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나무의 세월 / 고 연 숙
오늘은 늦게까지 잠자리에 누워있었다. 몸이 묵직하고 뻐근하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발발한 지 2년이 지났다. 국민 대부분이 3차 백신까지 맞았건만 신종 변이바이러스인 오미크론이 더욱 확산하면서 난리다. 코로나 청정지역이라던 제주에서도 확진자가 날마다 수천 명씩 나오고 있다.
어제부터 입이 바짝 마르면서 목이 따끔거린다. 오미크론 확진자와 비슷한 증세라 불안하다. 침대에 누워 벽을 멍하니 바라본다. 벽에는 광목천에 영어로 새겨진 세계지도가 한 면 가득 펼쳐져 있다. 나라마다 알록달록 다른 색을 입혀놔서 오색실로 수를 놓은 듯 어여쁘다.
화려한 색이 입혀진 호주에 눈길이 머문다. 큰딸과 아들이 사는 멜버른과 시드니에 유독 애정 어린 눈길이 간다. 내가 이대로 몸져눕는다면 어떻게 될까. 이제 호주에 가기는 쉽지 않을 듯하고, 둘째 딸이 사는 서울에라도 쉽게 갈 수 있을는지. 어릴 때부터 타지에 나가 공부하고 성장한 탓인지 자식들을 생각하면 안타까움과 그리움이 앞선다.
호주와 우리나라가 뚝 떨어져 있다. 세계지도 속에서 우리나라를 보면 눈살이 찌푸려진다. 땅덩어리 작은 것이야 어쩔 수 없지만, 색깔이 거무튀튀하고 윤곽선까지 삐뚤빼뚤 난잡하게 프린트해 놓아서다.
제주는 망망대해에 떠 있는 한 점이다. 저토록 보일락말락한 섬에서 7년간이나 피비린내 진동하는 광풍이 몰아쳤다니. 제주 북촌마을 참상이 눈앞에 어른거린다. 지난달 27일, 제주문협 이사진이 ‘4·3 너븐숭이 기념관’을 찾았다. 매서운 삭풍에 진눈깨비 휘날리던 날이다. 마을 토박이 해설사가 그 당시의 처절함을 소상히 전한다. 그의 깊고 찰진 해설 덕분에 우리는 타임머신을 타고 그 옛날로 돌아갈 수 있었다.
느닷없이 군경들이 들이닥쳐 한 사람도 빠짐없이 운동장에 모이라고 한다. 어리둥절한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여들었다. 어림잡아 천 명은 되어 보인다. 우두머리로 보이는 사람이 연단에 올라 군인 가족과 경찰 가족을 추려냈다. 다음엔 본격적으로 좌익 색출 작업에 나선다. 왼쪽 노단쪽은 알아도 좌익과 우익은 뭔지 모르는 사람들이다. 군경은 강압적인 엄포를 놓았다. 빨갱이를 고발하면 그의 가족은 살려주겠노라고.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이웃을 눈짓으로 고발해야 했다. 눈짓 하나로 이승과 저승길이 갈리는 세상이라니! 하기야 지금도 삶과 죽음의 길이 떼어져 있는 건 아니다.
순사가 한쪽에 있던 사람들을 달걀 꾸러미 엮듯 포승줄에 엮었다. 빨갱이로 내몰린 사람들이 절규한다. “살려줍서!” “살려줍서!” 순사들은 그들을 어떤 방법으로 죽일까 키득거리고 있다. “횡대로 세워 사격 연습할까.” “구덩이로 몰아넣어 수류탄 한 방에 날려버릴까.”
갑자기 콩 볶듯 튀는 기관총 소리가 고막을 찢는다. “따다따다 따다따다다!” 수류탄도 “펑” 터졌다. 사람들은 차마 고개를 들 수 없었고, 까마귀들조차 “까악 깍” 소리를 지르지 못한다.
군경은 아직도 성에 차지 않았는지 마을에 불을 질렀다. 성한 사람들은 집을 급히 빠져나왔지만, 노약자나 가축들은 미처 빠져나오지 못했다. 도망 나온 사람들은 이 닥닥 털멍 화염에 휩싸인 마을과 사람 타는 냄새, 짐승들이 울부짖는 소리와 마주해야 했다.
