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생명말씀(2021.,10.24) 말씀/ 누가복음 4:18
주 안에서 누리는 자유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하심이라”
지난 주 모처럼의 기회를 만들어 화,수요일로 거제도 대 매물도 소 매물도를 다녀왔습니다. 개인적으로는 10여년 전에 한번 다녀온 곳인데 이번에는 독서팀들과 같이 갔습니다. 당시에 너무 큰 감동을 받았기에 언젠가 믿음의 동역자들과 같이 가봐야겠다 싶었는데 거리도 멀고 코로나가 겹쳐서 쉽지 않았습니다. 미루고 미루다가 마침 가을 타이밍도 맞고, 코로나도 좀 누그러들고, 부산에 강선구 집사님도 참석할 수 있게 되어서 겸사겸사 계획을 진행했습니다. 천영란 권사님도 1박 ok하시고, 알바 하는 정상국 목사 연락하여 같이 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총 5명이 갔습니다. 어려운 긴 여행이지만 용기를 내니 그리 어려운 것도 아니었습니다. 새벽 6시 출발 왕복 8시간에 대매물도에 민박을 정해 1박을 했습니다. 주인집 사장님도 친절하고, 독채로 빌려서 편안하고, 음식도 깔끔한데다 섬의 특산물로 나오고 아주 좋았습니다. 저는 이 여행을 자유를 찾아 떠나는 행복여행이라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자유에 대해서 묵상하는 시간을 가져보았습니다. 자유는 하나님 주신 최고의 특권입니다. 자유가 있기 때문에 인간은 인격을 지니게 되었고, 이런 자유가 있기에 주체적인 삶과 행복한 삶도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이런 자유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특권입니다. 그런데 이 자유의 특권을 누리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참 자유는 그만큼 책임이며 덕과 사랑, 행복의 속성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자유를 누리는데 그 자유의 결과가 악이 되고 민폐가 되고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된다면 그 자유는 그저 방종에 불과 한 것입니다. 그런 것이 자유라면 아무도 그런 자유를 추구할 이유가 없습니다. 자유가 나를 행복하게 하고, 평안하게 하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유익한 영향을 미칠 때 비로소 자유인 것입니다. 그래서 참 자유를 누리려면 공부를 해야 하고, 자유에 대해서 배워야합니다. 성숙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숙하지 않은 채 자유를 누리게 되면 욕심에 끌려 그 자유는 멸망의 지름길이 될 수 있습니다. 쉬운 예로 성숙지 않은 어린 아이에게 자유를 줄 때 그 결과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문제만 일으킬 뿐입니다. 자유라는 것이 특권이지만 콘트롤 절제가 필요합니다. 자유는 놀이와 비슷합니다. 사람들은 누구가 다 잘 놀고 싶어 합니다. 놀이문화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런데 놀이에도 법칙과 질서가 있습니다. 무조건 논다고 행복하고 즐거운 것이 아닙니다. 학생이 잘 놀려면 숙제를 잘 해야 합니다. 김정음 교수가쓴 노느 만큼 성공한다는 책이 있습니다. 이분은 놀면서 돈도 벌었습니다. “그래 맞아 놀아야해” 하고 공부할 학생이 자기 할 일 숙제를 하지 않고 논다면 시험에서 빵점을 맞을 수 있고 인생의 꿈도 이루지 못한 채 쪽박을 찰 수 있습니다. 이분이 말하는 논다는 의미는 4단계입니다. 먼저 기는 놈, 다음에 뛰는 놈, 그 다음 나는 놈, 그 다음이 노는 놈입니다. 3단계를 초월한 4단계입니다. 무슨 일을 해도 재미로 하는 것입니다. 공부도 머리를 짜는 것이 아니라 노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이로서 공부를 하면 엄청난 효과를 봅니다. 자유도 그 안에 질서와 법칙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잘 알고 따르고 누리면 그야말로 신선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하실 때 처음부터 이 자유를 주셨습니다. 당연히 자유를 누리며 행복하게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인간은 처음부터 그 자유를 누리지 못했습니다. You are free to eat any tree in the goeden. but you must not eat from the tree of the knowledge of the good and evil. 자유 속에 담긴 법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자유를 어떻게 써야할지 모르는 아담과 이브는 쉽게 사단의 유혹의 말을 듣고 선악과를 따 먹고 죽어야할 운명이 되었습니다. 결국 행복의 동산에서 추방되어 자유를 잃고 행복도 잃게 되었습니다. 자유에 대한 질서 한 가지를 지키기만 했더라면 영생의 열매도 먹고 영원토록 에덴동산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었지만 자유를 위한 한가지 선악과 법을 지키지 못함으로 자유를 빼앗겼을 뿐 아니라 죄와 죽음의 결박당하고 사단의 종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그 목적이 무엇입니까? 사단을 멸하시고 죄와 죽음에서 우리를 해방시키시고, 참 자유를 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역시 이 자유도 반드시 풀어야할 숙제가 있습니다. 죄와 죽음의 댓가를 치러야합니다. 로마서는 죄의 삯은 사망이라 하였습니다(롬 6:23) 인간은 아무도 이 숙제를 풀 수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이미 아담의 죄의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난 인간은 벌써 심판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를 풀 수 있는 분은 결국 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뿐입니다. 