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그런대로 괜찮은 머리에, 운동신경이라고 생각하며 세상 살아왔지요. 외모는 좀 많이 특출하게 잘났지만, 뭐 하나 남보다 떨어진다는 생각은 없었네요. 대충 남들 보는 시험도 다 붙었고, 남들 한다하는 공부도 다해봤고, 운전면허도 대략 한 번 만에 붙고, 어디 가서 남의나라 말로 떠들라고 해도 대충 다 합니다. 어지간하면 여자들이 한 번 더 돌아볼 외모도 되고, 특별히 남한테 죄짓고 그랬던 것 같지는 않네요. 군대시절에도, 졸병이 하라는 헌혈 안하고 도망다니길래, 시범을 보였던 고참으로서 한 대 때린 것 말고는, 별로 미안한 일도 없었네요. 말하자면 죄도 없이, 뭐, 주차위반, 신호위반 몇 번 정도로 양심적으로 살아오며 남들에게 별로 떨어진다고는 생각을 안했단 말입니다. 이 잘난 제가.
골프시작하니까, 다들 신동이라고 난리가 났습니다. 두달만에 88개를 치니까, 저를 가르치시던 노인네 프로님은 땅을 치더라구요. 너, 왜 이제 나타났니. 십년만 먼저 나타났으면 나, 너 가르치는 일에 목숨 한 번 걸었을 거다. 그렉노만 (그당시 세계랭킹 1위)은 지금 용궁갔다 온거다. 지역대회의 B Class에서 준우승해버렸습니다. 6개월도 안되어서 82타를 쳤습니다. 그것도 전반 9개 오버, 후반 1오버였지요. 후반에 37개, 파 6개, 보기 두 개, 버디 한 개... 싱글이 코앞에서 꼬리를 칩디다. 그게 다 9년 전 얘기입니다. 야, 이거 30대에 싱글이 되어도 되는 거야? 지레 겁부터 먹었을 땝니다. 싱글되면 안된다, 아 이제 연습도 하지 말자. 이러다 싱글하고 홀인원 한 달에 한번씩 하면 돈, 억수로 깨진다. 일부러 싱글도 안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잘난 제가 말입니다. 이렇게 9년이 지났는데요, 신동은 커녕, 젠장, 얼씨구, 지화자, 얼라리, 피식, 환장, 육갑같은 소리하고 자빠져 있습니다. 싱글이요? 얼씨구, 지화자, 얼라리... 요새 다시 백돌입니다. 연습을 안하냐구요? 이거 왜 이러세요. 지난 번 글에 분명히 썼잖습니까? 6개월에 10킬로 뺐다고. 그거 다 달리기와 골프연습으로 뺀 겁니다. 그럼 이론공부를 안했나구요? 어허, 자꾸 왜 이러세요. 연습장에서 못생긴 한 프로가 제게 이론 물으러 옵니다. 제 이름이 뭡니까. 오 입싱글 아닙니까? 요새도 비행기만 타면 잡지코너에 가서 골프책부터 빼돌립니다. 적어도 아시아권에서, 골프치시는 분 들 중에, 저 모르시는 분 있습니까? 아니아니, 아시아권이 아니라 동양권에서, 미국 서부지역을 포함해서... (휙, 휙, 돌이 날아오는 소리가 들리지만, 그래도 굳세게...) 제가 그렇게 이론공부도 좀 했다 이겁니다.
그런데... 얼마전에도 나가서 95개 쳤습니다. 도우미님이 봐줘서(? 뭘 봐줬을까?) 100개는 안넘게 조치(?)해주셨답니다. 같이 나가셨던 분들.. 뭐, 고만고만했습니다. 다들 보기 플레이 하신다더니, 웬 100개, 105개랍니까? 저도 지지리 안맞았지만, 그냥 돈따는 재미로 쳤습니다. 덕분에 거래처 오더는 날아갔습니다. 더블보기를 해도 먹는데 어쩌란 말입니까? 모처럼 어려운 분들 모시고 접대 좀 하려했더니, 안하느니만 못하게 되었습니다.
도대체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걸까요? 연습을 안했다구? 아니라니까... 공부를 안했나? 어허, 아니라니까... 운이 안좋아서? 젠장, 왜 나만 운이 안좋을 리가 있어? 비가 와서? 야, 비안왔어... 술을 너무 먹었나? 야, 나 술 끊은지 20년이다... 운전을 해서? 운전, 니가 했잖어... 등등 골프가 안맞는 365가지의 이유를 다 손꼽아 봐도, 결국 마지막 이유 밖에는 안 나오는 겁니다. 마지막 이유, 다들 아시죠? 골프가 안맞는 마지막 이유... “이유없이 안맞는...”
골프 끊는다는 협박은 재작년에 한 번 했다가, 속절없이 여기저기 퍼가셔서, 소문만 무성했고, 쪽만 팔렸으니, 또다시 끊는다는 말은 못하겠고, 열심히 하겠다는 말은 회사 접고, 골프만 쳐야 될 지경으로 그동안 열심히 했는데 그래도 안되니, 그 말도 못하겠고. 나, 이거 어떡해야 할려나... 그래도 여기저기 불려가면, 아, 이분이 바로 그 잘생긴, 골프작가시구나 하면서들 핸디도 안주고... (골프작가니까, 오죽이나 잘치시겠어... 하면서..) 어지간한 싱글이면 스크라치로 치자고 덤비는 판이니, 금전적으로도 손해가 막심하고... 옛날같으면 연습안했다고 뭉갤 텐데, 촐랑대며 칼럼에다 열심히 했다고 해놨으니, 그것도 변명이 안되겠고... 제가 요새 이렇게 삽니다.
같이 치던 분과 하나하나 분석을 해봤습니다. 드라이버? 맞으면 300도 훌쩍 넘깁니다. 아이언? 어허, 6번이 200야드 나간다니까요. 어프로치? 이거 왜 이러세요. 60도 웨지로 로브샷하는 아마는 나밖에 없던데요? 퍼팅? 제가 별명이 최 퍼팅입니다.
그런데 왜 백개를 치십니까? - 그분이 빙긋이, 매우 심히 엄청 기분나쁜 비웃음으로 이렇게 물으셨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질문에, 조금전까지 의기양양, 줄줄이 답변을 해대던 때와는 달리... 그냥 고개만 푹 숙였습니다. 이상하단 말야, 필드 나가면 굿샷 소리는 제일 많이 듣는데, 성적은 제일 꼴찌야...
그래서 저는 이제 비장한 심정으로 다음과 같이 선언하는 바이오니, 만천하 팬들께서는 명심하시고, 만약 불행한 사태가 벌어지더라도 침착하게 주위를 돌아보면서 대처하시기를 바랄 뿐입니다.
아직도 신동의 총기를 발휘하지 못하고, 10년째, 백개를 치고 있는 이 아픈 현실을 극복하지 못할 시에는, 오등은 자에 아 조선의 골프장임과, 조선인의 골퍼임을 선언하노라, 아니아니, 그게 아니고... 저, 정말 골프 끊을 겁니다. 이건, 정말 제 이름을 걸고, 분명히 선언합니다. 골프를 끊으면, 당연히 골프칼럼도 끊을 겁니다. 이거, 충격 좀 될 겁니다. 만천하 팬여러분, 저 지난 10년간 싱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앞으로 20년을 더 열심히 해보고 그래도 싱글이 안되면... 저 정말 골프 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