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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광주대교구 꾸르실리스따 원문보기 글쓴이: 이선정스테파노
2025년 12월 10일 수요일
[(자) 대림 제2주간 수요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오늘 전례
[백] 로레토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말씀의 초대
하느님께서는 피곤한 이에게 힘을 주시고 기력을 북돋워 주신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이들에게 안식을 주겠다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전능하신 주님께서는 피곤한 이에게 힘을 주신다.>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40,25-31
25 “너희는 나를 누구와 비교하겠느냐? 나를 누구와 같다고 하겠느냐?”
거룩하신 분께서 말씀하신다.
26 너희는 눈을 높이 들고 보아라. 누가 저 별들을 창조하였느냐?
그 군대를 수대로 다 불러내시고
그들 모두의 이름을 부르시는 분이시다.
그분께서는 능력이 크시고 권능이 막강하시어 하나도 빠지는 일이 없다.
27 야곱아, 네가 어찌 이런 말을 하느냐?
이스라엘아, 네가 어찌 이렇게 이야기하느냐?
“나의 길은 주님께 숨겨져 있고
나의 권리는 나의 하느님께서 못 보신 채 없어져 버린다.”
28 너는 알지 않느냐? 너는 듣지 않았느냐?
주님은 영원하신 하느님, 땅끝까지 창조하신 분이시다.
그분께서는 피곤한 줄도 지칠 줄도 모르시고
그분의 슬기는 헤아릴 길이 없다.
29 그분께서는 피곤한 이에게 힘을 주시고
기운이 없는 이에게 기력을 북돋아 주신다.
30 젊은이들도 피곤하여 지치고 청년들도 비틀거리기 마련이지만
31 주님께 바라는 이들은 새 힘을 얻고 독수리처럼 날개 치며 올라간다.
그들은 뛰어도 지칠 줄 모르고 걸어도 피곤한 줄 모른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고생하는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28-30
그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28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29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30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마태 11,28). 이는 모든 사람을 향한 보편적 초대이지만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사람’이라는 조건이 있습니다. 이어지는 다른 초대는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11,29)입니다. 이는 성경에서 예수님께서 직접 자신의 마음에 대해 말씀하시는 유일한 구절입니다.
온유와 겸손은 그분께서 하시는 모든 일과 말씀을 설명하는 내적 원리입니다. 온유는 외적 유순함과 소극성, 무른 성품과는 다르며, 겸손도 자기 비하가 아니라 남을 위하여 자신을 내놓고 남을 돌보느라 자신을 잊어버리는 데 있습니다. 이 구절에서 온유와 겸손은 그분께 배워야 할 내용일 뿐 아니라 그 동기로 드러납니다. 곧 온유하고 겸손하시니 그분께 배워야 한다는 것이지요. “내 멍에”(11,29)는 예수님께서 주시는 멍에만이 아니고 그분께서 지고 가시는 멍에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의 멍에는 세상의 멍에로부터 우리를 지켜 줄 것입니다. 그분의 짐은 세상의 짐보다 가볍습니다. “세상 주인들의 짐은 종들의 힘을 점점 더 빠지게 하지만, 그리스도의 짐은 그 짐을 진 이들을 오히려 도와줍니다. 우리가 은총을 지고 가는 것이 아니라, 은총이 우리를 지고 가기 때문입니다”(『그리스 교부 총서』(Patrologia Graeca), 56, 780).(국춘심 방그라시아 수녀)
날씨도 추운데 따뜻한 차라도 한 잔 하고 가세요!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저도 요즘 나름 한 고생 하고 있지만, 주변을 돌아보니 다들 그리 길지도 않은 이 한 세상 살아가시느라 ‘쌩고생’하시는 분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더구나 요즘 세상은 과거와는 달리 태생적 한계를 극복하기가 참 어렵습니다. ‘자수성가’ ‘인생역전’을 꿈꾸기란 하늘의 별따기보다 더 어렵습니다.
무엇보다도 한창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가슴 설레고 행복해야할 이 땅의 많은 우리 젊은이들이 겪는 고생이 큽니다. 채 피어나기도 전에 시들어버리는 꽃송이 같은 그들의 얼굴을 본다는 것은 참으로 고통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온몸과 마음이 부서져라, 한평생 수출신화와 산업화의 역군으로 살아오신 어르신들도 사정이 별반 다를 바가 없습니다. 가정과 국가를 위한 한평생에 걸친 노고와 헌신에 대한 대가로 이제는 안정되고 편안한 노후를 만끽해야 마땅한데, 다양한 측면에서의 압박이 여전히 노후 생활을 흔들고 있습니다.