어쩔 수 없이 하나님은 독생자 아들 예수님을 보내시지 않을 수 없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약속을 하시고, 수많은 선지자들이 와서 예언을 하고, 마침내는 예수님이 오셔서 십자가에 달려 우리 대신 죽으시고 3일만에 부활하셨습니다. 그 결과 누가는 우리는 오늘날 다시 자유를 누리게 된 것입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하심이라”(눅 4:18) 포로된 자에게 자유, 눌린 자를 자유롭게 ...그러므로 예수님을 만났다면 우리는 자유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오신지 2000년이 지났음에도 사람들이 이런 자유를 누리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가난의 운명이 묶여 살고, 미움 감정에 분노하고, 죄책감에 노예가 되고, 힘들게 살아갑니까? 자신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힘들게 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니면 평생 일벌레가 되어 살아갑니다. 설령 일벌레는 아니어도 내 욕심대로 사는 것이 자유가 아닙니다. 미워하는 사람은 자유할 수 없습니다. 용서를 해야 자유롭게 됩니다. 욕심을 부리는 사람 역시 자유 할 수 없습니다. 욕심을 내려놓고 가난한 자들과 나누어야 합니다. 원수가 있는 사람은 원수를 사랑해야 자유 합니다. 돈이 많다고 자유한 것도 아닙니다. 몸이 건강하고 아프지 않다고 자유한 것도 아닙니다. 재산이 많으면 많을수록 인기가 높으면 높을수록 사생활의 자유를 누릴 수 없습니다. 근본 자유는 예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아멘! 마태복음 11장 28절 보세요.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예수님께 나아와서 내 짐을 내려놓아야 비로소 자유가 시작됩니다. 어떻게 내려놓습니까? 예수님이 내 죄를 대신 죽으시고 값을 치루신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먼저 죄의식과 무거운 마음의 짐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염려 금심 걱정도 내려놓는 것입니다. 이렇게 믿고 짐을 내려놓는 사람은 자유 할 수 있는 것이고, 못 믿고 못 맡기는 사람은 계속 묶여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동안 수고하고 노력한 댓가로 살아왔습니다. 내가 일한 것이 없고, 수고한 것이 없이 누린 다는 것이 잘 용납이 안 됩니다. 그래서 내려놓는 것도 쉽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과 자유는 삯이 아니라 선물입니다. 우리는 나 자신의 구원과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다만 믿음뿐입니다. 믿느냐 못 믿느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저도 처음 사역 할 때는 이런 내려놓고 맡기는 믿음이 없었습니다. 죽도록 충성하는 것이 믿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축복하신다고 생각했습니다. 열심히 일하지 않으면 죄송한 마음이 들고 밥도 먹지 말라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전도도 못 하고, 기도도 많이 못하고, 말씀공부 1:1도 못했는데 어떻게 밥이 넘어가겠습니까? 믿어도 자유가 없었습니다. 종과 같은 마음으로 살았습니다. 내가 자유하지 못하고 마음이 어두운데 또 어떻게 양들과 역사를 자유게 키울 수 있겠습니까? 늘 요구하고 안 되면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다보니 긍정적 이기보다 부정적 생각이 자꾸 들어왔습니다. 그러다가 양들도 떠나고, 새로운 전도도 안 되고, 1:1공부, 전도, 수양회도 없이 그냥 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놀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일 안해도 밥을 주시고, 살리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때 한 말씀이 나를 다시 일으켜주었습니다. 로마서 4:4-5 “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이 은혜로 여겨지지 아니하고 보수로 여겨지거니와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어떻게 일을 아니할지라도 하나님은 경건하지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실 수 있는가? 하나님은 오히려 이를 믿는 자에게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신다고 하십니다. 저는 놀랬습니다. 이것이 자녀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하는 것이다. 내가 일한 보수를 받는 것이 아니다.” 저는 하나님의 은혜, 선물에 대해서 다시 깊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당당해졌습니다. 일하지 않고 당당히 보수를 받고, 일하지 않아도 죄송한 마음 갖지 않고 자유한 자가 되어갔습니다. 