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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고등학교 3년간 연극영화학과 입시를 준비했습니다. 처음엔 단지 친구 따라서 한 번 해볼까 하는 생각으로 시작했지만, 배우의 대한 꿈과 열정이 너무나도 커져 고등학교 3학년 때는 남 부럽지 않게 치열하게 살았습니다. 매일같이 밤 열두시 한시까지 남아서 연기연습을 하고, 머리 싸매고 고민을 하고, 주변에서 “쟤는 참 열심히 해... 잘 될거야.. 지금은 잘 안되지만 반드시 성공할거야,” 라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세상에는 잘생기고 예쁘고 연기를 잘하는 입시생들이 너무나도 많았고 고등학교 수시 6개를 전부 탈락한 채 어떻게든 대학은 가야겠다고 생각해 수시 2차때 급하게 촬영전공으로 돌려서 지방에 있는 특성화 전문대학교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학교가 그렇게 중요한가?” 그 속에서 내가 잘 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마인드를 가지고 입학을 했습니다. 하지만 제 이상과 현실사이의 괴리감은 학교를 다닌지 두 달 만에 커져버렸고, 썩 좋지 않은 분위기, 동기들의 마인드, 저는 도망치듯 학교를 휴학하고 1년 동안 하고 싶었던 일을 하고, 여행을 다녔습니다. 그 후 군대를 가게 되었고, 군대에서 우연히 디즈니에 대한 책과, 경영철칙, 여러 가지 등을 공부하면서 디즈니에서 청소부를 해도 좋으니까 저 사람들과 함께 일하고 싶다. 라는 굳은 결심이 생겨, 지금 내가 공부하는 대학에서는 시도조차 불가능 할 것이라고 생각해 군대에서 편입을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휴가 때 학원을 등록하고 휴가 15일을 전부 학원에서 공부하고, 전역 날에 동기들은 전부 술 마시러 가지만 저는 군복을 입고 집에도 들르지 않은 채 학원에 갔던 기억도 있습니다.
저는 중학교 3학년 이후 공부라는 걸 해본 적이 없었던 학생 이였습니다. 학원이란 것도 고등학교 1학년 때 수학학원을 세달 정도 잠깐 다니고 연극영화학과를 진학하기 위해서 그만뒀기에 공부를 하는 학원이라는 이미지는 제 머릿속에서 어떤 이미지였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고 가물가물 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카페(독편사)등을 찾아보면서 학원은 별로 차이가 없다. 내가 얼마만큼 하냐가 중요하다. 라는 마음가짐으로 집에서 가장 가까운 브라운 편입학원에 등록하게 되었습니다. 학원까지 지하철로 10분도 걸리지 않았기에 학원을 집처럼 생각하고 공부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김X편입, 해X스편입 같은 대형학원은 영어실력이 바닥인 나를 제대로 챙겨주지도 않을뿐더러, 카페에서도 노베이스는 대형학원은 거르라고 많이들 하길래 대형학원은 처음부터 생각하지도 않았습니다.
제가 브라운을 선택한 가장 중요한 이유는 제가 1학년 1학기 자퇴에 일반편입이라서 학점은행제가 필요한데 브라운에서는 담당 실장님이 계서서 하나부터 열가지 전부다 챙겨주셨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브라운 만의 차별화된 서비스 노예제도(저는 이 노예제도를 정말 추천합니다)입니다. 노예반(아마도 지금은 사생결단으로 바뀌었을겁니다.)은 담당 선생님(죠교가 아니라 선생님께서 직접 관리해주십니다.)께서 1대1로 과제와, 공부 방법등을 지도해주시는 과정입니다. 베이스가 없던 저는 이 기간이 상당히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건국대학교
건국대학교는 제가 지원했던 학교들 중 가장 상위권이고 경쟁률도 가장 높았습니다. 나름 기출 점수가 괜찮았고, 어려운 문제보다 쉬운 문제를 다 맞는 제 특징상 약간 자신이 있던 학교였습니다. 시험 당일 날씨는 너무 추웠고 고사장에 들어가서 모자란 문법 공식과 기출 단어를 끝까지 봤습니다.
교실마다 케이스가 다르지만 저희 감독관님은 딱딱하신 분이였고, 그저 무난하게 시험을 진행했습니다.
