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좋은 생각에서 읽었습니다.
웃음이 터져 나오는 데 웃지 못 할 이야기입니다.
그녀는 부모님을 일찍 여의고 언니를 부모처럼 생각하며 자랐습니다.
결혼한 뒤 시부모님이 알뜰히 챙겨 주셨지만 여러모로 힘든 건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특히 명절이 되면 온가족이 함께 오는 시누이나, 아침상을 물리자마자 친정으로 쪼로로 달려가는 동서가 부럽기가 한이 없었습니다.
그 때마다 언니가 사는 부산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닦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부산 갈 핑계가 생겼습니다.
수술할 일이 생긴 겁니다.
치질 수술인데, 대부분 두려워하는 수술이지만 그녀는 설레이기만 했습니다.
수술 핑계로 부산을 갈 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의사는 통원 치료만 해도 괜찮을 거라고 했지만, 그녀는 아픔을 뻥튀기하면서 수술을 고집했습니다. 언니네 집 앞에 있는 병원에서 수술해야겠다고 남편을 설득했습니다.
마침내 다섯 살짜리 아들을 데리고 부산으로 갔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언니가 보고 싶어서였습니다. 언니와 만남은 정말 짜릿했습니다.
드디어 수술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다음날 마취가 풀리자 밀물처럼 밀려는 오는 통증이 어찌나 심하던지, 오히려 수술한 것을 후회하기도 했습니다.
좌욕 할 시간이 되었다고 간호사가 알려왔습니다. 겨우 겨우 일어서서 통증을 참아가며 벽을 짚고 어기적 어기적 걸음을 옮겨 좌욕하는 병실 문에 도착한 순간, 그녀는 머리끝에서부터 발끝까지 찡하는, 말로 다할 수 없는 통증으로 기절하고 말았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뒤따라오던 다섯 살짜리 아들 녀석이 어디서 배웠는지 어기적거리는 엄마의 거시기에 글쎄 똥침을 놓은 것입니다.
자식만 아니라면, 아니 발자국을 마음대로 뛸 수만 있어도 아들 녀석을 그냥 두지 않았을 것입니다.
잠시 뒤 눈을 떠 보니 언니와 남편은 배꼽을 잡고 웃고 있었습니다.
언니가 말합니다.
“미안해. 얼마나 아프니?”
부축하는 언니를 오히려 울면서 째려 봤습니다.
20 년 전 일인데도 그 아픔이 너무 선명합니다.
어쩌면 그 사건 때문에 먼저 하늘 나라간 언니가 눈물 나게 보고 싶어지는 것인지도 모를 일입니다.
(2) “딩동 딩동”
새벽 두 시에 약국 벨이 울립니다.
약사가 눈을 비비며 문을 열었습니다.
30대 초반의 부부가 서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인터넷보고 찾아 왔는 데 정말 24시간 약국을 운영하시네요. 네 살짜리 아이가 배변이 되지 않아서 관장약을 사러 왔습니다.”
약사는 관장약을 내 주면서 주의할 내용도 몇 가지 일러 주었습니다.
“약사님, 남가좌동에서 부천까지 찾아왔습니다. 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랫동안 심야 약국을 열어 주세요.”
2010년부터 심야 약국을 운영하는 분의 이야기입니다.
한 밤 중에 약을 찾는 사람이 있으니 나 혼자만이라도 약국 문을 열어 놔야겠다고 생각했답니다.
“그래, 24시간 약국에서 놀자. 약국 놀이를 하자.”
가족들에게는 깊이 양해를 구했습니다.
“여보, 해외 봉사활동도 나가는 데 이해해줘.”
얼마 전엔 떡꾹과 부침개를 들고 온 손님도 계셨습니다.
“설날에 고향에도 못가시고 저희를 위해 수고하시잖아요.”
그 약사님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중에 묘비에 ‘여기 심야 약국을 위해 미친 사람 잠들다.’라고 적히는 것이 꿈입니다.”
으와, 세상엔 이렇게 자기를 희생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살 맛 나는 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