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장소 : 약사암 풍경
일 시 : 2024.06.20(목)
참 가 : 강공수 김영부 박남용 양수랑 윤상윤 윤정남 이용환 장휘부 등 8명
불 참 : 김상문(통영여행) 김재일 나종만(가족모임) 정원길 등 4명
회 비 : 80,000원
식 대 : 70,000원(김치찌개 2, 장어탕 5, 해물파전 1), (별도 : 리정훈 선배 말걸리 2병 중 1병 반납)
금일 잔액 : 10,000원
이월 잔액 : 562,000원
총 잔 액 : 572,000원
오늘 비가 올 것(5mm)이라는 예보가 있어서 우산을 들고 집에서 나왔다.
부곡정에는 7명(강공수 김영부 박남용 양수랑 윤상윤 윤정남 이용환 등)이 모였다가 조금 일찍 부곡정에서 나왔다. 부곡정 주인이 닭발을 굽고 있는데, 바람에 날리는 연기가 식당 언저리에 퍼지고 있어서, 서둘러 식당에서 나왔다.
음악정자에 앉아서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강공수가 지난 주처럼 오이를 가져왔다. 그다지 크지도 않고 한 번 먹기에 딱 맞는 크기의 오이였다. 박남용이 지난 주에 먹은 오이 이야기를 산행기에 쓰지 않았다고 아쉬워하였는데, 오늘은 잊지 않고 써야겠다고 다짐하면서 오이를 받아 우두둑 우두둑 씹어 먹었다. 시원하고 상큼한 맛이 정신을 맑게 함을 느낄 수 있었다.
오늘 김상문이 통영 여행을 갔고, 나종만이 가족 모임이 있어서 불참하겠다는 연락을 받았음을 회원들에게 알렸다.
어제는 광주 기온이 36도를 넘었을 정도로 무더운 날씨였는데 오늘은 구름이 하늘을 덮고 있어서 비교적 서늘한 날이었다. 김상문이 ‘날씨가 좋아서 통영 여행을 간다.’고 하였던 말이 맞는 말이라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대개 날씨가 화창해야 여행하기 좋은 날이라는 인식이 있지만, 실제로는 화창한 날이 아닌 이런 날이 여름에는 여행하기 좋은 날이라는 것을 여행하는 사람만이 실감할 수 있는 것이다.
산행을 시작하면서 우리 사후(死後)의 문제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앞으로 사람이 죽으면 대부분 화장(火葬)을 한 다음 산골(散骨)해 버리거나, 추모관(追慕館)에 모시는 경향으로 사회가 변해 가고 있는데, 문중에 따라서는 문중에서 납골당(納骨堂)을 짓거나 납골묘(納骨墓)를 조성하여 문중 단위로 조상을 추모하는 방향으로 가게 되므로, 집에서 제사를 지내지도 않고 문중 단위로 합동으로 납골당이나 납골묘에서 시제(時祭)를 모시던가, 그렇지 않으면 아예 시제도 모시지 않게 되어 제사를 지내지 않는 시절이 올 지도 모른다는, 우리들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인정할 수 없는 끔찍한 날이 올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과 아울러 우리나라에서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는데, 저 출생(底 出生)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이대로 간다면 국가 인구의 부족으로 국가가 소멸될 위기에 처하게 되는데, 이러한 저 출생 문제에 대한 대책을 여러 가지 발표하고 있는데, 내 생각으로는 정부가 하고자 하는 정책이 실질적인 대비책이 아니라 임시방편적인 대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본질적인 것은 아이를 낳으면, 일정한 나이까지 키우는데 필요한 보편적 비용(주거비, 보통교육비, 양육비 등)은 모두 국가가 부담하고, 부모는 보편적 비용이 아닌 개별적 비용(개별주거비, 개별교육비, 개별양육비)을 부담하면서 키우게 되면 출생률이 획기적으로 개선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어느새 우리는 약사암에 도착하였다.
석등에서 나오는 석간수를 한 바가지 떠서 마셨다. 서재(西齋)의 개와(改瓦) 공사는 이제 막바지에 와 있는 것으로 보였다. 크레인이 지붕위에서 계속 짐을 실어 내리거나 올리고 있었다. 주말에 장마가 올지도 모른다는 예보가 있어서 서둘러 공사를 마무리하려는 것으로 보였다. 그래서 서재(西齋)에 있었던 종무소(宗務所)도 동재(東齋)로 옮겨져 있었다.
윤상윤이 “새인봉(璽印峰) 올라가는 길이 아닙니다.”라고 써야할 광고문이 “세인봉 올라가는 길이 아입니다.”라고 써져 있더라고 지적하였다. 우리 한글은 잘 못하면 오기(誤記)할 수 있으므로 각별히 조심하여 바르게 써야 함을 다시 한 번 경고하는 경우였다. 흔히 “어서 오십시오.”라고 써야 하는데 “어서 오십시요.”라고 쓰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윤상윤이 말하였다. 내가 듣기로는 프랑스에서는 푸줏간을 하는 사람이 항상 국어사전을 옆에 두고 의심이 나면 사전을 펼쳐볼 정도로 자기 나라말을 사랑한다는 기사(記事)를 읽었던 기억이 났다.
음악정자로 내려와서 금주의 노래를 불렀다. 6·25를 상기하는 날은 다음 주인데, 다음 주는 십오야 합동산행이어서,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조건이 아니므로, 오늘 한국전쟁에 관련된 노래인 유호작사 박시춘작곡의 <전우야 잘 자라>와 박두진작사 김동진작곡의 <6·25의 노래>를 연이어서 불렀다.
강공수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전우야 잘 자라>는 6·25전쟁 중 국민들이 애창했던 대표적인 진중가요(陣中歌謠)이다. 전쟁 중에 죽은 전우의 시체를 넘는다는 비장미와 낙동강 전투 서울 수복 등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서술한 가사는 승리의 다짐만으로 어우러진 다른 군가와 달리 큰 감동을 준다고 하였다.
즉 1절은 낙동강 전투에서 연합군이 승기를 잡은 모습을, 2절은 추풍령고개를 넘어가는 과정에서의 추억을, 3절은 다시 한강을 넘어 서울을 수복하는 내용을, 4절은 삼팔선을 향해 나아가는 공간적 흐름을 그리고 있는데, 1950년 9·28 수복 직후 명동에서 유호와 박시춘(육군 연예대 2중대 책임자)이 우연히 만나 하룻밤 새에 만들어진 노래라고 한다.
첫댓글 내가 아니라 지
내가 아니라 집 사람이 텃밭에서 정성껏 키운 신품종 조그만 오이지만 모두 맛있게 먹었다고 생각하니 나도 흐뭇하다 생활 중 소소한 것에서 기쁨과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었으면 좋겠다 오늘도 산행을 함께 하듯이 세세한 기록을 써 준 우리 회장 화이팅
그런 자상한 성품으로 나눠먹을 줄아는 마누라와 함께 사는 동명 강공수는 복받은 영감일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