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어’로 헛살아온 슈베르트 <송어>
피아노 5중주곡 <숭어>오기 수십 년 동안 방치…
‘일제의 잔재’ 그대로 남아 있는 꼴
오스트리아의 작곡가 슈베르트는 ‘가곡의 왕’으로 불린다. 우리나라 중등학교 교과서와 음악 전문 서적에는 슈베르트의 곡들이 빠짐없이 실리고 있다.
그중에서도 슈베르트가 지난 1817년에 작곡한 피아노 5중주곡 <숭어>는 국내에 가장 많이 알려진 대표적인 곡이다.
그런데 ‘숭어’는 숭어가 아니라 ‘송어’의 잘못된 표기이다.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이 잘못 번역한 것을 지금까지 수십 년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슈베르트가 알면 지하에서 통곡할 일이지만 우리 음악계에서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이런 사실은 <시사저널>이 영어사전과 독일어사전, 관련 문헌 등을 살펴보고, 음악 전문가의 자문 등을 통해 확인한 것이다.
이 곡의 원 제목은 독일어로 <Die Forelle>이며, 영어로는 <Trout>이다. 우리 말로 번역하면 ‘송어’이다. 반면, 숭어는 영어로 ‘Mullet’이다. 숭어는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곳에 살지만 송어는 순수한 민물고기이다. 오스트리아에는 바다가 없으며, 이 나라 사람들에게 송어는 가장 친숙한 물고기라고 한다.
송어(Trout) 숭어(Mullet)
그런데도 우리 음악계에서는 지금까지 공식적인 문제 제기가 없이 송어를 ‘숭어’로 잘못 표기해 오고 있다.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중·고등학교 검정 교과서 대부분에서 이 엉터리 용어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시사저널>이 확인한 바에 따르면 <송어> 악보가 실리거나 해설이 있는 교과서 중 중학교의 경우 ‘교학연구사’ ‘아침나라’ 등의 교과서가 송어를 숭어로 표기하고 있었다. 고등학교 교과서는 ‘교학사’ ‘천재교육’ 등 국내 대표적인 교과서 전문 출판사들이 펴낸 교과서들도 오류 투성이였다.
교육인적자원부에서 나온 ‘교과서 편수 자료’에는 <송어>로 표기하고 있는데도, 해당 출판사와 지은이들 그리고 교과서의 검정을 담당하는 교육인적자원부 산하 한국교육과정평가원 등이 엉터리 검정으로 일관하며 일제의 잔재를 그대로 교과서에 싣고 있었던 것이다.
<송어>를 '숭어'로 잘못 표기한 중등학교 음악교과서.
해당 출판사들도 잘못된 검정을 인정했다. 교학연구사의 중학교 음악 교과서 담당자는 “매년 잘못된 부분에 대해서는 수정을 하고 있는데, 담당자들이 계속 바뀌다 보니 면밀하게 검토를 하지 않은 면이 있다. 앞으로 수정하겠다”라고 말했다.
교학사측은 “정확한 자료를 찾아보고 저자에게 양해를 구해서 내년에는 바꾸겠다”라고 밝혔다. 천재교육 음악교과서 담당자는 “지금까지 통상적으로 <숭어>로 썼다. 아주 오래전부터 (숭어로) 쓰여 있기 때문에 바로잡지 않은 것 같다”라고 했으며,
아침나라측은 “8년 동안 음악 교과서를 만들고 있는데, 이런 지적은 처음 받아보았다. 엄밀하게 검수를 했지만 오류가 있었던 것 같다”라고 말하면서 뒤늦게 교과서를 수정하겠다고 밝혔다.
중등학교 음악교과서 악보와 해설이 '숭어'로 잘못 표기되어 있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전문 인력이 검정을 맡고 있는데도 그야말로 ‘눈뜬장님’이 되어 있었다. 교육인적자원부의 ‘교과서 편수 자료’에도 나와 있는 내용을 검정 단계에서 잡아내지 못한 것이다.
이에 대해 진재관 교과서평가연구실장은 “2002년판 교과서 편수자료는 ‘숭어’이고, 2007년 판은 ‘송어’로 바뀌었다. 그래서 교과서가 ‘숭어’로 표기된 것이다”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2001년에 검정 받고 2002년 3월에 발간된 ‘법문사’와 ‘현대음악출판사’ 등의 음악교과서는 ‘송어’로 표기되어 있어, 평가원 측의 말이 앞뒤가 맞지 않는다.
음악 전문 서적들도 <숭어>로 표기한 경우가 많았다. 세광음악출판사의 <클래식 명곡 대사전>, 일신서적출판사의 <클래식 음악 감상 해설>, 아름출판사의 <클래식 명곡 해설> 등이 그렇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의문점이 생긴다. 우리나라의 유명 음악가 중에는 오스트리아에서 유학한 사람들이 많은데도 그들이 왜 지금껏 침묵으로 일관했느냐는 것이다.
김승일 조선대 음대 명예교수는 “<숭어>의 경우 일제 강점기에 잘못된 번역을 그대로 쓰고 있는데, 음악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잘못된 번역을 무감각하게 받아들이기 때문에 일어난 현상이다”라고 말했다.
독일에서 수학한 김정운 명지대 사회교육대학원 주임교수는 “사회적인 고립에서 오는 오류이다. 우리나라 음악계는 음악을 단순히 음악으로만 다루고 있다. 음악을 문화 현상으로 해석하고 이해하는 담론이 존재하지 않는다.
클래식음악계는 고립된 섬 같은 묘한 곳이어서 사회적인 담론이 가능하지 않다”라며 클래식 음악계의 고질적인 특성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첫댓글 송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