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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광주대교구 꾸르실리스따 원문보기 글쓴이: 이선정스테파노
2026년 6월 3일 수요일
[(홍) 성 가롤로 르왕가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오늘 전례
가롤로 르왕가와 동료 성인들은 우간다의 순교자들이다. 우간다를 비롯한 동아프리카 지역에는 19세기 말에 그리스도교가 전파되었다. 왕궁에서 일하던 가롤로 르왕가는 교리를 배우고 세례를 받은 뒤, 자신의 신앙을 떳떳하게 고백하며 궁전의 다른 동료들에게도 열성적으로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전하였다. 그러나 그리스도교를 박해하는 왕조가 들어서면서 배교를 강요받던 그와 스물한 명의 동료들은 끝까지 굽히지 않다가 1886년 6월에 순교하였다. 1964년 성 바오로 6세 교황은 우간다 교회의 밑거름이 된 이들을 ‘우간다의 순교자들’이라고 부르며 시성하였다.
말씀의 초대
바오로 사도는 티모테오에게, 안수로 받은 하느님의 은사를 다시 불태우라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가이들의 물음에, 하느님께서는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내 안수로 그대가 받은 하느님의 은사를 다시 불태우십시오.>
▥ 사도 바오로의 티모테오 2서 시작입니다. 1,1-3.6-12
1 하느님의 뜻에 따라, 또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생명의 약속에 따라
그리스도 예수님의 사도가 된 바오로가,
2 사랑하는 아들 티모테오에게 인사합니다.
하느님 아버지와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에게서
은총과 자비와 평화가 내리기를 빕니다.
3 나는 밤낮으로 기도할 때마다 끊임없이 그대를 생각하면서,
내가 조상들과 마찬가지로 깨끗한 양심으로 섬기는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6 그러한 까닭에 나는 그대에게 상기시킵니다.
내 안수로 그대가 받은 하느님의 은사를 다시 불태우십시오.
7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비겁함의 영을 주신 것이 아니라,
힘과 사랑과 절제의 영을 주셨습니다.
8 그러므로 그대는 우리 주님을 위하여 증언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그분 때문에 수인이 된 나를 부끄러워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하느님의 힘에 의지하여 복음을 위한 고난에 동참하십시오.
9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행실이 아니라
당신의 목적과 은총에 따라 우리를 구원하시고
거룩히 살게 하시려고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이 은총은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이미 우리에게 주신 것인데,
10 이제 우리 구원자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나타나시어 환히 드러났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죽음을 폐지하시고,
복음으로 생명과 불멸을 환히 보여 주셨습니다.
11 나는 이 복음을 위하여 선포자와 사도와 스승으로 임명을 받았습니다.
12 그러한 까닭에 나는 이 고난을 겪고 있지만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나는 내가 누구를 믿는지 잘 알고 있으며,
또 내가 맡은 것을 그분께서 그날까지 지켜 주실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하느님께서는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18-27
그때에 18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가이들이
예수님께 와서 물었다.
19 “스승님, 모세는 ‘어떤 사람의 형제가 자식 없이 아내만 두고 죽으면,
그 사람이 죽은 이의 아내를 맞아들여 형제의 후사를 일으켜 주어야 한다.’고
저희를 위하여 기록해 놓았습니다.
20 그런데 일곱 형제가 있었습니다.
맏이가 아내를 맞아들였는데 후사를 남기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21 그래서 둘째가 그 여자를 맞아들였지만
후사를 두지 못한 채 죽었고, 셋째도 그러하였습니다.
22 이렇게 일곱이 모두 후사를 남기지 못하였습니다.
맨 마지막으로 그 부인도 죽었습니다.
23 그러면 그들이 다시 살아나는 부활 때에
그 여자는 그들 가운데 누구의 아내가 되겠습니까?
일곱이 다 그 여자를 아내로 맞아들였으니 말입니다.”
24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가 성경도 모르고 하느님의 능력도 모르니까
그렇게 잘못 생각하는 것이 아니냐?
25 사람들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날 때에는,
장가드는 일도 시집가는 일도 없이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아진다.
26 그리고 죽은 이들이 되살아난다는 사실에 관해서는,
모세의 책에 있는 떨기나무 대목에서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 읽어 보지 않았느냐?
‘나는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27 그분께서는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너희는 크게 잘못 생각하는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또는, 기념일 독서(2마카 7,1-2.9-14)와 복음(마태 5,1-12ㄴ)을 봉독할 수 있다.>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에서 사두가이들이 예수님께 묻습니다. 그들은 대체로 부유한 귀족 계층이었고, 성전과 대사제직의 권력 가까이에 있는 이들이었습니다. 로마의 지배 권력과 협력하며 특권을 지키는 데 익숙하였기에, 신앙의 열정보다 체제를 유지하는 데에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무엇보다 그들은 부활을 믿지 않았고, 오직 모세오경, 곧 토라만을 하느님의 계시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질문은 진리를 찾기 위해서라기보다, 부활이라는 빛을 꺼뜨리려는 시험처럼 보입니다.
