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5. 6. 29. 달날. 날씨: 햇볕이 세서 밖에 줄곧 서 있으면 땀이 난다. 저녁에는 바람이 꽤 불다 그친다.
다 함께 아침열기-책읽기-점심-청소- 몸놀이-교사회의-가정방문
[놀이]
1학년 아이들과 5학년 아이들을 데리고 아침 산책하러 나가는데 산딸기 이야기가 나왔다. 우리가 산딸기를 너무 많이 따서 동네 어린이집 아이들이 따먹을 게 없어 아쉬워한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셔서, 오해라고, 우리가 주로 따는 곳은 우면산 들머리 길 가 쪽은 거의 따지 않고 아이들 손이 미치지 않는 곳에서 딴다는 말을 했다. 꼭 그 사실을 전해 달라고 부탁도 했다. 사실 어제, 그제도 나는 산딸기를 땄는데 모두 아이들이 따기 힘들고 들어가지 않는 곳에서 따곤 한다. 그래서 내 팔뚝에 산딸기 나무 가시에 긁힌 자국이 많기도 하다. 더욱이 거기에 산딸기가 있는 줄도 잘 모르고 우리 아이들도 모르는 곳이기도 하다. 사실 길가쪽과 누구나 눈에 보이는 쪽은 우리 아이들도 따먹어야 하고 지나다니는 다른 분들도 손이 가는 곳이라 그냥 그대로 두곤 해서 그런 말을 들어도 떳떳하게 말 할 수 있어 다행이다. 5학년 아이들에게도 동생들 따먹도록 따기 쉬운 쪽은 그대로 두라고 말하곤 했다. 자연이 준 선물을 모든 사람들이 즐기도록 작은 일이지만 배려를 가르치는 것이 교육이라 믿는다. 아직도 산딸기는 줄곧 딸 수 있을만큼 양이 많다. 산딸기 덕분에 입도 호강하고 아침 산책 손을 놀릴 거리가 있어 재미가 있다. 1학년 아이들과 같이 산책을 가니 새롭다. 송순옥 선생이 하루 쉬는 날이라 그런 건데 아이들이 짝을 지어 손을 잡고 슬며시 선생 손을 잡는다. 큰 아이들과 다른 몸짓이라 살갑고 귀엽기만 하다.
아침 나절에는 1학년, 2학년, 5학년이 함께 책 읽기를 하고 책읽고 난 뒤 활동으로 연극 놀이를 했다. 먼저 5학년이 동생들에게 좋은 그림책을 한 권 읽어주고, 저마다 읽고 싶은 책을 골라 선생들이 읽어주고, 저마다 읽는 시간을 누린 뒤, 11시부터 두 모둠으로 나눠 했다. <100층 짜리 집>, <느낌표> 책 두 권을 모둠마다 연습하고 발표하는데 짧은 시간에 정말 즐겁게 한다. 저마다 하고 싶은 배역이 같을 때는 가위바위보로 정하고 차례로 장면마다 동작을 정하고 읽어가니 한바탕 신 나는 놀이가 된다. 평소에 깔깔콘서트같이 스스로 연극을 하는 힘이 있는 형들을 보고 1학년들이 금세 따라 하는데 지켜보는 사람들이 있는 무대에 나가 발표를 하는 건 쉽지 않을 수 있는데도 우리 아이들은 누구 하나 어색해하지 않고 재미나게 한다. 책읽고 난 뒤 활동으로 글쓰기, 그림그리기, 말 이어가기, 연극하기, 노래부르기, 뒷이야기 쓰기, 편지 보내기 같은 다양한 활동을 골고루 잡아가는 즐거움은 책 읽는 문화를 가꾸는 데 한 몫을 한다. 만화에만 빠지지 않도록 늘 재미있는 책을 추천하고 책 읽는 즐거움을 찾도록 챙길 일이다.
낮에는 텃밭에서 나온 상추, 고추, 토마토가 있어 먹을거리가 풍성하다. 채소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아이들은 크게 반기지는 않지만 방울 토마토는 인기가 많다. 어제 쉬는 틈에 텃밭에 갔더니 고추가 바람에 모두 쓰라져 한참을 고추대 세우고 지지대에 묶어줬는데, 일하면서 봤더니 방울토마토와 큰 토마토가 점점 익어가고 딸 것도 많다. 그런데 오이는 무성하게 자라지 않고 시들시들 해서 간신히 큰 오이를 지탱하는 모습이 안쓰럽기까지 했는데 3학년 아이들이 텃밭에서 모두 잘 걷어왔다. 지난 주 심은 콩이 벌써 쑥 올라오고 곁에서 풀도 같이 올라와 있었다. 감자는 이번 주 캐면 될 듯 싶고, 고구마는 슬슬 자리를 잡아 고구마 순을 딸 때가 가까워 온다.