이 땅의 청소년과 어린이들은 또 어떤가요? 그들의 겪고 있는 고초도 결코 만만치 않습니다. 극단적 경쟁체제 속에 벌써부터 하루하루가 힘겹습니다. 이런저런 부담과 압박들을 가방 속에 가득 채워놓고 휘청휘청 걸어가는 그들의 뒷모습이 벌써부터 안쓰럽습니다.
고생 많이 하기로는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특별한 사람들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고생들을 가만히 분석해보니 하지 않아도 될 고생들, 결국 ‘사서 고생’이 참 많습니다. 그리고 더욱 안타까운 것은 본인이 의도하지 않아도 자신도 모르게 그 지옥 같은 ‘쌩고생’의 굴레 속으로 들어가 버린다는 것입니다. 다들 너나 할 것 없이 죽을 고생들입니다. 어디 가서 마땅히 하소연할 곳도 찾기 힘듭니다.
고맙게도 예수님께서는 이런 우리에게 참으로 따뜻한 위로의 한 말씀을 건네십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마태 11,28)
그래서 이 시대 우리 교회에 주어지는 역할이 큰 것 같습니다. 우리 교회는 죽을 고생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편안한 안식처가 되어주어야겠습니다. 그들이 지금 겪고 있는 말못할 고초에 마음 깊이 공감하며 맞장구쳐줘야겠습니다. 그들이 소리 없이 흘리고 있는 서러운 눈물을 조용히 닦아줘야겠습니다. 그러기 위해 무엇보다도 우리 교회의 문을 활짝 열어야겠습니다. 우리 교회의 문턱을 완전히 낮춰야겠습니다.
공생활 기간동안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다양한 모습 가운데 제가 가장 좋아하는 모습은 세상을 향해 활짝 두 팔 벌리신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예수님의 눈에는 모든 인간이 다 존귀했습니다. 예수님입장에서는 생명 붙어있는 모든 인간이 다 하느님의 모상이자 거룩한 창조물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예수님 앞에는 그 어떤 차별도 없었습니다.
이렇게 활짝 열린 예수님의 모습 앞에 오늘의 우리 교회 공동체는 가슴에 손을 얹고 진지하게 자신을 돌아볼 필요가 있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철저하게도 개방적이셨습니다. 이 세상 단 한 사람도 당신 사목의 대상, 구원의 대상에서 제외시키지 않으셨습니다.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어른이든 코흘리개 어린이들, 잘 나가는 사람이든 인생이 꼬인 사람이든, 그 어떤 사람이든 기꺼이 맞이하는 교회가 바로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교회의 모습일 것입니다.
이 사회에서 철저하게 소외된 사람들, 혹독한 가난에 시달리는 사람들, 지긋지긋한 병고에 하루하루가 괴로운 사람들, 큰 아픔과 상처를 지니고 살아가지만, 마땅히 어디 한군데 하소연할 데도 없는 사람들이 기쁘게 우리 교회를 찾아왔으면 좋겠습니다. 교회가 그들이 안고 있는 모든 문제를 다 해결할 수는 없겠지만, 열린 마음으로 그들의 고통스러운 목소리를 경청하기를 바랍니다.