그들은 신명기의 결혼 규정을 꺼내 듭니다(25,5-6 참조). 죽은 뒤에도 이 세상의 질서가 그대로 이어질 것이라는 가정 위에서, 부활을 모순으로 몰아가려 합니다. 질문은 논리의 옷을 입고 있지만, 그 속에는 믿음을 조롱하려는 차가운 의도가 숨어 있습니다.
이러한 물음에 예수님께서는 단호히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성경도 모르고 하느님의 능력도 모르니까 그렇게 잘못 생각하는 것이 아니냐?”(마르 12,24) 부활은 그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새롭게 보여 주시는 존재의 방식입니다. 영원한 생명은 이 땅의 삶을 되풀이하며 연장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과의 친교 안에서 새롭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두가이들이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토라에서 증거를 찾으십니다.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탈출 3,6.15–16; 4,5)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느님께서 오래전에 죽은 이들의 이름을 당신의 이름 안에 품고 계신다면, 그들은 사라진 존재가 아닙니다. 하느님께서는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십니다.
이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도 위로가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랑하신 이들의 이름을 잊지 않으시고, 죽음조차도 우리를 향한 그분의 기억과 사랑을 끊어 내지 못합니다. 부활을 믿는다는 것은, 하느님께서 우리의 손을 끝까지 붙들고 계신다는 사실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 그 손을 놓지 않았으면 합니다.(박병규 요한 보스코 신부)
우리는 결코 죽지 않고 영원히 살 것입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예수님께서 오늘 복음 말미에 귀가 번쩍 뜨이는 한 말씀을 건네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랍니다. 바로 오늘 나를 위한 하느님, 나의 하느님이랍니다.
예수님 말씀 묵상하다보니 마음이 많이 여유로워졌습니다. 아무리 부끄럽고 부족해도 살아있으면 되는 것입니다. 오늘 내가 살아있다는 것, 그 하나만으로 그분 사랑받는 존재이며, 그분에게 소중한 존재이기에 그렇습니다.
지난 시절 돌아보니 참삶을 살지 못했던 순간들이 많았습니다. 겉으로는 멀쩡했고, 숨을 부단히 쉬고 있었고, 여기저기 걸어 다니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제대로 살아있지 못했던 순간들이 떠오릅니다.
육체는 살아 있었지만 영혼이, 정신이 죽어버렸던 순간들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나만의 생각이고, 죽은 목숨이나 다를 바 없다고 좌절하던 그 순간에서 하느님께서는 함께 하셨고, 나를 위해 존재하셨습니다.
우리에게 더욱 필요한 노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들의 삶의 질에 대한 지속적 반성과 성찰입니다. 오늘 나는 참으로 살아있는가? 열심히 숨 쉬고 삼시 세끼 제때 밥 먹으며, 분명히 살아있지만, 이미 내 안에서 어떤 것들이 죽어버린 것은 아닌지? 육체는 버젓이 살아있지만, 영혼이나 정신이 이미 소멸되어 버린 것은 아닌지?
그래서 더욱더 노력해야겠습니다. 세월이 흐를수록 우리들의 육체는 점점 노쇠해지고 소멸되겠지만, 우리들의 영혼과 정신은 더욱 견고해지고 강건해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나를 둘러싼 주변 환경들이 아무리 열악하고 비호의적이라 할지라도, 또 일어서고 또 넘어서겠노라고.
진정으로 살아있는 존재는 몸도 살아 있지만 정신도 살아있는 존재입니다. 육체도 살아 있지만 영혼도 살아있는 존재입니다. 결국 주님 안에, 그분의 성령 안에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오늘 내 앞에 펼쳐질 하루하루가 시련과 상처투성이뿐일지라도, 기꺼이 견뎌내고 이겨내면, 언젠가 주님께서 약속하신 영광스런 부활의 삶에 직접 참여할 수 있으리라는 확신을 갖고, 또다시 힘을 내야겠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하느님 앞에 진정 살아있는 자로 굳건히 서 있어야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하느님은 살아있는 자의 하느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앞에 있는 사람은 모두 살아있는 것입니다. 죽은 사람조차도 하느님 앞에 있다면 살아있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이 존재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오직 하느님을 섬기고 그분께 영광을 드리는 데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오직 이 목적을 위해 살도록 우리를 부르시고 계십니다.
우리가 언젠가 죽음을 맞이함에도 불구하고 하느님 안에 머무르고자 노력할 때, 우리는 결코 죽지 않고 영원히 살 것입니다.
우리는 무엇으로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가?