낮 몸놀이는 숲 속 놀이터에서 비석치기 대회를 했다. 운동장 공놀이를 하기에는 날이 너무 더워서 시원한 그늘에서 전래놀이 한마당을 여는 셈인데 여섯 모둠으로 나눠 곳곳에서 비석치기를 하는 모둠마다 함성과 탄식이 쏟아져 나온다. 언제나 그렇듯 편을 짜서 협동하는 놀이를 해도 상대가 있으면 승부욕이 생기는 아이들이 있지만 서로를 응원하고 온 몸을 써서 돌 하나로 노는 아이들에게서 놀이의 힘을 본다. 자연물로, 서로 협력할 수 있도록, 창조와 상상력을 기르는 놀이가 어린이 놀이문화로 자리잡도록 선생이 더 챙길 게 무얼지 자꾸 생각한다. 아이들 비석치는 틈에 나무 위 집 짓기 평상 안전장치를 설치하는데 갈 길이 멀다. 지붕까지 얹으려면 한참 걸릴 듯 싶다. 아이들과 머리를 맞대고 부지런히 몸을 놀리면 언젠가 되겠지 하다가도 얼른 선생이 틀을 잡으려는 욕심이 오락가락 한다. 숲 속 놀이터 개울에는 벼가 자라는 모습도 인상에 남지만 개울 옆 아이들이 흙놀이를 하며 만들어 놓은 작은 둑이 점점 커져간다. 본디 숲 속 놀이터에 모래놀이터와 흙 놀이터를 생각했는데 아이들이 스스로 만들어간다. 모래는 단오잔치 뒤 씨름판에서 가져오려고 헸는데 메르스 때문에 취소되어 가져오지 못하게 되어 아쉽다. 아이들 노는 모습을 보며 지난 주 4학년 지안이 시에 붙인 노래를 줄곧 흥얼거린다. 내일은 우리 아이들과 어떤 놀이로 하루를 가득 채울까. 에고 그나저나 한 달이 끝나가는 때니 바깥 문서 처리하는 일이 쏟아진다. 내일은 그걸 모두 마무리해놔야겠다.
아이들 놀이를 보며 예전에 부모님들과 나눈 일과 놀이 교육에 대한 생각의 단편을 다시 꺼내 읽는다. 생각할 건 많고 다시 살필 것도 있지만 아이들은 많이 놀아야 한다는 믿음은 굳건하다.
일과 놀이 교육
전정일(2014. 10. 24)
놀이가 사라진 사회, 함께 놀 줄 모르는 아이들...
객관으로 우리 아이들을 둘러싼 세상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놀이가 사라진 사회, 함께 놀 줄 모르는 아이들, 컴퓨터와 휴대폰이 아이들을 중독 시켜 가는 사회가 보입니다. 오롯이 자연 속에서 실컷 놀며 자연이 가르쳐 준 감성과 모험에 도전하는 진정한 용기를 배우고 상상력과 집중력을 기를 기회는 없이 어릴 때부터 학습과 성적에 시달리는 슬픈 영혼들을 봅니다. 누가 우리 아이들에게 자유와 온전한 배움의 기회를 빼앗아 갔을까요? 왜 교육 받을수록 우리들은 더 멍청해지는 걸까요? 아이들의 몸과 마음이 건강하게 자라도록 돕는 교육을 말하며 왜 바꾸지 못하는 걸까요? 골목에서 들려오는 깔깔거리는 아이들 소리는 이제 아주 드문 세상이 됐습니다. 아이들은 학교와 학원 일정표에 맞춰 시간표를 짜는 일상을 익숙하게 받아들이고 파괴와 충동으로 가득 찬 게임 속 세계에서 살아있음을 확인해 가는데, 기업은 날마다 더 강력한 유혹을 담아 멋진 바보기계들을 만들어내고 어른들은 도시에서 살아남기 위해 일하고 일해서 아이들에게 장난감과 새전자기기를 안기며 아이와 함께 하지 못한 시간을 보상합니다. 시골이나 도시나 비슷한 삶의 모습이 지금 현실입니다.
그런데 이런 사회에서 살아가지만 아이들에게 꿈을 키워주고 몸과 마음이 건강하게 자라도록 자유와 사랑이 넘치는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만남과 관계를 귀하게 여기고 아이들에게 마음껏 뛰어놀 시간과 기회, 공간을 만들어주는 공동체가 있습니다. 자연 속에서 실컷 놀아본 아이들이야말로 사람다운 감성으로 함께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지요. 세상을 만들어온 노동, 일하는 사람들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이라는 것을 가르치는 학교와 공동체에서 자라는 아이들에게는 자연의 야성이 살아있습니다. 본디 자연의 일부인 사람의 본성이 유전자에 그대로 각인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걸 우리는 날마다 교육 현장에서 확인하고 있습니다. 오늘 많은 사람들이 가지 않는 길에서 주인답게 함께 살아가려는 대안교육의 가치는 말 그대로 사회의 대안으로, 교육의 대안으로 울림을 주고 있습니다.
대안교육에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이 무엇인가요? 건강, 자유, 자발성, 자존감, 생명, 평화, 평등, 사랑, 통합, 전인교육, 조화, 민주... 뭐 정말 많습니다. 초등과정에서는 [많이 논다]는 것이겠지요. 그 가운데 [자연 속에서 실컷 논다]가 모두가 공감하는 말일 것 같은데 맞나요? 많은 대안학교들이 이런 정신으로 교육과정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맑은샘학교 교육과정도 크게 다르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더 정성을 들이고 강조하는 교육과정은 학교마다 있고, 우리 학교에서도 있습니다. 무엇인지 들려주실 분 있나요? 네 일놀이 교육, 글쓰기 교육, 자연속학교(여행)로 대표될 수 있습니다. 오늘은 무엇보다 학교 모든 교육과정의 바탕이자 몸과 마음이 건강한 사람으로 키워가는 교육목표를 실현하는데 중심에 두는 일놀이 교육, 일과 놀이 교육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일놀이 이러면 잘 모르는 분들이 많아서 일과 놀이 교육이라고 말하면 더 낫더라고요. 물론 우리 학교의 바탕으로 저는 다음을 들고 싶습니다.
자연보다 참되고 아름답고 훌륭한 스승은 없다.
