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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상식 팩트 체크] (35) 아카펠라는 교회 음악이다?
성당에서 무반주로 부르던 합창에서 유래
아카펠라를 들어보신 적이 있으실 것 같습니다. 아카펠라는 악기 없이 목소리만으로 화음을 맞춰 부르는 음악인데요. 아카펠라를 들으면 사람의 목소리가 이처럼 아름다운 음악이 될 수 있구나 하는 감탄이 나옵니다. 그런데 이 아카펠라가 교회 음악에서 유래했다는 사실 알고 계신가요?
지금은 교회 음악에 다양한 악기가 사용되고 있지만, 초기 교회에는 전례 중에 악기를 사용하는 것을 경계했다고 합니다. 이후 9세기경 교회 음악에 오르간이 도입되고 여러 악기들이 차츰 교회 음악에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아는 많은 클래식 음악들도 교회 음악으로 작곡된 곡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사람의 목소리로 내는 음악을 여전히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특히 큰 악기를 두기 어려운 작은 규모의 기도 공간, 경당에서 반주 없이도 하느님께 경건하게 찬미를 드리는 무반주 합창을 불렀습니다.
1500여 년 전부터 무반주 합창을 불러온 시스티나 성당 합창단이 대표적인데요. 이 합창단이 시스티나 성당(Cappella Sistina)에서 무반주 합창을 노래해, ‘성당식으로’, ‘성당 풍으로’라는 뜻의 이탈리아어 아카펠라(A Cappella)가 성당에서 부르는 무반주 합창을 일컫는 말이 됐습니다. 아카펠라는 특히 르네상스 시대인 16세기경에 많이 작곡돼, 유럽 전역으로 널리 퍼졌습니다.
그렇게 교회 음악을 뜻하던 아카펠라는 19세기 무렵 합창음악이 대중화되는 과정에서 의미가 변해 교회 음악과 관계없이 악기 반주 없이 하는 모든 합창을 부르는 말이 됐습니다. 카펠라, 바로 ‘성당’이라는 말이 음악의 한 장르를 뜻하는 말이 된 것이지요.
그런데 사실 성당을 뜻하는 카펠라는 이전에도 뜻이 변한 적이 있는 말입니다. 카펠라는 성당 중에서도 작은 규모의 성당, 즉 경당을 부르는 이탈리아어입니다. 이 단어는 로마 군인의 외투인 카파(cappa)가 뜻이 변한 말입니다.
세례 받기 전 군인이었던 마르티노 성인(316~397)은 어느 날 벌거벗은 채 추위에 떨고 있는 걸인에게 자기가 입고 있던 카파를 반으로 잘라 내어줬습니다. 그날 밤 마르티노 성인의 꿈에 마르티노의 반쪽 카파를 입은 예수님이 나타나 “예비신자 마르티노가 이 옷으로 나를 입혀 줬다”고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마르티노 성인은 그 후 세례를 받고, 나아가 주교가 돼 목자로서 삶을 살았습니다. 선종 후에도 성인으로 널리 공경받았지요.
이후 성인의 카파를 보관하기 위한 작은 성당이 세워졌는데요. 사람들은 마르티노 성인의 카파가 있는 이곳을 카펠라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점차 마르티노 성인의 성당처럼 작은 성당, 즉 다른 경당들도 카펠라라고 부르게 됐고, 그래서 카펠라는 성당을 뜻하는 단어가 됐습니다. 마르티노 성인의 일화에서 경당, 경당에서 찬미 노래를 부르는 교회에 이르기까지 교회와 관련 없는 줄 알았던 ‘아카펠라’에 참 많은 교회의 이야기가 숨어있던 것 같습니다.
[성 십자가 현양 축일 특집] 성 십자가의 모든 것
악의 세력 물리치고 인류 구원하신 주님 상징하는 표지
- 아뇰로 가디 <성 십자가의 발견>, 1385~1387. 출처 위키미디어
9월 14일은 예수님이 못 박히신 성 십자가를 공경하고 묵상하는 성 십자가 현양 축일이다. 성 헬레나(250?~330년)가 발견한 것으로 알려진 성 십자가(보목)는 전 세계 여러 성당에 나눠 안치돼 있다. 보목은 우리나라 가톨릭목포성지 산정동준대성전, 갑곶순교성지, 절두산순교성지에도 있다. 성 십자가의 역사와 의미를 살펴보고 우리나라에 있는 보목에 대해 알아본다.