하지만... 올해 건국대학교 문제가 생각했던 것 보다 제 기준에서는 난이도가 꽤 어려웠고.. 당황하고 어리둥절해서 실력대로 풀지 못하고 나왔습니다. 모르겠으면 넘기자, 헷갈리면 바로 넘어간다. 라는 철칙은 시험장에서 당황한 제게는 아무것도 먹히지 않았습니다. 저는 시험이 다 끝나고 학교 화장실에 제 시험지를 버리고 나왔습니다. 건국대학교는 시험지를 주는 유일한 학교입니다. 사실 저는 시험을 잘 보든 못 보든 시험지를 가지고 나오는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 (사실 학원에 답 맞춰볼 친구도 없었습니다.) 들고 나오지 않았지만 나중에 들어보니 답 맞추고 멘탈이 흔들린 사람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답은 절대로 맞춰보지 않는 것을 추천합니다! 결과는 예상대로 1차 불합격 이였습니다.
단국대학교 / 한양대학교 에리카
첫 시험인 단국대학교까지 가면서, 생각보다 학교가 너무 머네.. 이 생각밖에 없었습니다. 붙으면 어떻게 다니지, 이 생각을 하면서 이것이 독해다 비기닝을 쭉 훑었습니다. 단국대학교는 상위권 대학처럼 지문 내용이 난해하고, 주제로 찍히는 문제가 상당히 많습니다. 그러기에 독해적인 장치를 정리한 이것이 독해다 비기닝 책을 가지고 계속해서 봤던 것 같습니다. 단국대학교는 지각생에 대해서는 매우 단호합니다. 타 학교와 다르게 입실 완료 시간에 문을 잠가버리는 유일한 학교인 만큼 절대로 늦으시면 안 됩니다. 하지만 엄격한 만큼 체계적인 시스템으로 수험생을 대해서 그 점은 만족스러웠습니다. 시험 시작 후 문제가 술술 다 풀리기에, 와 여기는 못해도 1차는 붙겠다. 생각했지만, 제 망상 이였습니다... 예비는 고사하고 1차도 떨어졌으니까요.. 그렇게 부푼 기대를 안고 한양대학교 에리카까지 택시로 이동 한 후에 시험을 치렀습니다. 한양대학교답게 차임벨도 울리고, 되게 신경을 쓴 느낌이였습니다. 사실 기출이 잘 나오던 학교인데, 갑자기 작년 기출이 50점이여서, 기대도 안하고 시험을 봤지만, 생각보다 문제가 잘 풀리고 답이 잘 보이기에 풀면서 이거..되겠는데..? 하는 기분이였고, 결국에 예비로 최종합격까지 받을 수 있었습니다.. 에리카 시험을 마친 뒤, 저녁을 먹고 바로 학원에 가서 다음 시험인 경기대학교 시험을 준비했습니다.
세종대학교
“편입은 정말 알 수가 없다”를 가장 뼛속 깊이 느낀 학교입니다. 집에서 너무 가깝기도 했고, 지하철역에서 나와서 바로 앞에 학교가 있길래, 합격하면 너무 좋겠다. 라는 상상을 하면서 시험장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시험장 내부는 히터 때문에 내부 온도가 너무 더웠습니다. 방금 점심을 먹어서 이 상태로 앉아있으면 시험 보다 졸겠다., 해서 별표 천개 프린트 하나 들고 밖에 나와서 공부했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보는 밖에서 돌아다니면서 공부하니까, 집중도 은근히 잘 되고 자신감도 커졌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시험 시간이 돼서 시작을 했습니다. 세종대학교 논리문제는 워낙 쉬워서 넘어갔는데, 세종대 analogy 어휘 문제부터 멘탈이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어휘문제 5문제 중에 4문제를 찍고, 빈칸 문법 문제는 예상보다 쉽게 풀고 넘어갔더니, 세종대학교 밑줄 문제에서 거의 포기 직전의 상태까지 가버렸습니다. 문법 문제에 2/3을 모르겠어서 찍고 넘어갔습니다. 정말, 너무 암담하고, 이대로 가면 1차도 못 붙겠다. 이 생각밖에 없었습니다... 그래도 내가 할 수 있는 건 다 하고 떨어진다 생각해 독해 영역으로 갔더니, 평소에 쉽게 풀릴만한 문제들도 어렵게 보이고 제일 마지막, 철학 지문에서 저는 시험문제의 기에 눌려서 포기했습니다. 문제도 들어오지 않고, 시험 전에 마신 물 때문에 화장실도 너무 가고 싶었고, 그렇게 3분간 멍 때리다가, 갑자기 정신이 들더니, 그래도, 일단은 최선을 다 하고 떨어지자. 라는 다짐이 또 들어서, 일단 풀었습니다. 문법 문제는 다 찍더라도 독해만큼은 영어 대조라도 해서 맞는다. 해서 답안을 적었습니다. 시간이 너무 모자라 60문항을 3분 만에 마킹해야 했고, 너무 긴장하고 조급해서 중간에 한 번 마킹 실수를 했지만, 속으로 그래, 떨어졌어. 저거 맞아도 떨어졌을 거야. 이 생각을 해서 편안하게 제출했습니다. 시험장 나오면서, 기출문제 점수가 전부가 아니다, 자만하지 말자. 자만하지 말자... 하면서 학원으로 갔습니다.. 너무 우울하지만 그냥 또 공부 했습니다. 단어라도 외웠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예상치 못한 1차 합격을 하고, 말도 안 되게 가장 망친 학교를 최초는 아니더라도 예비 합격까지 할 수 있었습니다.
