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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여, 나의 심정을 헤아려 주소서(시 5:1-7)
할렐루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최고 지도자인 대통령이 있기는 있으나 없는 그런 불안정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쩌면 머지 않는 날, 공석이 될 수 있는 그 자리에 앉기 위하여, 여러 사람들이 눈독을 들이고, 무진 애를 쓰고 있는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그 자리가 그렇게도 좋은 자리인가요? 감옥으로 가는 직행코스임에도 불구하고, 그 자리를 탐내는 것을 보면, 좋은 자리인 듯 하기는 합니다. 그에게 주어진 정당한 권력뿐만 아니라, 주어지지 않는 권력까지 넘보려다가 추락하는 모습들을 지금껏 보아왔습니다. 그 자리에 앉으면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주 잘못된 것입니다.
이방 민족들의 잦은 침략에 고통을 당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주 간절하게 왕을 원했습니다. 주변에 있는 이방 민족들이 이스라엘을 침략할 때마다, 이스라엘에는 왕이 없어서, 전쟁에서 패배하였다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께 그들을 위하여 전쟁에 나가 싸워줄 왕을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이스라엘을 침략하는 나라들에는 왕이 있음으로, 그들은 강한 힘을 가지게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은 미디안이 침략했을 때, 300명의 용사를 데리고 나가, 그들을 물리친 기드온에게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당신이 우리를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셨으니 당신과 당신의 아들과 당신의 손자가 우리를 다스리소서”(삿 8:22)
백성들의 요청을 받은 기드온은 “내가 너희를 다스리지 아니하겠고 나의 아들도 너희를 다스리지 아니할 것이요 여호와께서 너희를 다스리시리라”라고, 아주 단호하게 거절했습니다.
그후, 사무엘 선지자 때에도, 백성들은 그에게, “보소서 당신은 늙고 당신의 아들들은 당신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니 모든 나라와 같이 우리에게 왕을 세워 우리를 다스리게 하소서”(삼상 8:5)라고, 그들에게 왕을 세워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백성들이 왕을 세워 달라고 계속 요구하자, 하나님께서는 사무엘 선지자에게, “왕을 세우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기름 부어 세운 왕이 사울이었습니다. 사울이 왕이 된 후, 안으로는, 정치적인 안정을 가져오고, 경제적인 번영을 이루었지만, 밖으로는, 끊임없는 이방 민족의 침입을 받았는데, 이스라엘을 끈질기게 괴롭힌 대표적인 나라가 블레셋이었습니다. 블레셋의 골리앗이 등장했을 때, 사울왕을 비롯한 모든 병사들은 무서워 꽁꽁 숨어 있는 데, 다윗이 물맷돌 하나로 골리앗을 쓰러뜨림으로, 이스라엘의 영웅이 되었습니다. 블레셋을 물리치고, 승리의 개선가를 부르며,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때,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이 죽인 자는 만만이라”라는 노랫소리가 우렁차게 울러 퍼졌습니다. 그 소리를 들은 사울은, 질투심에 빠져, 다윗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사울은 크게 두 가지 실수를 했습니다. 하나는, 전쟁에 나가기 전,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려야 할 때, “기다리라”라는 사무엘의 말을 듣지 않고, 자기가 하나님께 제사를 드려 버렸습니다. 제사장이 할 일을 자기가 해 버렸습니다. 다른 하나는, 아말렉과 싸울 때, 하나님께서 아각왕을 비롯하여, 모든 백성들과 모든 가축들을 전멸시키라고 말씀하셨는데, 사울은 아말렉의 아각왕을 죽이지 않고 살려 주었고, 쓸만한 사람을 남겨 놓았고, 병들고 비실한 가축들은 죽였지만, 튼튼한 소와 양은 죽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했습니다.