성 십자가 공경의 역사와 의미
예수님이 못 박혀 돌아가신 성 십자가 공경은 4세기 초 그리스도교가 공인된 뒤부터 시작돼 692년 트룰라눔 교회 회의를 통해 강화됐고 787년 제2차 니케아공의회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됐다. 성 십자가 현양 축일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9월 14일로 고정됐다.
성 십자가 현양 축일에는 세 가지를 기념한다.
첫 번째는 성 헬레나가 십자가를 발견한 것,
두 번째는 335년 9월 14일 예루살렘의 예수님 무덤 자리에 세워진 부활 대성전을 콘스탄티누스 대제(272~337)가 봉헌한 것,
세 번째는 629년 헤라클리우스 황제(575~641)가 페르시아인들에게서 예수님이 실제로 못 박혔던 십자가의 일부를 탈환한 사건에 대한 기념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십자가를 통해 악의 세력을 이기셨기 때문에 십자가는 신자들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때문에 십자가는 수치나 실패의 표지인 형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승리와 구원의 표지로 다가온다.
성 헬레나가 찾은 성 십자가
전설에 따르면,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어머니인 황후 성 헬레나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못 박히셨던 십자가를 찾기 위해 노력하던 중 320년에서 345년 사이에 골고타 언덕에서 몇 개의 십자가를 발견한다. 그중 하나는 병자들의 치유를 돕는 데 특별한 효과를 보였고 다른 하나는 죽은 청년을 되살리기까지 했다. 이 두 개가 바로 회개했던 우도의 십자가와 예수님의 성 십자가로 여겨졌다.
성 헬레나는 성 십자가를 셋으로 나눠 하나는 콘스탄티노플에 있는 콘스탄티누스 대제에게 보내고, 하나는 예루살렘의 주교인 성 마카리오(335년경)에게, 남은 부분은 로마로 가져왔다.
성 헬레나는 로마의 자신의 궁전 안에 있는 방 주위에 예루살렘에서 가져온 유물들을 안치하기 위한 성 십자가 예루살렘 성당을 지었다. 당시 성당 바닥은 예루살렘에서 가져온 흙으로 덮었다.
성당은 몇 번의 개축을 거쳐 지금의 모습이 됐고 현재에도 보목 일부와 예수님이 쓰셨던 가시관에서 나온 가시 등 성유물이 모셔져 있다.
보목이 안치된 우리나라 성지
전 세계 여러 곳에 흩어진 성 십자가 조각은 우리나라에도 있다. 보목이 안치된 성지는 광주대교구 가톨릭목포성지 산정동준대성전과 인천교구 갑곶순교성지, 서울대교구 절두산순교성지이다.
가톨릭목포성지 산정동준대성전(주임 윤영남 시몬 신부)의 주보는 성 십자가 현양이다. 제대 아래 유리벽 안쪽으로 모셔져 있는 보목은 1963년 교황청이 “한국천주교회의 발전을 기원한다”며 한국으로 오는 멕시코 과달루페 선교사들을 격려하기 위해 과달루페 외방 선교회 초대 총장 에스칼란테(Alonso Escalante) 주교에게 전달한 것이다. 이는 다시 1962년부터 한국에서 선교활동을 하고 있던 원 헥톨(Diaz Hector) 신부에게 전달됐고 2018년 광주대교구에 증여됐다.
보목은 주님 수난 성금요일과 성 십자가 현양 축일에 조배를 위해 유리 밖으로 꺼내진다. 보목을 대할 때는 몸이 불편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성 십자가에 큰절 혹은 깊은 절을 권하고 있으며 장궤틀을 이용하는 묵상도 좋다.
주임 윤영남 신부는 “보목 앞에서 묵상하면 십자가라는 약함으로 우리 모두를 구원하는 힘을 보여주신 하느님의 사랑을 더 와닿게 느낄 수 있는 것 같다”며 “십자가 현양은 예수님의 죽으심뿐 아니라 부활도 상징함을 기억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보목은 갑곶순교성지(담당 민동규 다니엘 신부)에 가도 볼 수 있다. 성 십자가 조각은 성지 기념성당 제대 옆 유리관 안에 안치돼 있다. 이 보목은 전 인천교구장 고(故) 최기산(보나파시오) 주교가 1999년 주교 서품을 받을 때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1920~2005)이 선물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평생 목걸이에 담아 보목을 소지했던 최 주교는 2016년 선종 일주일 전 갑곶순교성지에 맡겼다.
