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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수릿지, 멀리 왼쪽 흐릿한 산은 백두대간 대미산, 그 오른쪽은 운달산, 단산, 그 앞은 만수봉
가을이구나! 빌어먹을 가을
우리의 정신을 고문하는
우리를 무한 쓸쓸함으로 고문하는
가을, 원수 같은
―― 정현종,「가을, 원수 같은」에서
▶ 산행일시 : 2016년 10월 15일(토), 안개, 흐림
▶ 참석인원 : 12명
▶ 산행코스 : 수산리 음지말 → 시루미능선, 영봉, 삼거리(945m). 헬기장, △960.5m봉,
만수릿지(909.7m봉, 862.2m봉, 867m봉), 덕주골 → 덕주사
▶ 산행거리 : 도상 10.4km
▶ 산행시간 : 8시간 2분
▶ 교 통 편 : 두메 님 24인승 버스
▶ 구간별 시간(산의 표고는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에 따름)
06 : 27 - 동서울터미널 출발
09 : 08 - 수산리 음지말교, 산행시작
09 : 52 - 456m 고지, 첫 휴식
11 : 08 - 안부
11 : 30 - 영봉 주등로
11 : 50 - 월악산 영봉(1,092.0m)
12 : 13 - ┫자 갈림길, 왼쪽은 신륵사 오가는 길
12 : 30 ~ 13 : 05 - 점심
13 : 17 - 헬기장
13 : 30 - △960.5m봉
14 : 05 - 907.7m봉
14 : 45 - 862.2m봉
15 : 18 - 867m봉
15 : 50 - 안부, 하산
16 : 55 - 주등로, 덕주사 0.5km
17 : 10 - 덕주사, 산행종료
17 : 32 ~ 19 : 11 - 수안보, 목욕, 저녁
22 : 15 - 동서울 강변역, 해산
1, 월악산 영봉에서
2. 만수릿지, 앞은 829m봉
3. 맨 뒤는 문수봉, 그 앞으로 차례로 매두막봉, 하설산, 어래산
▶ 월악산 영봉(1,092.0m)
서울을 벗어나자마자 자욱하게 ‘안개 낀 고속도로’를 느릿느릿하게 간다. 차창 밖은 온통 안
개에 가려 아무 볼 것이 없다. 차안이 조용한 건 모두들 닭병이라도 걸린 듯 꾸벅꾸벅 졸기
때문이다. 더구나 중부내륙고속도로는 1개 차로만 열고 공사 중이라 가다 서다를 반복한다.
충주휴게소를 들리고 나서 산행복장을 갖추기 시작한다.
충주호가 산기슭 최고 수계에는 한참 미치지 못하지만 근래 많이 불었다. 시림교 건너 시루
미능선이 시작되는 307.5m봉에 바로 붙으려고 했으나 사과 과수원으로 막혔다. 수산2리 마
을 공동창고를 오른쪽으로 돌아 사과밭 농로를 따라 오르다 밭두렁을 지난다. 사과 농사도
힘든 일이다. 들짐승과 날짐승의 접근을 막으려고 전선줄과 괴음발성기를 설치했다. 괴음발
성기는 4~5분 간격으로 울리는데, 처음에는 사과가 하도 탐스러워 들여다보는 우리들을 경
계하는 줄로 알았다.
시루미능선이 시작되는 시루미 마을의 뒷산인 307.5m봉을 ‘시루미(증산)’라고 하지 않을까
한다. ‘미’는 ‘뫼’의 변화된 이름이고 산봉우리의 모양이 시루(甑, 증)처럼 생겨서다. 시루미
능선은 선답이 있었다. 1992년 말경 제천 두발산악회(당시 회장 이연규)가 개척한 숨은 등
산로라고 한다. 사과밭을 지나 가시덤불 헤치고 생사면에 붙는다. 녹슨 철조망을 세 차례나
넘는다. 그리고 가파른 오르막이다.
풀숲의 산부추꽃과 큰갓버섯을 들여다보는 사이에 일행은 보이지 않게 가버렸다. 307.5m봉
을 애써 오르는 중에 능선 쪽에서 연호하는 소리가 들려 방향 틀어 연호 쫓는다. 약간 내린
┫자 갈림길 안부에서부터 길은 안내산악회 표지기 앞세우고 대로로 뚫렸다. 우리만 미답이
었다. 가파르고 긴 오르막이 이어진다. 발걸음으로 갈지(之)자를 어지럽게 그리면서 오른다.