전삼용 요셉 신부님
"그분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너희는 크게 잘못 생각하는 것이다." (마르 12,27)
찬미 예수님! 연중 제9주간 수요일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우리는 부활을 믿지 않는 사두가이들과 예수님의 치열한 논쟁을 봅니다. 그들은 일곱 형제와 결혼한 여자가 부활하면 누구의 아내가 되느냐는 아주 유치하고도 인간적인 질문으로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리려 합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무지를 꾸짖으시며, 부활한 이들은 천사들과 같아진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아주 장엄한 결론을 내리십니다. "그분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우리는 미사 때마다 입술을 열어 대영광송을 부르며 하느님을 찬미합니다. 하지만 스스로의 정체성은 한없이 낮고 초라한 밑바닥에 내버려 둔 채 입으로만 부르는 찬미가 과연 하느님께 진정한 영광이 될 수 있을까요? 자기 정체성은 끌어올리지 않으면서 말로만 영광을 드리는 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는 공허한 소음일 뿐입니다.
하느님께서 진정으로 영광을 받으시는 순간은, 우리가 하느님께서 우리를 당신의 신성으로 끌어올려 주셨음을 굳게 믿고 그 위대한 본성에 맞게 살아갈 때입니다.
우리는 오늘 복음의 말씀을 들을 때, 단순히 '죽어서 무덤에 묻힌 사람'과 '심장이 뛰어 숨을 쉬는 사람'을 구분하는 정도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말씀의 진짜 의미는 훨씬 더 거대하고 우주적입니다. 하느님께서 말씀하시는 '산 이들'이란 단순히 호흡을 이어가는 생물학적 인간이 아니라, 하느님의 생명과 본성에 참여하여 '하느님과 똑같은 존재(神)'로 수직 상승한 위대한 상속자들을 의미합니다.
왜 하느님께서는 굳이 인간을 하느님으로 만드셔야만 직성이 풀리실까요? 이 깊은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스승과 제자의 실화 하나를 먼저 들여다보겠습니다.
눈멀고 귀먹어 짐승처럼 날뛰던 헬렌 켈러와, 그녀의 곁에서 평생을 바친 앤 설리번 선생님의 이야기입니다. 처음 헬렌을 만났을 때, 헬렌은 손으로 음식을 마구 집어 먹고 화가 나면 사람을 물어뜯는 야생 동물과 다를 바 없었습니다. 만약 설리번 선생님이 헬렌에게 밥을 잘 떠먹여 주고, 다치지 않게 보호해 주는 '친절한 사육사' 역할에만 만족했다면 어땠을까요? 헬렌은 평생 배부르고 안전한 짐승으로 살다 죽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설리번 선생님의 목표는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피눈물 나는 인내심을 쏟아부어, 헬렌의 손바닥에 끊임없이 글자를 적어주었습니다. 물의 감각을 깨닫게 하고, 사랑의 의미를 가르쳤습니다. 왜 그토록 지독하게 가르쳤을까요? 헬렌을 그저 '살아있는 동물'이 아니라, 자신과 똑같이 생각하고, 사랑하고, 세상을 향해 웅변할 수 있는 '완벽한 인간'으로 끌어올리기 위해서였습니다.
만약 헬렌 켈러가 자신의 본성을 인간으로 끌어올리지 않은 채, 개나 고양이처럼 바닥을 기어 다니면서 입으로만 "선생님, 감사합니다. 선생님 영광 받으세요"라고 웅얼거렸다면 그것이 스승에게 영광이 되었겠습니까? 결코 아닙니다.
마침내 1904년, 헬렌 켈러가 하버드 대학교의 래드클리프 칼리지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던 날이었습니다. 헬렌이 학사모를 쓰고 세상에서 가장 지성적인 여인으로 당당하게 단상에 섰을 때, 그 모습을 지켜보던 설리번 선생님은 기쁨의 눈물을 펑펑 흘렸습니다.
설리번 선생님에게 영광은 무엇이었을까요? "나는 평생 짐승 같은 아이를 굶기지 않고 잘 키운 보모다" 라고 말하는 것이 영광일까요? 아닙니다. "보십시오! 이 위대한 철학자이자 작가인 헬렌 켈러가 바로 나의 제자이며 나의 딸입니다!"라고 세상에 선포하는 것이 스승의 진짜 영광이요 기쁨입니다. 제자가 스승과 똑같은 지성과 인격을 갖춘 고귀한 존재로 성장했을 때, 스승의 위대함도 완벽하게 증명되는 것입니다. (출처: 헬렌 켈러, 『내가 살아온 이야기』)
하느님의 마음도 이와 정확히 똑같습니다. 부모가 "나는 죽은 아이의 부모다" 혹은 "나는 평생 밥만 먹고 뒹구는 식충이의 부모다"라고 말하는 것을 영광으로 여기겠습니까? 부모의 가장 큰 자랑은 "나는 세상에서 가장 훌륭하고 위대한 이 아이의 부모다!"라고 외칠 때 완성됩니다.
