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현교회 김창인 원로목사가 지난 6월 12일 기자회견을 열어 교회를 세습한 것을 회개한다고 밝혔다. 세습을 결정한 공동의회가 열린 지 15년 만의 일이다. 당시 김 원로목사는 담임목사 청빙 투표에 적극 개입해 그의 아들이 당시 수백억 원의 재산을 가진 교회 담임목사가 되도록 도왔다. 이후 교회는 극심한 고통을 겪어야 했다.
▲충현교회 김창인 원로목사가 지난 6월 12일 기자회견을 열어 교회를 세습한 것을 회개한다고 밝혔다. 김 원로목사가 충현교회를 아들 김성관 목사에게 세습한지 15년 만의 일이다. 김 원로목사의 세습 이후 대형 교회들의 세습이 이어져, 한국교회 세습 악습이 고착화하는 원인을 제공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뉴스앤조이 유영
1997년 5월 11일, 충현교회 담임목사 청빙을 위한 공동의회가 열렸다. 후보는 목회 경력이 전혀 없는 김 원로목사의 아들 김성관 목사. 김 목사는 강도사 고시와 목사 안수에서 교회법을 위반한 의혹을 받고 있었다. 교단에서 막강한 힘이 있었던 김 원로목사가, 아들이 목사 안수를 받을 수 있도록 뒤를 봐주었을 것이라는 이야기가 돌았다.
공동의회에서도 김 원로목사의 힘은 불법으로 이어졌다. 먼저 투표 방식에 문제가 있었다. 예장합동 교단 헌법은 무기명 투표로 해야 한다고 규정했지만, 원로목사는 교인들에게 기립 투표로 찬반을 결정하자고 했다. 공동의회 의장 자격도 문제였다. 원로목사는 교단 헌법이 정한 정년 70세를 넘겨 당회장과 공동의회 의장 자격이 없었다. 교단 헌법은 김 원로목사에게 족쇄가 되지 않았다.
세습 이후 계속되는 교회 분란
원로목사의 힘으로 강행한 교회 세습 결과는 처참했다. 김 목사 청빙 후 충현교회에서는 분란이 이어졌다. 1999년 김 목사가 괴한들에게 폭행당한 사건이 발생했다. 김 목사는 설교 시간에 사건 배후에 장로들과 원로목사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후 부자 관계는 최악으로 치달았다. 김 목사는 김 원로목사의 설교와 교회 운영을 비난하는 설교를 했고 원로목사 지원비도 끊었다.
폭행 사건은 교인들을 제명·출교하는 등 징계로도 이어졌다. 1999년에는 장로 8명, 2000년에는 안수집사 5명이 출교됐다. 장로들은 폭행 사건과 무관하다고 주장했지만 김 목사는 이를 무시했다. 폭행 사건이 세습 반대 세력을 배제하고 원로목사 세력을 몰아내는 좋은 구실을 했다. 이를 두고 김 원로목사는 지난 6월 12일 기자회견에서 "당시 폭행 사건이 자작극이 아니었냐"고 김 목사에게 되물었다.
이후에도 교역자 50여 명과 교회 직원들이 해고됐다. 억울하게 해고당한 부교역자와 직원이 소송을 걸어 승소했지만, 교회에서 계속 사역할 수는 없었다. 20년간 시무하다 해고당한 현정남 전도사는 소송에서 이겼지만 밀린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했고, 총무과장 김정순 권사도 복직했지만 6개월 동안 '왕따'만 당하다 다시 사직서를 제출해야 했다.
교회 소유 재단에서도 분란이 일었다. 2005년 5월에는 복지재단 이사회와 충현복지관에 아이들을 보내는 학부모가 대립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김 목사 측근 장로 2명이 자격이 안 되는 사람을 복지관 사무국장에 앉히려 했던 무리한 인사가 화근이었다. 지난 2011년 11월에는 충현교회 김규석 장로가 김 목사를 교회 재산을 횡령한 혐의로 고발했다. 김 목사는 지난 4월 4일 부동산실명제법 위반으로 1500만 원의 벌금형을 받았다.