어린이는 자연 가운데 일하고 놀고 배워야 한다.
일놀이(노작교육)는 교육과정을 세우는 데 바탕이요 뼈대이다.
이 가운데 일과 놀이 교육 이야기를 조금 더 해보겠습니다. 처음에 놀이가 사라진 사회, 함께 놀 줄 모르는 아이들, 컴퓨터와 휴대폰이 아이들을 중독 시켜 가는 사회란 말을 했는데요. 어떻습니까? 제가 말한 게 맞나요? 요즘 부모님들은 집에서 아이들과 어떤 놀이를 주로 하시나요? 아이들 말고 부모님들끼리 하는 놀이가 있나요? 역시 아이들과 자연 속에서 뭘 만들고 시간을 충분히 내시는 훌륭한 분들이십니다. 생산하는 놀이를 하시는 걸 보니 훌륭한 아버지이십니다.
놀이에 대해 다시 생각해봅니다. 아이의 자발성과 주도성이 사라지는 순간 놀이의 즐거움은 줄어듭니다. 그렇기에 선생들은 늘 조심스럽습니다. 놀 거리를 꺼내놓긴 하지만 노는 몫은 오롯이 아이들에게 있기 때문에 그렇지요. 놀이는 놀이 자체로 즐기면 그만이지 목적이 없고, 어른들이 정해 준 규칙 없이 내 마음대로 노는 놀이가 아이들 세상에서는 중요하기도 합니다. 놀고 놀다 보면 저절로 규칙도 만들고 서로 마음도 받아들이고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는 힘이 생기는 걸 우리 아이들이 날마다 하는 비석치기를 보면서 확인할 때가 많습니다. 알맞게 몸을 쓰고, 놀면서 안전을 찾아가며, 마음껏 빠져 놀며 놀이나 동무들 마음이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음을 배워가고 있습니다.
아이들에게는 비어있는 시간이 많아야 합니다. 놀잇감이 많다고 잘 노는 건 아닙니다.
우리는 아이들이 자유롭게 마음껏 놀고, 끊임없이 상상하며 놀도록 도와야 합니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아이들에게는 비어있는 시간이 많아야 합니다. 아무 것도 안하고 뒹굴뒹굴 거리다 스스로 뭔가 찾아내도록 기다려주는 선생과 부모가 되어야 할지 모릅니다. 놀이의 주도권을 아이가 갖도록, 아이가 시작하고 아이가 하고 싶어 하고 아이가 하도록 부모와 선생은 그저 따라가며 도와주는 노릇도 중요하겠지요.
그런데 아무리 살펴봐도 불확실하고 다양함이 살아있는 자연이야말로 아이들이 진짜 놀이를 할 수 있는 곳입니다. 놀잇감이 많다고 놀이가 풍성한 건 아니며 아이가 잘 노는 건 아닌 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진짜 놀이에는 흔한 놀잇감이 가장 좋습니다. 새로운 장난감으로 조심스럽게 노는 것보다 익숙하고 편안한 장난감으로 반복해서 놀 때 뇌와 창의성에 더 좋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일상에서 자주 갖고 노는 흔한 놀잇감이 진짜 놀이를 하게 합니다. 장난감은 놀이의 소품일 뿐입니다.
어렸을 때 찰흙(물과 흙), 공, 소꿉놀이, 블록이 아이들이 놀기에 좋은 거로 꼽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런 놀이도 놀이지만 저는 자연과 텃밭과 논에서 노는 것도 아주 아이들에게 좋다는 걸 날마다 교육 활동에서 확인합니다. 일하고 놀고, 놀면서 일하고, 해야 하지만 하는 순간 놀이로 만들고, 어느 때는 푹 빠져서 몰입의 순간을 맛보는 일과 놀이 교육이 주는 힘은 날마다 아이들을 자라게 합니다. 물론 대운동장에 가서 마음껏 공을 차고, 교실에서 블록 놀이와 손끌활동을 하고, 마당에서 소꿉놀이를 하는 것도 아주 필요합니다. 어느 곳에서나 어떤 자연물로도 놀이를 만들어내는 아이들이기에 우리는 되도록 돈 주고 사는 장난감보다 더 재미있는 놀잇감을 찾아주고 만들어주려고 애쓸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 아이들도 역시 비싼 장난감이 주는 즐거움을 늘 갈망합니다. 얼마나 기가 막히는 장난감들을 만들어내는지 어른이 봐도 혹하는 게 참 많은 세상이고 놀잇감이 넘치는 세상에서 우리 아이들은 부족함 없이 놀이 도구를 얻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생산하는 놀이, 자연에서 노는 놀이로 어린이 삶을 가꾸는 게 참 어렵습니다. 한두 어린이가 새로운 놀잇감을 사는 순간 수많은 어린이들이 영향을 받아 집마다 사달라는 조르기가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린이 문화는 오롯이 어린이들끼리만 만들어가기 어려운 때가 생깁니다. 올해 잠깐이지만 레고 놀이가 유행하고 더 비싼 걸 사는 바람이 일었던 때도 있었지만 날마다 뭔가를 사라고 쏟아내는 소비사회는 늘 경계를 넘어 아이들을 유혹하곤 합니다. 이번엔 레고였고 언제는 유희왕 카드였지요. 어른들과 선생들이 나서서 공동체와 마을이 나서서 가꿔야 할 몫이 있는 것이겠지요.
