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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은 뭍같이 까딱 않는데
이른바 '드라마뮤비' 제작이 유행이던 2002년경, 눈 내린 풍경을 촬영하기 위해 소금과 인공눈을 뿌리는 등 당시 제작비만 3억 8,000만 원이 소요된 마치 한 편의 시대극 같은 뮤직비디오가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1974년 육영수 여사 시해 사건이 시대적 배경으로 등장하고, 추운 겨울의 무거운 분위기가 지속되는 가운데 도시 철거민의 아들과 대통령 경호실장 딸의 순애보 같은, 그러나 비극적인 첫사랑 이야기가 흑백 화면에 펼쳐진다. 그들의 사연이 무려 8분에 가까운 러닝타임으로 흐르는 동안, 처연하고 가슴 아픈 리듬앤블루스 풍의 노래가 우리의 귓가를 쉼 없이 울린다. 지영선의 <가슴앓이>는 그렇게 세간에 알려졌다.
밤별들이 내려와 창문 틈에 머물고
너의 맘이 다가와 따뜻하게 나를 안으면
예전부터 내 곁에 있는 듯한 네 모습에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네게 주고 싶었는데
골목길을 돌아서 뛰어가는 네 그림자
동그랗게 내버려진 나의 사랑이여
아- 어쩌란 말이냐 흩어진 이 마음을
아- 어쩌란 말이냐 이 아픈 가슴을
그 큰 두 눈에 하나 가득 눈물 고이면
세상 모든 슬픔이 내 가슴에 와 닿고
네가 웃는 그 모습에 세상 기쁨 담길 때
내 가슴에 환한 빛이 따뜻하게 비췄는데
안녕하며 돌아서 뛰어가는 네 뒷모습
동그랗게 내버려진 나의 사랑이여
아- 어쩌란 말이냐 흩어진 이 마음을
아- 어쩌란 말이냐 이 아픈 가슴을
- 강영철 작사·작곡, <가슴앓이>
이 정도면 한 편의 시가 되기에 충분하다. 특히 골목길을 돌아서 뛰어가는 네 그림자"나 "안녕하며 돌아서 뛰어가는 네 뒷모습 같은 장면은 비록 전형적이고 통속적이긴 하되 여전히 순수하고 애틋한 정조를 불러일으킨다. 원수 같은 이별이나 지나치게 비극적인 이별보다 이런 애틋한 헤어짐이 더 가슴을 아프게 하는 법이다. 그런가 하면 "동그랗게 내버려진 나의 사랑이여"같은 표현은 얼마나 뛰어난 시적 성취인가. '동그랗게 내버려진 다니 무슨 뜻일까? 비슷한 말로 '동그마니'를 생각하면 답이 나온다. '외따로 오뚝하게 내버려진 상태, 즉 둘이 있다 갑자기 혼자만, 그것도 속된 말로 뻘쭘하게 남았을 때 그 상태를 이른 말인 것. 골목길 이별 장면에 혼자 남은 사람의 모습과 그 심정을 떠올려 보라. 시적 화자의 심리를 이렇게 형상화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여하튼 사정이 이러하니 시적 화자는 이제 그녀를 뒤따라갈 수도, 혼자 삭일 수도 없는 것. 이 시의 화자는 그녀의 이별 선언을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할 정도의 무슨 사연이 있는 듯한데, 그러자니 비난도 저주도 욕설도 할 수 없고, 다만 만남처럼 헤어짐도 운명으로 받아들여야 할 상태인 것. 그러나 그럴수록 가슴은 아파 오고…………… 그래서 답답한 마음에 홀로 외쳐 보는 것이다. 아, 어쩌란 말이냐. 조각조각 흐트러진 이 가슴, 이 아픈 가슴을.