예수님께서 "그분은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라고 선언하신 것은, 하느님 아버지께서 "나는 고작 땅에 코를 박고 돈과 쾌락만 쫓아다니는 죽은 인간들의 신이 아니다. 나는 나와 똑같은 사랑을 실천하고, 나와 똑같은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하느님들(Gods)'의 아버지다!" 라고 당신의 가장 거룩한 자존심을 온 우주에 선포하시는 말씀인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인간이 하느님이 될 수 없다고 겸손한 척 말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겸손이 아니라 하느님의 창조 목적을 부정하는 지독한 교만이며, 하느님의 영광을 철저히 가리는 짓입니다. 인간의 모든 행동과 욕구는 자신의 '본성'에서 나옵니다. 개라고 믿으면 땅에 떨어진 음식 찌꺼기를 탐하게 되고, 사람이라고 믿으면 식탁에 앉아 품위 있게 식사를 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죽어 흙으로 돌아갈 인간'으로만 믿는다면, 우리의 욕구는 철저하게 세상의 돈, 권력, 쾌락이라는 썩어 없어질 것들에만 머물게 됩니다. 그것은 하느님 보시기에 죽은 자들의 무덤일 뿐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성체성사를 통해 "나는 하느님의 피를 수혈받은 하느님이다!"라는 정체성을 굳게 믿게 되면, 우리의 욕구는 완전히 달라집니다. 하느님처럼 원수를 용서하고, 하느님처럼 가난한 이를 위해 내 살을 내어주고 싶은 '거룩한 욕망'이 불타오르게 됩니다.
우리 인간은 본래 죄악 속에서 40년, 80년 뼈 빠지게 일하다가 흙으로 돌아가야 할 일벌과 같은 비참한 운명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불쌍한 일벌로 버려두지 않으셨습니다. 아버지는 당신의 외아들을 이 땅에 보내시어, 십자가에서 당신의 살과 피를 쥐어짜 내어 만든 영적 로열젤리, 곧 '성체'를 우리 입에 물려주셨습니다.
우리가 이 성체를 먹는 순간, 우리 영혼 속에는 찌질한 인간의 유전자 발현이 멈추고, 썩지 않는 하느님의 거룩한 DNA가 작동하기 시작합니다. 우리는 더 이상 세상의 꿀을 찾아 헤매는 일벌이 아니라, 세상을 다스리고 생명을 낳는 하느님 나라의 여왕벌, 즉 하느님의 자녀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인간으로 오신 유일한 목적은 바로 인간을 하느님으로 만들기 위함이셨습니다. 이 정체성을 받아들이고 하느님처럼 사랑할 때, 우리는 비로소 하느님 보시기에 '살아있는 자'가 되며 하느님께 완벽한 영광을 돌려드리게 됩니다.
오늘 제1독서인 티모테오 2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두려움에 떠는 티모테오에게 이 위대한 정체성을 벼락처럼 일깨워줍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비겁함의 영을 주신 것이 아니라, 힘과 사랑과 절제의 영을 주셨습니다." (2티모 1,7).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며 돈이 부족할까 봐, 사람들에게 무시당할까 봐 불안해하는 그 '비겁함'은 하느님이 주신 것이 아닙니다. 땅에 속한 인간의 죽은 본성일 뿐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네 안에 하느님의 힘과 사랑의 영이 있으니, 제발 고아처럼 굴지 말고 하느님의 상속자답게 불꽃을 피워 올려라!"라고 촉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구약성경 시편 82편 6절을 보십시오. 하느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향해 직접 내리신 구원의 설계도가 명확히 적혀 있습니다. "나는 말한다. 너희는 신이다. 너희는 모두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들이다."
교회의 위대한 교부이신 성 이레네오 주교님은 『이단 반박』에서 이렇게 사자후를 토하셨습니다. "하느님의 영광은 완전히 살아 숨 쉬는 인간이며, 인간의 생명은 하느님을 보는 것이다. (Gloria Dei vivens homo). 하느님의 말씀이 인간이 되신 것은, 인간으로 하여금 하느님이 되게 하기 위함이다." (출처: 성 이레네오, 『이단 반박』).