이렇게 자유한 영혼이 되자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은혜의 세계가 열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자유롭게 자연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또 여러 책들을 읽으며 배울 수 있었고 욕심내지 않고 한 영혼을 사랑하는 방향을 잡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자유로운 삶속에서 글을 묵상하면서 아름다운 글을 쓰기 시작하였습니다. ‘주님이 하십니다’ 카페를 운영하면서 감성 영성 영성의 글을 써서 사이버로 나누기 시작하였습니다. 어느 날 한 사람이 제 글을 읽고 댓글을 달았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이렇게 아름답게 살 수 있습니까?” “물론이지요.” 이렇게 해서 대화를 하게 되고, 핸 펀을 교환하게 되고, 하나님을 알기 위해 성경공부를 권했습니다. 그 분은 부산 저는 무안 너무 멀어서 만나서 공부하기는 어렵고 당시 070 전화로 기초공부를 시작하였습니다. 매번 은혜스럽게 1시간 이상 공부를 하고 기도를 하고 신앙고백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분명히 하나님을 믿고 고백을 하였습니다. 부산에서 무안으로 와서 푸른초장교회에서 세례를 받은 첫 인터넷 세례교인이 되었습니다. 강선구 집사님입니다. 지금까지 영적 교제를 이어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 매물도 독서모임을 함께 가게 되었습니다. 이분이 또 이번 독서여행에서도 은혜를 받고 ‘독서여행의 기적!’ 이란 댓글 소감을 고백했습니다. 처음엔 그러려니 했는데 영성으로 풀어주시니 깜깜했던 마음이 확 열렸습니다. 독서모임을 통해서 행복한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카스토리도 전에 카스토리가 아니고 기다려지고 세심하게 생각하며 읽고 느껴야겠다는 기쁜 마음으로 가득합니다. 잊지않고 불러주시고 반가이 맞아주신 목사님과 정목사님 천권사님 김집사님 고맙고 감사드립니다. 또한 좋은일기와 여행내내 우리곁을 지켜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어제부터 먼가모를 대단한 부자가 되어버렸고 무지하게 행복함이 밀려옴니다. 제가 우주교회에 들어온 것이 기적입니다! 고맙습니다.
제가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무리 열심히 충성을 하고 애를 써도 내가 얽매이고 자유하지 못하면 하나님이 역사하시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자유하고 맡기면 노는 가운데서도 하나님이 역사하십니다. 영효 형제님 너무 잘 즐기는 것을 보고 샘이난다고 했습니다. 누구와 오는가가 중요한 것입니다. 주님과 놀면 주님이 하십니다. 하나님의 일은 내가 그분을 믿고 맡길 때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그 후로 저는 사람들에게 일하하지 말라고 합니다. 놀라고 합니다. 공부할 것이면 놀면서 하라고 합니다. 그게 진짜 공부라고 합니다. 이번 거제도 독서 여행도 겉으로 그냥 멋지게 놀러가는 것입니다. 산과 바다 자연 어울어진 독서여행 그냥 주님 품 안에 노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이 그런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내가 새로워지고, 마음에 비전이 생겼습니다. 할 수 있다는 믿음의 생겼습니다. 공부해야겠다는 의욕이 일어났습니다. 외국에 있는 선교사님들도 우리 모임을 보면서 은혜를 입고 힘을 얻고 있습니다. 언젠가 이 모임에 참여해서 교제 나누고 싶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주 안에서 자유입니다. 요한복음 8:32 말 합니다. 진리를 알찌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자유는 주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내 마음대로 자유를 누린다면 이렇게 멋진 생명이 흐르는 자유를 누리지 못할 것입니다. 모든 것이 주 안에서 가능한 것입니다. 대구 조은미 사모님도 카토 말씀을 받고 행복한 독서여행 좋아보인다고 하며 “말씀 앞에 옥합을 깨는 거룩한 낭비 그 속에 깃든 마음 다한 헌신, 그런 삶을 살게 하소서” 댓글을 보내왔습니다. 사실 너무 힘들게 사시고 그러다가 딸까지 화마로 잃은 분 이십니다. 저도 제 이야기를 해 드렸습니다. 아들은 지적 장애 3급이고, 사모는 나의 신앙관이 틀려서 서울 올라간지 10년이 훌적 넘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주님 뜻으로 받아들이고, 영접하니 최고의 자유가 주어졌습니다. 그랬더니 “아 그렇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씀과 독서로 최고의 행복을 누리시는 목사님 멋지십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색소폰도 합니다. 색소폰 연주곡도 한곡 보내드렸습니다. 그리고 한마다 첨부하여 말씀 드렸습니다. 사모님 주 안에는 나쁜 것이 하나도 없고, 주를 벗어나면 좋은 것도 없습니다. 주 안에서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입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해방시켜주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잃어버린 자유를 찾아주셨습니다. 우리가 죄에서 벗어나 눈치 보시 않고 자유를 누리며 살 수 있는 것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마음에 무거운 짐, 복잡한 문제들 주님께 내려놓고 자유를 누리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세상에 아직도 죄와 사망에 매여 살아가고 있는 인생들에게 자유의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되리기를 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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