그렇게 본다면 사실 뮤직비디오의 내용이나 분위기는 이 시의 그것과 사뭇 다르다. 솔직히 말해 이 뮤직비디오는 내용 과잉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과잉은 오히려 사랑의 진실을 사치하게 보이도록 할 뿐이다. 아니, 사랑은 그 자체로 감정의 과잉이다. 그래서 사랑은 극적 과잉이 없어도 당사자에게는 이미 그 자체로 운명적이기에 충분히 극적인 것이다. 이 뮤직비디오에서는 다만, 권상우와 함께 열연했던 당시만 해도 낯선 아역 신인에 불과했던 문근영, 그녀의 “그 큰 눈에 하나 가득 눈물 고이던 모습만이 가사의 느낌을 여실히 전해 주었을 따름이다.
개인적인 취향의 문제이긴 하나, 마찬가지로 그런 점에서 나는 가슴을 후비고 쥐어짜는 듯한 지영선의 리듬앤블루스 풍 편곡보다 좀 더 순수하고 맑게 들리는 포크송 같은 이 노래의 원곡을 더 좋아하는 편이다. 1983년 이 노래를 작사·작곡한 강영철과 메인보컬을 맡은 양하영으로 이루어진 혼성 듀엣 '한마음', 그리고 이후 솔로로 독립한 양하영이 다시 부른 <가슴앓이>에는 별 과잉이 없다. 어둡지만도 않고 밝지만도 않다. 부를 수만 있다면 듣는 내가 오히려 한 옥타브 더 올려 가슴 터지게 후렴구를 불러 보고 싶은데 정작 가수는 절규에까지 이르지는 않는 수위에서 어쩌란 말이나는 말만 반복한다. 그런데 그 반복이 묘한 호소력을 갖는다. 그래, 어쩌란 말이냐. 어쩌란 말이냐. 이걸 너무 소리 높여 반복하면 악쓰는 꼴만 되고 만다. 그건 가슴앓이가 아니다.
가슴앓이를 겪어 보았는가. 십대든, 이십대든, 아니 늙어서도 운명 같은 만남과 헤어짐의 상처는 정녕 가슴을 앓게 만든다. 그것은 결코 비유가 아니다. 정말로 가슴 부위를 가격당한 듯 가슴이 아프다. 진짜로 목구멍부터 명치 부위가 때로는 뭔가로 가득찬 듯 답답하게 때로는 텅 빈 것처럼 허탄하다. 그럴 때면 절로 한숨이 터진다. 가슴은 산산이 흐트러진다. 아, 어쩌란 말이냐.
여기에는 천하장사도 대책이 없다. 사랑 앞에서, 운명 앞에서,우리는 속수무책이다. 어쩔 수가 없는 것이다. 아니, 어쩔 수 없는 사랑과 어쩔 수 없는 운명 앞에서는 정말 어쩔 수가 없는 것이다. 더구나 만일 그 사랑과 운명이 세상이 허락지 않는 거라면 그 가슴앓이는 더할 수밖에 없고, 그때는 극적 과잉마저도 과잉이라 하지 못할 것이다. 시인이라고 이에 다르랴. 더하면 더했지 모자라지는 않을 그들의 사랑 노래를, 한 시인의 경우를 통해 슬쩍 엿들어 보자.
생명파의 시인으로 알려진 청마 유치환柳致環, 1908~1967. 여성적이고 감상적인 분위기에 젖어 있던 당시의 우리 시단과 확연히 차별되는 성격의 작품을 남긴 시인. 하지만 그의 시를 지나치게 남성적, 관념적, 의지적인 것으로 못 박는 것만은 사양해야 할 일이다. 가령, 다음 작품 <그리움 1>에 등장하는 '깃발'을 그의 대표작 <깃발>과 비교하며 읽어 보라.
오늘은 바람이 불고
나의 마음은 울고 있다.
일찍이 너와 거닐고 바라보던 그 하늘 아래 거리언마는
아무리 찾으려도 없는 얼굴이여.
바람 센 오늘은 더욱 너 그리워
긴 종일 헛되이 나의 마음은
공중의 깃발처럼 울고만 있나니
오오 너는 어디메 꽃같이 숨었느뇨,
- 유치환, <그리움 1>
여기서 '깃발'은 의지의 화신이라기보다 허무하고 가련한 자아의 표상일 따름이다. 이런 작품을 굳이 관념적으로 읽어야 할 필요가 있을까? '너'를 굳이 이상향으로 보아야 할까? '너'는 역시이상적인 연인으로 봄이 적절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이 시는 예전에 늘 같이 거닐던 곳에서 '너'를 찾아보지만 만날 길 없어 안타까워하는 연애시로 보는 편이 더 어울리지 않을까?
