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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스케치-가을 '깨가 서 말이면 땀이 서 말'이라더니… *조의환·사진가 *편집=뉴스큐레이션팀 <조선일보> 2015년 10월 24일
산과 들, 바다를 넘나들며 제주의 풍경과 풍습을 계절과 시간에 따라 사진에 담아낸 '조의환의 제주스케치'. 제주에서만 볼 수 있는 생경한 '가을'의 모습을 함께 감상해보세요.
'깨가 서 말이면 땀이 서 말'이라더니… 그야말로 땀으로 짓는 참깨 농사 매해 추석 고향 집을 떠날 때면 어머니는 신문지로 주둥이를 막은 소주병 하나를 주셨다. '어머니표 참기름'이다. 잊을 수 없는 고향의 맛이요, 자꾸만 떠오르는 어머니 손맛이다. 이 고소한 참기름은 참깨로 만든다. 이 참깨 농사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푹푹 찌는 한여름에 수확해야 하는데, 일일이 낫으로 베어야 한다. 베어낸 깻단은 밭 한가운데나 도로변에 쌓아 보름 정도 말려야 한다. 오락가락하는 비에 비닐을 덮었다 걷었다 하는 일이 성가시기 짝이 없다.
시퍼런 깻단이 말라 갈색으로 변하면 다시 고생 시작. 나무 막대로 살살 두드려 깍지 속에 든 깨를 털어내고, 체로 쳐 검불과 불순물을 거르고, 마른 잎과 줄기 등 부스러기는 바람에 날려 없애야 한다. '깨가 서 말이면 땀이 서 말'이라더니, 그야말로 땀으로 짓는 농사다. 지난달 중순 제주시 한경면의 한 밭에 수확한 깻단이 가지런히 쌓여 있다. 비바람을 막기 위해 비닐을 덮고, 돌 담은 주머니를 올려뒀다. 그동안 흘렸을 땀의 무게를 생각하니, 그 어떤 미술 작품보다 아름답게 보인다.
걸으면 힐링이 됩니다… 이 가을, 신령스러운 '사려니 숲길'로 오세요
제주어로 '살' '솔'은 신령스러움을 의미한다. '솔안이' '살안이'라고 불리는 사려니 숲길은 신성한 숲길이라는 뜻이다. 제주시 봉개동 절물오름 남쪽 비자림로에서 서귀포시 남원읍 한남리 사려니 오름까지 이어지는 약 15㎞ 난대림 숲길로 해발 500~600m의 완만하고 평탄한 길이다. 올레길·한라산 등반과 함께 숲길 산책과 힐링 코스로 관광객은 물론 제주도민들에게도 사랑받는 명소이자 비경(祕境)이다. 혹 이 가을에 제주 여행을 계획하신 분이 있다면, 아침 일찍 서둘러 동트는 시간에 맞춰 탐방하실 것을 권한다. 숲을 헤집고 쏟아지는 아침 햇살과 산새 소리, 인적 없는 숲길을 걷노라면 절로 치유될 뿐 아니라 설친 새벽잠을 보상받고도 남는다. 단풍 명산처럼 화려하진 않지만 빨간 얼굴을 수줍게 내미는 제주 가을 단풍. 그 소박함이 덤으로 누리기엔 너무 아름답다. 2014년 10월 26일 오전 7시 20분 촬영.
'국민생선' 고등어 살 올랐네… 제철 맞아 바쁜 한림港 풍경 '국민 생선'이라고 불릴 만큼 누구나 즐겨 먹는 흔한 생선 고등어. 우리나라에서 연간 20만t쯤 먹어치운다. 국내산 대부분은 제주 해역에서 잡힌다. 7%쯤이 노르웨이산이다. 추석 지나고 서늘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9월부터 12월까지가 살이 잔뜩 오른 고등어를 잡기에 딱 좋은 시기다. 본선 1척, 등선(燈船) 2척, 운반선 3척으로 구성된 '선망선단'이 고등어를 잡는다. 석양 무렵 출어(出漁)해서 밤새 조업하고 해가 뜨면 귀항한다. 잡은 고등어는 운반선 어창(漁艙) 얼음에 재워 한림항 위판장으로 옮긴다. 그다음 분류 작업은 제주도의 억척 할망과 아주망들 몫이다. 밤새워 쪼그려 앉아 한 마리씩 일일이 크기별로 구분해 상자에 담는다. 시급에 목욕비를 더 얹어 줄 정도로 손발 시리고 허리가 끊어지는 일이다. 분류된 고등어는 냉동차에 실려 전국 수산물도매시장으로 밤새 달려간다. 제주도에서 밤에 잡힌 고등어를 다음 날이면 수산시장에서 만날 수 있다. 좋은 세상이다. 2014년 9월 16일 한림항에서 촬영했다.