춥고 배고픈 나날을 보내고 있는 그들에게 ‘따뜻한 차 한잔하고 가라’ ‘식사라도 하고 가라’며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포근하게 그들을 감싸 안고 격려의 말이라도 한마디 해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왜냐하면 가난한 사람들은 교회의 보물이자 영혼이기 때문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변장하고 우리를 찾아오시는 또 다른 예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흑기사’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려운 상황에 부닥친 사람을 도와주는 사람을 뜻합니다. 회식 자리에서 술이 약한 친구를 위해 본인도 힘이 들지만 술을 대신 먹어주는 사람을 흑기사라고 하기도 합니다. 저도 흑기사 역할을 한 적이 있습니다. 지리산 천왕봉에 오를 때입니다. 친구가 기력이 떨어져서인지 무척 힘들어했습니다. 저는 친구의 짐을 나누어지고 천왕봉에 올랐습니다. 서울역에서 문산까지 가는 여행이 있었습니다. 친구들이 늦게 오면서 누군가 남아서 친구들에게 기차표를 주어야 했습니다. 제가 남아서 기다리겠다고 했습니다. 요즘은 인공지능이 번역해 주지만 예전에는 직접 번역해야 했습니다. 대림 시기를 지내면서 강론 자료를 번역해서 친구들에게 나누어 주기도 했습니다. 돌아보니 제가 누군가를 위해서 흑기사가 되어 준 것보다는 저를 위해서 기꺼이 흑기사가 되어 준 분들이 훨씬 많았습니다. 한국으로 휴가 갔을 때입니다. 정말 많은 분이 저를 위해서 흑기사가 되어 주었습니다. 공항에서 저를 기다려 준 분, 한국에 있는 동안 차량 봉사를 해 준 분, 여행안내를 해 준 분, 숙소를 예약해 준 분이 있습니다. 그런 흑기사가 있었기에 즐겁고 편안한 휴가를 보낼 수 있었습니다.
지난 10월 30일에 귀한 흑기사가 있었습니다. 강남의 한 치킨집에서 엔비디아의 젠슨 황 회장, 삼성전자의 이재용 회장, 현대자동차의 정의선 회장의 만남이 있었습니다. 인공지능 분야를 선도하는 엔비디아의 젠슨 황 회장은 대한민국에 ‘GPU’ 26만 장을 공급하겠다고 했습니다. 이런 물량이 한국에 공급되면 한국은 인공지능을 위한 GPU 보유로는 세계 3위의 국가가 된다고 합니다. 정부는 GPU 5만 장을 구매한다고 합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산업화를 위해서 경부 고속도로를 건설하였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정보화를 위해서 초고속 통신망 고속도로를 구축했습니다. 이제 이재명 대통령은 4차 산업혁명을 위해서 인공지능 고속도로를 만들겠다고 합니다. 이번 만남을 통해서 삼성전자는 엔비디아에 반도체를 제공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현대 자동차는 자율주행 자동차의 시대를 열게 되었다고 합니다. 인공지능을 탑재한 휴머노이드 시대를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물론 삼성전자와 현대 자동차도 엔비디아에 흑기사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도 흑기사가 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갔을까요? 명예와 권력을 가진 사람은 예수님께 가지 않았습니다. 율법과 계명을 잘 안다는 사람도 예수님께 가지 않았습니다. 가난한 사람, 병든 사람, 장애인이 예수님께로 갔습니다. 눈먼 사람은 예수님을 불렀습니다. “다윗의 자손이신 예수님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예수님께서는 눈먼 사람이 볼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오랫동안 하혈하던 여인이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졌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여인의 믿음을 칭찬하셨습니다. 여인은 하혈을 멈추었습니다. 가나안 여인은 예수님을 찾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여인의 딸을 고쳐 주셨습니다.
오늘 우리도 그런 흑기사가 되어야 합니다. 힘든 이를 대신해 짐을 들어 주는 사람, 상처받은 이를 대신해 울어주는 사람, 그리고 세상 속에서 믿음과 희망의 무게를 함께 지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멍에는 고통의 상징이 아니라, 기쁨의 근원입니다. 자신이 맡은 일을 ‘좋아하게 될 때’, 그 짐은 더 이상 무거운 짐이 아니라 사랑의 사명으로 바뀝니다. 대림 시기를 지내는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의 공로나 업적이 아니라, 그저 ‘있는 그대로의 우리’를 받아들이는 사랑임을 묵상합니다. 그 사랑을 깨닫는 순간, 우리 역시 누군가의 흑기사가 될 수 있습니다. 누군가를 위해 잠시 멈춰서 기다려 주는 일, 손 내밀어 도와주는 일, 그 작은 선택 속에 주님의 얼굴이 드러납니다. 2025년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지고 가려던 짐과 멍에는 무엇이었습니까? 혹시 너무 무거워 내려놓고 싶었던 짐은, 사실 주님께서 함께 들어주시길 기다리셨던 짐이 아니었을까요? “주님께 바라는 이들은 새 힘을 얻고 독수리처럼 날개 치며 올라간다. 그들은 뛰어도 지치지 않고, 걸어도 피곤하지 않다.”