내 죽으면 한 개 바위가 되리라
아예 애련에 물들지 않고
희노에 움직이지 않고
비와 바람에 깎이는 대로
억년 비정의 함묵에
안으로 안으로만 채찍질 하여
드디어 생명도 망각하고
흐르는 구름
머언 원뢰遠畵
꿈 꾸어도 노래하지 않고
두 쪽으로 깨뜨려져도
소리 하지 않는 바위가 되리라
- 유치환, <바위〉
이 작품은 확실히 의지적이다. 인생의 희로애락에 흔들리지않으며, 비바람 같은 시련조차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마치 도를 닦듯 그저 침묵하고 수련하여 심지어 생명까지 초월하는 존재, 시인은 그런 바위 같은 존재가 되고자 했던 것이다. 그런즉자신의 바람대로라면 그는 애련 곧 사랑의 아픔 따위에는 끽 소리조차 하지 않아야 한다. 그런데 웬걸, 그의 다음 시 <그리움 2>를 보라.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임은 물같이 까딱 않는데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날 어쩌란 말이냐
- 유치환, <그리움 2>
혹시 앞서 인용한 <가슴앓이>의 노래 소리가 들려오지 않는가? 유치환 시인의 가슴앓이, 그 답답한 마음이 느껴지지 않는가? 강인한 의지의 소유자, 애련 따위는 의지로 극복하고자 했던시인은 어디 가고, 이토록 짧은 시 안에 “어쩌란 말이냐”만 반복하면서 절규하고 또 한탄한단 말인가.
이 시를 읽는 데도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 여기서 '임’은 바위다. 바닷가의 갯바위건만 바위 정도가 아니라 육지처럼, 말 그대로 뭍같이 파도 따위에 까딱도 않는 존재 자신의 시 <바위>에서 그토록 바라던 경지가 이것 아니던가. <바위>에서라면 이 <그리움 2>의 바위는 화자인 '내'가 흠모하고 따라야 할 정신과 영혼의 스승이리라. 하지만 그가 변했나? '나'는 그를 움직이고 싶어한다. 그가 흔들리길 바라고 있다. 그러면서 파도도 임을 못 움직이니 난들 어찌하겠느냐는 자탄만 내뱉고 있는 것이다.
둘째, 여기서도 역시 '바위'는 화자 자신이다. 그리고 임은 나와 거리를 두고 있는 또 다른 바위거나, 아무튼 뭍에 가까운 쪽 어디에 서 있는 존재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파도는 나를 자꾸 밀어붙이며 그에게 가라고 한다. 마치 짝사랑하는 상대에게 친구들이 고백을 부추기듯이 말이다. 한데 임은 까딱도 않으니 나는 도리어 파도가 원망스럽다. 어쩌란 말이냐 이런들 임은 꿈쩍도 않는데 왜 자꾸 나를 흔드느냐 도대체 파도야 날더러 어쩌란 말이냐. 어느 쪽으로 보든 연애시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도대체 시인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청마는 통영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그는 훗날 극작가로 성공한 형 유치진과 더불어 일본으로 건너가 도오야마 중학교를 다니다가 한의원을 하던 부친의 사업이 기울자 귀국해 동래고등보통학교에 편입한다. 1928년 연희전문학교를 중퇴한 그는 진명유치원 보모로 있던 권재순과 결혼한다. 어릴 적 주일학교 시절부터 만나 매일같이 신문을 보내며 오빠, 누이로 지내던 사이. 당시로서는 보기 드문 신식 결혼식을 올렸다고 한다. 그 결혼식에서 꽃을 들고 섰던 어린아이가 바로 훗날 시인으로 성장한 김춘수였다. 이만하면 유복한 결혼 생활이 아니었을까. 그런데도 청마의 여성 편력은 간단치가 않았던 성싶다. 그러던 그가 운명의 여인을 만나게 되면서 순정은 물결같이 바람에 나부끼고 애수는 백로처럼 날개를 펴며 애련에 물들어 버리는 사태가 전개되고 만다. 그녀가 바로 시조시인 정운 이영도李道, 1916~1976다.
