년대 초에 지은 것으로 추정되는 초가집이다.
앞에 넓은 마당을 두고 사랑채와 안채, 광채가 모여 튼 'ㅁ'자형의 배치구조를 이루고 있다.
광채 옆에 있는 대문을 통하여 들어서면 오른쪽 앞으로 낮은 담이 뻗어 있어 안채가 자리한 안마당이
훤히 들여다 보이지 않는다.
그 담의 한곳을 터서 안채로 통하는 출입구로 사용하였다.
안채는 ㄱ자형 구조로 부엌, 안방, 대청, 건너방이 배치되었고 부엌광이나 골방은 따로 두지 않았다.
툇마루나 쪽마루가 방 앞에 없는 간결한 구조이다.
대문의 왼쪽에 위치하는 'ㅡ'자형의 사랑채는 부엌, 대청, 사랑방으로 되어있다.
대청은 안마당 쪽을 막아놓고 바깥마당과 동쪽 벽을 터놓았다.
사랑부엌은 안마당에서만 출입을 할 수 있다. 광채의 뒷모서리에서 뒤로 큼지막하게 둘려진
토담은 집안을 둘러싸고 있다.
전체적으로 여유 있게 배치되어 있으며 원형의 변형 없이 비교적 잘 보존된 집이다.
▲아직도 공사중인 고택..연자방아
▲안으로 들어가 봅니다.
▲안채
▲안 마당
▲뽀얗게 먼지 앉은 솥단지
▲사랑채 지붕 수리중으로 대문은 잠겼지만 옆으로 돌아가면 고택안으로 들어갈수 있다.
- 어재연 장군과 말무덤 이야기 -
산성1리에서 태어난 어재연 장군은 신미양요 때 외적과 싸우다 장렬히 전사하였습니다.
장군에게는 집 앞에 돌을 밟고 올라타던 아끼는 말이 있었는데 장군의 사랑을 받으며 늘 함께 지냈답니다.
그런데 강화도에서 장군이 사망하자 이 말은 장군의 안장을 얹은 채로 산성리 장군의 집까지 혼자서 찾아 왔습니다.
주인 없이 혼자 돌아온 말은 장군의 죽음을 슬퍼하며 댓돌에 머리를 박고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는데요.
마을 사람들은 비록 말 못하는 짐승일지언정 주인을 향한 마음은 사람보다 더 기특하고 애처로워서
말의 무덤을 만들어 곱게 묻어 주었습니다.
지금은 무덤의 형태가 사라지고 없지만 그 자리는 아직도 말무덤이라는 지명으로 마을 사람들에
의해 불리고 있습니다.
- 어재연 장군과 사장말랭이 -
어재연 장군이 태어나서 자란 율면 산성1리는 팔성산이 삼면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조용한
시골마을입니다. 장군의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신 탓에 유씨 부인은 혼자서 힘겹게 집안 살림을 꾸려가야 했습니다.
증조부와 조부가 모두 무과에 급제한 무인 집안에서 태어난 장군은 어릴 때부터 집안 일을 도우며 틈틈이
무술연습을 했다고 합니다.
어머니를 도와 밭일을 나가면 산자락에 있는 밭을 향해 활을 쏘고 다시 건너편에 넘어가면 화살을 뽑아
반대편 산자락으로 다시 날리며 활쏘기 연습을 했던 것이지요.
그가 활쏘기 연습을 하던 곳은 지금도 '사장말랭이' 혹은 '사장골'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고 합니다.
어재연 장군기는 1871년 신미양요 때 강화도를 수비하던 조선군 지휘관이었던 어재연 장군이
사용한 군기이다. 미군에 의해 전리품으로 강탈된 후 미국 아나폴리스에 있는 해군사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었으나, 현재는 강화전쟁박물관에서 장기 전시되고 있다.