한편으로 무슨 놀이랜드 같은 것도 우리 아이들이 참 가고 싶어하는데 어른들이 잘 들여다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옛날 저 어릴적만 해도 아이들이 골목에서 마음껏 놀았습니다. 차가 없었던 게 가장 크죠. 아이들이 골목에서 안전하게 놀 수 있는 환경이었는데 지금은 아니죠. 골목마다 차가 다니고 아이들 안전을 위협합니다. 또 험한 사고 이야기가 들리면 어떻습니까? 그래서 큰 아이들은 피시방에 가고, 어린 아이들은 안정된 공간에서 놀이선생을 구해 놀게 합니다. 주말이면 부모들이 데리고 가는 놀이랜드 저도 옛날 아이들 많이 데리고 다녔는데요. 자세히 보면 아이들에게 놀이가 주는 신비한 힘, 상상력을 길러주고, 함께 노는 사람들과 관계와 소통
을 넓혀주는 놀이가 없습니다. 그저 소비하는 것만 잔뜩 배워오죠. 비싸고 싼 것을 제대로 , 줄을 빨리 잘 서야 한다는 것도 배웁니다. 어쩌다 한 번 가는 거지 자주 갈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들은 되도록 학교에서 전래놀이와 가장 흔한 자연물에서 놀이를 찾도록 돕습니다. 흔한 자연물, 오랫동안 검증되어온 전래놀이야말로 놀이가 주는 힘을 모두 끌어낼 수 있습니다. 이는 비석치기와 막대기 놀이, 마당놀이를 하며 놀이로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 법을 배우고 관계를 확장하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확인하는 것입니다. 충동과 편향된 쾌락을 높이는 컴퓨터와 스마트폰 놀이로서는 결코 배울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큰 걱정은 많은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스마트폰과 컴퓨터놀이에 대해 관대하다는 겁니다. 다들 그러니 어쩔 수 없다는 말로 아이들에게 더 최신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안겨주어 진정한 자존감이 아닌 소비 신분에서 우월함을 보여주는 매개로 사용하도록 허락하고 있습니다. 너무 막으면 더 그런다는 심리를 모르는 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스마트폰과 컴퓨터 게임의 폐해가 아이들에게 정말 심각하다는 사실을 어른들이 깨달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대충 양보하고 져줄 문제가 아닙니다. 다른 아이들은 모두 있는데 우리 아이만 없어서 어쩔 수 없는 경우가 많겠지요. 우리 아이들 가운데서도 스스로 거부할 수 있는 아이가 얼마나 있겠습니까? 그만큼 대단한 장난감이 출현한 세상인겁니다. 어른들도 확 넘어가 중독되어가는데요 뭐. 그렇기에 더 어른들이 대책을 찾아야 합니다. 건강한 놀이 문화를 만들 필요가 있는 것이지요. 아이들과 끊임없이 이야기하며 함께 해결해 가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초등과정인 우리 아이들이에게는 먼 이야기이지만 중등과정 학교에서는 날마다 이 주제가 토론 거리입니다.
잘 놀 줄 아는 아이가 몸도 마음도 건강하다
잘 놀 줄 아는 아이가 몸도 마음도 건강하다는 사실은 놀이 예찬을 펴는 수많은 전문가와 교육가들이 말하는 것입니다. 혼자서도 잘 놀고 어울려서도 잘 놀 줄 아는 아이야말로 문제 해결 능력도 창의력, 사회성 능력도 좋다는 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프뢰벨은 놀이가 아이의 내적 힘을 발현시키는 완벽한 수단이라고 말합니다. 아이는 놀이로 세상을 배워나갑니다. 높은 학년이 되어가면서 아이들 발달 과정에 알맞게 놀이를 찾아가지만 일과 놀이를 함께 하도록 도움을 주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아이들이 충분히 빠져 놀고 몰입하는 순간이 많도록 아이들처럼 사는 사람이 즐겁게 놀 거리를 찾아내며 아이들과 함께 온전히 빠져서 노는 선생이 되어야 함입니다. 놀아주는 게 아니라 자기가 더 재미있어서 빠져놀아야 아이들 세상에서 줄곧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며 행복하기에 그렇습니다. 아이들에게는 잘 놀아주는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그렇게 아이들과 똑같은 마음으로 놀 수 있도록 몸을 잘 챙기는 게 선생이고 보면 대안학교 선생들은 참 애쓸 게 많은 셈입니다. 아이들 힘을 믿고 아이들 세상에서 아이들 처지와 마음으로 천천히 기다리며 어른과 선생이 할 몫을 찾아야지요.