성지 담당 민동규 신부는 “우리는 보목 앞에서 ‘십자가를 지고 걸어가신 주님’, ‘십자가에 매달리신 주님’, ‘만남의 십자가’ 이 세 가지를 묵상할 수 있다”며 “특히 십자가의 세로 모양은 하느님과 사람의 연결, 가로는 사람의 시대와 시대를 연결하는데, 가로와 세로가 만나는 시간이라는 한 점에서 하느님과 사람의 만남을 묵상하면 좋겠다”고 전했다.
절두산순교성지(주임 원종현 야고보 신부) 보목은 박물관 학예실에서 관리 중이다.
[기도하는 교회] “또한 사제의 영과 함께.”에서 “사제의 영”은 무엇을 의미하나요?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또한 사제의 영과 함께.”는 전례 중에 부활하신 주님의 현존을 기억하며 주례사제와 회중이 서로 주고받는 대화입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 전례개혁 직후에 융만(J.A. Jungmann), 두프러(G. Duffrer) 등의 전례학자들은, ‘사제의 영’이 사제의 영혼을 의미한다고 이해하였고, 성경에서 ‘영혼’은 개인의 차원에서 한 인간을 가리키는 말이므로, ‘사제의 영’은 한 사람의 인간인 ‘사제’를 의미한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또한 사제의 영과 함께.”(Et cum spirutu tuo.)를 “또한 사제와 함께.”로 의역하였습니다.
그러나 교회의 오랜 전통을 알려주는 여러 교부들의 증언에 따르면 “사제의 영”이라는 표현은 ‘사제의 영혼’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사제서품예식 때 사제에게 부어진 ‘성령과 그 은사’를 의미합니다.(요한 크리소스토모의 로마서 주석, 몹수에스티아의 테오도로의 바오로 서간 주석 참조)
전례를 거행하면서 주례사제가 부활하신 주님께서 교우들 안에 현존하심을 알릴 때(“+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교우들은 한 인간을 사제로 만드신 성령께서 그 사제 안에 현존하심과 그 성령이 바로 부활하신 주 그리스도이심을 고백하는 것(“◎또한 사제의 영과 함께.”)입니다.
교황청 경신성사성이 2001년에 발표한 훈령 「진정한 전례」(Liturgiam authenticam) 56항은 교회의 오랜 전통 안에서 이어온 고유한 표현들은 다소 어색하더라도 되도록 직역하여 그 안에 담겨진 유산을 온전히 보존하여야 한다고 권고합니다. 그래서 2017년 8월 15일에 반포한 우리말 『로마 미사 경본』에는, 이전에 “또한 사제와 함께.”라고 의역했던 것을 “또한 사제와 영과 함께.”로 온전하게 번역하였습니다.
[교회 상식 팩트 체크] (34) 성인은 복자보다 높다?
칭호는 영광의 차이 드러내지 않아
순교자 성월인 9월, 우리는 순교자들의 신앙을 기억하며 본받으려 노력합니다. 특별히 기도와 순례를 통해 성인들과 복자들을 공경하고 전구를 청하고 있지요. 순교자 성월은 우리가 기억하는 복자들의 시성이, 하느님의 종들의 시복이 하루빨리 이뤄지기를, 바로 시복시성을 염원하는 마음을 북돋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시복시성이라고 하면 교회가 어떤 인물을 복자로, 그리고 성인으로 선포하는 일을 말합니다. “그 신자들이 영웅적으로 덕행의 길을 닦고 하느님의 은총에 충실한 삶을 살았음을 장엄하게 선언”하는 것이지요.(「가톨릭 교회 교리서」 828항) 시복시성은 교회법적인 절차에 따라 엄정한 검증을 거쳐 진행되는데요. 시복시성 대상자인 ‘하느님의 종’에게 복자, 성인의 순서로 칭호를 부여합니다. 시성을 위한 과정에 복자가 있는 셈입니다. 이렇게 보니 성인이 더 대단하고 높은 분이고, 복자는 그보다는 덜 높은 분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복자·성인이라는 칭호는 그분들의 공덕이나 하느님 나라에서 누리고 있는 영광의 차이를 나타내지 않습니다.