상명대학교
최초 합격은 기대도 하지 않았던 학교입니다. 작년도 국제경영 최초합격 컷이 80점대 중반 이였고, 그 해 년도 상명대학교 기출은 61점이였습니다. 61점이면 문 닫고 들어갈만한 점수여서, 그래, 예비로 붙었으면 좋겠다. 라고 생각하면서 출발했습니다. 학교가 너무 언덕이라서 걸어 올라가는데 너무 오래 걸리고 하고 땀도 나서, 최악이야.. 하면서 들어갔습니다. 같은 국제경영 고사실에 학원에서 인사만 하는 분이 계시기에 서로 인사하고 시험을 진행했습니다. 상명대학교는 인서울 괜찮은 학교인데도 불구하고 편입고사에 대한 체계가 잘 잡혀있지 않습니다. 대표적으로 시험지 표지가 없어서 시험 5분전부터 학생들이 눈으로 시험지를 풀 수 있게 내버려두고, 시험장에 늦게 들어온 학생들도 시험을 보게 해주는 등... (저희 고사실은 그런 학생이 없었습니다.) 여러 가지 하는 학교였습니다. 근데, 문제만큼은, 너무 잘 풀렸습니다. 전치사 문제도 몇 개는 헷갈렸고, 문법 문제도 몇 개는 헷갈렸지만, 독해영역에서 이종현 선생님이 등장했습니다. 지금껏 들었던 미니모의고사, 각종 풀이법들이 머릿속에 그려지더니, 상명대학교 특징인 까다롭게 내는 주제문제에서 정답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나중에 문제 다 풀고 시간이 남아서, “야, 이거 공부 제대로 안한 애들은 진짜 헷갈리겠다...” 이 생각을 하면서 시험지를 제출했습니다. 시험지를 내고 걸어 나오면서 다른건 모르겠고 독해는 하나 틀리거나 다 맞았다 이 생각 뿐이였습니다. 그리고 걸어오면서 한양대 에리카 1차 발표를 합격했다는 소식도 듣고 너무 기분이 좋아서 그날 공부도 잘 되었던 시험이였습니다.
한국외국어대학교 글로벌 캠퍼스
제가 편입을 시작했을 때 가장 가고 싶었던 학교였습니다. 편입에서의 마지막 시험이기도 하고, 사실 아무 생각 없이 편하게 보러갔습니다. 나중에 극 후반부에 느끼실 거지만, 마지막 시험 보러가는 길에는 아무 생각도 안 드실 겁니다. 그냥, 빨리 끝나라, 끝나면 점심 뭐먹지, 학원에 짐은 언제 빼지, 별별 생각이 다 드실겁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단어도 안 잡히고, 문법 공식도 안 보이고, 그저 그렇게 앉아 있다가 시험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문제가, 말도 안 되게 쉽길래, 상상도 못 할 정도로 쉽길래, 술술 잘 풀고 20분정도 남아 있기에 검토까지 하고 마무리 했던 시험입니다. 하지만, 예비번호도 못 받고 불합격 했습니다. 시험이 쉬웠던 만큼 잘 본 학생들이 많아서 한 문제 차이로 합격 불합격이 갈렸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아쉽진 않습니다. 이렇게 길었다면 길고 짧았다고 하면 짧았던 제 편입이 마무리 되었습니다 :)
지금 이 수기를 읽고 계시는 분들은 편입을 처음 준비하시거나, 혹은 너무 힘들고 두려워 수기를 읽으러 오신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너무 성적이 안 오르고 힘든 8~9월달 쯤에 수기를 읽으면서 위안을 하고 자신감을 얻었으니까요. 편입을 준비하는 수험생은 누구든지 다 떨어진다는 걱정을 하고 공부를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저 또한 그랬습니다. 하지만 결국에 이 20페이지가 넘는 합격수기에서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여러분 자신을 믿고, 같이 하는 선생님을 믿으라고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경쟁률은 높고, 성적은 오를 기미가 안 보이고 과연 내가 그 경쟁률을 뚫고 합격 할 수 있을까...? 라고 생각하실 겁니다. 저도 성적이 너무 오르지 않던 어느날, 10월달에 가톨릭 대학교 40점을 맞았던 기억이 있었습니다. 평소 같으면 잘 이겨내야 하는데 유독 그날따라 우울하고, 두려웠습니다. 집에 오는 길에 전태일 박물관 앞에서 갑자기 눈물이 쏟아지더니, 지하철 역 안으로 들어 갈 수 없을 정도로 펑펑 울었습니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쳐다볼까봐 역 앞에 전동드릴 가게 옆 담벼락에서 벽을 보면서 눈물이 멈추기를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눈물은 멈추지 않았고 나를 믿고 지지해준 부모님, 절 정말 신경써주시는 선생님들, 다 떨어지면 어떻게 하지.. 