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도심속 작은집 이야기, 후암동 협소주택
작은 땅에 지은 집은 치열하다. 그래야만 사는 사람이 불편하지 않을 수 있다. 창을 내고 방을 연결하며 도로와 관계 맺는 방법까지도 철저해야 한다. 후암동 작은 집 이야기다.
(부부 침실과 단차를 두고 연결된 다실. 창 밖으로 보이는 구도심의 오래된 지붕과 골목길이 정겹다)
(구도심에 짓는 협소주택은 좁은 대지를 극복하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서울의 허파 남산자락에는 숨겨진 보물 같은 동네, 후암동이 있다. 단독과 다세대가 섞여 있고 큰 집과 작은 집이 공존하는 동네. 다른 빛깔과 크기의 구슬을 꿰어놓은 마냥 다양한 삶이 옹기종기 모인 동네에 하얀 빛깔 작은 구슬 하나가 모습을 선보였다. 골목을 환히 밝히는 집이다.
65㎡가 채 되지 않는 땅, 작은 필지는 적어도 서울 시내에서는 이제 만들어내려 해도 만들 수 없는, 옛 도시 조직의 산물이다. 건폐율 60%의 법규를 따르다 보니 집을 지을 수 있는 면적은 35㎡ 남짓, 6m 도로 사선제한으로 최고높이는 9m까지만 허용된다. 하지만 이곳에 지어진 집은 결코 작지 않다. 모든 바닥 면적을 합친 119㎡는 웬만한 46평형 아파트 전용면적과 맞먹는다. 밋밋하게 펼쳐진 단층이 아니라 층을 오가고 높이의 변화를 주니 실제 사는 이가 체감하는 볼륨은 더 크다.
(대지 앞 6m 도로로 사선제한에 제약이 적은 대지 조건을 갖췄다)
협소주택은 면적을 아껴야 하기에 그 구성이 치밀하다. 이 집도 마찬가지. 4개 층은 모두 다른 구성, 다른 평면, 다른 배치로 이뤄진다. 1층 일부를 필로티로 들어 올려 주차공간을 만들고 나머지 부분은 남편의 아늑한 서재로 쓴다. 한 층을 오르니 스킵 형태로 주방과 식당, 거실이 등장한다. 거실과 여타 공간을 구분하는 장치로 세 개의 단차가 있는데, 재밌게도 손님이 오면 이 계단과 옆의 난간까지도 의자이자 선반이 된다. 주방이 단절되어 있지 않아 부부가 함께 TV를 보며 식사를 준비할 수 있고, 다과 준비를 하며 담소도 나눌 수 있으니 동선과 대화가 끊어지지 않는다. 아파트보다 면적은 작을지언정 그곳에서 일어나는 행동은 더 다양해졌다.
(스킵플로어 방식으로 공간을 쌓았다. 과하지 않은 단차는 때로는 경계가 되기도 하고, 손님이 오면 의자로 쓰이기도 한다)
HOUSE PLAN
대지위치 서울시 용산구 후암동
대지면적 62.10㎡(18.79평)
건물규모 지상 4층
건축면적 35.10㎡(10.62평)
연면적 119.06㎡(36.02평)
건폐율 56.52%
용적률 191.72%
주차대수 1대
최고높이 9.46m
공법 기초 - 철근콘크리트 매트기초, 지상 - 철근콘크리트
구조재 벽 - 철골철근콘크리트,지붕 - 도막방수 위 무근콘크리트, 위 방부목 데크 마감
지붕마감재 방부목 데크 마감
단열재 비드법단열재 2종 3호 120mm
외벽마감재 STO 외단열시스템
창호재 KYC Tilt & Turn AL창호(창호등급 3등급)
설계 (주)공감도시건축 건축사사무소, 이용의, 신화영, 최연정,
시공 투핸드디자인
(가구와 가족의 살림살이가 돋보일 수 있도록 실내는 흰색 V.P 도장과 나무로 간결하게 디자인했다)
Interior Source
내벽 마감재 V.P 도장
바닥재 동화 원목마루
수전 등 욕실기기 대림바스
주방 가구 대림바스 + 자체제작
조명 LED조명 + 자체제작
계단재 나왕 집성목
현관문 오크
방문 목재도어 + V.P 도장
붙박이장 한샘 + 자체제작
데크재 방부목
(세 식구가 사는 데 부족함 없이 구성된 거설과 주방, 식당의 공용공간)
3층은 장성한 아들의 방으로, 4층은 다실과 침실이 있는 부부의 공간으로 꾸려졌다. 5층 옥상에는 너른 테라스와 욕조를 두어 바깥 공기를 마실 수 있는 가족만의 공중정원을 만들었다. 모든 층에는 수납공간과 욕실이 짝을 이뤄 붙어 있고, 층과 층을 연결하는 동선은 북쪽에 위치한 계단이다. 공간을 차곡차곡 쌓아 만든, 작지만 큰 집이다.