스물한 살 때 결혼하여 대구에 살았던 정운, 그녀는 남편이 폐결핵을 앓자 약국을 경영하던 언니가 살고 있는 통영으로 옮겨오게 된다. 하지만 해방 닷새를 앞두고 남편은 결국 딸자식 하나를 남겨둔 채 세상을 떠난다.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정운은 이듬해인 1946년 10월 통영여자중학교의 강사로 나서게 된다.
그곳에는 해방 직전 만주에서 고향으로 돌아와 1945년 10월부터 교편을 잡고 있던 청마가 있었다. 이리하여 시인 남녀가 한학교에서 만나게 된 것이다. 게다가 정운의 오라버니는 바로 대구에서 청마와 교유한 바 있는 시조시인 이호우李鎬雨, 1912~1970가 아니던가. 남매 시조시인으로 이미 이름이 알려진 정운과 형제문인 청마의 기연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그뿐 아니라 통영에는 당대의 아동문학가 향파이주홍李周洪, 1906~1987과 소설가 최해군崔海君, 1926∼도 있었다. 최해군에 따르면 그들 넷은 신선대 아래 용당동 바닷가를 거닐다가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산비탈의 옛 주막에 오르곤 했는데, 그곳에서는 노파가 마루에 둥근 상을 펼치고 조그마한 동이에 담긴 막걸리에 잔네 개와 나물 한 보시기를 올렸다고 한다. 그렇게 술잔이 오가면, 그 술잔 사이로 이야기들이 푸짐해지면서 향파의 해학과 정운의 잔잔한 미소와 청마의 호탕한 웃음이 일기 시작했다는 게다. 넉넉하고 아름다운 풍경이다.
하지만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그것으로 족하거나 그렇게 끝날 수만은 없었던 것. 서른여덟의 청마는 갓 서른이 된 정운의 미모와 재능 앞에서 눈이 멀고 만다. 한복을 즐겨 입던 그녀의 단아한 아름다움은 이미 당대 많은 문우의 마음을 설레게 했거니와 무엇보다 문학을 비롯하여 그녀의 정신세계를 공유하면 할수록 청마는 혼절할 지경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1947년부터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그녀에게 시와 편지를 바친다. 그러나 정운은 비록 홀몸이긴 하나 유교적이고 전통적인 규범을 깨뜨릴 수 없었고 더욱이 청마 유부남이었던 것. 정운은 마음의 문을 닫고 청마의 구애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럴수록 청마는 가슴을 앓는다.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임은 꿈쩍도 않는데 어쩌란 말이냐. 그 시는 바로 이런 사연에서 비롯한 것이었다.
그의 편지는 그대로 한 편의 시가 되곤 했다. 연애할 때는 누구나 시인이 된다고 하는 판에, 시인이 연애를 하기 시작했으니 오죽하랴. 굳게 닫힌 그녀의 마음을 열고자 그는 자신의 가슴앓이를 이토록 처절히 고백하곤 했다.
나의 귀한 정향! 안타까운 정향! 당신이 어찌하여 이 세상에 있습니까? 나와 같은 세상에 있게 됩니까? 울지 않을 수 없는 하나님의 마련이십니까.
정향! 고독하게도 입을 여민 정향! 종시 들리지 않습니까? 마음으로 마음으로 우시면서 귀로 들으시지 않으려 눈감고 계십니까? 내가 미련합니까? 미련하다 미련하다 우십니까?
