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사를 맞으면 병이 빨리 나을까?>
이 길 수
평소 진료실에서 환자를 대하다 보면 세상 돌아가는 것과 사람들의 생각들을 간접적으로 느끼거나 알게 되는 것들이 많다. 원래 병원이라는 곳이 특정과목을 제외하고는 다양한 연령층과 또 다양한 직업군, 그리고 다양한 사회 계층을 접하다 보니 당연한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도 잘 변하지 않는 고정관념이라는 것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중 진료실에서 겪게 되는 몇 가지 잘못된 생각들을 잠깐 나누었으면 한다. 특히 약물 투약과 관련된 부분에 대해서는 좀 독특한데 유독 한국적 정서에 깔려 있는 오해에 대해서는 모두 같이 생각해 봐야할 부분이 분명히 있다.
주사를 맞아야 빨리 낫는다?
필자가 처음 개원당시에 아주 당혹스러웠던 것이 진료를 끝내고 처방전을 발행을 하면 많은 분들이 진료실 밖을 나가지 않는 것이었다. 즉 당연히 주사를 맞는 줄로 알고 기다리거나, 주사처방을 하지 않으면 왜 주사를 놔주지 않느냐고 따지는(?)것이었다. 심지어 주사를 맞지 않았다고 진료비도 내지 않고 가버리는 경우도 가끔씩 있었다. 당시 필자의 병원 간호사들이 주사를 주지 않으니 환자들이 다른 병원으로 모두 가버린다는 말에 처음에는 당황스러웠으나 주사처방을 하지 않는 이유를 일일이 수년간 꾸준히 설득한 끝에 외래에서 주사를 맞겠다는 사람은 많이 줄었다, 더구나 주사를 잘 주지 않는 병원으로 까지 소문이 나있으니 다행스럽고 보험공단에서의 평가에서도 주사약제에 대한 처방에 있어서는 우수한 것으로 평가가 되었으니 본인으로서는 만족스럽게 생각을 한다.
주사약을 쓰는 경우는 몇가지가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입으로 약이나 음식을 복용하지 못하는 경우이다. 가령 (1)수술직전이나 직후처럼 금식 상태가 요구되는 경우, (2)구강이나 소화관의 기능이상이나 해부학적 이상이 있는 경우, (3)의식이 없는 환자 (4) 정신지체의 이상으로 약물 복용이나 삼킴기능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 들인데, 이런 경우는 대개 여러 가지의 주사약을 혈관주사나 근육주사의 형태로 투여를 하게 되는데 경구용약(먹는약)처럼 그 용량에 맞게 하루에 한번에서 수차례까지 투여를 하게 된다. 대개의 경우 주사약(앰퓰이든 바이알형태이든) 의 용량은 경구용(캡슐이나 타블렛형태)의 약과 같거나 비슷한 경우가 많다. 그래서 경구용약처럼 하루에 대개 여러번 투여가 되는 것이다.
두 번째 이유는 경구용 약으로 만들지 못하는 성분이다. 알약의 형태로 만들면 위나 장에서 흡수가 안되어 약효가 떨어지거나 만들어지지 못하는 경우는 싫든 좋든 주사의 형태로 몸속에 투여가 되어야만 한다.
세 번째 이유는 경구용으로 복용했을 때 위장장애 합병증이 심하다고 알려져 있거나, 환자가 기존에 위장관관계의 질환이 있는 경우, 또 약을 먹었을 때 속쓰림 구역 구토 등 위장장애가 잘 생기는 경우인데 이때 합병증을 막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주사약으로 투여를 하는 경우가 있다.
네 번째 이유는 환자가 다른 질환으로 약을 복용하고 있는 경우 기존의 복용약제와 상호관계에 의해서 위장관내에서 성분이 변하거나 다른 화합물이 만들어 지거나 해서 합병증을 만들 우려가 있거나 부작용이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해서 이다.
그런데 왜 환자들은 주사를 맞고 싶어할까?