▲부정타는 느티나무
▲고택 들어가는 입구에는 두개의 연못을 만들어 쌍충연
《쌍충연(雙忠淵)》
이 연못은 1871년 5월 미국 아시아 함대로 인한 신미양요 때 진무중군으로 부임하여 전투 중
부하장졸들과 함께 결사항전 끝에 전사하신 충장공 어재연 장군과 그 동생 어재순의 호국의지와
충성심을 기리고자 조성하게 되었으며 위쪽연못은 충장연(忠壯淵), 아래연못은 이의연(吏議淵)이라
하고 함께 쌍충연이라 이름 한다고 합니다.
▲산양1리 마을회관
▲영남길 안내판
▲안내판 좌측 차도 따라가다 산성2리 마을 안내판을 따라간다.
▲충장사(忠壯祠)》 이천군 율면 산성리
충장사는 고종 8년(1871년) 辛未洋擾 때 鎭撫中軍 兼 修城將討捕使로 강화 廣城鎭을 지키다가
殉節한 魚在淵 · 魚在淳 형제, 裨將 李玄鶴, 광성진 別將 朴致誠, 御營硝官 劉豊魯, 江華鎭撫營千摠 金鉉暻,
書仕 任之彭 등 7인의 위패를 모신 사당입니다.
어재연(魚在淵1823-1871)의 본관은 咸從, 자는 性于, 父는 魚用仁이다. 순조23년(1823년) 태어나
헌종 7년(1841년) 18세에 무과에 급제하여 訓練主簿, 刑曹正郞, 풍천부사, 장단부사, 龍驤尉護軍,
公忠道兵馬節度使를 거쳐 고종2년(1866) 丙寅洋擾 때 프랑스 로즈함대가 강화도로 처들어오자
선봉장이 되어 광성진을 수비하였다.
고종8년(1871)에는 용양위호군 겸 五衛都摠府副摠官을 지내다가 신미양요가 일어나자
그 해 4월 조정에서는 어재연을 진무중군에 임명하였습니다.
4월16일 광성진에 도착하여 수비에 임하던 중 4월23일 미국 해병대와 치열한 백병전에서 사력을
다해 싸웠으나 우세한 무기를 가진 미군에 패했고 53명의 장병과 함께 순절하였습니다.
어재연 장군은 이 백병전에서 동생 어재순과 함께 미해병(제임스 도허티) 총검에 찔려 사망하였습니다.
소식이 전해지자 조정에서는 즉시 정2품 병조판서에 추증하고 그해 5월3일 忠壯이란 시호를 내렸습니다.
또한 8월과 9월에 忠臣旌門이 하사되었습니다.
이 사당은 1973년 장군의 후손들이건립을 추진, 1974년 4월 준공되어 매년 3월 9월 인근 유림과
후손들에 의해 제향되고 있다.
건물구조는 상단에 충장사가 있고, 정문인 雙忠門을 거쳐 사당에 오르게 되어 있다. 또 쌍충문 좌 우편으로
두 형제의 충신정문을 안치하였으며 정문 오른쪽에 재실이 위치하고 있는데 1981년 이천군에서 사당 주위를
담장으로 둘렀다.
현재 이곳에서는 서양 세력을 물리친 先賢의 뜻을 기려 서양력을 비롯한 서양 물건을 일체 사용하지 않고 있다.
▲산성2리마을 회관이 보인다.
▲산성2리 마을회관
▲들길을 지나 부레미 마을 방향으로
▲참 정감가는 이름
▲역시 배 과수원
▲역시 배밭이 많으네요.
▲부래미 마을 다목적 체험관
▲10길 역방향 두번째 스탬프함
▲《석산리 안불암이 전설》
석산2리를 안불암이라 부르는데 佛巖의 안쪽이라는 뜻입니다.
옛날 석산1리와 2리 사이에 부처님상이 있는 산이 있어 돌산이라 불렀는데 이 돌산 주변에 유독
부자가 많았다고 합니다.
어느 날 중이 이 마을을 찾아와 사람들에게 시주할 것을 권했는데 마을 부자들이 시주는커녕
매몰차게 내쫒기만 했습니다.
이에 중은 천천히 마을을 돌아보더니 '저 돌산만 없으면 마을 사람들이 더욱 부자가 될 텐데 안타깝구나!'라고
읊조리며 마을을 떠났는데, 부자들은 더욱더 큰 부자가 되기 위해 부처님상과 돌산을 없애버렸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어쩐 일인지 재산만 탐내던 마을 부자들은 하나 둘 망하고 결국 마을을
떠나버렸다고 합니다.