4개월 뒤면 어른 머리통보다 크게 자라는 양배추… 제주 할망들의 '땀' 담겼지요 서늘한 바람이 불기 시작한 요즘 청정 제주의 대표 작물인 월동 채소 무, 배추, 당근, 양배추, 콜라비, 쪽파, 마늘 등이 밭마다 가지런히 심겨 있다. 무나 당근은 씨앗을 직접 밭에 뿌리지만 대부분의 월동 채소는 육묘장에서 키운 모종을 한 포기씩 밭에 옮겨 심는다. 이 힘든 농사일도 제주 할망들 몫이다. 트랙터로 밭을 갈아 이랑을 만들면 달걀판처럼 생긴 트레이에 배양토로 키운 어린 모종을 한 포기씩 일정한 간격으로 심는다. 월동 채소는 작물마다 다르지만 대략 8월 중순부터 9월 말까지 심어서 12월부터 출하를 시작한다. 토질이 좋은 제주 서남쪽은 양배추와 콜라비, 브로콜리, 마늘을 주로 심고, 화산토 지역인 동부는 무와 당근을 주로 재배한다. 흙 반 자갈 반인 밭에 옮겨 심은 여린 양배추 모종. 이런 환경에서 어찌 자랄까 싶지만 4개월 남짓이면 어른 머리통보다 크게 자란다. 속이 단단하게 들어찬 양배추 한 통의 무게가 4㎏이 넘어 농사의 경이로움을 다시 한 번 깨닫게 한다. 사진은 2014년 9월 20일 한림읍에서 촬영한 막 모종을 끝낸 양배추 밭이다.
단풍이 아닙니다, 말라죽은 소나무입니다 우리나라 최고령 소나무가 강원도가 아닌 제주도에 있다고 하면 믿을까. 수령 500~600년 곰솔(흑송) 여덟 그루가 제주시 아라동 산천단(山川壇)에 있다. 천연기념물 160호. 난대림 지대인 제주도지만 의외로 소나무가 많다. 1960년대 산림녹화, 방풍(防風)·방사림(防沙林) 조성 사업에 겹쳐 자생하던 곰솔 손자 나무들이 자연적으로 퍼진 까닭이다. 1884년 추사가 제주 유배 중 그린 세한도(歲寒圖)에도 큰 소나무가 등장한다. 긴 세월 제주를 지켜 온 곰솔이 요즘 속절없이 말라 죽어간다. '소나무 에이즈'로 불리는 재선충병에 걸렸기 때문이다. 지난해에만 제주도 전체 소나무의 39%(54만5000여 그루)가 이 병에 걸려 잘려 나갔다. 사진은 제주도 서귀포시 안덕면 대정향교 뒤 '단산'의 소나무가 재선충병을 앓고 빨갛게 말라 있는 모습. 2014년 10월 14일 촬영했다.
色이 좋은 제주 옹기… 물·술부터 곡식·씨앗까지 담는답니다 색이 유난히도 좋은 제주 옹기 '노랑 그릇'은 유약을 칠하지 않고 굽는다. 화산재가 섞인 제주 점토로 만들어 1200도 내외에서 구워내면 다른 지방 옹기에는 없는 아름다운 갈색과 붉은색이 난다. 주로 물이나 술·간장·된장과 곡식·씨앗·소금을 보관하는 데 사용했다. 저온에서 구워낸 회색의 '검은 그릇'은 곡식을 담거나 시루로 쓰인다. 옹기는 오랜 세월 동안 우리네 식생활 용기의 중심을 차지해 왔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니 김장철이 됐다. 제주도는 겨울철에도 배추가 밭에 자라 김장을 많이 하지 않는다. 구덩이를 파 독을 묻는 대신 서늘한 데 두었다고 한다. 갓 버무린 김장김치를 뚝 떼어서 돌돌 말아 입에 넣어 주시던 어머니 손맛이 그립다. 김치냉장고가 좋다고 하지만 알싸한 김장 김치의 참맛은 숨 쉬는 그릇, 옹기에라야 제격이 아닐까 싶다. 사진은 한경면 조수2리 제주옹기마을 김천길 장인이 만든 허벅.