가쁜 숨 돌릴 겸사하여 눈길은 좌우사면을 훑어보지만 추수 끝난 가을 들녘처럼 황량하다.
아침에는 으스스하던 기온이 금방 한여름으로 변했다. 팔 걷어붙이고도 땀을 비 오듯이 쏟는
다. 가파름이 잠시 수그러든 456m 고지가 넙데데하여 첫 휴식한다. 승연 님이 어묵을 끓인
다. 아까 딴 큰갓버섯도 넣었다. 어묵도 큰갓버섯도 별미다. 이 안주 핑계하여 입산주 탁주를
거푸 들이킨다.
이제부터 당분간은 완만한 오르막이다. 일로직등 하느라 번번이 뻔한 등로를 놓치고 잡목 숲
을 뚫기도 한다. 하늘 가린 숲속이다. 오른쪽 골짜기 건너 중봉과 영봉이 안개 속 나뭇가지
수렴에 가린 채 희끄무레하게 보인다. 저 공제선에 오르면 혹시 전망이 트일까 냅다 잰걸음
하지만 공제선은 자꾸 뒤로 물러나고 744.1m봉에서는 그만 풀이 꺾이고 만다.
850m봉은 암봉이다. 나뭇가지 젖히자 여태 못 보던 산첩첩 가경이 펼쳐진다. 만수릿지는 적
상을 두른 영봉을 떠받들고, 어래산, 하설산, 매두막봉, 문수봉, 대미산 등은 월악제국의 든
든한 제후들이다. 잡목 헤치고 야트막한 안부에 이르러서는 영봉을 직전에 두고 숨 고른다.
일단은 왼쪽 사면을 돌아 오르기로 하고 일단은 오른쪽 사면의 희미한 인적을 따른다.
나는 오른쪽 사면을 오른다. 수직사면이다. 발자국계단을 밟고 오른다. 암릉이 나온다. 오른
쪽 사면의 바위 슬랩을 트래버스 하려고 다가갔으나 축축하여 미끄럽다. 선등인 메아리 대장
님이 날등을 직등하는 편이 낫겠다 하여 뒤돌아간다. 뒤돌아가는 데도 손에 땀이 밴다. 바위
틈 비집어 내린다. 오르막 잡목 헤쳐 목책 넘고 주등로의 등산객들 무리에 섞인다.
4. 사과, 음지말에서
5. 음지말 주변
6. 산부추꽃
7. 큰갓버섯, 어묵 끓일 때 함께 끓였는데 버섯 맛이 일품이었다
8. 왼쪽 멀리는 문수봉
9. 월악산 영봉
10. 만수릿지와 그 너머 만수봉
11. 만수릿지와 그 너머 만수봉
12. 맨 뒤는 문수봉, 그 앞으로 차례로 매두막봉, 하설산, 어래산
13. 맨 뒤는 문수봉과 대미산(오른쪽)
14. 만수릿지와 그 너머 만수봉
15. 오른쪽이 만수릿지
16. 가운데 멀리는 포암산, 그 앞은 만수봉
돌계단, 철계단, 데크계단을 차례로 오른다. 계단길인데 예전보다 더 겁이 난다. 철계단은 아
득한 절벽 바깥으로 낸 잔도다. 난공사였으리라. 한 피치 오르면 잠깐 주춤하였다가 0.3km를
더 간다. 영봉은 전국각지에서 몰려 든 등산객들로 북적인다. 우리 오지산행에 이런 날이 그
리 흔하지 않아서 낯설고 어색하다. 목에 건 나침반과 손에 든 지도를 감춘다.
월악산 영봉에 대한 안내문 내용의 일부다.
“월악산은 삼국시대에 영봉 위로 달이 떠오르는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월형산(月兄山)이라
불리었고, 고려 초기에는 ‘와락산’이라 불리기도 했다고 전해지는데, 이는 왕건이 고려를 건
국하고 도읍을 정하려 할 때 개성의 송악산과 중원이 월형산이 경쟁하다 개성으로 도읍이 확
정되는 바람에 도읍의 꿈이 와락 무너졌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월악산에는 재미있는 시화가 전해지고 있다. 조선초기의 학자인 용재 성현(慵齋 成俔, 1439
∼1504의 『용재총화(慵齋叢話)』에 나오는 이야기다.