지척 같으면서도 만릿길입니까? 끝내 만릿길의 세상입니까? 정향!차라리 아버지께서 당신을 사랑하는 이 죗값으로 사망에의 길로 불러 주셨으면 합니다. 아예 당신과는 생각마저도 잡을 길 없는 세상으로,
- 유치환, 1952년 6월 29일 편지 중에서
한동안 편지에서 청마는 그녀를 정향이라 칭했다. 정향이란, 가수 현인이 부른 <베사메무초>에 나오는, 프랑스 말로는 리라꽃이요, 가수 이문세가 부른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의 첫머리에 등장하는, 영어로는 라일락꽃이요, 순수 우리말로는 수수꽃다리라 부르는 꽃을 이르는 말이다. 28일에 쓴 편지에서도 그는 “나의 구원인 정향! 절망인 정향! 나의 영혼의 전부가 당신에게만 있는 나의 정향! 오늘 이날이 나의 낙명의 날이 된달지라도 아깝지 않을 정향"이라고 불렀다. 쉽게 말해 당신 없인 못 살겠다는 것처럼 들리지만 실은 당신이 존재하기 때문에 또한 살기힘들다는 고백이기도 하다. '구원'인 동시에 '절망'인 사랑 때문이다. 그리하여 편지에서 시인은 항의한다. “나의 귀한 정향, 안타까운 정향! 당신이 어찌하여 이 세상에 있습니까?"라고. 동시에 그는 정향을 원망한다. 정말 내 사랑이 들리지 않느냐고, 입을 여미고 왜 말 한마디 없느냐고. 왜 일부러 우리 사랑에 눈을 감으려 드느냐고, 과연 이렇게 사랑하는 내가 미련한 것이냐고, 아니면 서로의 우정과 사랑을 십분 감지하면서도 신분상의 이유로 짐짓 서로를 멀리해야 하는 것이 미련한 것이냐고. 정말이지 연애만 하면 역설과 아이러니는 수사법도 아니다.
우리는 이해해 주어야 한다. 한 교무실에서 매일같이 마주하고 늘 저만치에서 그녀를 바라보며 편지를 써야 했던 청마의 심정을, 그 고통, 그 가슴앓이를 말이다. 그에게 그것은 얼마나 행복이고 또 저주였을까. 사랑하면서도 사랑해서는 아니 되고 더욱이 늘 가까이에 마주하면서도 멀리해야 하니 그것이야말로 '지척 같으면서 만릿길'이 아니었겠는가. 그런데 끝내 그것이 만릿길로 종결될 것이라면? 청마는 이제 '하나님께 원망한다. 이런 사람을 왜 나와 같은 세상에 주셨냐고. 가까이 못할 것이라면 왜 이리 아름다운 사람을 곁에 주셨냐고.
이 대목에서 우리는 새삼 <깃발>의 마지막 구를 떠올리게 된다. “아아 누구던 / 이렇게 슬프고도 애닯은 마음을 / 맨 처음 공중에 달 줄을 안 그는 이때의 '그'는 말할 것도 없이 곧 '하나님'이요, 운명이다. 청마는 희구한다. 이러느니 차라리 그녀를 꿈꿀 수조차 없게, "생각마저도 잡을 길 없는 세상으로 나를 보내달라고. 그것이 설령 '사망의 길'이라도 그편이 낫겠노라고. 같이 있어 행복하고 같이 있어 괴로운 이 모순, 내가 살아야 할 이유이자 내가 죽고 싶은 이유가 될 정도의 이 모순, 이 편지의 주제는 바로 사랑과 운명의 모순이다. 이번에도 또 들려온다. 그런즉, 아, 어쩌란 말이냐 도대체 어쩌란 말이냐.
그런데 삶이란 게 원래 그런 것이다. 안타까워도 어쩔 수 없으면 어쩌지 않으면 그만이다. 고통스럽지만 그것이 어른스러운 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치환은 남성적이 의지적이진 않아 보인다. 관념과 육체가 일치하기란 쉽지 않은 법이다. 더구나 그는 여전히 낭만적이다. 사랑 앞에서 그는 맹목이 되는지도 모른다. 특히 운명 같은 사랑이기에 더욱 그러할 것이다. 거기에 나이가 문제 될 것도 아니다. 신분상의 금기는 그 정도가 강하면 강할수록 오히려 열정의 불길에 기름을 붓는 격이다.