오늘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을 사랑하십시오. 그러면 그 짐은 여러분을 행복하게 할 것입니다.” 주님, 무거운 짐을 진 우리에게 안식을 약속하신 주님, 우리가 서로의 흑기사가 되어 짐을 나누고 마음을 나눌 때 그 안에서 주님의 얼굴을 보게 하소서. 온유하고 겸손한 주님을 닮아기꺼이 멍에를 지고 걸어가는 사랑의 제자가 되게 하소서.
<나에게 오세요>
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님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마태 11,28)
외로운 벗이여
나에게 오세요
아무 것도 해드릴 수는 없지만
함께 머무를게요
그대가 한결 따뜻해지도록
아픈 벗이여
나에게 오세요
낫게 해드릴 수는 없지만
함께 아파할게요
그대가 한결 나아지도록
슬픈 벗이여
나에게 오세요
기쁘게 해드릴 수는 없지만
함께 슬퍼할게요
그대가 한결 밝아지도록
지친 벗이여
나에게 오세요
힘이 되어드릴 수는 없지만
함께 견뎌드릴게요
그대가 한결 돋아나도록
짓눌린 벗이여
나에게 오세요
무게를 덜어드릴 수는 없지만
함께 짊어질게요
그대가 한결 가벼워지도록
오늘의 성인
성 멜키아데 (Melchiades)
신분 : 교황, 증거자
활동지역 :
활동연도 : +314년
같은이름 : 멜키아데스, 밀시아데, 밀시아데스, 밀씨아데, 밀씨아데스, 밀티아데,밀티아데스
밀티아데(Miltiades)라고도 불리는 성 멜키아데는 아프리카 출신인 듯하며, 311년 7월 2일에 교황 성 에우세비우스(Eusebius, 8월 17일)를 계승하여 교황좌에 올랐다.
성 멜키아데 교황의 재임 기간은 콘스탄티누스(Constantinus) 대제가 밀비오(Milvio) 다리 위에서 막센티우스(Maxentius)를 격퇴하고 승리함으로써 그리스도교에 대한 오랜 박해가 종식되던 시기였고(312년), 따라서 콘스탄티누스 대제를 통해 로마 제국 내의 종교 자유를 획득한 중요한 시기였다(313년).
그러나 그와 동시에 도나투스(Donatus) 이단이 아프리카에서부터 서서히 고개를 쳐드는 교회 내의 혼란기가 시작되던 때였다.
그는 교황의 거처로 황제가 선물한 파우스타 황후의 궁전(현 라테라노 대성전)에서 열린 교회회의에서 도나투스 이단을 단죄하였다.
선종 후 칼리스투스 카타콤바에 아직 확인되지 않은 장소에 묻힌 그의 축일에 대해 로마 순교록은 12월 10일로 기록하고 있으나, 그가 세상을 떠난 1월 10일에 기념하기도 한다.
성 그레고리오 3세(Gregory III)
신분 : 교황
활동연도 : +741년
같은이름 : 그레고리, 그레고리우스
시리아 사람 요한의 아들인
성 그레고리우스(Gregorius, 또는 그레고리오)는 그리스어와 라틴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한 유능한 로마(Roma)의 사제였다.
그의 학덕과 성덕이 너무나 유명해서 선임 교황인 성 그레고리우스 2세(2월 11일)의 장례식 도중에 환호하는 군중들의 갈채 속에서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그는 선대 교황의 정책을 고수하면서 두 차례의 교회회의를 통하여 이단을 단죄하고, 성 보니파티우스(Bonifatius, 6월 5일)를 도와 독일 선교에 힘을 쏟았으며, 성 빌레발두스(Willebaldus, 7월 7일)까지 파견하는 열성을 보였다.
또한 성화상 파괴 운동에 저항하는 의도로 여러 성당을 장식하는 화려한 성상들을 많이 만들었다.
그는 성인들의 유해를 안치하기 위해 자신이 세운 구원자와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 봉헌된 성 베드로 대성전의 소성당에 안장되었다.
성 에드문도 제닝스 (Edmund Gennings)
활동년도 : +1591년
신분 : 신부, 순교자
지역 : 영국(UK)
같은 이름 : 에드먼드, 에드몬드, 에드문두스, 에드문드
영국 잉글랜드(England)의 런던 출신인 성 폴리도루스 플라스딘(Polydorus Plasden)은 프랑스의 랭스(Reims)와 이탈리아의 로마(Roma)에서 사제 수업을 받고 1586년에 로마에서 사제로 서품되었다. 그는 즉시 잉글랜드 선교사로 파견되었으나, 성 에드문두스 제닝스(Edmundus Gennings, 또는 에드문도)와 함께 체포되어 타이번(Tyburn)에서 교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이들은 1970년 10월 25일 교황 바오로 6세(Paulus VI)에 의해 잉글랜드와 웨일스(Wales)의 40명의 순교자 중 일원으로 시성되었다.