다윗은 잘못한 일이 없을까요? 다윗은 왕이 된 후, 전쟁할 때마다, 늘 승리를 했습니다. 영토가 넓어지고, 그를 따르는 신하들도 많아졌습니다. 이제는 더 이상, 왕이 전쟁터에 직접 나가 싸우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다윗은 부하들만 전쟁터에 내보낸 뒤, 궁전 옥상에 올라가 한가롭게 거닐다가 밧세바를 보고, 범하고 맙니다. 그리고, 자신이 저지른 죄가 들통날까 봐, 그의 충성스러운 부하였던 우리아를 전쟁터로 내몰아 죽이고 맙니다. 한 나라의 왕으로서 절대 해서는 안될 불륜과 살인을 저질렀습니다.
여러분! 사울의 불순종과 다윗의 죄악 가운데 어느 것이 더 나쁘다고 생각하십니까? 사울의 불순종보다는 다윗의 불륜과 살인이라고 하는 죄악이 엄청 더 커 보입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하나님께서는 사울은 버리시고, 다윗은 버리시지 않았을까요?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바로 그것은 기도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울에게는 기도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을 찾지 않았습니다. 그가 악령이 들었을 때, 어떻게 했습니까? 악령을 쫓아내기 위하여 수금 잘 타는 사람을 찾아, 그의 곁에서 수금을 타게 했지만,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찾아 기도하지는 않았습니다.
“하나님, 악한 영이 나를 괴롭힙니다. 이기적인 질투심에 사로잡혀, 다윗을 죽이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주님의 능력의 손으로 나를 붙들어 주옵소서. 나를 치료하여 주옵소서. 악한 영을 물리쳐 주옵소서.”
사울은 하나님 앞에 나아가, 이런 기도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을 찾았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는 들판에서 양을 칠 때에도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왕이 되었을 때에도 기도했습니다. 평안할 때도 기도했고,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에도 기도했습니다. 밧세바를 범하고, 우리아를 죽인 후, 나단 선지자를 통하여, 책망을 들었을 때에도, 다윗은 밤새워 눈물로 기도함으로, 침상을 적시고, 요를 적셨습니다.
한 마디로, 다윗은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아들 압살롬이 다윗을 죽이려고 쿠데타를 일으켰을 때에도, 하루 종일 도망치다, 이름 모를 들판에 누워, 잠을 자고자 했을 때에도, 그는 평안히 눕고 자게도 해 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며, 기도했습니다. 원망하고 불평할 수밖에 없는 위급한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께 대한 원망과 불평이 아닌 감사의 기도가 나왔습니다. 화려한 궁궐은 아니지만, 주님이 계신 그곳이 바로 하나님 나라인 것을 깨닫고, 감사하며 기도했습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에도, 누워 자고 깨었으니, 하나님의 은혜라고, 감사기도를 올려 드렸습니다. 기도할 수 있을 때, 기도한 것이 아니라, 기도할 수 없는 위급한 상황 속에서도, 다윗은 항상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1절 말씀입니다.
“여호와여 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사 나의 심정을 헤아려 주소서”
“나의 심정을 헤아려 주소서”
다른 말로 하면, “나의 한숨 소리를 들어주소서”입니다.
“한숨 소리”는 기분 좋을 때, 좋은 일이 있을 때, 나오는 소리가 아닙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 나도 모르게 저절로 입에서 흘러나오는 소리가 한숨 소리입니다.
한 나라의 왕인 다윗의 입에서 그런 한숨 소리가 나올 수 있습니까?
지금 대통령의 권력도 어마어마하지만, 옛날 왕의 권력은 엄청났습니다. 온 세상이 왕의 소유였습니다. 왕의 말 한마디에, 모든 사람들의 생사가 달려 있습니다. 그렇게 막강한 권력을 가진 다윗의 입에서, 한숨 소리가 흘러나왔습니다.
다윗이 다른 사람들과 다른 점은 그 한숨 소리를 하나님 앞에서 했다는 것입니다.