일과 놀이, 배움을 하나로
아이들에게 일과 놀이는 하나입니다. 일이 놀이인 것이지요. 본디 처음에는 일과 놀이는 하나였던 놀이가 시대가 바뀌어 지금 자본 사회에서는 일과 놀이가 분리되어 있고, 통일이 아닌 분리가 심각한 문제를 낳고 있습니다. 옛날 농촌사회에서 아이들은 자연스레 일하는 부모를 볼 수 있었고, 식구들이 먹고 살려면 아이도 당연히 일을 해야 했습니다. 모내기할 때 모를 나르고, 물심부름을 하고, 못줄을 잡고, 밭에서 함께 감자와 고구마를 캐고, 땔감을 구하고, 동생을 돌보고, 빨래와 설거지도 해야 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요즘 세상은 아이들에게 일이란 책상에 앉아 책을 읽고 지식을 넣는 것 말고는 없습니다. 부모들이 일하는 모습을 볼 수가 없습니다. 노동과 정신의 분리부터 모든 것을 분리해서 파편화시켜 전체를 보지 못하게 하는 사회가 있고, 집마다 아이가 한 둘이고, 예전과 다르게 부모들의 자식 사랑이 넘치는 세상이기에 아이들은 공부만 하라고 하고 부모가 다 해주고 있는 게 보통이지요. 그런데 이건 부모들이 철저하게 잘못하고 있는 거라고 봐요. 농촌사회든 현대산업사회든 정보화 사회이든 아이들이 온 몸을 쓰고 일하는 것은 아이 뇌와 정서 발달에 이루 말할 수 없이 중요하거든요. 어린 시절 쌓은 감성이 얼마나 귀한지 모두 알고 있잖습니까.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일찍부터 아이들에게 학습을 강요하고, 학원으로 돌리고, 거대한 경쟁사회 학벌사회 체제로 밀어 넣고 있는 형국입니다. 어른들이 사는 사회 모습이 그러니 더욱 가관이지요. 경쟁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이 모든 부와 권력을 독식하는 사회에서 살기에, 일찍부터 내 자식은 더 편하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 그릇된 교육체제와 사회정치체제에서 왜곡되어 나타난 모습입니다. 사회가 개판이니 어쩔 수 없다는 말을 내뱉으며 지금 체제에 순응하고 아이들의 자유를 억압하고 아이들의 영혼을 죽여가는 교육에 끌려가는 것은 아이들을 생각하면 더 이상 할 짓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은 선택지가 없다는 듯 그냥 생각 없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실 이런 사회는 우주 137억년 역사와 45억년 지구 역사에서 찰나일 뿐인데 그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은 오래전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잘못된 믿음을 갖기도 합니다. 생각을 하지 못하게 만드는 거대한 자본과 감시 체제에 아이들은 맡기듯, 생존을 위해 돈을 벌기 위해 하루 종일 일을 하며 생각할 시간을 조직하지 못하고 체제에 길들여져 갑니다.
우리 학교 아이들은 일을 많이 합니다. 중노동을 한다거나 아동착취가 아닌 줄은 아시죠. 논과 밭농사를 짓고, 자기 앞가림을 위한 빨래, 설거지, 청소, 음식 만들기, 정리같은 생활 교육, 함께 협력해서 필요한 것들을 만들어가는 손끝 활동입니다. 모든 교육 활동의 바탕이기에 아주 정성을 들이고 있지요. 이오덕 선생님이 말한 일하기 교육의 목표와 방법, 원칙을 잘 지켜가며 아이들 삶을 가꾸고 있습니다.
학교에서 배운 것을 집에서 그대로 아이들이 실천하고 살도록 도와야
그런데 고민인 것은 역시 일에 대한 아이들의 생각의 변화 지점입니다. 일과 놀이가 하나인 삶을 그대로 보인 낮은 학년 아이들과 달리 높은 학년으로 갈수록 일을 하기 싫어하는 아이들이 나타나고 재미없어 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지요. 물론 이것은 아이들의 발달과정에서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이때부터는 정말 보람 있는 일을, 실제 문제 해결을 할 수 있는 일, 성취감을 느낄 수 있도록 아이들이 자발성을 높여줄 수 있는 일거리와 과제를 찾는 노력이 선생들에게 아주 중요하다는 것이죠. 더 재미있는 게 널려있으니 일이 가진 재미에서 생산하는 즐거움, 나누는 가치를 함께 생각하도록 도울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5, 6학년들은 일을 해서 목표 달성이 분명한 활동을 합니다. 일하는 목표를 뚜렷이 하고, 모두가 함께 과정을 즐기며, 온 몸을 써서 일하고, 모두에게 일하는 댓가가 돌아가는 일감이면 아이들은 일에 빠져들며 일하는 재미를 느낍니다. 졸업여행비 마련이라는 뚜렷한 목표가 있으니 일이 즐거운 것이죠. 청국장, 밀랍초, 목걸이, 대나무활, 레몬차, 콩나물, 곶감, 장신구를 만들어 장터를 열고 돈을 벌어 여행를 갑니다. 스스로 열심히 일해 백두산도 가고 제주도도 가고 가고 싶은 곳으로 떠나 배우고 돌아옵니다. 정말 많은 것을 만드는 일을 하며 아이들은 일하기 두 측면 앎과 행함을 익혀갑니다. 일하는 과정에서 얻는 땀과 정성, 협력, 고마움과 나눔의 가치들은 일하기 교육에서 아주 자연스러운 것일 뿐이죠. 그러니 선생과 부모는 학교에서 배운 것을 집에서 그대로 아이들이 실천하고 살도록 도와야 합니다. 학교에서 배운 설거지, 빨래, 청소, 음식 만들기를 집에서 하도록 해야 합니다. 집안일에 참여하는 즐거움, 당연히 해야 할 몫, 온 몸을 발달시키는 일, 자기 앞가림과 함께 살기가 자연스레 배일 것입니다. 물론 아이들은 하는 힘과 수준을 알고 있다면 어른이 다시 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많을 수 있습니다. 그래도 아이들이 자기 앞가림은 스스로 하도록 부단히 수준을 높여줘야 합니다. 아이들은 어른들과 동등하기를 바라지요. 어른들을 모방하고 싶어 하며 얼른 어른이 되고 싶어 합니다. 이런 아이들의 마음이 건강하게 발현되도록 교육이 이끌어야 합니다. 가정과 학교에서, 사회에서 말이죠. 그런데 지금 우리 사회는 아이들을 자꾸 일과 분리시켜가고 있습니다. 몸을 써서 일하는 것이 얼마나 가치 있고 세상을 존재하게 하는 힘이란 것을 겪어보게 하며 배우게 하기보다 책상에 않아 문제집을 풀게 하고 시험에 대비하는 공부를 하게 하며 아이들의 머리와 가슴, 손발의 조화로운 발달을 막고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전자기기와 대중매체에 포위되어 소비문화 속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에게 일하기 만한 좋은 교육은 없다고 봅니다. 일은 땀을 수반합니다. 가치를 수반합니다. 생산자의 삶을 일찍부터 가르쳐야 합니다. 아이들이 안쓰럽다고 아이들의 타고난 본성을 막아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고대 위대한 교육사상가들이 강조한 교육 방식이었습니다. 확신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일과 놀이로 교과 통합을
선생들의 고민은 일하기와 여러 교과를 연결시켜 배움을 확대하고 깊게 하는 것에 있습니다. 비노바바베가 쓴 [삶으로 배우고 사랑으로 가르치라] 책은 일하기 교육을 절절하게 강조하고 있습니다. 풀무학교와 변산공동체학교가 으뜸으로 삼은 일하기 교육도 같다고 생각합니다. 작업장학교처럼 일하고 공부한다는 것입니다. 음식을 만들며 화학을 배우고, 텃밭에서 생물과 과학을 끌어내며, 자연속학교 여행에서 사회와 역사를 끌어냅니다. 물리학이나 기하학 모두 삶에서 모두 끌어내야 한다는 것이지요. 아이들의 흥미와 관심을 바탕으로 일을 하고, 일을 통해 배움을 확장해가는 것, 사회 구조를 들여다보게 하는 것은 많은 대안학교에서 운영하고 있는 주제학습과 프로젝트학습의 형태입니다.