성녀 에울랄리아 (Eulalia)
활동년도 : +304년
신분 : 동정 순교자
지역 : 메리다(Merida)
같은 이름 : 에우랄리아
성녀 에울랄리아는 에스파냐에서 큰 축일로 지내는 동정 순교자이나 그녀에 대한 기록은 별로 없다. 그녀는 에스파냐의 메리다 태생으로 12살 때에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로 인하여 순교하였다. 메리다 지방의 집정관은 어린 그녀에게 그리스도교 신앙을 포기하도록 여러 번 종용하고 또 살려 주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그녀는 끝내 이교도의 신에게 제사지내기를 거부하고 많은 고문을 받고 운명하였다. 그때 성녀 율리아(Julia) 역시 그녀와 함께 신앙을 지키다가 순교하였다.
에스파냐의 시인 푸르덴티우스는 그녀의 아름다운 시신 위에 흰 눈이 내려 덮였고, 흰 비둘기가 그녀의 입술에서 나와 하늘을 날았다고 노래하였다. 그녀에 대한 공경은 에스파냐에서 시작하여 아프리카, 프랑스 그리고 이탈리아 등지로
빨리 전파되었고, 성 알델무스(Aldhelmus)는 잉글랜드(England)에서, 성 베다(Beda)는 성녀 에텔드리나에게 보내는 찬미가에서 그녀를 찬미하였고, 성 아우구스티누스
(Augustinus)도 순백한 그녀의 영혼을 노래하였다. 바르셀로나(Barcelona)의 성녀 에울랄리아(2월 12일)와 동일 인물이라는 주장도 있다.
성 요한 로버츠 (John Roberts)
신분 : 신부, 순교자
활동지역 : 영국(UK)
활동연도 : 1577?-1610년
같은이름 : 로버트, 얀, 요안네스, 요한네스, 이반, 장, 쟝, 조반니, 조안네스, 조한네스, 존, 죤, 지오반니, 한스, 후안
성 요한 로버츠(Joannes Roberts)는 1577년경 영국 웨일스 북서부의 산악지역인 스노도니아(Snowdonia)의 귀네드(Gwynedd)에 있는 트로스피니드(Trawsfynydd)라는 작은 마을에서 요한(John)과 안나 로버츠(Anna Roberts)의 아들로 태어났다. 농부였던 그의 아버지는 웨일스인으로 고대 영국 왕족의 후손이었다. 그는 지역 교회에서 프로테스탄트 신자로 세례를 받았다. 그러나 어려서부터 어느 나이 많은 수도승에게 교육을 받았는데, 그 수도승은 1537년 헨리 8세(Henry VIII) 왕이 강제로 수도원을 해산하기 전까지는 돌겔리(Dolgellau) 외곽에 있던 치머 수도원(Cymer Abbey)에서 생활했었다. 그 덕분에 성 요한 로버츠는 프로테스탄트 신자지만 가톨릭에 대한 호감을 느끼며 성장했다. 그는 1595년에 옥스퍼드(Oxford)의 성 요한 대학(St. John’s College)에서 수학한 후 런던에 있는 법학원인 퍼니벌스 인(Furnival’s Inn)으로 가서 법학을 공부하였다. 그 후 유럽 대륙을 여행하던 중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을 방문해 법학과 이전의 신앙을 뒤로하고 가톨릭으로 개종했다.