그렇습니다. 하느님께 드리는 최고의 영광은 나의 정체성을 하느님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 한복판에서 십자가를 지고 원수를 사랑하며 "보십시오 아버지! 제가 아버지의 피를 물려받은 위대한 하느님입니다!"라고 당당하게 살아낼 때, 아버지는 가장 크게 영광을 받으십니다.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성지순례를 가면 ‘지도 신부’라는 이름으로 함께 하게 됩니다. 순례를 시작하면서 몇 가지 당부하는 말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순례하는 마음의 자세입니다. 여행객으로 왔다면 순례자가 되어서 돌아가면 좋겠다고 말합니다. 순례자로 왔다면 거룩한 사람이 되어서 돌아가면 좋겠다고 말합니다. 단순한 말이지만, 교우들에게는 ‘왜’ 순례하는지를 성찰하게 하는 울림을 줄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건강입니다. 낯선 곳에서 순례는 자칫 긴장하게 됩니다. 시차도 있고, 음식도 달라서 적응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절대 무리하지 말고, 평소에 먹는 약이 있으면 꼭 챙겨 먹으라고 이야기합니다. 순례 중에 몸이 아프면 본인은 물론 함께 순례하는 동료에게도 어려움을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세 번째는 소지품입니다. ‘여권, 지갑, 스마트폰’은 꼭 챙겨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특히 여권은 분실하면 순례에 큰 차질이 생길 수 있으니 언제나 몸에 지니고 다녀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이 세 가지만 잘 지키면 은혜로운 성지순례가 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35년 동안 성지순례를 여러 번 다녔지만 큰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이런 원칙을 늘 강조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보살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순례 중에 빠지지 않는 것은 ‘미사와 기도’입니다. 미사 중에 강론과 더불어 순례의 여정을 되풀이해 줍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어디를 다녀왔는지 잘 모를 수 있습니다. 몇 번씩 다녀온 저도 그렇게 되풀이하지 않으면 잊어버리곤 합니다. 이동 중에 버스 안에서는 ‘묵주기도’를 하자고 합니다. 처음에는 제가 기도를 인도하지만, 나중에는 조별로 묵주기도를 바칠 수 있도록 권고합니다. 묵주기도와 성가는 순례자들의 마음을 하나로 묶어주기도 하며, 왜 여기에 있는지 돌아 볼 수 있게 해 줍니다. 이번에는 하지 못했는데 순례의 마지막 날에는 전체가 모여서 다과를 나누며 소감 발표를 합니다. 동료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번 순례가 얼마나 은혜로운지 새삼 알게 됩니다. 엠마오로 가는 중에 제자들이 예수님을 만났듯이, 순례의 여정 중에 교우들은 많은 은혜를 받았다고 이야기합니다.
오늘 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디모테오에게 사도로서 몇 가지를 당부합니다. 복음을 전하면서 감옥에 갇힌 것이 전혀 부끄럽지 않다고 이야기합니다. 복음을 전하면서 박해받고, 고난받는 것이 오히려 은총이라고 이야기합니다. 하느님의 은사를 다시 불태우라고 이야기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비겁함의 영이 아니라, 힘과 사랑과 절제의 영을 주셨다고 이야기합니다. 칼을 오래 쓰면 칼날이 무뎌지듯이, 우리의 몸과 마음도 편안함에 익숙해지면 나태해지고, 세상의 유혹에 휩쓸릴 수 있습니다. 성지순례 중에도 자칫 쇼핑에 눈이 먼저 가거나, 이웃의 작은 허물을 지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것은 우리의 행실과 능력 때문이 아니라 하느님의 자비와 은총 때문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성지순례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께서 나에게 건강을 허락하시고, 시간을 허락하시고, 능력을 허락하셨기에 성지순례를 올 수 있었기에 더욱 감사드리자고 이야기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부활’ 이후의 삶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불교는 ‘윤회’를 이야기합니다. 마치 시지프스의 신화처럼 되풀이되는 삶을 이야기합니다. ‘생로병사’의 수레바퀴가 계속 돌아가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는 가운데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고통, 미워하는 사람을 만나야 하는 고통,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고통, 내 마음을 통제하지 못하는 고통이 반복되는 삶을 이야기합니다. 부처님은 이런 번뇌를 벗어나는 길은 ‘깨달음’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깨달은 사람은 마치 달걀이 병아리가 되듯이 전혀 차원이 다른 삶을 살게 된다고 이야기합니다. 애벌레가 하늘을 나는 나비가 되듯이 전혀 차원이 다른 삶을 살게 된다고 이야기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부활 이후의 삶도 그와 비슷하다고 말씀하십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이야기하였습니다. “지금은 희미하게 보이지만 그때는 모든 것이 확실하게 보일 것입니다.”
깨달음의 삶, 부활 이후의 삶은 죽어서만 아는 것도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삶을 따라가는 것이 바로 부활 이후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성인, 성녀가 걸어갔던 길이 바로 부활 이후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너희가 성경도 모르고 하느님의 능력도 모르니까 그렇게 잘못 생각하는 것이 아니냐? 그분께서는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너희는 크게 잘못 생각하는 것이다.”