이점에 대해서 참으로 오랬동안 고민하고 생각을 해 봤는데 몇가지로 정리를 해 볼수 있었다
첫째 , 과거로부터 병원에서 해 오던 행태를 지금도 의사들이 습관적으로 해오는 경우이다. 10여년 전부터 우리나라는 전국적으로 의약분업을 실시해오고 있다.(물론 격오지 예외지역이나 정신건강의학과를 제외하고) 그 이전에는 약국에서도 증상에 따라 조제를 해서 환자를 치료를 하였다. 물론 병원 발행 처방전이 없이 이루어진 것이다. 많은 사람이 병원을 가지 않고 약국에서 약을 지어서 먹었던 시절이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약국에서는 주사처방을 할 수 없다.그 때 약국에서 해결이 되지 않거나 일부의 환자들은 지금처럼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게 되는데 그 때 병원에서 주사를 거의 모두 처방을 했던 것이다. 약국과 구별되는 처방은 직접적인 치료 행위를 제외하고는 주사가 대표적이었기 때문이다, 즉 병원=주사를 맞으러 가는곳 이란 생각이 굳어진 것 같다. 그런데 의약분업이 시행된지 오래된 지금까지 병원이나 의사들의 행태가 변하지 않고 있는 것인데 이점에 대해서는 의사의 한사람으로서 부끄럽게 생각한다.
물론 이렇게 된데는 환자의 요구나 그리고 의료환경의 불편한 진실과도 무관하지는 않다.
둘째 이유는 우리나라의 국민성과도 관계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우리나라사람의 정체성을 이야기 할 때 “빨리 빨리”문화가 빠지지 않는다.
일도, 사랑도, 식사도 빨리 빨리 해야 직성이 풀리는 민족이다. 물론 이 “빨리 빨리”문화가 오늘날과 같은 경제성장을 이루는데 일부 기여했다는 데는 이견이 없는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모든 것에 다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오지는 않는다는데 문제가 있다.
몸에 병이 생기면 불편하고 아프다. 빨리 나았으면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몸은 기계가 아니다. 외상을 제외하고는 병이 오는 것도 여러 가지 대사를 거쳐서 생기고 병이 낫는것도 여러 가지 대사 과정을 거쳐서 낫는다. 또 질병 중에 극심한 통증을 유발하는 경우는 치료과정보다 이전에 통증을 줄여 줘야하는 경우도 있다.
극심한 통증이나 고열 등으로 합병증 유발이나 생명을 위협하는 경우의 질환이 아니라면 대부분의 경우는 치료나 경구투약만으로 충분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외래에서 가장 많이 듣는 이야기가 “빨리 낫게 해주세요” “ 주사를 맞으면 빨리 낫지 않을 까요?” 이다. 의사의 입장에서 빨리 낫게해주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다. 빨리 낫게 하기 위해서 먹는약도 처방하고 주사약도 처방한다면 상당부분 그것은 중복처방이 될 수 밖 에 없다. 더구나 앞에서 말한 것처럼 주사약이 유효한 혈중 농도까지 도달하려면 하루에 여러 번 처방되어야 함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도 환자는 먹는약도 먹고 주사도 한 방 맞아야 빨리 낫는다고 생각을 한다.
주사약은 긍정적인 점도 있다. 같은 용량이라면 근육이나 혈관에서 빨리 흡수되어 효과를 조금 빨리 나타내는 점이다 그러나 효과가 빠른 만큼 부작용이나 쇼크 같은 합병증도 빨리 생길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모든 치료에는 안전이 우선이다.
이제는 우리 모두가 생각을 좀 바꿔야 될 때가 된 것 같다. 의사도 환자도 같은 마음을 가져야 세계에서 약을 가장 많이 소비하는 나라라는 오명을 벗고, 또 올바른 치료를 하는 사회가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스갯소리 한마디 : 주사가 아이들에게는 위협적인 무기가 되기도 한다. 엄마들은 대개 아이가 떼쓰고 울면 꼭 “의사선생님이 주사준다 뚝~ 해 ” 하고 말하는데 신기하게도 아이들은 이 말귀는 잘 알아듣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