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들은 당시 다니고있던 고등학교는 체질에 맞지 않아 못 다니겠다고 하자 의외로 순순히 허락을 하셨다. 그만큼 나를 믿으셨고 개방적인 사고방식을 지닌 분들이었다.
이 부분에서 여러분들의 오해가 없기를 바란다. 공부자체가 하기 싫었던 것은 절대 아니며 뭔가 다른 구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고 다른 아이들처럼 학과공부만 해야하는 것이 내 인생이었다면 나도 열심히 공부했을 것이다.
부모님께 과감히 의사표현은 했지만 실현되지 않으리라고 생각했던 안양예고로의 전학은 생활에 커다란 여유를 가져다주었다.
8학군이 아닌 곳에서의 자유, 또 그로부터 비롯되는 낭만과 여유를 만끽할 수 있었다. 그 학교에는 지금 한창 활동중인 김민종, 이상아, 오연수, 김혜영, 신은경 등이 있었고 그룹 이오스의 기타리스트 고석영은 음악을 좋아해 합주실에 함께 다니며 절친하게 지냈다.
내가 안양예고로 전학하고 한 달쯤 후에 성재도 비슷한 이유로 한인고등학교라는 곳으로 전학을 했다. 성재와 나는 같은 학교에 다닐 때보다도 더 자주 만나 음악과 춤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던 어느 날 첨단 춤에 대한 정보와 '견학'을 할 수 있는 곳이 있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이태원에 있는 '문 라이트'라는 클럽이었다.
이때 만난 선배가 댄스듀오 '탁이 준이'의 '준이'인 구준엽 형이었다. 그의 율동은 그야말로 환상적이었고 나는 언제 저렇게 춤을 출 수 있을까 부럽기 그지없었다. 그런데 더욱 나를 안타깝게 만드는 것은 준엽 형이 나는 아예 제쳐두고 성재만 귀여워하는 것이었다. 사실 '롱다리'인 성재가 율동을 하면 그렇지 못한 나와는 그 모양새가 비교할 수 없었다.
춤의 메카 '문 라이트'의 춤 선배들은 성재에게는 춤동작을 가르쳐줬으나 나는 아예 관심도 없는 듯했다. 그러면 그럴수록 이를 더욱 악물었다.
안양예고로 전학한 이후 얼마가 지나서부터는 저녁만 되면 클럽으로 가서 춤추며 꼬박 밤을 샜고 학교에 가서는 점심 시간과 쉬는 시간만 되면 밀린 잠을 잤다. 수업시간만 끝나면 신기할 정도로 말짱해진 나는 클럽으로 가기 전까지 학교음악실로 들어가 피아노를 쳐댔다.
나름대로 댄스곡을 만들어보겠다는 욕심이었다. 이때 어린 시절 피아노 교실 잠깐 다니며 바이엘 상하권을 떼었던 것이 얼마나 도움이 됐는지 모른다. 코드는 스스로 깨우쳤고 건반악기실력은 물 흐르듯 느는 것이 느껴졌다.
당시 문라이트에서는 댄스음악그룹으로 출범하는 현진영과 와와의 멤버를 모집하고있었다. 성재는 1순위로 꼽혔고 나는 벤치를 지켜야하는 대기멤버로 뽑혔다. 와와는 서태지와 아이들의 아이들처럼 가수와 댄서의 중간형태를 띠었다. 성재와 나는 정말 열심히 뛰었다. 그러다 보니 '와와'만의 팬들이 따로 생길 정도였다.
<슬픈 마네킹>을 히트시키며 약 1년간의 활동을 하고 2집 <흐린 기억 속의 그대>를 내놓던 즈음 리더인 현진영이 대마초사건에 연관돼 우리는 활동을 당분간 접어야했다.
그룹은 일단 해체됐지만 2집 앨범 중 수록돼있던 <너에게만>이라는 곡은 내 음악인생에 있어 참으로 좋은 계기를 만들어줬다. 이 곡은 내가 작사, 작곡, 편곡까지 다한 나의 첫 작품이었다. '와와'시절 이현도의 얼굴은 아는데 이름은 몰랐던 팬들이 팬레터를 보내왔다. 나의 존재가 알려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또 이것은 작곡가로서 나의 첫 데뷔작이었다.
현진영과 와와가 활동중단을 한 이후에도 성재와 나는 계속 '문라이트' 출입을 하며 춤과 노래연습에 열중했다. 이미 우리는 클럽 내에서 괴짜로 소문이 나고있었다. 바지를 내려 입었고 큰 신발을 신었으며 귓볼에 구멍을 뚫고 귀고리를 했던 것은 당시로서는 파격적이었다.
클럽에는 김준철이라는 DJ형이 있었는데 하루는 가요매니저 한 분을 소개해줬다. 이름은 김동구였다. 첫인상이 좋았다. 특히 젊은 사람 셋이서 잘해보자는 말이 마음에 들었다.
성재와 나는 새로운 마음으로 방배동에 있는 무용 연습실에서 6개월간 피나는 연습을 했다. 한편으로는 작곡을 하기 위해 음악공부도 열심히 했다. 컴퓨터에 관해서는 사실 문외한이었는데 PC만 사주면 혼자 깨우치겠다며 매니저가 된 동구형을 졸랐다. 춤추는 시간 빼고는 컴퓨터 공부에 열중했다.
6개월 후 춤동작은 우리 자신들이 거울을 통해 봐도 "야 이건 정말 멋있는데"하는 감탄사가 나올 정도로 기가 막혔고 음악공부의 결과로 작품하나가 나와있었다. 그 곡이 바로 듀스의 데뷔곡인 <나를 돌아봐>였다. 애절하면서도 거칠고 신나는 묘한 곡이었다.
<나를 돌아봐>를 처음 평한 사람은 친형인 이태균형이었다. 나보다 2살 많은 형은 괜찮은 노래이며 분명히 히트할 것이라고 장담했다. 그리고 이 노래는 히트했다. 형은 패션디자인을 공부하며 프랑스유학을 준비하고있는데 그의 평은 항상 냉정하고 객관적이어서 곡이 나오면 제일 먼저 어뗘냐고 묻곤 한다. 형은 듀스의 뮤직비디오에도 찬조 출연한 적이 있어 이젠 그에게도 팬레터가 올 정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