오늘의 성인
성 가롤로 르왕가(Charles Lwanga)
신분 : 순교자
활동지역 : 우간다(Uganda)
활동연도 : 1860-1886년
같은이름 : 가롤루스, 까롤로, 까롤루스, 르완가, 샤를, 샤를르, 찰스, 카롤로, 카롤루스, 칼
성 요셉 무카사(Joseph Mukasa)
활동년도 : +1885년
신분 : 순교자
지역 : 우간다(Uganda)
같은 이름 : 무까사, 므까사, 므카사, 요세푸스, 요제프, 조셉, 주세페,쥬세페
성 카롤루스 르왕가(Carolus Lwanga, 또는 가롤로 르왕가)와 성 요셉 무카사(Josephus Mukasa)와 동료 순교자들은 일명 우간다의 순교자들이라고 불리는데, 이들의 이야기는 하느님의 은총이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알 수 있는 참으로 감동적인 순교사이다. 중앙아프리카 내륙지방에 살던 원주민들에게 처음으로 가톨릭 선교사를 파견한 것은 1879년의 일이다. 라비제리(Lavigerie) 추기경이 중앙아프리카의 선교를 위해 1879년에 설립한 화이트 파더들(White Fathers)이 바로 그들이었다. 그리고 우간다에서는 극히 우호적이었던 무테사(Mutesa) 추장의 도움으로 약간의 진전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그의 후계자인 무왕가(Muwanga)는 자기 부족 가운데에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뿌리 뽑으려고 하였다. 하지만 그들 중에는 성 요셉 무카사 같은 열심한 부하가 있었다. 그래서 무왕가 추장은 그의 박해의 첫 희생자로 성 요셉 무카사를 참수하였다. 이때가 1885년 11월 15일이었다. 성 요셉 무카사의 지위를 승계한 성 카롤루스 르왕가는 추장 몰래 4명의 예비신자에게 세례를 주었는데, 그중에는 13세의 소년 성 키지토(Kizito)도 있었다. 추장은 또 다시 박해를 일으켜 모든 신자들을 색출하여 잡아들였다. 체포된 모든 신자들은 나무공고(Namugongo)라 불리는 곳까지 끌려가면서 온갖 시련을 겪었다. 처형지에 도착한 그들은 1886년 주님 승천 대축일인 6월 3일에 옷이 벗겨진 채 꽁꽁 묶였고, 사형 집행자들은 밤이 새도록 노래를 부르며 그들을 괴롭히다가 천천히 불에 태워 죽이는 등 잔인한 방법으로 모두 살해하였다.
또 다른 순교자로는 마티아 칼렘바 무룸바(Mattias Kalemba Murumba)로도 불리는 성 마티아 무룸바(Matthias Murumba)가 있다. 그는 처음에는 프로테스탄트 선교사의 영향을 받았으나 결국은 리빈하크(Livinhac) 신부에게 세례를 받았다. 또 다른 사람은 키고와의 추장 성 안드레아 카그와(Andreas Kagwa)인데, 그는 아내의 영향을 받아 개종한 후 주위의 사람들에게 교리를 가르쳐 세례를 받도록 했다.
성 카롤루스 르왕가와 성 마티아 무룸바를 포함한 총 22명의 우간다 순교자들은 1920년 6월 6일 교황 베네딕투스 15세(Benedictus XV)에 의해 성대하게 시복되었다. ‘순교자들의 피는 그리스도인들의 씨앗’이란 말처럼, 그들의 순교 이후 즉시 500명 이상이 영세하고 3천 명 이상의 예비신자들이 쇄도하여 오늘날의 우간다 교회를 꽃피우는 밑거름이 되었다. 그들은 모두 1964년 10월 18일 로마(Roma)에서 교황 바오로 6세(Paulus VI)에 의해 우간다의 순교자들로 성인품에 올랐다. 성 카롤루스 르왕가는 아프리카 가톨릭 청소년 활동단체의 수호성인이다.
성 케빈 (Kevin)
활동년도 : +618년
신분 : 수도원장
지역 : 글렌달로그(Glendalough)
같은 이름 : 캐빈, 켐제노, 켐제누스, 코이게노, 코이게누스
성 케빈은 아일랜드의 더블린(Dublin) 근교에서 아버지 코엠록(Coemlog)과 어머니 코에멜(Coemell) 사이에서 출생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출생 연도와 일자는 확실하지 않다. 10-11세기에경에 쓰여진 전기에 의하면 그는 고대 아일랜드 5부족 왕국의 하나인 렌스터(Leinster)의 화이트 파운틴(White Fountain) 성채에서 태어난 왕손이다. 그는 성 크로난(Cronan, 4월 28일)으로부터 세례를 받고, 콘월(Cornwall) 출신의 성 페트록(Petroc, 6월 4일) 아빠스로부터 교육을 받으면서 자연스럽게 수도자로서의 삶을 받아들였을 것으로 여겨진다. 그 후 그는 블레싱턴(Blessington) 근처의 할리우드(Hollywood) 광야에서 생활하다가, 제자로 받아줄 것을 요구하는 사람들이 늘어나자 글렌달로그(두 개의 호수가 만나는 계곡이라는 뜻)의 작은 언덕 위에 골방을 짓고 숨어 지냈다. 그러나 사람들을 요구를 더 이상 물리칠 수 없음을 깨닫고 570년에 수도원의 원장이 되었다. 그는 로마(Roma)를 순례하였고, 성 키아란(Ciaran, 9월 9일)의 친구였으며, 국왕 콜만(Colman)의 아들을 교육하였다.