가지런한 장독대, 감물 들인 광목천… 그리고 한가로이 낮잠 자는 犬公 열병식 장면처럼 가지런히 늘어선 장독대 너머로 널려 있는 감물 들인 광목천과 그 아래 한가로이 오수에 빠진 견공. 떫은 제주 풋감 물로 염색한 전통 갈옷은 타닌 성분 때문에 방부 효과가 좋아 옷감이 잘 상하지 않을뿐더러 풀 먹인 옷처럼 잘 달라붙지 않아 후덥지근한 제주 날씨에 작업복으로 맞춤이다. 빛깔도 제주 흙색과 비슷해 더러워도 잘 표가 나지 않는 데다 바람도 잘 통하니 최고다. 요즘은 작업복을 넘어 의류, 침구, 양말 등 패션 소품, 애견용 패션, 인형, 벽지까지 제주의 대표적 문화 상품으로 발전하고 있다. 사진은 장과 효소가 익어가는 장독이 가득한 성읍민속마을의 한 전통음식점 마당에 안주인이 염색해 늘어놓은 갈천. 2014년 11월 23일 촬영.
▶조의환은 1976년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응용미술학과를 졸업하고 홍익대학교 산업미술대학원에서 사진디자인을, 한양대학교 언론정보대학원에서 신문·잡지·출판을 전공하고 석사학위를 받았다. 1998년 조선일보 가로짜기 리디자인과 전용서체 개발과 조선일보가 주최한 대형 전시의 기획에 참여했다. 저서로는 〈뉴욕타임즈, 가디언, 조선일보의 편집디자인〉(미디어연구소 2004년), 〈FLUX〉(사진예술 2011년)이 있다. 현재는 제주도와 서울을 오가며 사진작업과 전시, 출판기획 일을 하고 있다. 두 번째 개인전에서 조의환 작가는 제주도 해변에 떠 밀려온 나무 쓰레기들을 수집해 절제된 기법으로 촬영한 사진을 보여줬다. 거친 바다에서 오랫동안 시달리다 못해 본래 형태는 다 사라지고 동물의 뼈조각처럼 변해버린 나무토막들이다. 자연이 빚은 조각품처럼 보인다. 작가는 이들의 본질과 속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어 과장된 크기로 보여 줌으로써 형체에 대한 새로운 상상을 하도록 유도한다. 오랫동안 그래픽디자이너로 활동해 온 작가의 기초적 조형에 대한 관찰력이 돋보인다. 조의환 작가는 제주출신 고영훈 화백과 홍대미대 동문이며 같은 시기에 대학을 다녔다. 아마 서로 잘 아는 사이인지도 모르겠다. 고영훈 화백은 1974년부터 90년대까지 25년 동안 돌멩이를 극세밀화 기법으로 화선지에 옮기는 작업을 했다. 이처럼 오랜 시간동안 우리 삶 주변의 사물들을 리얼하게 그렸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작품과 사물간의 틈새를 허물려는 일련의 시도였다고 고화백은 말한 적이 있다. 고화백은 돌멩이를 통해 현실과 생활의 간극을 그려내려 했다는 것이다. 고화백의 작품 속에 돌멩이는 '오브제(objet)'로서 등장하는 것이다. 조의환 작가의 나무토막 사진들은 그러한 고영훈 화백의 돌멩이 그림을 생각나게 한다. 2012년 12월에 가졌던 조의환 작가의 제2회 개인전에서 발표했던 나무조각 사진 몇 장을 올려본다.