맑은샘 아이들은 날마다 양감을 익히고 일놀이와 교과통합 수업을 벌여갑니다. 선생들의 준비 역량에 따라 다르기도 하겠지만 전체로는 교과 통합에 대한 활동을 끊임없이 조직하고 실천하고 있다고 보시면 됩니다. 봄에 호박씨를 넣어 호박 모종을 만들어 텃밭에서 심은 호박을 가을에 갈라 호박씨를 세며 수학을 하고 호박죽을 써서 모두 새참으로 나눠먹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날마다 텃밭에 가서 식물을 살피고 거둬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아이들입니다. 우유 곽을 모아 재생 종이를 만들고, 놀이에 필요한 그네와 축구골대, 나무위의 집을 만들어냅니다. 대나무로 팬플릇을 만들고, 나무막대기로 놀이를 만들어 내지요.
예전에 말한 적이 있는 것 같은데 지난해 곶감을 만들 때였습니다. 낮은 학년 아이들을 여러 모둠으로 나눠 곶감을 깎는 일을 했습니다. 물론 목표는 곶감을 만들어 6학년 졸업여행비를 돕고 우리가 먹을 곶감을 직접 만드는 것이었죠. 먼저 네 모둠에게 감 33개씩 나눠준 뒤 숫자세고 양감 익히기와 셈 놀이를 한참 했습니다. 감으로 더하기와 빼기, 곱하기, 나누기 사칙연산을 하며 노는 것이죠. 그리고 분류하는 법을 보고 싶어 모둠마다 33개의 감을 누구나 보기 쉽게 배열하라고 말했습니다. 어떤 모둠은 10을 기준으로 묶고, 또 어떤 모둠은 5을, 2을 묶으며 여러 가지 방식으로 33개를 알려주는 분류를 잘 해냈습니다. 그런데 우리 3학년 한주 모둠은 어떻게 했는지 아세요? 감으로 아예 33이란 숫자를 만들었어요. 감을 배열해 33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 교사가 말한 뜻과는 다르지만 얼마나 기발합니다. 대단하다며 얼마나 칭찬을 했는지 몰라요. 정말 상상력이 좋지 않나요. 저는 평범함에서 비범함이 나온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아주 장난꾸러기로 유명하지만 흥미있는 놀이와 공부에는 충분한 시간이 있으면 대단한 집중력을 보여주기 때문이죠. 우리 아이들은 이렇게 잘 자라고 있습니다.
논농사도 벌써 4년째 짓고 있습니다. 저는 교육의 일관성과 깊이를 크게 생각합니다. 교육은 일관될 때 꾸준히 전개될 때 울림이 있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아이들과 살아가며 느끼고 있습니다. 그때 흥미에 따라 이것 찔끔 저것 찔끔 해서는 수박 겉 핱기에 그치는 경우가 많지요. 보통 많은데서 하는 체험교육이 아이들에게 내 삶과는 관련 없는 특별한 경험으로 그치게 해서 교육을 망치는 것을 많이 봐서 그렇습니다. 아이들에게 일은 집중력 있게 빠져들 시간과 기회가 충분해야 합니다. 그것을 반복해 삶에서 실제 써먹을 수 있는 익힘의 시간이 절대 필요합니다. 그래서 배움을 깊이 있게 가져가려면 잠깐 하거나 한 해 반짝 하는 일은 되도록 피하고 꾸준히 하도록 도울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물론 다양한 일거리, 아이들마다 뿜어내는 흥미와 결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다양한 일거리가 보장되어야 합니다. 문제는 선택과 결정을 오롯이 스스로 한다는 자율과 자발성을 북돋는 데 있지, 스치듯 한 번 해 보고 그치도록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지요.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식의주와 주인으로 함께 살기는 일하기 교육의 정신이자 갈래입니다. 그래서 선생들이 일하는 과정을 잘 알 수 있는 배움이 많아야 합니다. 일머리를 기르려고 애를 써야 합니다. 텃밭농사도 그렇고, 아이들에게 보여주는 일하기가 아이들에게 그대로 영향을 주어 선생을 따라 배우기에 그렇습니다. 목공, 음식, 농사, 많은 손끝활동을 배우고 나누는데 정성을 들여 할 까닭이 여기에 있고, 교사 연수의 핵심으로 잡아야 하고 거기에 필요한 재정을 마련해야 합니다.
