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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3.10.23 03:30
한국 미술 속의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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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1 - 김홍도, '자리 짜기', 18세기 후반쯤. /국립중앙박물관
결혼과 출산은 부부와 자녀로 이뤄진 가족이 탄생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지난 8월 발표된 통계청 설문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19세에서 34세 사이 청년층은 10명 중 3명 정도만 결혼하는 것에 긍정적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결혼한다고 해도 자녀를 가질 필요가 없다는 사람은 10명 중 5명이었고요. 전통적 가족 개념에 따라 사랑하는 이와 아이를 낳아 보금자리를 꾸리겠다는 사람이 이제는 소수에 든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매년 태어나는 아이 수도 계속 줄어서 올 상반기까지 합계 출산율이 0.7명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인구 감소에 이어, 가족도 위기를 맞은 걸까요? 오늘날 가족은 1인 가족, 분리 주거 가족, 다문화 가족, 동거인 가족 등 구성원 종류와 사는 형태에 따라 여러 가지로 분류됩니다. 미술 작품 속에서는 어떨까요? 그리움·외로움·편안함·불만·갈등·희망 등 감정 표현을 가족과 연관시켜 표현한 경우가 많습니다. 오늘은 가족의 의미를 그림을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김홍도와 장욱진이 그린 가족
조선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볼까요? 조선 후기 화가 김홍도가 그린 풍속화에 부모와 아이가 한집에 있는 가족의 모습이 보입니다. '자리 짜기'〈작품1〉는 가난해진 양반 집안을 보여주는 그림이에요. 엄마는 물레를 돌리고, 아빠는 돗자리를 짜고, 아이는 방바닥에 커다란 책을 펴놓고 소리 내어 읽고 있어요. 조선 시대에는 신분에 따라 옷과 모자를 구분해서 착용했어요. 이 그림에서 남자 어른이 쓴 네모난 모자, 방건은 그가 양반 출신이라는 것을 말해주죠. 그림 속 부모는 자신들은 일을 해도 자식만큼은 과거에 붙고 관직에 올라 집안을 다시 일으켜주기를 바라며, 집안일을 돕게 하는 대신 공부를 시킨 모양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부모에게 자식은 희망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족이 본격적으로 미술 주제가 된 것은 1950년대 이후입니다. 6·25전쟁이 발발하면서 전쟁 통에 가족과 헤어지기도 하고 전쟁터에서 가족이 죽기도 했죠. 여기에 남·북으로 갈라져 가족과 언제 다시 만날지 기약할 수 없는 상황에 이릅니다. 이런 시대적 배경 속에서 가족을 그리워하는 그림이 자주 등장하게 됐어요. 전쟁을 겪은 이에게 가족은 돌아가야 할 고향과 같은 존재이자 행복을 말할 때 준거점이었어요. 행복한 가족을 숭앙하는 사회 분위기는 1960년대와 1970년대에도 이어졌습니다.
이 시기 행복한 가족을 자주 그린 대표적 화가로 장욱진을 들 수 있어요. '가족'〈작품2〉이 한 예입니다. 네 사람이 큰 나무가 있는 야외에서 마치 기념사진이라도 찍는 듯 앞쪽을 바라보고 있어요. '우리 가족'이라고 말하기라도 하듯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두 아이가 하나의 원 안에 들어 있습니다. 화면 왼쪽 위에는 이 가족이 사는 집도 보이네요. 가족이 함께 있다는 건, 그 사실만으로도 마음에 평화를 주지요. 이 그림은 현재 서울 덕수궁에 있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가장 진지한 고백: 장욱진 회고전'에서 내년 2월 12일까지 볼 수 있습니다.
바뀌어가는 가족 형태
사진기자 출신 사진가 주명덕은 1970년대 초반 '한국의 가족'이라는 제목으로 전국 방방곡곡에 사는 가족을 사진으로 찍어 모으는 작업을 했습니다. 당시 우리나라에 아파트가 처음 지어지기 시작하던 시기였는데, 그는 점차 사라져가는 전통적 가족의 모습을 기록으로 남겨두기로 했어요. '한국의 가족, 익산'〈작품3〉에서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아이들까지 3대에 걸친 아홉 식구가 평상에 옹기종기 앉아 있네요. 그런가 하면 '한국의 가족, 서울 동부이촌동'〈작품4〉에는 새로운 주거 형태인 아파트에 사는 도시 핵가족의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주명덕의 사진은 시대가 변함에 따라 가족의 모습도 함께 바뀌고 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1990년대에 이르면 아파트에 사는 사람이 대다수가 되고, 아파트를 중심으로 중산층 가족 문화가 형성됩니다. 2001년 미디어 아티스트 정연두는 같은 아파트에 사는 서른두 가족을 촬영해 '상록타워'라는 제목으로 엮었어요. 모두 자기 집 거실에서 거실 창문을 등지고 기념사진을 찍듯 포즈를 취하게 했죠. 〈작품5〉는 그 사진 32점 중 하나입니다. 집마다 천장에 붙은 전등도 똑같고, 거실 중앙을 차지한 텔레비전 위치와 소파 배치도 비슷합니다. 얼핏 보면 공장에서 찍어낸 기성품처럼 이 집 가족과 저 집 가족이 별 차이가 없어요.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한 가족 한 가족이 저마다 다르고 특별하답니다. 가족 뒤로는 커튼이 달려 있어 마치 무대 같은 분위기가 나요. 거실은 무대이고, 가족이 그 무대의 주인공인 셈이죠.
오늘날 가족 형태는 이때와 또 다릅니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작년 1인 가구는 총 972만4256가구로 매년 늘고 있다고 해요. 곧 1인 가구 1000만 시대가 열린다고 하죠. 오늘날 가족의 형태를 그림 또는 사진으로 담는다면 어떤 모습이 나올까요? 위 작품들 속 가족사진처럼 한집에 사는 사람을 가족이라고 한다면, 거실이 따로 없는 한 칸짜리 방에 홀로 앉아 있는 모습이 보편적인 가족사진이 되는 날도 머지않아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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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2 - 장욱진, '가족', 1976년.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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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3 - 주명덕, '한국의 가족, 익산', 1971년. /주명덕 '한국의 가족' 연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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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4 - 주명덕, '한국의 가족, 동부이촌동', 1971년. /주명덕 '한국의 가족' 연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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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5 - 정연두, '상록타워' 32점 중 한 점, 2001년. /정연두 전시 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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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은 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기획·구성=김윤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