▲지난 밤사이 눈이 내렸지만 기온이 영상이라 녹는 눈이라 미끄럽지는 않다. 아이젠은 하루종일 배낭속에서 잠을자고,
▲하얀 세상
▲우측 다리를 건너 좌측 둑방으로 가야하는데....진행하다가 코스 이탈음이 울려 백으로 다시돌아온다.
아무런 방향 표시나 리본도 없다, 다리위에 리본 한 개만 있으면 될 것을,ㅉㅉㅉ
리본 한 개의 힘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는 것인지를 그들은? 아직도 모르고 있다.
▲정겨운 골목길
▲10길은 한 두 군데만 빼고는 대체적으로 이정표시가 잘 되어 있어 누구나 쉽게 갈 수 있는 길이라 생각했다.
<돌다리가 있던 마을>
석교촌과 산양리 부락 사이를 흐르는 석원천 지류에 오래전부터 돌다리(石橋)가 하나 있었는데
옛날에는 이 다리가 우리나라 중앙부와 안성 용인을 거쳐 한양을 잇는 중요한 길목이었습니다.
석교천에는 安氏들이 많이 살았는데, 어느 날 석교촌에 사는 안씨 남자가 젊은 아내와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를 두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몇 달 후 젊은 아내는 건강한 사내아이를 낳았는데 아이는 자라면서 점차 몸집이 강대하고 초인적인 힘을
지닌 壯士가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안 장사는 어머니가 밤중에 몰래 외출을 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청상과부로 살던 안 장사의 어머니가 개울건너 양아리에 사는 외간 남자와 눈이 맞아 버린 것이지요.
어느 추운 겨울날 안 장사는 조용히 어머니를 따라가 보았는데 어머니가 얼음장처럼 시린 개울을
맨발로 건너고 있었습니다.
효성이 지극한 안 장사는 어머니의 모습이 너무 안타까워 산위에서 큰 돌을 모아다가 다리를 만들었는데
사람들은 이후 이 다리를 안 장사 다리라 하였고 장사가 태어난 마을을 석교촌(石橋村)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하는
재미있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네요.
▲석원천 풍경
▲산양2리마을로 접어들고,
▲산양2리 마을 회관도 지나며
▲슬레이트 지붕들이 아직 많이 보인다.
▲산양2리 마을을 통과해 언덕길을 오르면
▲들판이 나오고
▲우측으로 삼부목장, 이곳부터는 한우 목장들이 많이 보인다.
▲위 사진에서 좌측 천변으로
▲긴 천변 끝내고 차도로 나와 맞은편 산양1리 가는 게이트, 영남길은 차도를 따라 우측으로
▲계속 인도가 없는 차도를 따라가야 한다.
▲(주)효성 종합포장. 큰 공장이 보이고, 이 도로를 또 한번 지나가게 될 줄은 지금은 모르고 지나간다.ㅠ
▲경기도 이천시와 안성시 경계지점이다.
▲금산리
▲영남길 10길 종점. 금산리 버스 정류장.
10길을 끝내고 9길 역방향 싯점은 금산 버스정류장 바로 옆 금산 감리교회 입구로 가야 한다.
전신주 아래 스러져 가는 작은 이정목이 삐딱하게 서 있는데,
9길을 순 방향으로 걸으면 어려울게 없는데 10길에서 역 방향으로 9길까지 걷는다면 여기를 간과하면 안되는 지점이다.
▲ 9길 옛날길로 하산전 마을로 들어가 어마무시한 알바를 하고서야 다시 금산 버스정류장으로 돌아와 지인들께
전화로 도움을 받고 금산 감리교회 가는 길로 접어들어 9길을 순조롭고 깔끔하게 이어 간다.
▲금산 버스 정류장 쪽에서 건너편 10길 종점 안내판쪽으로 가다 보면 우측이라 안 보여 대부분 놓치기 쉽고
교회 간판과 전신주 때문에 그대로 지나치기 쉬워 주의해야 할 지점이다.