복자를 일컫는 라틴어 베아투스(Beatus)는 ‘복된, 행복한, 축복받은’이라는 뜻도 있지만 ‘천국에 있는’이라는 뜻도 지니고 있습니다. 즉 지복직관(至福直觀)의 상태를 말합니다. 지복직관이란 하느님을 직접 뵙는(直觀), 지극한 행복(至福)을 말합니다. 바오로 사도가 “우리가 지금은 거울에 비친 모습처럼 어렴풋이 보지만 그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마주 볼 것”(1코린 13,12)이라고 말씀하시듯, 하느님 나라에서 완성되는 하느님과의 완전한 친교를 표현합니다.
성인은 의미상으로 거룩한(聖) 사람(人)을 의미하는데, 실은 하느님 외에는 아무도 거룩한 분은 없습니다. 하느님과의 친교, 일치를 통해 거룩함에 참여하는 것이지요. 마찬가지로 지복직관에 이른, 하느님 나라에 든 분들입니다.
우리는 시성식을 하면 “○○이 성인의 반열에 들었다”라는 표현을 쓰곤 하는데, 엄밀히 이야기하면 적절한 표현은 아닙니다. 사실 시복식·시성식 여부와 관계없이 이미 하느님 나라에 계신 분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시복시성을 하는 이유는 아직 지상교회를 순례하고 있는 우리 모든 신자들이 그분들이 보여준 완덕의 모범을 배울 수 있도록 하고, 또 우리를 위해 전구해 주길 청할 수 있는 분들을 제시하기 위해서입니다. 교회가 성인들이나 복자들의 명부에 올린 하느님의 종들만을 공적 경배로 공경할 수 있습니다.(「교회법」 제1187조) 그렇기 때문에 아기들은 시복시성을 하지 않습니다. 세례를 받고 죄의 물들지 않아 하느님의 영광 안에 있다고 믿지만, 우리가 본보기로 삼을 수 있는 영웅적인 성덕을 제시하기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시복시성을 염원한다는 것은 우리가, 또 우리의 후손들이 이분들을 본받으며 하느님을 향해 나아가길 바라는 일입니다. 순교자 성월, 함께 시복시성을 위해 기도하면 어떨까 합니다.
“후손인 저희들이 그들을 본받아 신앙을 굳건히 지키며 복음의 증인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은총 내려 주소서.”(‘시복 시성 기도문’ 중)
[기도하는 교회] 영성체 행렬이 끝난 다음 악기를 연주하거나 특송을 불러도 되나요?
성체 분배가 끝나면, 필요에 따라 사제와 신자들은 잠깐 속으로 기도를 바칩니다.(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 88항) 영성체 후에 하는 침묵은 마음속으로 하느님께 찬미를 드리며 기도를 준비하는 것입니다.(총지침 45항) 이 침묵은 성체로 내 안에 오신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매우 신비롭고 내밀한 순간입니다. 영성체 행렬이 끝나면 영성체 노래는 적절하게 마쳐야 하며, 악기 연주가 묵상을 방해해서는 안됩니다.
다만, 영성체가 끝난 다음, 바람직하다면 회중 전체가 시편이나 다른 찬양 노래나 찬미가를 부를 수 있습니다.(총지침 88항, 164항) 이 노래를 회중이 함께 부를 수 없을 때 성가대만 노래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체를 모신 후 하느님께 올리는 찬미’와 무관한 내용의 소위 ‘특송’이라는 노래는 이 순간에 합당하지 않으며, 특별한 경우 영성체 예식이 끝난 뒤에 노래하는 정도로 제한해야 할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대표적인 찬양 노래는 ‘복음 찬가’라고 불리는 ‘즈카르야의 노래’, ‘성모의 노래’, ‘시메온의 노래’가 있습니다. 시간전례의 아침기도 때 바치는 구약 찬가(탈출 15,1-13; 신명 32,1-12; 다니 3,52-57; 이사 12,1-6; 38,10-20; 42,10-16; 45,15-26 등)와 저녁기도에 바치는 신약 찬가(필리 2,6-11; 콜로 1,12-20; 에페 1,3-10; 1베드 2,21-25; 묵시 19,1-7 등)도 노래할 수 있습니다.
[전례 일반과 미사의 Q&A] (12) 순교자 성월에 대해서 - 순교자 성월의 의미
“순교자의 피는 교회의 씨앗이다”(교부 테르툴리아누스)
우리 한국 천주교회는 매년 9월이 되면 “순교자 성월”로 기념하며, 순교자들의 삶을 묵상하도록 초대합니다. 다른 성월의 경우에는 전 세계의 가톨릭교회가 공통으로 지내지만, 순교자 성월은 우리나라에서만 기념하는 한국 교회의 고유 성월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특징은 우리 한국 교회의 고유한 특성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중요한 전례력입니다.