밤이 되자 도망갔던 사람들이 마을 끝 집으로 모여든다. 불에 타다 남은 집 귀퉁이에는 ‘ᄌᆞ냥(절약)정신’으로 아껴둔 먹거리가 남아 있었다. 어느 집을 뒤지면 곡주穀酒가 나왔고, 어느 집 고팡 항아리에서는 산디(밭벼)가 나왔다. 불에 그을려 죽은 가축들도 부지기수였다. 거기서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사람들이 걸신乞神이라도 들린 듯 배가 터질 정도로 뭣이든 우작우작 먹어치우는 것이다.
바로 눈앞에서 끔찍한 참상을 목도했으니 혼이 나가지 않을 재간이 있었겠는가. 이런 와중에도 어르신 몇이 묵묵히 밥을 짓고 돗궤기를 삶고 있었다. 잠시 뒤, 그들은 비갈비갈 ᄉᆞᆯ찐 돗궤기를 돌팡에 곤밥과 함께 올려놓고 곡주까지 곁들인다. 가련한 영혼들을 위해 제상祭床을 차린 것이다.
그날 밤, 환히 내려앉은 달빛에 보석처럼 반짝거리는 것들이 있었다. “저거 뭐고?” 그러면서도 다가서기 두려워 엉거주춤하고 있었는데 이장이 나섰다. 그가 다가갔다가 흠칫 기겁한다. 그건 비릿한 피가 얼린 핏자국들이었기 때문이다. 등골이 오싹해져 몸서리를 치면서 다들 취기가 확 깬다.
뜬눈인 채로 새날은 밝아왔다. 벼랑 끝에 몰린 사람들은 숨을 곳을 찾으려고 허둥대기 시작한다. “드르팟 굴속이 좋으카, 동냥바치추룩 살망정 바당 조끗디가 좋으카.” 그런 와중에도 멍하니 허공만 쳐다보는 이들이 있었다. 눈짓으로 이웃에게 빨갱이라는 누명을 씌운 사람들이다. 그들은 결국 미쳐간다. 아기를 품은 어미의 피범벅 무명 저고리가 눈에 얼망얼망한데 제정신으로 살아갈 수 있겠는가.
우리는 어미 품에서 죽어간 아기들을 기리며 애기 무덤으로 향한다. 토종 수선화가 다보록한 곶자왈 빌레를 지나니 올망졸망한 애기 무덤 여덟 기가 나왔다. 무덤 위에 올려진 양말과 사탕, 장난감 위로 싸락눈이 사락사락 내리고 있다. 울컥해져 입술을 앙다물었는데 눈이 따갑다. 억새가 속절없이 제 몸 뒤척이고 소나무도 꼿꼿이 바늘을 세운다. 저쪽에는 현기영 선생의「순이 삼촌」에 나오는 주검 형상들이 아맹이나 널브러져 마음 아리다.
근처에 굴렁팟 학살 터가 있었는데 그 밭에는 허연 비닐 사이로 마늘이 퍼렇게 자라고 있었다. 저 어딘가에 탄피도 묻혀 있을 거라는 생각에 오싹하다. 굴렁팟 한쪽에 녹슨 ᄀᆞᆯ겡이(호미)와 낡아빠진 ᄀᆞᆯ체가 널브러져 있다. 졸락코지에 올라 사방을 둘러본다. 사람들을 질질 끌고 가는 모습이 선연하다. “살려줍서.” “살려줍서게.” 솔개가 병아리 채가는 것과 달리, 사람 강자가 사람 약자를 죽이던 몹쓸 세상.
가족의 죽음을 지켜봐야 했던 사람들은 원통한 가슴을 누르며 통곡의 세월을 살아왔다. 구십 넘은 할머니가 회한에 젖은 듯 목이 멘다. “낮인 순사 ᄆᆞ숩곡(무섭고), 밤인 산山 사ᄅᆞᆷ ᄆᆞ수완 문 걸엉 잠갓주. 어디레 ᄀᆞᆸ기도(숨기도) ᄒᆞ곡.” 근데 문을 잠갔다고 죽창에 찔려 죽고, 숨은 것이 수상하다고 총에 맞아 죽었다. 오죽하면 뜨는 해도, 지는 해도 무서웠다고 할까.