그러나 청마의 사랑은 순간의 애욕도, 일시적인 욕정도 아니었다. 정운은 그에게 이상의 여인, 구원의 여인이었을 따름이다. 하루 이틀, 아니 일 년 열두 달이 가도 그 마음은 변하질 않았다. 그만큼 집요했던 것이 아니라 그만큼 순수했다는 증거다. 오로지 자신의 사랑이 받아들여질 때까지 그는 시와 편지를 쓰고 또 썼다. 그러니 그것은 마치 기도와도 같지 않았을까.
그 기도가 통하였는지, 그 사랑과 정성에 감복했는지, 마침내 바위처럼 꿈쩍 않고 물같이 까딱 않던 그녀의 마음에 서서히 틈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3년이 넘도록 날마다 배달되는 편지와 시편에 그녀의 마음이 드디어 움직인 것이다.
사랑했으므로 나는 행복하였네라
이들의 애정이 어느 정도였을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플라토닉한 사랑이었는지 농염한 사랑이었는지 그런 것도 실은 호사가의 관심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정운의 다음과 같은 시조를 대하노라면 말 한마디 없어도 서로의 마음과 영혼까지 오고 가는 충분히 사랑하면서도 애달프고, 애달프면서도 충분한 사랑을 느끼게 된다.
오면 민망하고
아니 오면 서글프고
행여나 그 음성
귀 기우려 기다리며
때로는
종일을 두고
바라기도 하니라.
정작 마주 앉으면
말은 도로 없어지고
서로 야윈 가슴
먼 창만 바라다가
그대로
일어서 가면
하염없이 보내니라.
- 이영도, <무제 1〉
마치 여인네의 고시조 작품마냥 “오면 민망하고 아니 오면 서글프고”라니, 참 솔직한 표현이지 싶다. 그리고 참 단아한 사랑이지 싶다. 거북했던 사람. 그러나 참 다정했던 사람 만나자니 민망하고 아니 만나자니 슬픈 사랑 그 경계에서 정작 만나면 그저 이심전심으로 아무 말 없이 가슴을 주고받은 사랑.
정운과 사랑을 나누게 된 이후, 직장이 멀리 떨어져 있을 때도 청마는 단 한두 시간을 만나기 위해 하루 종일 버스를 타고 먼 길을 달려왔다. 길은 험했고 버스는 느렸다. 정운 역시 “종일을 두고 바라기도 했다. 그렇게 힘들게 만나 아무 말 없다가 그대로 일어서 가도, 서로를 존경했기에, 서로의 처지를 이해했기에, 그저 하염없이 보내야 했다. 하지만 행복했다. 사랑했기에.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에메랄드빛 하늘이 환히 내다뵈는
우체국 창문 앞에 와서 너에게 편지를 쓴다.
행길을 향한 문으로 숱한 사람들이
제각기 한 가지씩 생각에 족한 얼굴로 와선
총총히 우표를 사고 전보지를 받고
먼 고향으로 또는 그리운 사람께로
슬프고 즐겁고 다정한 사연들을 보내나니,
세상의 고달픈 바람결에 시달리고 나부끼어
더욱더 의지 삼고 피어 헝클어진 인정의 꽃밭에서
너와 나의 애틋한 연분도
한 망울 연연한 진홍빛 양귀비꽃인지도 모른다.
- 사랑하는 것은
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
설령 이것이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사랑하였으므로 나는 진정 행복하였네라.
- 유치환, <행복>
이 시, 특히 마지막 연을 모르는 이가 있을까. "사랑하는 것은사랑을 받느니보다 행복하나니라." 이것은 우리 한국인에게 시구가 아니라 만고불변의 경구처럼 되었다. “사랑하였으므로 나는진정 행복하였네라." 이것은 사랑하는 모든 이에게 바칠 수 있는가장 아름다운 헌사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그래서 연애편지를쓸 때면 줄곧 베껴 쓰곤 하지만,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놓치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이 두 구 사이의 한 줄, 곧 “오늘도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쓰나니"라는 대목. 하루가 멀다 하고 편지를 보낸 그정도의 정성과 사랑을 바친 이에게만 그 경구와 헌사가 합당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청마는 정운과의 사랑을 통해 결국 우리나라의 가장 대표적인사랑 시편 〈행복〉을 남기게 된 셈이다. 그리고 부산여자상업고등학교 교장으로 재직하고 있던 청마는 1967년 2월 13일 “그리운 이여 그러면 안녕"이라는 마지막 인사도 하지 못한 채 세상을떠나고 만다. 그날 밤 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인사들과의 술자리에서도 고혈압 때문에 사이다만 마셨던 청마는 부산의 수정동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그만 버스에 부딪히고 말았던 것이다. 천국에는 우체국이 없었을까. 이날로 그의 편지는 끝이 난다.