“전목(全穆)이 충주 기생 금란(金蘭)을 사랑하였는데, 그가 서울로 떠나려 할 때 금란을 불
러 타이르기를, “경솔히 남에게 몸을 허락하지 말라.” 하니, 금란의 말이, “월악산(月嶽山)은
무너질지라도 내 마음은 변치 않으리라.” 하였으나, 뒤에 단월역(斷月驛)의 승(丞, 관명)을
사랑하게 되었다. 전목이 이 소문을 듣고 시를 지어 보내기를,
듣자니 네가 문득 단월역 승을 사랑하여 聞汝便憐斷月丞
깊은 밤 항상 역을 향해 달려간다 하니 夜深常向驛奔騰
언제나 삼릉장(세모진 형장)을 잡고 何時手執三稜杖
돌아가 월악이 무너져도 마음은 변치 않는다던 맹세를 물어볼고 歸問心期月嶽崩
하니, 금란이 대답하여 말하기를,
북쪽에 전군이 있고 남쪽에는 승이 있으니 北有全君南有丞
첩의 마음 정할 수 없어 뜬구름 같도다 妾心無定似雲騰
만약 맹세한 바와 같이 산이 변할진대 若將盟誓山如變
월악이 지금까지 몇 번이나 무너졌는고 月嶽于今幾度崩
하였다. 이것은 모두 사문(斯文) 양여공(梁汝恭)이 지은 것이었다.”
월악산이 중원의 명산이고 인근의 대처가 충주라 이 산을 소재로 읊은 시가 적지 않다. 동명
정두경(東溟 鄭斗卿, 1597∼1673)의 시 「충주 목사 곽흠로를 전송하다(送郭忠州欽魯)」
이다.
월악산은 아득 높아 형세 절로 높거니와 月岳岧嶢勢自尊
멀리 하늘 밖에서 와 중원 땅을 억누르네 遠從天外鎭中原
한강 본디 민강의 물 사양하지 아니하니 漢江不謝岷江水
부디 산에 올라가서 발원지를 읊어 보소 須爲登臨賦發源
민강(岷江)은 중국 사천성(四川省)의 민산(岷山)에서 발원하는 강을 말하는데, 이 시에서는
강원도에서 흘러오는 남한강을 가리키는 뜻으로 쓰였다. 또한 옛날 사람들은 시를 지으면서
한강의 근원을 흔히 충주 근처에 있는 월악산(月嶽山)으로 비정(比定)하여 읊곤 하였다.(한
국고전번역원 ┃ 정선용 (역) ┃ 2011)
17. 맨 뒤는 문수봉, 그 앞으로 차례로 매두막봉, 하설산, 어래산
18. 멀리 가운데는 조령산 연봉, 맨 앞 오른쪽은 말뫼산
19. 월악산 중봉, 그 너머로 충주호가 살짝 보인다
20. 만수릿지와 만수봉, 포함산
21. 오른쪽은 송계계곡
23. 암벽 틈에 자라는 소나무
24. 멀리 왼쪽은 부봉 6봉, 가운데는 말뫼산
25. 월악산 영봉
26. 월악산 영봉
27. 멀리 오른쪽은 만수봉
28. 만수릿지 남쪽 슬랩
29. 만수릿지
▶ 만수릿지(909.7m봉, 862.2m봉, 867m봉)
철계단 교행에 우측통행으로 바깥쪽을 내릴 때는 고공에 떠 있는 같아서 그만 움찔해진다.
주춤주춤 내리고 점심자리를 찾는다. 영봉 암봉을 다 돌아내리고 남쪽 능선의 주등로를 가다
조그만 공터가 나오고 지능선 숲속에 들어 자리 편다. 오늘 점심도 걸다. 부대찌개라면과 어
묵 끓인다. 더산 님이 다수 수확한 큰갓버섯도 넣는다. 맛 좋다. 탁주 반주는 조금 후에 더듬
거릴 릿지가 걱정되어 삼간다.
부른 배 어르면서 당연히 풀숲 사면을 대트래버스 한다. 대간거사 님의 ‘에헤라디여~’ 환성
으로 보아 대물이다. 누군가 바로 위 주등로에서 약간 위압적인 말투로 “어서 올라오시라”고
한다. 아마 안내산악회 대장이 일행들을 불러 모으는 줄로만 알았는데 국공이 우리를 보고
하는 말이다. 더산 님이 걸렸다. 인적사항 적히고 범칙금이 없는 단순 경고를 받았다. 도~자
님도 걸렸다. 변의가 급하여 내려갔다고 하여 그냥 가시라 했다. 하긴 도~자 님은 오는 차중
에서 휴대용 비대를 가지고 왔다며 자랑했다.