정치, 경제, 외교, 전쟁, 재판, 선과 악 등 다양한 문제들이, 다윗 주변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런 문제들을 누구랑 의논하고 해결할 수 있습니까? 다윗은 왕입니다. 그의 곁에는 나단 선지자, 갓 선지자가 있었고, 제사장들이 있습니다. 지혜로운 신하들이 있었고, 목숨 걸고 충성하는 부하들이 있었습니다. “한숨 소리”가 나오는 문제들은 누구랑 의논해야 합니까? 다윗은 한숨 소리가 나오는 문제들을 누구에게로 가져갔습니까? 다윗은 그 문제들을 하나님에게로 가져갔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자기 자신의 문제뿐만 아니라, 국가적인 문제, 사회적인 문제들도 하나님께 가지고 나와 기도했습니다.
“여호와여 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사 나의 심정을 헤아려 주소서. 나의 한숨 소리를 들어 주소서.”
“나의 왕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소서 내가 주께 기도하나이다”(2절)
“도와 달라고 외치는 나의 부르짖음을 들어주소서”
좋은 일이 있습니까? 좋은 일은 계속되어져야 합니다. 좋은 일들이 계속 생기도록,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나쁜 일이 있습니까? 그 나쁜 일이 멈추어야 합니다. 나쁜 일이 계속된다면, 안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쁜 일이 빨리 멈추도록,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너무 좋은 일이 있어, 기쁨의 탄성이 터질 때도 하나님께 기도해야 하고, 너무 나쁜 일이 있어, 한숨 소리가 저절로 흘러 나올 때에도,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지금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기도해야 할 때임을 알 수 있습니다. 정치적으로 너무나 혼란스럽습니다. 대형마트인 홈플러스가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하는 등, 경제적인 어려움들이 여기저기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혼란스럽고, 어수선하고, 불안정한 지금, 우리는 우리 가정과 자녀들과 교회를 지키시고 인도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대한민국이 정치적으로 평안하고, 경제적으로 안정되고, 성장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막 11:2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무엇이든지 기도할 수 있습니다. 큰 소리로 부르짖어 기도할 수도 있고, 한숨 소리를 내뱉을 수 있습니다. 작은 소리로 중얼거릴 수도 있고, 입만 벙긋할 수도 있습니다. 너무 힘이 없어서, 단지, “주여!”라는 말 한마디도 겨우 나올 때도 있습니다.
“내 마음 아시지요. 내 심정 아시지요.”
“주님,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을 아시지요. 분열과 혼란이 가중되고 있습니다. 어찌해야 합니까? 질서와 평안이 가득한 나라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답답한 마음에, 아무 말도 못 하고, 한숨 소리만이 나올 때도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누군가를 찾아가서, 한숨을 푹푹 쉰다면, 아주 오랫동안 알아 왔던 사람이라 할지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싫어할 것입니다. 아침부터 찾아가서 한숨 소리를 내게 되면, “이 사람이 왜 이러나”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람 앞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한숨 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합니다.
다윗은 하나님 앞에 나와 “나의 심정을 헤아려 달라”라고 기도했습니다. “나의 한숨 소리를 들어 달라”라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기도해야 할 문제가 있습니까? 문제가 있다면,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문제가 있고, 장애물이 우리 앞을 막고 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이 최후의 승리자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 인생은 아직 미완성입니다. 진행중입니다. 아직 끝나지 않는 우리의 인생을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서, 우리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 기도하는 일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모든 염려와 걱정과 근심거리를 떨쳐버리고, 날마다 기쁨과 즐거움과 평안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절 말씀입니다.
“여호와여 아침에 주께서 나의 소리를 들으시리니 아침에 내가 주께 기도하고 바라리이다”
새번역을 보면, “주님, 새벽에 드리는 나의 기도를 들어 주십시오. 새벽에 내가 주님께 나의 사정을 아뢰고 주님의 뜻을 기다리겠습니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다윗은 언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까? 아침에 기도했습니다.
“아침에 내가 주께 기도하고 바라리이다”
시편 88:13절을 보면, 다윗은 “여호와여 오직 내가 주께 부르짖었사오니 아침에 나의 기도가 주의 앞에 이르리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여기, “아침에”라는 말은 “아침마다”라는 뜻이고, “바라리이다”라는 말은 “응답을 기다립니다”라는 뜻입니다.