몇백 명이 총살당했다는 북촌초등학교에 들어섰다. 드넓은 운동장에 연초록 잔디가 비죽비죽 올라오고 있다. 해설사가 운동장 한쪽을 가리키며 씁쓸하게 말한다. “저디서 사람들이 죽임 당했고 까마귀들에게 살점 파먹혓수다.” 해설사 아버님도 그때 돌아가셨다는 걸 성인이 되어서야 알았다고 한다. 고등학교에 다닐 때 어머니한테 조심스럽게 물어봤다가 불호령이 떨어졌다. “입 ᄌᆞᆷᄌᆞᆷᄒᆞ라. 말 몰래기추룩 살아사주, 분시엇이 놉드민 심어간다.(입 다물라. 벙어리처럼 살아야지, 철없이 굴면 잡혀간다.)” 그가 떨리는 목소리로 눈시울을 붉히며 말할 때, 후려치던 바람도 잠시 숨을 고르는 듯했다.
어디서 까르르 웃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더니 선생님 손을 잡고 나타난 원아들이다. 해맑게 웃는 모습이 천사 같다. 아니, 천사다. 초등학생들도 시끌벅적하게 쏟아져 나온다. “야, 우리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하자.” 옆에 있던 M 작가가 격세지감이라는 듯 낮은 소리로 말했다. “난 산간마을에서 살아신디예, 제가 어릴 때만 해도 총이나 죽창 만들엉 놀아낫수다.”
마을 저쪽 어귀 동산에 우뚝 서 있는 300년 수령의 팽나무를 보러 간다. 노거수 팽나무를 보고 있으면 왠지 인간의 한평생과 살아온 시간을 보는 듯하다. 팽나무는 누기漏氣 있는 땅과 마른땅의 경계에 주로 산다. 장수하는 유전적 특질과 새들의 먹이인 열매를 풍성하게 생산하기 때문에 인간 정신과 생명을 부양하는 나무로도 알려져 있다.
드디어 동산에 올라왔다. 가까이에서 본 팽나무는 멀리서 볼 때와 달리 처참한 몰골이다. 온몸이 뒤틀렸을 뿐 아니라 울퉁불퉁 패이고, 딱딱한 혹들이 툭툭 불거져 나왔다. 처참한 살육의 현장을 목격했음에도 칠십 년 넘은 세월을 속으로만 삭여왔는데 왜 안 그렇겠는가.
팽나무는 그때의 피비린내 나는 살풍殺風 탓에 속병을 심하게 앓고 있다. 천식까지 앓는지 캥캥거리고, “쿨럭쿨럭” 가래 끓는 소리도 들린다. 어디에 정착하지 못하는 오백여 원혼들이 팽나무 사이를 떠돌고 있는 것 같다. 팽나무는 역사의 증인이다.
바다로 걸음을 옮긴다. 바닷가 끝에 불 꺼진 등명대燈明臺가 서 있다. 눈발은 여전히 세찬 바람에 휘날리고 산산이 찢긴 파도가 신발 끝을 적신다. 총탄으로 부서진 등명대의 귀퉁이가 통증으로 얼얼하다. 바다에 수장된 주검들을 애도하는 듯, 까마귀 다섯 마리가 삼체투지三體投地하고 있다. 나도 조용히 손을 모은다. ‘이제랑 시커멓게 얼룩진 누명을 내던져버리고 훨훨 날아오르십서.’ 파도는 세례식을 하느라 분주하다. “촤르르 촤악, 촤르르 촤르르 촥….”
침대에서 일어나는데 몸이 가뿐하다. “주님, 은총을 베풀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세례식을 방금 치른 듯하다. 눈물이 하염없이 흐른다. 모태신앙임에도 냉담자로 살아온 자신이 부끄럽다. 엊그제 봤던 팽나무의 세월에 내 삶을 가만히 얹어본다. 맑은 바람 솔솔 불어온다. 오늘은 모처럼 애들이랑 화상통화도 하고, 저 멀리 요양원에 계시는 구순의 사촌 언니랑도 조잘조잘 얘기 보따리 풀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