(4층 옥상의 일부는 욕조를 두어 건축주의 휴식공간으로 삼고, 나머지는 데크로 마무리한 뒤 폴딩도어를 달아 안팎이 통하도록 했다)
집이 지어진 배경은 이렇다. 오래 전부터 가족에게 딱 맞는 맞춤형 공간을 원했던 건축주 부부는 외국의 협소주택 사례를 보며 좁은 땅이지만 알차게 면적을 확보하는 것에 매력을 느껴왔고, 북촌과 서촌을 비롯한 서울의 단독주택 도심지를 다니며 조건에 맞는 땅을 찾아다녔다. 적당한 곳을 발견하고 계약하기 며칠 전, 무슨 생각에서였는지 ‘후암동 단독주택’을 검색했다는 건축주는 뜻밖에도 이 땅과 건축가를 찾아냈다. 마치 진흙 속에 숨은 진주를 찾아내듯이 말이다.
(주차공간 때문에 1층 실내 폭은 위층보다 좁지만, 건축주가 서재로 사용하기에 조금의 불편함도 없다)
우연처럼 들리겠지만, 건축가에게도 이 조우는 절차탁마(切磋琢磨)의 결과였다고 한다. 설계자 이용의 소장은 그야말로 ‘집’을 짓기 위해 독립한 소신 있는 건축가다. 한창 인기를 끈 땅콩집 열풍이 일어나기도 전에 이 작은 땅을 사두고는 집 지을 건축주를 기다렸다는 것이다. 땅의 건축 조례와 법규, 만들어내고 싶은 동네의 풍경까지도 머릿속에서 수차례 시뮬레이션했고, 작은 집을 짓기 위한 사례 조사만도 몇 년이었다. 대형설계사무소라는 안정된 직장에서의 탄탄한 앞길이 보장되어 있었음에도 주택에 관심을 기울인 이유가 인상적이다. “우리나라는 돈이 많은 사람을 제외하고는 아파트나 다세대 같은 공동 주거밖에 주거형태의 선택지가 없었죠. 의식주 중 하나인 주거도 삶의 기본인데 말이죠. 이제 건축가가 그 기본을 해야 할 때이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오래 기다렸지만, 그 덕에 이렇게 뜻이 맞는 건축주를 만날 수 있었으니 ‘만날 사람은 만난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건가 보다.
이 집이 지어지며 동네에는 새로운 활력이 생겨났다. 몇 개의 필지를 합쳐 최대한 많은 사람이 살 수 있는 공동주택을 짓는 것 만이 능사로 여겨졌던 도심 한복판에, 작지만 마당을 가진 단독주택을 짓는 것. 그저 하얀 집 한 채 지어졌다는 의미를 넘어 도심 속 사라져가는 단독주택에 대한 건축가와 건축주의 소신이 지어진 듯해 문득 응원의 메시지를 던지고 싶어진다.
아파트에서 벗어난 삶. 모두 불편할 거라 했고 번거로울까 염려했지만, 살아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맞춤형 공간’에 부부의 만족은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모든 층 모든 공간을 버리는 곳 없이 알차게 누리기에 부족함이 없다.
밤이 되자 창문 너머로 보이는 골목길 풍경이 더욱 예쁘다. 가로등이 켜지고 남산으로 산책 나서는 사람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낸다. 건축주도 이제 막 식구가 된 진돗개와 나갈 채비를 서둔다. 오늘도 후암동 작은 집에서 배어 나오는 노란 불빛이 골목을 따스하게 물들인다.
(아들이 출가하면 실내벽 일부를 제거해 복층 거실을 만들 수 있도록 벽체 일부분만 조적으로 쌓았다)
토지사랑 http://cafe.daum.net/tozisar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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