▲금산 감리교회 옆길로 가면 된다.
▲10코스 종점이다. 이정목에 파란색 화살표시가 10시 방향으로 되어 있는데 9길 방향을 가르키는
표시이므로 놓치면 안된다. 알바를 하고 난 뒤에야 이해가 되었던 이정목.
여기서 10길 가는 이정표인줄 알고 지나쳤다.
나중에야 알았네요. 9길은 저 상,하산전 마을 입구로 들어가면 안 된다는 사실을...
예전에는 9길에서 10길로 이어지는 지점이였는데 현재는 하산전 마을로 들어가면 안 된다.
더 아쉬운 점은 예전 9길이 폐쇄되었으면 리본이나 전봇대에 달려있는 이정표시는 모두 철거를 해야 하는데 아직도 그대로
달려있으니 모르는 사람은 리본이나 표지판을 보고 따라 갈 수 밖에 없고, 앱에서도 코스이탈음이 안 울린다.ㅠ
경기옛길 영남길 담당자는 꼭 시정해줄 것을 간곡히 부탁드리며, 또한 경기옛길 자원봉사자 분들이 많이 계신것으로 알고
있는데 무엇을 봉사 하러 다니는지도 잘 모르겠다.
10코스는 역으로 걸어도 리본이 적당히 달려 있어 아주 순조로운 걸음이었다.
영남길 제10길을 끝내고...
3주전에 5길을 끝내며 눈길에 미끄러져 손목을 다친 아내의 회복을 기다리며 길나섬을 멈추었다가
3주만에 10+9길을 역 방향으로 걷기로 하고 05시에 집을 나서 세번의 환승을 하고 07:10분 남부터미널에서
죽산으로 죽산에서 반월성으로 이동하여 어재연 생가가 있는 산성1리에 09:46분에 도착 10길을 역방향으로
이어 걷는다.
기온은 높지만 중부 내륙지방엔 밤새 눈이 제법 내려 쌓여있지만 그리 미끄럽지는 않다.
부정타는 느티나무를 지나 어재연 고택에 도착 하니 행랑채는 아직도 공사중이고, 대문이 잠겨있어
옆으로 돌아 들어가 안채도 돌아보고 나와 어재연 장군이 태어난 곳을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도 돌아볼 수 있게
보존하고 관리하여준데 대한 고마움을 느끼며,
그런대로 잘 되어 있는 이정 표시를 따라 산성 2리 마을 회관을 지나 들판길도 지나고 부레미 마을로 접어들어
부레미 마을 다목적 체험관 앞에서 두번째 스템프 함을 만나 마지막 인증을 하고
밤새 쌓인 눈길이 녹는 눈이라 걱정했던 만큼 미끄럽지 않아 걷기 좋았고, 들판길과 하천 둑방길을 걸어
예전엔 돌다리가 있었다는 전설이 재미있는 석원천을 지나 산양리로 들어서며 인도가 없는 눈이 쌓인 차도를
길게 걸어야 하는 불편함도 감수해야 하는 길이지만 하얗게 내린 산야를 보며 마음이 푸근하여 짐을 느낀다.
지금 까지는 이 길을 나중에 다시 오게 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하고 차도를 걸어가고 있지만 얼마 후 이 길을
다시 오게 되는 상황이 벌어진다. ㅋ 자세한 내용은 9길 후기에서 풀어 보기로 하고
금산리 버스 정류장에 12시31분에 도착하여 2시간 43분만에 10길을 마치고, 9길을 이어간다.
경기옛길 6대로 걷기를 유일하게 영남길만 남아 겨울철에 시작을 하고 보니 추위와 눈
아내 손목부상 가족 모임 등등으로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영남길 특성상 9,10길을 제외하고는 코스마다 산들이 끼어있어 겨울철 보다는 여름철에
걷는게 더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보며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다니다 보니 첫 새벽부터
움직여야 하는 어려움도 극복하며 시작이 반이라고 완주까지는 이제 6부능선을 넘은 것 같다.