그는 618년 6월 3일 글렌달로그의 수도원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유해는 성당 가까운 곳에 안치되었다가 후에 계곡 상류 쪽 호수 위에 있는 천연 동굴로 옮겨졌다. 성인의 유해가 모셔진 동굴은 19세기까지 유명한 순례지 중 하나였다. 그는 더블린의 수호성인들 중 한 사람으로, 로마 보편 전례력에 명시되어 있지 않으나, 아일랜드에서는 6월 3일을 축일로 기념하고 있다. 케빈은 영어식 이름이며, 라틴어로는 켐제누스(Coemgenus)라고 부른다.
성 요한 그란데(John Grande)
활동년도 : 1546-1600년
신분 : 자선가
지역 :
같은 이름 : 그랑드, 요안네스, 요한네스, 조반니, 조안네스, 조한네스, 존, 죤
성 요한 그란데(Joannes Grande)는 1546년 3월 6일 에스파냐 남부 안달루시아(Andalusia)의 카르모나(Carmona) 소읍에서 태어났다. 15세 되던 해에 부친이 사별하자 세비야(Sevilla)로 가서 포목상을 하는 친척 가게에서 일을 거들며 지냈다. 그는 사업 수완이 뛰어났지만 세상 일이 그의 정신을 빼앗지는 못하였다. 그는 오히려 이런 일들에 조금도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22세 때 그는 자신의 소유물을 모두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준 뒤에 마르세나 교외의 은둔소로 잠적해 버렸다.
그는 어릴 때부터 불우한 생활을 하였지만 그 자신은 좋은 성품을 지닌 사람으로 자처하면서 그늘진 구석을 보이지 않았다. 어느 날 그는 길가에 누워있는 두 사람의 부랑자를 보자마자 연민의 정을 이기지 못해 자신의 움막으로 데려와서 따뜻이 돌보아 주었다. 이런 일이 여러 번 반복되자 그는 하느님의 뜻이 이런 데에 있음을 알고 은둔소를 떠났다.
그는 세레스(Xeres)로 가서 죄수들을 위해 봉사하기 시작하였다. 3년 동안 그는 비참한 환경 속에서 그들을 위해 구걸하고 봉사하다가 병원 일을 맡게 되었다. 이를 보고 감동한 어느 부유한 부부가 병원을 지어주자 그는 젊은이들을 모았다. 또한 그는 가난한 처녀에게는 결혼 지참금을 마련해 주었고, 영국과의 전투에서 상처를 입은 에스파냐 군인들을 치료하는데 헌신하였다. 이런 와중에서도 그의 영성생활은 어느 누구도 넘볼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났다. 죄수들을 위한 그의 헌신 때문에 그는 흔히 요한 죄수(John the Sinner)로도 불린다. 그는 1853년 교황 비오 9세(Pius IX)에 의해 시복되었고, 1996년 6월 2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성녀 클로틸다 (Clotilde)
활동년도 : 474-545년
신분 : 왕비
지역
같은 이름 : 글로틸다, 글로틸드, 끌로틸다, 끌로틸디스, 클로틸드, 클로틸디스
성녀 클로틸다(Clotildis)는 부르고뉴(Burgundy) 공국의 국왕 칠페릭의 딸로서 프랑스의 리옹(Lyon)에서 태어나 492년에 프랑크 왕국의 초대 국왕 클로비스(Clovis)와 결혼하였다. 그녀는 국왕인 남편을 그리스도인으로 개종시켰는데, 이 일은 왕이 ‘클로틸다의 하느님’께 기도하여 패할 듯한 전쟁을 승리로 이끈 496년 성탄절을 기하여 일어났다. 클로비스 국왕이 511년 사망하자 그녀는 네 아들과 함께 살다가 투르(Tours)로 가서 병자와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다가 여생을 조용히 마쳤다.
