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홍바늘꽃
김효선
여기는 낯선 오름
오른쪽 어깨에 올라탄 나비
생의 자전주기는
한 사람을 잃으면 또 한 사람을 잃는 것
따고 보니 속 빈 하늘타리
가까이 갈수록 비뚤어지는 구름
무릎이 시큰하게 젖는다
심장에 바늘을 꽂고
10년을 살았더라는 사람
찔린 부위보다 찌르는 부위 쪽으로
기울었던 마음일까
오름에 비가 내리면
가장 익숙한 절망의 손짓으로
꽃에서 멀어진 주문은
혀가 길어지거나
발작으로 둥글어지거나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
심장에 바늘을 꽂은 채
내리는 비 쪽으로 쏠리는 어깨
*이상, {날개}.
오름은 산이라는 뜻을 갖고 있지만, 제주도에서는 한라산과 관련 있는 기생화산을 말하고, 제주도에는 이러한 크고 작은 오름이 360여 개나 된다고 한다. 우연의 일치일까, 아니면 자연의 섭리일까? 나는 그것을 잘 알지 못하지만, 360여 개의 오름과 일년 365일이 어느 정도 일치하는 것과도 같고, 김효선 시인의 [분홍바늘꽃]에서처럼, “생의 자전주기는/ 한 사람을 잃으면 또 한 사람을 잃는 것”이라는 시구와도 맞물려 있는 것처럼 생각된다.
여기는 낯선 오름이고, 시인은 오른쪽 어깨에 올라탄 나비와 함께, 이 세상의 인간의 삶과 죽음에 대한 역사철학적 문제를 성찰해본다. 삶은 “한 사람을 잃으면 또 한 사람을 잃는 것”이라는 정언명제는 매우 절망적이고 염세적인데, 왜냐하면 모든 삶의 의지는 낙천적이기 때문이다. 한 사람이 죽으면 새로운 사람이 태어나고, 새로운 사람이 태어나면 또 한 사람이 죽어간다. 이 연속의 법칙과 윤회의 법칙에 의해 인간의 역사는 끊임없이 이어지며, 이 세상의 삶의 찬가가 울려퍼지게 되는 것이다.
왜, 무엇 때문에 시인은 삶의 의지에 반하는 염세적인 생각을 갖게 되었던 것이며, 그렇다면 그는 왜, 무엇 때문에 시를 쓰고 있는 것일까? 이 세상의 삶이란 “따고 보니 속 빈 하늘타리/ 가까이 갈수록 비뚤어지는 구름/ 무릎이 시큰하게 젖는다”라는 시구에서처럼, 그 어떤 희망도 없는 절망 때문이었던 것일까? 불행은 중력의 법칙과 가속의 법칙을 갖고 있다. 한 번 불행에 붙잡히면 ‘만능약초’인 하늘타리마저도 속이 텅비게 되고, 만물을 소생시키는 구름마저도 사납고 심술궂은 먹구름으로 변모한다.
김효선 시인의 [분홍바늘꽃]은 이 세상의 삶의 찬가인데, 왜냐하면 그 염세적인 생각을 떨쳐버리고,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라는 삶의 의지를 불태우고 있기 때문이다. “심장에 바늘을 꽂고/ 10년을 살았더라는 사람”처럼 인간의 생명이란 참으로 모질고 끈질긴 것이다. “오름에 비가 내리면/ 가장 익숙한 절망의 손짓으로” “혀가 길어지거나/ 발작으로 둥글어”지면서도 “심장에 바늘을 꽂은 채”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라고, ‘분홍바늘꽃’을 피우게 된다.
삶이란 참으로 무섭고 섬뜩한 묘기이며, 이 묘기의 아름다움이 ‘분홍바늘꽃’으로 핀 것이다. 아주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대분의 염세주의자들은 자살을 감행하지 못하고 [분홍바늘꽃]을 피워댄다. 왜냐하면 죽음의 실천보다 삶의 실천이 더 쉽고, 그만큼 더 아름답고 더 간절하기 때문이다.
김효선 시인의 [분홍바늘꽃]은 진흙 속의 연꽃과도 같은 시이며, 삶의 허무함과 삶의 절망감에 사로잡힌 자가 염세주의를 딛고, 그 염세주의 속에서 피워낸 성불成佛이라고 할 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