[조의환의 작업노트] 멀고도 긴 시간여행 지금은 한 장도 남아있지 않지만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수채화를 그렸다. 학교 주변의 논밭과 들판, 역전 광장과 시가지, 철교 아래 방천으로 사생을 다녔다. 1972년 미술대학에 입학한 나는 새로운 사생의 재미에 빠졌다. 디자인 전문 서적을 구하기 어려웠던 때라 명동 중국대사관 부근 헌책방을 드나들며 그림 좋은 외국 잡지책을 뒤적이고 틈틈이 사 모았다. 내 눈을 사로잡은 잡지가 있었다. ‘Life’, ‘National Geography’, ‘Photography’, ‘Playboy’같은 잡지다. 베트남전 다큐멘터리, 늘씬한 팔등신 미녀, 세계 곳곳의 낯선 풍광은 자연스럽게 사진이라는 새로운 사생의 세계로 나를 몰아넣었다.
그 시절 잡지에서 앤젤 아담스, 모흘리 나기, 어빙 펜, 황규태와 같은 동경의 대상이자 스승을 지면에서 만났다. 친구의 Canon FTb나 Asahi Pantax를 빌려서 과제 촬영도 하고 간간이 사생을 나다녔다 1974년에 생애 첫 카메라 트윈렌즈 리플렉스 Mamiya C330을 장만했다. 이 때 학과 선배인 배병우를 만나 함께 화실 겸 암실을 꾸며놓고 독학으로 사진 공부를 계속했다. 1976년 ‘뿌리깊은나무’라는 잡지가 창간되었고 막연하기만 했던 잡지 디자이너의 꿈이 실현 가능하겠다는 희망을 가진다.
1981년 광고대행사에 있던 나를 ‘마당’이라는 잡지로 불러낸 사람은 선배 안상수다. ‘마당’을 통해 수많은 훌륭한 사진과 사진가를 만나고 간간이 사진기자 노릇을 하며 잡지 디자인에 빠져갔다. 1984년 마당잡지에서 멋이라는 패션 잡지를 창간하며 마당 사진 팀의 정정현, 윤평구를 비롯해 객원으로 배병우, 김장섭, 최영돈을 모셔 남산 자락에 스튜디오를 꾸미고 재미에 빠졌다. 이즈음 모교 대학원에 사진디자인 전공이 생겨 1기로 입학했지만 별 재미가 없어 수료에 그쳤다. 1984년 동아일보를 거쳐 조선일보에 왔고, 이런 저런 잡지를 창간도 하고 디자인을 하다 1998년부터는 신문디자인을 하게 되었다. 평생 편집디자인을 해온 나에게 여전히 사진은 다루기 어려운 대상이자 다 풀지 못한 어려운 수학문제 같은 존재다.
신문사를 그만두면서 새로운 일을 맡아 모두가 부러워하는 제주로 가서 1년여 머물며 카메라를 한 보따리 챙겨 갔지만 도무지 엄두가 나지 않아 한 번도 가방을 열지 못했다. 본격적인 작업이라는 압박과 새로운 것이어야 한다는 자격지심 때문이다. 현대판 유배생활의 외로움을 벗어나고자 제주의 바다와 오름을 1년 넘게 서성대고 사색하다 지금의 작업을 만났다.
‘flux’는 ‘시간‘에 대한 나의 새로운 사생이자 해석이다. 대지에 굳건하게 뿌리를 내리고 살던 나무가 베어지고 뽑혀나가 강으로 바다로 휩쓸려 나간다. 대양을 떠돌며 파도에 쓸리기를 몇 겁이나 했을까. 탈피되어 창백해진 몸뚱이는 해류에 몸을 실어 낯선 해안에 표류한다. 쓰레기라는 새로운 현세가 이들을 기다리고 있다. 자연에서 꽃과 열매, 그늘로 아름다움과 휴식을 제공하다 마침내는 베어져 재목이 되어 보금자리로 가구와 도구로 아낌없이 모든 것을 바친 나무가 아니었던가. 해변에 상륙한 나무 쓰레기 가운데 몇몇이 내 사생의 신성한 재물이 되었다. 시공을 초월해 삶을 반복한다는 윤회(輪廻) 사상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그들에게는 새로운 생을 맞을 충분한 자격이 있다. 나의 사생으로 이들에게 새로운 생명이 생겼다면 그만한 보시가 없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