하고 너무 불안해하는 제 자신을 보면서 하염없이 울었습니다. 그렇게 20분 동안 가만히 서있으면서 또 제가 제일 잘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지금 내가 겪는 위기가 수험 생활 중 가장 큰 위기다. 이 벽만 넘으면 나는 합격 할 수 있다.” 이 생각만 가지고 소매에 눈물 콧물 닦으면서 집으로 갔던 기억도 있습니다. 만약 제가 그때 나는 못 할 거야, 나는 안 돼. 라고 포기했다면 상명대학교 최초 합격은커녕, 경기대학교 예비 합격도 못하고 전부 다 떨어졌다고 생각합니다. 그 날이 지나가고 제게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또 한 개의 벽을 넘었다. 다음 벽이 어떤 벽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합격에 한 발 더 가까워 졌다. 이 생각으로 그날 하루도 최선을 다해서 살아갔습니다. 그렇게 10월 달을 버티고 11월 달에 깨질 것 같지 않던 70점대의 벽이 깨지고 드디어 기출 80점대로 진입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 날을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최선을 다해서 푼 시험이 88점, 86점 이였던 그 순간을요. 너무 기뻤습니다. 합격하지는 않았지만 지금까지 버텨왔던 내 스스로가 너무나도 자랑스러웠습니다. 그렇게 하루하루 자신감을 가지고 시험 전날까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했습니다. 공부가 잘 되지 않아도 절대로 집에 가지 않았습니다. 공부가 안 되고 너무 하기 싫은 날에는, 책상에 앉아서 마라톤 문법책을 그저 생각 없이 A4에다가 배껴쓰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한가지씩 노력하다 보니 점점 집중 하고 있는 제 모습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집중반 처음 시작할 때 담임 선생님께서 편입은 버티는 사람이 승자다. 나중에 거의 다 나가떨어진다. 버티는 사람이 이긴다. 저는 그때 그 말만 믿고 그저 버텼습니다. 남들은 공부가 안된다고, 시험 당일 날 피곤하다고 학원에 안 나올 때 저는 누구보다 열심히 했고, 인텐시브 코스땐 너무나도 덥고 일어나기 싫지만 세수하는 시간도 아껴서 일어나자마자 핸드폰만 챙겨서 학원에 왔습니다. 서울대 연고대 서성한 중경외시처럼 명문대학교는 아니지만 지방 전문대에서 인서울 합격이라는 매우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었습니다. 무엇보다 편입을 성공 한 것 보다, 세상에 저렇게 노력하는 사람도 존재하구나(이종현 선생님), 저 선생님 이라면 내 인생을 믿고 맡겨보고 싶다(이재현 선생님) 등... 대단하신 분들 밑에서 공부뿐만 아니라 인생에 대한 가르침도 배우고, 노력과 끈기가 얼마만큼 중요한지 깨달을 수 있는 제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학교 입학 후에도 편입때 했던 만큼만 열심히 살면 내가 하고 싶은 꿈을 이룰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겼습니다.
수험생 여러분들, 지금 많이 힘드실 겁니다. 잘 안되고, 너무나도 불안해하실 겁니다. 지금 여러분들이 느끼는 그 순간이 편입에서의 가장 큰 벽입니다. 그 벽만 넘어서면 여러분들은 합격하실 수 있습니다. 제 말을 한 번 만 믿어 보시고, 오늘 하루도 누구보다 노력하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편입 합격은 결코 어려운 산이 아닙니다. 끝까지 한 번 해보시길 바랍니다!
긴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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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합격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행복한 캠퍼스생활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