원인은 재산 때문?
많은 사람이 무리한 세습의 원인을 교회 재산 때문이라고 말한다. 현재 충현교회가 소유한 부동산만 1조 원이 넘는다고 한다. 강남구 역삼동에 있는 충현교회 예배당은 1980년 공사를 시작해 9년 만에 완공한 대리석 석조 건물이다. 교회 대지는 6000평에 달한다. 완공 당시 언론은 본당·교육관·선교관까지 모두 갖춘 국내 최대 규모라고 보도했다.
▲김 원로 목사가 힘으로 강행한 충현교회 세습 결과는 처참했다. 15년간 교회 분란이 끊이지 않았다. 세습 원인으로 지목된 막대한 교회 재산 문제는 결국 지난 2011년 11월 교회 장로가 김성관 목사를 고발하는 것으로 터져나왔다. 현재 교회 부동산만 1조 원이 넘을 것이라고 한다. ⓒ뉴스앤조이 유영
교회 재산은 부동산이 전부가 아니다. 충현교회는 충현교회유지재단·복지재단·충현동산 등 재단법인 3개를 소유하고 있다. 1972년에 세워진 충현동산이 등기한 재산은 8700만 원이었다. 유지재단은 1988년 설립했는데, 당시 등기한 소유 재산이 100억 원이 넘었다. 복지재단은 1995년에 설립, 45억 원이 넘는 재산을 등기했다. 1997년 세습 당시 3개 재단 등기 재산만 146억 원 이상이라는 것이다.
그중 충현교회유지재단 재산 규모가 가장 크다. 충현교회는 모든 재산을 유지재단에 귀속해 관리한다. 교회 장로의 말에 의하면, 김 목사는 지난 2011년 당회에서 교회 재산은 2조 원이라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몇몇 장로와 교인은 김 목사가 퇴임 후에도 재단 이사장을 계속하려는 것 아니냐고 의혹을 제기한다.
교회 운영은 담임목사 손아귀에
세습 후 15년이 흘렀고, 이 기간 충현교회는 철저히 베일에 가려져 운영됐다. 충현교회는 교회 홈페이지가 없는 유일한 대형 교회다. 외부에 존재를 알리지 않는다. 교회 내부에서도 교회 운영에 대해 알지 못한다. 김 목사를 고발한 김규석 장로는 당회와 장로들도 교회 헌금 현황과 재정 현황에 대해 알지 못한다고 했다.
교회 소유 재단에 대한 감시도 잘 이뤄지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장로는 "교회 재단에 관해 외부 감사가 이뤄진 적이 없다. 가장 큰 문제는 현재 재단이 보유한 부동산과 동산의 규모를 정확하게 아는 사람이 없다. 재단의 재산 증감에 대해 김 목사가 밝히지 않기 때문이다"고 했다.
교인도 계속해서 줄고 있다고 한다. 교회에서 성찬을 준비하는 한 권사는 "김 목사의 독단적인 교회 운영과 자신만이 복음을 말한다고 천명하는 설교에 교인들이 참지 못하고 떠나간다"고 했다. 그의 말에 의하면, 현재 충현교회 수찬 인원은 5000명이 안 되며 계속해서 줄고 있다.
결국 교회 세습이 충현교회를 계속 망가트려 왔다. 충현교회 세습을 반대했던 당시 기독교윤리실천운동 대표 손봉호 명예교수(현 기윤실 자문위원장)는 김 원로목사의 세습이 충현교회와 한국교회에 치유할 수 없는 상처를 주었고, 교회를 망치는 역할을 했다고 한탄했다. 또한 세습 문화를 고착화한 김 원로목사의 뒤늦은 후회를 안타까워했다. 손 교수는 "회개로 책임을 면할 수는 없다. 김 원로목사는 회개한다고 했지만, 엄청난 불명예를 안고 살 수밖에 없을 것이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