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구멍받이
사전적 뜻풀이는‘남이 개구멍으로 들이밀거나 대문 밖에 버리고 간 것을 데려와 기른 아이’라고 한다. 남의 집안에 아이를 몰래 넣기 위해 대문이나 담장을 넘지 못하고 개구멍을 이용해서 넣는다는 의미로 생겨난 말인 것 같다. 이런저런 이유로 아이를 낳았지만 사정상 키울 수 없는 어미의 마지막 고육지책이었으리라. 지금도 어느 집 앞 또는 산부인과나 조산원 앞에 간난 아기를 버린다는 뉴스는 현대판 개구멍받이 사건인 것 같아 보기에 안타깝다. 그런데 개구멍받이 아이를 기르지 않으면 집안에 재앙이 덮치기 때문에 다시 밖으로 내치지 못한다는 속설이 있다고 한다.
옛날 어느 판서 집에 개구멍받이 사내아이가 들어왔다. 막무가내로 내 칠 수 없게 되었고, 마침 마나님의 출산이 임박하여 쌍둥이를 출산했다는 소문내고 키우게 되었다. 그러나 친자식은 백일을 못 넘기고 죽게 되고 개구멍받이는 양부모로부터 더욱 금지옥엽 정성을 받으며 기골이 장대한 청년으로 자랐다. 그런데 이 아이가 청년으로 장성하면서부터 사단이 벌어지고 말았다. 주색잡기에 온갖 못된 짓으로 가산을 탕진하였고 집안이 몰락하자 종적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이렇게 되자 그 놈은 친자식이 아니고 개구멍받이라는 것, 친 자식이 병들어 죽은 것이 아니라 그 놈이 깔아 뭉겨 죽였다는 것, 그러니 아기 때부터 판서집안을 망치기 위해 들어 온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았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가 있다.
2. 탁란(託卵)
동물들의 세계에는 탁란이라는 것이 있다. 탁란의 습성을 가진 대표적인 동물은 바로 뻐꾸기이다. 뻐꾸기는 오목눈이(뱁새)나 개개비 같은 새의 둥지에 자신의 알을 낳는다고 한다. 문제는 순수하게 탁란만 하면 좋으련만 오목눈이를 속이기 위해 알 하나를 둥지에서 밀어내고 대신 자기 알로 숫자를 맞춘다. 오목눈이는 아무것도 모르는 채 함께 부화시키면 둥지에서는 뻐꾸기 알이 가장 먼저 부화하게 된다. 그리고 먼저 부화한 새끼 뻐꾸기는 제 어미 못지않은 만행을 오목눈이를 상대로 또 한번 저지른다. 어미가 없는 동안 나중에 태어난 뱁새 새끼를 둥지에서 밀어내 추락사 시킨다. 그리곤 양부모가 물어다 주는 먹이를 독차지하면서 성장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미 오목눈이는 뻐꾸기 새끼를 지극정성의 자식 사랑으로 길러낸다. 그러나 성장한 뻐꾸기는 어미 오목눈이에게 한 점 미련 없이 떠나 버린다. 이 정도면 뻐꾸기는 오목눈이에게 탁란한 것이 아니라 희대의 사기행각 또는 은혜를 원수로 갚는 잔인한 새라고 해야 맞을 것 같다.
3. 입안 양육(mouth brooding, mouthbreeder)
탁란과 비슷한 이야기가 물고기도 있었다. 아프리카 시클리드가 새끼를 길러내는 방법은 정말 독특하다. 어미가 산란하면 즉시 수놈의 도움을 받아 수정을 끝내고 재빨리 입안의 볼 주머니에 품어 부화시킨다고 한다. 입에서 부화하는 것도 신기하지만 부화 후에도 일정 동안 어미 입안에서 보호받으며 성장하는 것도 그렇다. 안전한 곳에서는 어미 입에서 나오고, 천적의 위협이 닥치면 일시에 어미 입안으로 빨려드는 일사 분란함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이와 같은 시클리드의 육아 습성을‘입안 양육’이라고 한다. 이만하면 천적으로부터 새끼를 보호하는데 가장 완벽에 가까운 방법처럼 보인다.
그러나 어미 시클리드가 산란하여 수정하는 과정에 호시탐탐 알을 노리는 침입자가 있었으니 바로 메기다. 메기는 산란하는 시클리드를 쫒는 과정에 자신의 알도 슬쩍 흘리게 된다. 그러면 시클리드는 이 혼란한 틈에 자신의 알을 하나라도 더 구하려다가 메기의 알을 함께 입으로 가져가게 된다. 마침내 혼란스런 시간이 끝나면 어미는 그런 사실도 모르는 채 입안의 알을 부화시키게 된다. 그러나 어미 입안에는 메기 알이 먼저 부화하고, 새끼 메기는 나중에 태어나는 시클리드를 차례차례 잡아먹으며 성장한다. 결국 어미 입안에는 메기 새끼만 남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미 시클리드는 입안에 있는 메기를 제 자식으로 알고 안전하게 성장할 때까지 보호하면서 키운다고 한다. 과연 어미 시클리드는 자신의 입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나 있었을까?
4. 입양
뻐꾸기와 메기의 이야기만 있고 오목눈이나 시클리드의 모성애가 없었다면 어떨까? 만약 조물주가 오목눈이와 시클리드가 뻐꾸기와 메기의 만행을 마침내 알게하고 복수하도록 허락했다면 상황은 얼마나 더 처절하고 참담했을까? 비록 나쁜 행실을 일삼는 뻐꾸기와 메기 가족이 밉긴 하지만 오목눈이와 시클리드의 헌신적인 모성애를 통하여 미움과 증오를 용서로 승화시킨 것 같다. 미움과 복수대신 사랑과 용서를 택한 오목눈이와 시클리드의 이야기가 안타깝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세상을 아름답게 만든 위대한 사랑의 이야기다.
요즘 국내 입양율이 눈에 띠게 증가한다고 한다. 비록 양부모들의 입양 조건이 해외입양보다 훨씬 까다롭다곤 하지만 무척 다행스런 변화다. 우리사회에 개구멍받이 아이만 있고 이들을 받아 줄 수 있는 업동이 부모가 없다면 얼마나 비참한 사회겠는가? 개구멍받이 아이들만큼 업동이 부모가 많이 나선다는 소식은 시클리드와 오목눈이의 사랑을 보는 것 같아 바라보는 마음이 훈훈하다. 비정함이 사랑으로 승화되는 사회로 변한다는 의미와도 같아 마음이 평화스럽다.
첫댓글 깊은 뜻을 담고 있는 짧은 내용들로, 평소의 작품보다 새로운 맛을 느낍니다. 잘 읽고 갑니다.
살아 남기 위한 방법이 참 신비롭다는 걸 다시 느낍니다. 잼있게 잘 읽었습니다 ^^*
이럴땐 모르는게 약이겠죠. 알면 병나요. 잘 보고 갑니다.
미우라 아야코의 빙점이 생각나네요......
잘 읽고 갑니다. 인간사와 크게 다를 바가 없는 새도 있네요.
혈연관계를 가장 중시하는 한국인 인데 점차 국내 입양이 늘어간다니 다행스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