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단체의 회식이나 시내 외 관광, 회갑연과 관혼례연 등에 필요한 음식을 마련해 두고 있습니다. 심지어 사람을 보내어 음식을 배달하기도 하는데 (중략) 필요한 분량을 요청하면 가깝고 먼 곳을 가리지 않고 특별히 싼 가격으로 모시겠습니다.” 위 글은 1906년 <만세보>라는 신문에 실린 “명월관” 광 고입니다.
광 고로 미루어 보면 이 명월관은 조선음식을 팔던 첫 번째 전문음식점일 것입니다.
또 교자상까지 배달했다는 것으로 보아 한정식 출장뷔페 역사의 시작이 아닐까요?
명월관은 대한제국 말기 임금에게 올리는 음식을 맡아 하던 안순환(安淳煥)이 지금
동아일보사 자리에 문을 열었던 음식점이지요. 하지만, 당시 언론은 “서양그릇에
조선음식을 담거나 신선로에 일본요리를 담았다.”라며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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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얼레빗으로 빗는 하루" 가운데서 골라 본 글)
976. 조선의 막사발, 일본에선 존귀한 보물 2007/03/12
일본 전국시대 막바지, 전투에 참가하라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명을 따르지 않았던 다이와군산의 성주 쓰츠이 준케는 엄한 문책이 두려워 조선에서 건너간 막사발 하나를 바치고 용서를 받았다고 합니다. 우리에게는 이름없는 도공이 만들어 일상생활에서 막 쓰던 막사발을 일본인들은 이도다완(찻사발)이라고 하며, 이렇게 집착과 숭배를 합니다.
조선의 가난뱅이 백성들이 쓰던 이 막사발을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 미술학자 야나기 무네요시는 “꾸밈이 없는 것, 사심이 없는 것, 솔직한 것, 자연스런 것, 뽐내지 않는 것, 그것이 어여쁘지 않고, 무엇이 어여쁠까?”라고 말했습니다. 이 막사발이 나올 수 있었던 까닭은 덤벙덤벙 허둥대서 만든 것 같으면서도 완벽한 이름없는 도공의 무아지경의 경지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를 보면 우리 겨레의 문화유산은 하찮게 여길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참고 : “우리문화 유산으로 본 한국인의 기질”, 박상하, 도서출판 한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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