복자 요한 23세 (John XXIII)
활동년도 ; 1881-1963년
신분 ; 교황
지역 ;
같은 이름 ; 요안네스, 요한네스, 조반니, 조안네스, 조한네스, 존, 죤
교황 요한 23세(Joannes XXIII)는 1881년 11월 25일 이탈리아 베르가모(Bergamo)에서 12km 떨어진 소토 일몬테(Sotto il Monte)에서 가난한 농부인 조반니(Giovanni Roncalli)의 13명의 자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그의 본명은 안젤로 주세페 론칼리(Angelo Giuseppe Roncalli)이다. 어려운 환경에서 태어나 성장한 요한은 자연스럽게 자신의 사제상을 가난한 이들에게 봉사하는 것으로 정하였다. 그는 베르가모 신학교에서 2년 간 교육을 받고, 로마(Roma)의 성 아폴리나레 대학으로 유학을 떠났다.
이곳에서 신학 공부를 하던 중, 1902년 10월 영성 지도자인 구속주회의 피토키(Francesco Pitocchi) 신부를 만나면서 “하느님은 모든 것이며,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Dio tutto, io sono nulla)라는 기본적이면서 근본적인 명제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1904년 신학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사제 서품을 받은 후 다음해에 베르가모의 테데스키(G.R. Tedeschi) 주교의 비서로 임명되어 1914년 주교가 사망할 때까지 그의 곁에 머물렀다. 교구장 비서로 일하면서 그는 신학 연구에도 몰두하였다. 암브로시우스 도서관에서 연구 작업은 후에 교황 비오 11세(Pius XI)가 된 라티(A.D.A. Ratti) 추기경과의 만남을 갖게 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 끝난 후 1921년 교황 베네딕투스 15세(Benedictus XV)는 그를 포교성성(현 인류 복음화성)의 이탈리아 책임자로 임명하였다. 그는 이어 1925년 아레오폴리스(Areopolis)의 명목상의 대주교 및 1935년 불가리아의 대목으로 임명되었다. 불가리아 · 그리스의 교황 사절, 파리주재 교황청 대사(1944∼1953년)를 거쳐 1953년 1월 12일에는 사제 추기경으로 임명되었고, 1958년 10월 비오 12세(Pius XII)에 이어 77세의 고령으로 교황에 선출되었다.
교황으로서 요한 23세라는 이름을 선택한 그는 11월 4일 즉위식을 거행하면서 좋은 목자가 되기 위해 모든 것을 다 하겠다는 희망을 피력하였다. 우선 교황이 된 후 처음으로 개최한 추기경 회의에서 추기경 숫자를 70명으로 제한하는, 식스투스 5세(Sixtus V)부터 내려오던 규정을 폐지하였다. 1958년 12월 23명의 추기경을 새로 임명하였는데, 그 중에는 밀라노(Milano) 교구장으로 후에 교황 바오로 6세(Paulus VI)가 되는 몬티니(Giovanni Battista Montini)도 포함되어 있었다. 1962년까지 그가 임명한 추기경은 모두 87명으로 늘어났다.
1959년 1월 25일 교황은 추기경들에게 로마 교구 시노드 개최, 공의회 개최, 교회법전 개정 등 세 가지 계획을 선언하였다. 로마 교구 시노드는 1960년 1월 24-31일까지 라테란 대성전에서 개최되었다. 1962년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개최는 교황의 업적 중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며, 이 공의회를 통해 모든 그리스도 교인의 일치라는 궁극적인 목적에서 교회의 종교생활을 쇄신하고 그 가르침과 조직을 현대에 맞도록 개혁한다는 취지를 펼쳤다.
그 밖의 괄목할 만한 개혁으로는 그리스 멜키테 총대주교 막시모스(Maximos) 4세의 호소를 받아들여 비잔틴 전례에서 모국어 사용을 허가하는 한편, 미사경본과 시간전례서(성무일도)에 대한 새로운 예식 규정을 인가하고(1960년), 미사 통상문의 성찬 기도에 성 요셉(Josephus)의 이름을 삽입하였으며(1962년), 교회법전 개정을 위한 교황청 위원회를 구성한(1963년) 일 등을 들 수 있다. 또한 1960년 그리스도교 일치 사무국 개설, 이듬해에는 세계교회협의회(WCC) 총회에 처음으로 로마 가톨릭의 대표가 참가하였으며,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도 비가톨릭 인사들이 참관인으로 초대되는 등 일련의 쇄신이 이어졌다.
1963년 5월 22일 베드로 광장에 모인 신자들에게 마지막 인사와 함께 강복을 준 교황은 성령 강림 대축일이었던 6월 3일 선종하였다. 그의 유해는 베드로 대성전에 안장되었다. 5년도 채 안된 재임 기간 동안 요한 23세 교황은 인류를 향해 열려 있는 교회가 되도록 가톨릭 교회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좋으신 교황’(papa buono)이라는 애칭으로도 불리는 그는 교황 바오로 6세(Paulus VI)에 의해 시복 소송이 시작되어, 2000년 9월 3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베드로 광장에서 시복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