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고와 원숭이>
류시화
4월부터 8월까지 인도는 망고 시즌이다. 이때가 되면 인생의 우울을 날려 버릴 만큼 달고 맛있는 망고들이 시장에 쏟아져 나온다. 인도를 대표하는 열매답게 망고는 동인도의 아삼 지역이 원산지로, 기원전 2천 년 경부터 재배되었다. 생산 지역에 따라 100종류가 넘으며, 맛에 섬세한 차이가 있다. 어떤 망고는 노랗게 익었을 때가 제맛이지만 초록색일 때가 맛있는 망고도 있고, 장미처럼 붉은색 뺨을 한 굴랍 카스 망고도 있다.
어느 마을에 망고 과수원이 있었다. 아열대 햇빛을 풍부하게 받아 여름이면 나무마다 황금빛 망고가 주렁주렁 열렸다. 망고가 익기를 기다리는 것은 과수원 주인만이 아니었다. 건너편 밀림에 모여 사는 원숭이들도 간절하긴 마찬가지였다. 드디어 첫 망고가 가지 끝에서 노란색을 빛내자 원숭이들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일제히 과수원으로 몰려들었다.
곧이어 신이 준 달콤한 과즙의 쾌락을 놓고 인간과 원숭이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과수원 주인과 인부들은 원숭이가 망고 나무에 접근하는 즉시 돌을 던졌고, 곳곳에서 원숭이들의 비명이 울려퍼졌다. 머리에 피를 흘리는 원숭이도 있고, 두 손에 망고를 움켜쥐고 달아나다가 돌을 맞고 추락하는 원숭이도 있었다. 결국 몸이 성한 원숭이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이것이 지난 4천 년 동안 망고 나무가 있는 곳이면 어디서나 되풀이되어 온 일이었다. 그리고 4천 년만에 처음으로 이 문제에 대해 밀림 속 원숭이 우두머리가 회의를 소집했다. 우두머리 까삐(산스크리트 어로 ‘원숭이’라는 뜻)가 말했다.
“더 이상 이런 수모를 당할 순 없다. 우리는 고귀한 하누만(원숭이 형상을 한 신)의 후예들이고, 태초에 히말라야 산에서 약초를 가져다 사람들의 상처를 치료해 준 것도 우리들이다. 그런데도 우리의 처지를 보라. 망고 몇 개 따 먹는다고 돌팔매질을 당하고 있지 않은가. 이런 수모는 인간의 조상인 우리에게 어울리지 않는 일이다. 이 고통의 사슬을 우리가 끊어야 한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다들 의견을 말해 보라."
머리 좋은 원숭이 깔루(‘까맣다’는 뜻)가 말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 자신의 망고 나무를 갖는 일이다. 그렇게 되면 인간들의 방해 없이 마음껏 망고를 따 먹을 수 있다. 망고 나무가 망고 열매 안에 있는 씨앗에서 나온다고 나는 들었다. 인간들은 그 씨앗을 땅속에 심으며, 그러면 거기서 망고 나무가 자란다고 한다. 과수원에서 망고를 하나 훔쳐다가 그 씨앗을 이곳에 심자. 그러면 우리 자신의 망고 나무를 가질 수 있다."
원숭이들은 멋진 생각에 흥분해 박수를 쳤다. 우두머리 원숭이가 말했다.
“방법은 그만큼 간단하다. 우리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우리의 불행한 삶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제 우리는 원숭이 역사상 최초로 우리 자신의 망고 나무를 갖게 될 것이다!"
모든 원숭이들이 그 훌륭한 계획에 동의했으며, 그래서 가장 젊고 날쌘 원숭이를 망고 과수원으로 파견했다. 다른 원숭이들이 과수원 주인의 시선을 분산시키는 사이, 젊은 원숭이는 커다란 망고 하나를 따서 움켜쥐고는 나는 듯이 밀림으로 돌아왔다.
성스러운 의식을 치르듯 원숭이들은 양지 바른 곳에 구멍을 파고, 그 안에 망고 씨앗을 넣었다. 그리고 공들여 흙을 덮었다. 그런 다음 둥글게 원을 그리고 앉아서 기다렸다.
반나절이 흘러도 나무가 솟아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원숭이들은 당황했다. 모두가 기대에 찬 만큼 시간이 몹시 더디게 흘러갔다. 그러나 황금색 망고를 마음껏 따 먹을 희망에 그 정도의 기다림은 힘들지 않았다.
하루가 지났으나 아무 소식이 없었다. 어린 원숭이들은 참을성을 잃고 주위를 돌아다녔다. 또다시 하루가 가고 이틀이 지나도 흙은 잠잠했다. 어른 원숭이들도 가슴팍을 긁으며 자리를 이탈하기 시작했다. 무엇인가 잘못된 게 틀림없었다. 한 원숭이가 불평했다.
“우린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어. 과수원에는 망고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데, 우린 여기서 아무 소득 없이 땅바닥만 바라보고 있으니 어리석잖아. 이러다가 망고 계절이 끝나면 일 년을 기다려야만 해. 돌멩이 몇 개 맞는 게 대수야? 삶이란 원래 그런 거야. 고통 속에 맛보는 단맛이 진짜 달콤한 거라고."
절반이 넘는 원숭이들이 동의하는 박수를 쳤다. 우두머리 원숭이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인내심을 가져야지! 원숭이들이 왜 이렇게 사는지 알아? 바로 인내심 부족 때문이야. 우리 자신의 망고 나무를 가지려면 적어도 5일은 기다려야 해."
그러나 5일이 지나도 변화가 없긴 마찬가지였다. 한 원숭이가 화를 내며 소리쳤다.
“이렇게 아무 소득 없이 5일을 허비한 건 참을 수 없는 일이야. 배가 고파 견딜 수 없어. 무엇이 잘못됐는지 땅을 파 봐야겠어."
모든 원숭이들의 동의 속에 흙이 도로 파헤쳐지고, 씨앗이 꺼내졌으며, 이내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우두머리 원숭이가 말했다.
“봐라, 어리석은 녀석들아! 닷새 만에 소원이 이루어질 순 없어. 망고 나무를 가지려는 꿈이 있고 망고 씨앗이 있지만, 원숭이들에겐 인내심이 없어. 그래서 수천 년 동안 과수원 주인이 못 되는 거야. 적어도 열흘은 기다렸어야 해!"
그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원숭이들은 나무에서 나무로 건너뛰며 돌멩이들이 빗발치는 망고 과수원으로 향했다.
많은 경우에 우리는 이 원숭이들과 같다. 심지어 명상을 할 때도 며칠 만에 변화가 찾아오지 않는다고 실망한다. 또한 놀랍게도 많은 명상 단체들이 일주일이나 열흘 코스의 수련으로 인생의 문제를 해결할 것처럼 광고한다. 긴 우기와 뜨거운 태양과 바람과 벌레들, 몇 년을 묵묵히 견딘 끝에 망고 나무는 황금색 열매를 맺는다.
첫댓글 적절한 비유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