1598년에 그는 에스파냐로 가서 바야돌리드(Valladolid)에 있는 성 베네딕토회 수도원에 입회하여 수도승의 삶을 시작했다. 그곳에서 그는 자신의 고향인 웨일스의 해안가 산악지역 이름을 따서 메리오네스(Merioneth)의 요한 형제로 불렸다. 그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의 수도원으로 가서 수련기를 마치고 1600년 말에 첫서원을 했다. 이어 나머지 과정을 모두 마친 그는 사제품을 받고 1602년 12월 말 동료와 함께 영국 선교를 향해 출발했다. 영국 정부 스파이의 감시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1603년 4월 영국에 입국했다. 그는 또한 에스파냐 베네딕토회 수도원에 속한 영국 수도승들의 책임자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런던(London)에 도착하여 활동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체포되어 5월 13일 강제로 추방당했다. 그는 프랑스 북부의 두에(Douai)로 갔다가 다시 잉글랜드로 재입국을 시도했다. 그는 런던에서 페스트 희생자들을 위해 헌신하다가 1604년에 네 명의 지원자와 함께 에스파냐를 향해 출항하다가 다시 체포되었다. 다행히 그는 사제 신분이 드러나지 않아 풀려난 후 다시 추방되었다. 하지만 그는 즉시 잉글랜드로 되돌아왔다. 1605년 11월 5일, 한 판사가 ‘화약 음모 사건’(Gunpowder Plot)에 연루된 토마스 퍼시(Thomas Percy)의 첫 번째 아내인 퍼시 부인 집을 수색하던 중 그를 발견하면서 또다시 체포되고 말았다. 그는 웨스트민스터(Westminster)에 있는 게이트하우스(Gatehouse) 감옥에 갇혀 몇 달 동안 조사를 받고 화약 음모 사건과는 무관함이 밝혀졌지만 1606년 7월 다시 추방되었다. 14개월 정도 두에에 머무는 동안 그는 다양한 경로로 에스파냐의 수도원에 입회한 영국인 베네딕토회 수도승들을 위한 최초의 수도원을 설립했는데, 이것이 성 그레고리우스 수도원의 시작이었다.
성 요한 로버츠는 1607년 10월 다시 잉글랜드로 돌아왔다. 그러나 12월에 체포되어 웨스트민스터의 게이트하우스 감옥에 갇혔는데, 몇 달 후 그곳을 탈출할 수 있었다. 그 후 1년 정도 런던에 머물다가 1609년 5월에 또 체포되어 뉴게이트 감옥으로 갔다. 그는 이번에는 처형의 위기에 처했지만, 프랑스 대사가 대신 벌금을 제공해주어 추방형으로 감형되었다. 그는 다시 에스파냐와 두에를 방문했다가 잉글랜드로 돌아왔고, 1610년 12월 2일 어느 집에서 미사를 봉헌하다가 갑자기 들이닥친 사람들에게 체포되어 제의를 입은 채 뉴게이트 감옥으로 끌려갔다. 여러 번의 체포와 추방 그리고 재입국과 선교활동을 반복하던 그는 결국 1610년 12월 10일 잉글랜드에서 가톨릭 사제가 미사와 성사를 집전하는 것이 금지된 국법을 어긴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고 런던의 타이번(Tyburn)으로 끌려가 교수형과 극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런던에서 페스트 환자들을 헌신적으로 돌보며 열정적으로 사목했던 그는 가난한 사람들로부터 큰 사랑과 존경을 받았다. 그래서 사형 집행인이 마지막에 처형자의 심장을 들고 “반역자의 심장을 바라보아라!” 하고 외치면 사람들은 보통 “국왕 만세!”로 응답했는데, 이날은 아무도 응답하지 않고 죽음의 정적만이 흘렀다고 한다.
성 요한 로버츠는 시복은 1886년 12월 4일 교황 레오 13세(Leo XIII)에 의해 선포되었고, 1970년 10월 25일 교황 성 바오로 6세(Paulus VI)에 의해 ‘잉글랜드와 웨일스의 40위 순교자’(The Forty Martyrs of England and Wales) 중 한 명으로 성인품에 올랐다. 그의 축일은 개인적으로는 순교일인 12월 10일에 기념하고, 시성 후에는 40위 순교자의 일원으로서 시성일인 10월 25일에 기념해 왔었다. 2000년에 잉글랜드와 웨일스 교회의 새 전례력이 교황청에서 승인된 이후 40위 순교자들의 축일은 5월 4일로 옮겨져 종교 개혁 시대에 순교한 모든 복자 · 성인들과 함께 ‘영국의 순교자’(The English Martyrs)라는 이름으로 전례 안에서 기념하고 있다. 이날은 종교 개혁 시대 영국에서 순교한 영국 성공회의 순교자와 성인들의 기념일과 같은 날이다. 한편 웨일스 지방에서는 5월 4일 외에도 기존의 10월 25일을 ‘웨일스의 6위 순교성인’을 기념하는 별도의 축일로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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