일찍이 이오덕 선생님도 말씀하셨지만 사람은 누구나 일을 하고 일을 하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습니다. 또한 지금 일과 놀이, 학습이 나뉘어 있는 게 큰 문제입니다. 동양과 서양 모두 일하기 교육은 중요하게 여겨져 왔습니다. 머리와 가슴과 손의 조화로운 발달을 말한 페스탈로치, ‘노작’ ‘일’ ‘노동’ ‘아르바이트’라는 개념을 제시하며 손으로 하는 일이 인간 형성과 교육 전반에 바탕이 되어야 함을 말한 케르쉔슈타이너, 일하는 학교를 말하며 아이들에게서 놀이 욕구보다 작업요구가 더 크다고 본 20세기초 프랑의 개혁교육자 셀레스탱 프레네, 노작교육의 개념을 종교와 결합시킨 오토 에버하르트, 헤겔의 ‘노동이 자유롭게 한다’는 생각에 주목하면서도 다른 한편 이것을 노동에 대한 마르크스 생각과 대비시키며 근대 산업 노동에서 자본주의적 강요로 인해 발생하는 인간소외 문제를 지적한 에드아르드 슈프랑어, 노동과 지식을 구별하여 지식교육에 치중하는 현대 교육을 비판하며 ‘일하면서 하는 공부의 원리’로 노작교육론을 강조한 비노바바베도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오덕 선생님이 말한 일하기 교육 정신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일하기를 가르치는 것보다 더 소중한 인간교육이 없다.
<사람이 살려면 일을 해야 되고, 산다는 것은 일한다는 것이다. 일하지 않고 살아갈 수 없다. 일을 통해 우리는 삶에 필요한 모든 것을 얻고, 삶의 수단을 몸으로 익히고, 자연과 사회의 참모습· 참이치를 깨닫고, 살아가는 지혜를 얻는다.(중략) 사람이 일을 해야 하는(일하기를 가르쳐야 하는) 두 번째 까닭은 사람다운 느낌과 생각을 가지기 위함이다. 일에서 떠나 있는 사람, 일하지 않는 사람이 살아갈 수 있는 길은 일하는 사람에 의지하는 것뿐이다. 남에 기대어 살아가는 사람의 느낌이나 생각이 어떻게 바른 것일 수 있겠는가? 그런데도 그런 사람들의 느낌이나 생각이 여러 가지 형태의 말과 글로 세상에 알려지고 있다면 그 해독이 매우 크다. 거듭 말하지만 사람은 살아가기 위해 일을 해야 하며, 또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도 일해야 한다.>
일은 언제부터 가르쳐야 하나
일은 아주 어려서부터 가르쳐야 한다. 어린 아이가 무슨 일을 하겠는가? 나이가 좀 들어야, 적어도 여남은 살은 되어야 일을 할 수 있지―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그런 생각은 일과 아이들의 본질을 모르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잠시도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한다. 항상 움직이고 활동하고 싶어한다. 아이들이 움직이는 것, 활동하는 것, 그것이 일이다. 일이 되게 하는 것이다. 즉, 놀이와 일이 하나로 되어 있는 것이 아이들의 활동의 특징인데, 그런 즐겁고 재미있는 일을 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본디 인간의 일은 즐거운 놀이와 같은 것이었다고 본다. (일이 고통스러운 것이 되었다면 그런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사회가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어린애들이 부모가 하는 일을 따라 하고 싶어하는 것을 보면 곧 알 수 있다. 엄마가 빨래를 하는 것을 본 아기는 저도 손수건을 물에 담가 빨고 싶어하고, 아버지가 짐을 져 나르는 것을 보면 저도 지게를 지고 싶어한다. 그것이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본디부터의 마음이다. 만약 아이들이 부모의 일을 따라서 하고 싶지 않아 한다면 그것은 가정 밖에서 받은 잘못된 사회적 영향 때문이다. 일을 할 수 없는 아주 어린 아이들은 하다 못해 소꿉놀이라도 해서 부모들의 삶을 흉내내는 것 아닌가. 이렇게 보면 사실은 아이들에게 일하기를 가르친다는 것이 맞지 않는 말이다. 아이들이 저절로 일을 하도록 도와준다고 하는 것이 옳겠다. 그러니까 마땅히 어릴 때부터 일을 하게 해야 하고, 어릴 때부터 할 수 있는 일을 하도록 해야 한다. 어릴 때부터 손발을 적당히 움직여 일을 함으로써 몸이 자라나게 하고, 지혜가 늘도록 하고, 세상을 알게 해야 한다. 이것이 아이들을 행복하게 하는 길이고, 참교육이다.
일하기의 목표
일을 할 때는 어떤 일이든지 우선 그 일의 결과로 얻게 되는 눈에 보이는 것―물질의 획득이라든가, 작업 대상물의 형태의 변화 같은 것을 생각하게 되고, 사실상 그것을 무시할 수는 결코 없다. 눈으로 볼 수 있는 어떤 결과가 있기에 그것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일하는 것이다.