세상을 뜰 때까지 청마는 거의 하루도 빠지지 않고 20년 동안정운에게 편지를 보냈다. 보낸 이만 정성이었을까. 받은 이 정운도 정성이었다. 그녀는 그 많은 편지를 꼬박꼬박 보관해 두었다.정운도 청마에게 얼마나 편지를 보냈는지 그건 알 길이 없지만정운이 알뜰히 모아 놓은 청마의 편지는 전란 때 불타버린 예전것을 제하고도 무려 5,000여 통!
그의 사후, 당시의 주간지에 이들의 러브스토리가 '사랑했으므로 나는 행복하였네라'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이 계기가 되어 청마의 편지 중 200통을 추려 같은 제목의 단행본이 출간된다. 그런데 이 러브레터가 책으로 나오자마자 엄청난 주문이 몰려들면서 일약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올라서게 된다. 그것이 유치환과이영도에 대한 진실한 사랑과 관심 때문이든, 유명인의 러브스토리와 러브레터를 엿보는 호기심에서 기인한 것이든, 베껴서라도멋진 연애시와 연애편지 한번 써 보려는 독자 대중의 심사에서비롯한 것이든, 그 시절의 그런 풍경이 그립고 부러울 따름이다.연예인의 별별 잡다한 러브스토리가 연일 방송과 인터넷을 장식하고, 연인간의 사랑 고백은 무슨 거창한 이벤트를 벌여야만 대단한 건 줄 아는 이 시대의 풍속에 비추어 보면 더욱 그러하다.
청마를 지금의 시점에서 윤리적으로 비난하기는 쉬울지 모른다. 정운과의 사랑도 지나치게 미화되었는지 모른다. 실제로 청마의 부인 권재순 여사는 관심에서 벗어나기만 했다. 그녀 역시 청마와 오랫동안 연서를 주고받았고 집안에 별 벌이가 없을 때 유치원 보모 생활을 하며 가계를 돕는가 하면, 만주에서는 함께 고생을 하다가 어린 아들 하나를 언 땅에 묻고, 남편을 채근하여 통영으로 귀환케 하는 등 삶의 고비 고비마다 중요한 역할을 해왔건만 청마의 그 서한집 인세조차 정운에게 돌아가고 말았다. 물론 정운은 그 돈을 시 전문지 <현대시학》에 작품상 기금으로 기탁했지만 말이다.
우연인가? <가슴앓이>의 원조 '한마음도 파도와 바위를 그린 <갯바위>라는 노래를 남겼다.
나는 나는 갯바위
당신은 나를 사랑하는 파도
어느 고운 바람 불던 날 잔잔히 다가와
부드러운 손길로 나를 감싸고
향기로운 입술도 내게 주었지
세찬 비바람에 내 몸이 패이고
이는 파도에 내 뜻이 부서져도
나의 생은 당신의 조각품인 것을
나는 당신으로 인해 아름다운 것을
나는 나는 갯바위
당신은 나를 사랑하는 파도
우린 오늘도 마주보며 이렇게 서 있네
- 강영철 작사·작곡, <갯바위>
파도도 바위도 원망할 것이 없다. 내 몸이 패여도 나의 생은 당신의 조각품이요, 나는 당신으로 인해 아름답기에, 어쩌면 이는청마와 정운이 들었어야 할 노래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쩌면지금 가슴을 앓고 있는 바로 당신이 들어야 할 노래인지도 모른다. 허나 어쩌랴. 부부였던 '한마음'의 두 사람조차 이제는 남남인 것을 운명아, 사랑아, 도대체 어쩌란 말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