영남길 중에 힘이든 다는 6,7,8길을 남겨두고 있으니 말이다.
충청북도와 인접 지역까지 가장 먼 10길 9길도 무사히 끝내고 나니 시원하기도 하고
그 동안 대중교통편도 조금씩 익숙해지니 크게 부담도 없고 마음은 한결 가벼워진다.
사실 경기옛길 중에서 영남길은 김포 집에서 접근 거리도 멀고 대중교통도 불편하여 그 동안
포기하고 신경도 안썼는데 여섯번째 김포길이 개통 되면서 5대로를 한 두번씩 걸어보고
영남길만 남게 되어 뭔가 이가 빠진 느낌이라 이번 기회에 6대로 모두 걸어 보고자 영남길에
도전하게 된 계기가 되었고, 이제 남은 3개 길도 열심히 걸어 보리라 다짐해 본 걸음이였다 .
여기까지....
2023. 1. 7.
첫댓글 저도 걸어야 할길이라서 여러차례 읽고 또읽고~~
남부 터미널에서 진천행을 7시10분차를 타셨군요.
그리고는 37번 버스를 타시고 반월성 삼거리
에서 하차후
27번 버스를 타셨네요.
죽산 터미널에서 택시를 이용하면 거리가 먼가요?
저는 용인까지 걸어두었는데
저도 교통편이 불편하고 겨울철이어서 해가 길어질때를 기다리고 미루어두었답니다.
고생하셨네요.
남은 구간도 조심해서 잘걸으시길 바랍니다.
뭐 별로 잘 쓰지도 못한 후기를 읽고 또 읽으셨습니까?
다만 후답자들께 도움이 되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써보았습니다.
죽산에서 택시로 산성리까지는 약 2만원 정도 나오구요
반월성에서는 약1만원 정도면 된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반월성으로 가서 택시나 27번 버스를 이용하려고 그리했습니다.
이제 얼마 안 남은 영남길 날씨 좋을 때 마무리 하심이 좋을 듯 합니다.
감사 합니다.
편안한 밤 되세요.
집나서는 길이 저도 비슷한 시간들이 될듯 싶어서 매번 글 올리시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짝꿍님 께서 다치셔서 못 걷고 계셨네요
잘 치료 받으셔서 빠른 쾌유를 바랍니다
눈길 걸으시면서 담으신 풍경길 즐감합니다
남은 구간도 조심히 행복한 추억들 쌓으세요^-^
사실 1002번 버스를 이용하려면 아침에 더 일찍 나갈 수도 있지만
그리 일찍 나갈 필요도 없어 남부터미널에서 7:10분차를 이용했습니다.
집사람 손목 부상이 3주를 넘어 가네요.
성원에 감사 드립니다.
남은 길도 즐겁고 행복한 길 되시기 바랍니다.
안녕하세요? 가곡 님 내외 분~ 새해에도 더욱 더 건강 하사고 다정한 걸음 많이 이어 가십시요.
저도 21.10월 중순 8명이 가곡 님과 똑같이 역 방향으로 두 코스를 걸으며 영남길을 마친 기억이 납니다
그 때는 코스모스와 백일홍,맨드라미가 한창 이었는데 이번엔 눈을 밟고 오셨네요.
10 코스를 끝내고 저희도 9 코스 방향을 찾아 왔다 갔다 하다가 길 물어보려 금산감리교회에 들어섰다가
동네 어르신들 나누어 드리려고 부치던 즉석 호떡 얻어먹은 기억이 있어서 역 방향 9코스 입구를 절대
안 잊고 있답니다
세세한 후기 잘 읽어보고 갑니다..영남길 완주와 경기옛길 명예의 전당 입성을 응원합니다.
늘 행복하고 다정한 걸음 하십시요.
만항재에서 화절령으로 멋진 설경 보시며 좋은 곳 다녀 오셨더군요.
저도 작년부터 가 보려고 하던 길이였는데 아직 못 가보고 있습니다.
금산 교회에서 그런일이 있으셨군요.