그러나 가정에서도 그렇지만 특히 학교에서 교육으로 일을 하게 할 때는 일의 결과만을 기대하게 해서는 안 된다. 결과보다는 오히려 일하는 과정을 중히 여겨야 한다. 일을 하기 위해서 한다고 말하면 좀 이상한 말 같지만, 일을 놀이나 운동과 크게 구별하지 않는 상태로 할 수 있게 한다면, 결과야 어떻게 되든지 일하는 자체가 재미있고 즐겁고, 그 일하는 과정에서 온갖 유익한 지식과 기능과 지혜와 건강을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또 한 가지는, 미리 어떤 뚜렷한 학습의 목표를 세워두고 하는 일이다. 목표는 어떤 발견, 지식의 획득인데, 손발을 움직여 일하고 고심해서 그것을 발견하고 깨닫게 하는 것이다. 가만히 앉아서 귀로 듣거나 눈으로 보기만 해서 알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 그곳에 찾아가 보고, 애써 조사해 살피고, 실험해 보고, 땀 흘려 일해서 비로소 얻는 것이 더욱 확실한 지식이 될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이것이 이른바 노작교육이다. 노작―일하기는 아주 옛날부터 우리 인간교육에서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알려졌던 것이다.
일하기 교육의 두 옆면
학교 교육의 가장 중요한 목표의 하나로 설정되어야 할 것이, 일하기를 즐기면서 살아가는 사람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그리고, 모든 교육의 과정은 될 수 있는 대로 일을 하게 함으로써 그 학습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함이 바람직하다. 일하기는 교육의 목표요 수단이요, 교육과정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일하기를 가르침에는 앎과 행함의 두 옆면이 있다.
첫째, 앎의 옆면에서는 역사라든가, 사회라든가, 과학이라든가, 철학이라든가, 그 밖의 모든 교과, 모든 분야에서 사람이 흘리는 땀이 얼마나 소중하고 얼마나 위대하였는가를 깨닫게 한다. 한편 사람의 한 일이 사람을 행복하게 하지 못하고, 반대로 사람을 끔찍한 불행으로 몰아가게도 하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그리하여 어떻게 하면 사람이 하는 일이 평화를 가져오게 하고, 모든 사람을 행복하게 할 수 있는가를 생각하게 해야 할 것이다.
여기서 또 한 가지는, 우리들 각자가 나날이 하고 있는 일이 비록 보잘것없는 것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국토의 통일을 가져오는 일에 조금이라도 이바지할 수 있는가, 그렇지 못한가를 기회 있을 때마다 생각해야 한다는 가르침도 주어야 하겠다.
다음은 행함, 곧 실제로 일하는 것이다. 아무리 머리로, 일함이 귀하고 일하는 사람이 훌륭하다고 알고 있어도 스스로 일하지 않으면 그러한 앎은 소용이 없고, 쉽게 버려질 수 있는 거짓된 앎이 된다. 몸으로 행해야만 그 앎은 살아 있는 제 것으로 되고, 창조적인 앎으로 되는 것이다.
앎이 없이 행함만이 있어도 유익할 수 있지만, 행함이 없는 앎은 해롭기만 하니, 인간교육에서 앎보다 더 기본되는 것이 행함이요, 앎은 행하기 위한 것으로 되어야 한다고 본다.
일하기 교육의 원칙
첫째, 모든 사람이 다 해야 한다. 한 사람도 빠지는 일이 있어서는 안된다. 한 학급을 단위로 하는 교육이라면 그 학급 어린이 모두가 참여해야 한다.
둘째, 학습하는 사람의 힘에 맞게 해야 한다. 나이(학년)에 따라, 때로는 남녀와 개인별 신체 조건까지도 생각해서 일의 양이나 내용이나 정도를 달리 할 수 있어야 한다. 결코 힘에 넘치는 일을 하도록 할 것이 아니다.
셋째, 앞에서도 말한 바이지만, 결과보다 과정을 무겁게 여겨야 한다. 결코 어떤 결과를 얻기에 바빠서는 안 된다.
넷째, 일하는 시간이 너무 길어서는 안 된다. 예상한 결과를 얻지 못하더라도 아이들이 일에 지쳐 있거나 일하기가 지겨운 상태에 되었으면 곧 그만두는 것이 좋다.
다섯째, 보람을 느끼도록 해야 한다.
그렇게 하자면 학습자 스스로 목표를 세우고, 계획을 짜고, 일을 한 다음에는 그 과정과 결과를 살펴서 서로 의논하고 반성하고 평가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첫댓글 귀한 글 잘 읽었습니다. 다음에 또 두고 두고 여러번 읽어볼게요.
고맙습니다. 덕분에 부족한 글속에 담긴 생각을 다시 살핍니다^^
어제 열리는 아마를 하면서 이야기를 전할수 있었습니다. 진짜 거리낌없이 이야기할 수 있게 늘 신경 써주셔서 감사해요. 올해 열리는 아이들은 산딸기맛을 그리 볼 수 없었다는말이 들려 조금.. 뭐라 할까요.. 우리는 아닌데도 혹시나하는 마음.. 확인해주신덕에.. 생각대로 행해주신덕에 제가 더 당당해질 수 있었습니다.
열리는에서도 형님들이 들어와서 동네가 더 신나지고 좋아졌다고 하시네요. ^^진정한 함께 사는 동네를 만들어주셔서 감사해요
고맙습니다. 산딸기 좀 따서 우리 동생들 가져다줄까요^^ 따는 재미가 더 좋으려나ㅋ
@전정일 그러면 진정한 인기인이 되실겁니다. 꼬찔찔이들의 영.웅.으로 등극되실겁니다.. 흐흐흐~^^
선생님.. 항상 애써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