우리의 발걸음이 사뭇 조심스러워진다. 삼거리 지나고 Y자 능선이 분기하는 △960.5m봉이
다. 철조망 비켜 왼쪽 능선으로 든다. 풀숲 헤쳐 잘난 등로가 나오고 휴지 널린 노상 화장실
이다. 만수릿지의 시작이다. 완만한 소나무 숲길이다. 길게 내리고 아! 소리 합창하게 전망이
탁 트인다. 흐릿한 안개가 산첩첩을 오히려 원근 농담의 가경을 연출한다. 이제부터는 걸음
걸음이 경점일 터이다.
내 생각으로는 만수릿지야말로 월악산의 하이라이트다. 몇 가지 이유를 들자면, 첫째, 줄 이
은 첨봉의 수려함이다. 하얀 화강암이 흘립한 남쪽 사면, 암벽 사이를 비집은 노송은 봉봉마
다 한 폭의 그림이다. 둘째, 암벽과 암릉을 오르내리며 짜릿한 손맛을 볼 수 있다는 점이다.
봉봉이 첨봉이니만큼 깊은 협곡을 지나고 가파른 암벽을 시종 긴장하며 오르내려야 한다.
셋째, 봉봉마다 전후좌우 전망이 트여 산첩첩 절경을 감상할 수 있다. 월악제국의 중심이어
서 멀리는 대미산에서 포함산, 조령산에 이르는 백두대간과 그 안쪽의 뭇 산들이 모두 시야
에 들어온다. 넷째, 이러한 릿지가 상당히 길어 오래도록 즐길 수 있다는 점이다. △960.5m
봉에서 만수봉까지 도상 4.8km에 달한다(설악산 공룡능선은 5.1km이다). 그 사이 도열한
준봉은 만수봉을 포함해서 12좌다.
907.7m봉 오르기가 가장 험하다. 직벽구간이다. 3단의 오름이다. 두 가닥 밧줄이 달려 있다.
카메라를 배낭을 넣고 스틱은 접고 장갑을 벗어 손의 자유로움부터 확보한다. 오른쪽 슬랩으
로 트래버스 하여 오르는 수도 있으나 직등이 더 안전하다. 숨 한번 크게 들여 마시고 암벽에
달라붙는다. 직벽이라 밧줄에 대롱대롱 매달려 오른다.
북쪽 사면을 트래버스 하는 데도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그러고 나서 전망이 훤히 트이는
암반에 이르면 펼쳐진 가경에 취해 방금 전의 고역을 다 잊고 만다. 온 길 갈 길이 장려하다.
온 길은 아쉽고 갈 길은 뿌듯하다. 아껴 걷는다. 특히 867m봉 너럭바위에서 뒤돌아보는 온
길은 그중 압권이다. 메아리 대장님이 이때 마실 탁주 안주로 도토리묵을 준비해 왔으니 술
맛이 각별할 수밖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만수릿지 꼭 절반을 왔다. 앞으로의 길은 암벽이나 암릉을 오르내리는
일이 없이 평탄하다. 물론 전후좌우로 바라보는 경치가 아름답다. 그렇지만 우리는 하산할
시간이다. 야트막한 안부에서 오른쪽 골짜기로 내린다. 너덜이다. 숯가마터가 나오고 군데군
데 석축과 안내산악회 표지기까지 보이니 험로일 리는 없다.
희미한 인적이 보이고 마른 계곡을 몇 차례 건너 덕주골과 만난다. 숨소리 발소리 말소리 죽
이며 산죽 숲길 지나 목책을 넘으니 이정표에 덕주사 0.5km다. 영봉을 오가는 주등로는 대
로다. 덕주사가 한적하다. 말뫼산 바라보며 덕주사를 나오면 바로 주차장이다. 무사산행을
자축하는 하이파이브 얼른 나누고 수안보 온천으로 간다.
30. 만수릿지 첨봉군
31. 맨 뒤 흐릿한 산은 조령산 연봉, 그 앞으로 차례로 마패봉, 말뫼산, 덕주봉능선, 덕주골
32. 만수릿지 862.2m봉
33. 멀리 가운데는 조령산 연봉, 왼쪽은 부봉 6봉, 그 앞으로 말뫼산, 덕주봉능선
34. 만수릿지와 영봉
37. 하산 길
38. 하산 길
39. 이 다리를 건너면 덕주사다. 신가이버 님이 계곡을 들여다보자 뒤따르는 일행들도 들여
다본다. 아무 볼 것이 없는데.
40. 쑥부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