저는 그 길을 못 찾고 엉뚱한 곳으로 가서 알바를 하고 왔답니다.ㅋ
그래도 아리아님 덕분에 무사히 마칠 수 있어서 좋았지요.
이제 6,7,8길이 남았는데 구경님의 응원에 힘내어 열심히 걸어 보겠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행 이어 가세요.
감사 합니다.
역방향 두번째 스탬프함지나 밭길 지나
다리 건너서 좌측방향
우측 방향 아무리 보아도 방향 표시가 없어서 우측 뚝방길 따라서 진행하는데
앱에서는 경로이탈 경고음도 없고 앱은 제가 가는길이 정상으로 표시,
약40분지난후 차칸님께 전화문의^^ 현재위치가 어데인지 모르니
되돌아와서 다리 건너기전
좌측 비닐하우스 옆길
따라서 가다가 뚝방길로
걸으라 하신다,
툭방길 올라서니 안내리본이 반기었습니다,
알바하느라 시간이 많이 소비되 마지막 서울역행 광역뻐스를
승차할수있을까 부담스러운 마음 가지고
부지런히 걸어서
겨우 귀가한 영남길
10코스9코스 역방향 이어걷기,
후기글을 보니
그당시 허탈하였던
기분이 지금은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있습니다
겨울에 두분께서
저에게는 힘들었던
10코스에서 9코스 역방향 안전하게 완주하심을 축하드림니다.
죽산님도 제대로 알바를 하셨군요.ㅋ
저는 역 방향 9길을 못 찾아 산속으로 들어가 눈길을 5km나 헤매고 왔답니다.ㅠ
다 아둔해서 그렇지요. 9길 10길 공부를 좀 하고 가긴 했는데 결과적으로 잘 못했지요.
코스에 들어서서는 두개 코스 다 제대로 잘 걸었습니다.
크게 어려운 길은 아니더군요.
다만 한 두 군데는 조심해서 잘 보고 걸어야 하겠더라구요.
두 시간을 알바를 하고 10,9길을 끝내고 죽산에 도착하여 6시05분 차를 탈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알바로 많이 늦을 줄 알았는데 집에 도착하니 8:40분,생각보다 빨리 도착했습니다.
죽산님도 그때 고생한 일들이 모두 추억으로 남으셨군요.
저도 그 길은 잊지 못할 거 같습니다.
큰 성원에 감사 합니다.
편안한 밤 되세요.
두분께서 영남길 9-10길을 걸으셨군요
우리나이에 눈에 미끄러지면 많이 다치는데....
부인께서 다행이 빨리 회복되어 함께 걸으셨네요
교통도 불편한길을 두분의 끈기로 완주하시길 바랍니다
두분 새해에도 늘 건강하시고 행복한 발걸음 이어가시길 바랍니다.
겨울철 미끄러울 땐 움직이지 말아야 하는데요.....
아내가 손목 부상으로 3주를 쉬고 길나섬을 했습니다.
나이들어 넘어지면 부상으로 이어지니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다면 서도
길 다 걷고 눈길에 미끄러 졌지요.
큰 부상이 아니라 다행이라 생각해야지요.
충청도와 경기도의 경계지점이라 거리와 교통도 불편하지만
그래도 잘 다녀왔습니다.
성원에 감사 드리며 남은 길도 열심히 걷고 완주 하겠습니다.
새해엔 늘 건강하시고 즐거운 일상 되세요.
감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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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길 마지막 구간 어재연장군집 결국은 딸한테 전화해서 데리러 오라고했지요 그리고 고생한 마지막 혼자서 끝내긴 그래서
딸한테 뒤풀이 해 달라 한 영남길 마지막 구간 ~~~ ㅎㅎ 오래전 이야기 입니다
영남길을 끝내시고 따님과 함께 멋진 뒷풀이까지 하셨군요.
멀고 험한 영남길에 수고 많으셨습니다.
길 안내도 부실하고 물어 볼 사람도 안보이고 난감한 영남길이지요.
저는 경기 옛 길 중에 영남 길이 시간도 많이 걸리고
접근하기도 그렇고 제일 힘들더군요.
성원에 감사 드립니다.
즐거운 설 명절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