“여호와여 아침마다 주께서 내 소리를 들어주소서. 매일 아침 나의 소원을 주께 아뢰고, 주님의 응답을 조용히 기다립니다”
다윗은 매일 아침마다, 하나님 앞에 나와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기도만 한 것이 아니라, 조용히, 하나님의 말씀을 기다렸습니다.
“매일 아침 나의 소원을 주께 아뢰고 주님의 응답을 조용히 기다립니다”
하나님께 우리의 기도 제목만 열심히 나열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부르짖는 시간이 있다고 하면, 조용히 기다리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의 기도 제목을 하나님께 아뢰고, 하나님의 뜻을 깨달을 수 있도록, 매일 아침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을 들을 수 있도록, 조용히 주님의 응답을 기다려야 합니다.
매일 아침 하루를 시작하기 전, 어디에 있든지, 하나님께 우리의 사정을 아뢰고, 우리에게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그리할 때, 하루하루를 승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응답하심이 있을 때, 승리할 수 있습니다.
다윗은 한 나라의 왕이지만, 매일 아침, 하나님 앞에 나와 기도했습니다. 나의 심정을 헤아려 달라고, 나의 한숨 소리를 들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조용히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렸습니다. 그때 다윗의 마음속에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4-6절 말씀입니다.
“주는 죄악을 기뻐하는 신이 아니시니 악이 주와 함께 머물지 못하며 오만한 자들이 주의 목전에 서지 못하리이다 주는 모든 행악자를 미워하시며 거짓말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시리이다 여호와께서는 피 흘리기를 즐기는 자와 속이는 자를 싫어하시나이다”
“여호와께서는 피 흘리기를 즐기는 자와 속이는 자를 싫어하시나이다”
누가 피를 흘렸습니까? 누가 하나님을 속이고, 누가 사람을 속였습니까? 바로 다윗입니다. 다윗이 하나님을 속이고, 사람을 속이고, 피를 흘렸습니다. 하나님은 바로 그런 사람을 싫어하십니다. 미워하십니다. 다윗은 그것을 깨달았습니다. 지금껏 살아온 자신의 행실로는 결코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 나아올 수 없고, 기도할 수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의인의 길은 하나님께서 인정하시지만, 악인의 길은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악인은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은 존재일 뿐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리면서, 자신의 지나온 과거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주님 앞에 설 수 없는 죄인이요, 주님께 기도할 수 없는 악인이요, 오만한 자였음을 깨달았습니다. 다윗은 지금껏 자신이 하나님이 미워하시고, 싫어하시는 그런 삶을 살아왔음을 깨달았습니다.
주님 앞에 서게 되면, 우리가 어떤 사람인가를 깨닫게 됩니다. 주님 앞에 설 수 없고, 주님께 기도할 수 없는 존재임을 알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주님 앞에 설 수 있고, 주님께 기도할 수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7절 말씀입니다.
“오직 나는 주의 풍성한 사랑을 힘입어 주의 집에 들어가 주를 경외함으로 성전을 향하여 예배하리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집에 나올 수 있고,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의 공로나 선한 행실 때문입니까? 믿음의 경력이나, 헌신과 봉사와 순종 때문입니까? 그것이 조건이 된다면, 우리는 오만할 수밖에 없습니다. 교만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다윗은 고백합니다.
“나는 오직 주님의 크신 사랑에 힘입어 주님의 집 안으로 들어갈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설 수 있는 것은 바로 주님의 크신 사랑 때문입니다. 십자가의 보혈 때문입니다.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도 다 기록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올 수 있었습니다.
다윗은 매일 아침마다 주님 앞에 나와 기도할 수 있고, 찬양할 수 있고, 예배드릴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때문인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와 찬양하고, 예배드릴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풍성한 사랑과 은혜 때문입니다.
여러분! 오직 주의 풍성한 사랑을 힘입어, 주의 집에 나와, 주를 경외함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며, 기도함으로, 하나님께서 주시고자 예비해 놓으신 복을 풍성하게 받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고,
매일 아침마다, 매일 저녁마다 주님께 기도하기를 원하오니
주의 은혜와 사랑과 복을 풍성하게 내려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