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4:23]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 "신령으로 예배함"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것은 위의 21절에 벌써 말한 "아버지께 예배함"을 가리킨다. 하나님은, 이떤 지방, 어떤 민족이 독점적으로 소유할 신이 아니시다. 어디서든지 누구든지, 성령으로 거듭 난 자이면 그를 아버지로 섬길 수 있다.
거듭 난 자만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할 수 있다. 성령으로 거듭 남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루어진다. 사람의 거듭 난 표는 무엇인가? 그것은 그가 성경 말씀을 듣기 좋아하며, 읽기 좋아하며, 순종하기 좋아함이다. 이렇게 그가 성령에 의하여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다. 그가 영적인 자녀로서 영적인 아버지에게 예배하게 되는데, 그것이 신령한 예배이다.
"진정으로 예배함"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진정"이란 것은, 예수님이 22절에 말씀하신 내용의 성취 형태이다. 이스라엘의 "아는 것", 곧, 구약적 계시가 신약 시대에 성취된 형태이다. 이것이 유대인에게서 난 구원 사건 예수 그리스도 이다. 이에 근거한 예배가 "진정"으로(진리로)예배함이다.
그것은, 실상 아브라함의 자손 중에서 메시야가 나시리라는 약속의 성취를 내포한 구원사적 진리에 순종하고 드리는 예배이다. 참된 예배는, 결코 사람들의 추측이나 깨달음에 근거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계시에 근거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참"이란 말은 "진리"를 의미하는데, 구약에 기록된 하나님의 모든 약속 메시야 약속이 성취된 사실,
곧, 그리스도를 말함이다.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었다(고후 1:20). 그러므로 우리의 예배는, 신앙적 예배가 될 수 밖에 없다. 신앙적 예배만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다. 히 11:6에 말하기를,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 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 지니라"고 하였다.
[골 1:19]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 본절에서 논쟁의 여지가 있는 것은 본문의 주어가 '하나님'이냐 '충만'이냐 하는 것과 '충만'이라는 단어가 뜻하는 바가 무엇이냐 하는 것이다. 한글 개역성경은 '하나님'을 주어로 취하고 있는 반면, '충만'을 주어로 삼고 있다.
적어도 문법적인 것으로만 본다면 '충만'을 주어로 보는 것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렇게 볼 경우 다음절(20절)의 '화목케 되기를 기뻐하다'에 대한 주어도 '충만'이 되어야 하는데 바울의 신학에서 화목케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지 '충만'과 같은 개념을 사용하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회의적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주어로 보는 것이 문맥상으로나 신학적으로 타당하다고 볼 수 있다.
한편 '충만'에 해당하는 헬라어 '플레로마'는 그 의미가 여러 가지로 사용되기 때문에 해석이 분분하다. (1) '의와 지혜와 권능 그리고 모든 축복의 충만'이다. (2) '은혜의 충만, 곧 하나님께서 부여하시는 모든 부요함'이다. (3) '매우 충만하신 하나님', 곧 '하나님의 모든 것'이다.
(4) '하나님의 온전하신 본성'이다. 이러한 견해들은 서로 상치되는 것은 아니며 '모든 것들이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이라는 점에서 일치성을 보인다. '하나님의 속성과 권능의 충만'으로 보는 것이 무난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