우리 한국 천주교회는 다른 가톨릭교회와는 달리 평신도들이 자발적으로 복음을 받아들여 믿음의 꽃을 피웠습니다. 물론 그 과정 안에서 피로써 신앙을 지켜야 하는 혹독한 대가를 치루어야만 했습니다. 당시의 모습은 처참했습니다. 세상의 눈에는 순교 성인들을 더욱 고통스럽게 한다면, 이 땅 어디에서도 신앙을 갖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세상의 이치에 불과했습니다. 순교자들의 피는 세상의 이치를 뛰어넘어 복음의 진리를 통한 열매로 이어졌습니다. 2023년 말 기준 한국 천주교회는 16개 교구, 신자 수는 약 597만 명으로 집계되어 엄청난 성장을 이루었습니다. 물론 이 수치를 절대값으로 환산해서 비교할 수는 없지만, 분명 지금 우리 한국 교회의 뿌리에는 고통과 핍박 속에서도 지켜온 그 신앙의 씨앗이 열매 맺었다는 것을 우리는 묵상할 수 있습니다.
2014년 8월 16일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 123위 시복식 미사를 거행하시며 한국 천주교회가 지닌 신앙의 씨앗과 열매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선포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는 (순교자들의) 이러한 승리를 경축합니다. 이는 한국의 천주교인 여러분이 모두 하느님께서 이 땅에 이룩하신 위대한 일들을 기억하며, 여러분들의 선조들에게 물려받은 신앙과 애덕의 유산을 보화로 잘 간직하여 지켜나가기를 촉구합니다.”
오늘부터 시작하는 순교자 성월의 의미는 분명합니다. 한국 교회의 첫 시작을 기억하는 것. 비록 당시 세상의 가치관과 반대되는 복음 말씀, 그리고 교회의 가르침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였고, 세상의 숱한 핍박과 억눌림 속에서도 굴하지 않으셨던 거룩한 행보를 기억하는 것. 이러한 기억은 지금의 우리에게 구체적인 신앙의 길을 열어줄 것입니다. 순교자들의 거룩했던 발걸음을 기억하며 우리가 머문 이 세상과 교회 안에 복음의 씨앗을 뿌리도록 노력했으면 합니다. 우리가 마주한 현재는 수많은 유혹과 어려움에 직면해 있습니다. 사랑의 가치보다는 개인주의와 집단 이기주의로 인해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아직도 국가 간의 전쟁은 수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내는, 반복음적인 부분들이 우리를 괴롭히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 상황에서 오늘부터 시작되는 순교자 성월이 하나의 성월로만 끝낼 것이 아니라, 우리 역시 그분들의 삶을 기억하고 그분들의 삶을 행하도록 노력하는 2024년 9월이 되었으면 합니다.
[교회 상식 팩트 체크] (33) 미사 봉헌금은 꼭 앞에 가서 내야 할까?
하느님 앞에 스스로를 봉헌하는 의미
‘가톨릭페이’로 봉헌금을 내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가톨릭페이는 가톨릭신자 앱 ‘가톨릭하상’에서 사용할 수 있는 선불 전자 지급 수단인데요. 아직 모든 본당에서 가톨릭페이를 사용하는 것은 아니지만, 점차 가톨릭페이를 쓰는 본당이 늘고 있습니다.
가톨릭페이로 봉헌금을 낼 때는 가톨릭페이에 돈을 충전하고 봉헌할 금액을 설정해 둔 다음, 봉헌 바구니에 있는 QR을 찍는 방식으로 봉헌합니다. 현금을 따로 준비하지 않아도 봉헌금을 낼 수 있지요.
가톨릭페이로 봉헌을 하다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현금으로 봉헌을 할 때에는 직접 내야 하니 그렇다 치더라도 결국 모바일기기로 헌금을 하는데 꼭 제대 앞까지 나가야 하는 걸까요? 자리에 앉아서 터치로 송금해도 봉헌금이 전달되는 것은 같을 텐데 말이죠.
하지만 전례 안에서 앞으로 나가서 봉헌을 하는 것과 온라인 송금으로 봉헌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봉헌 중 제대 앞으로 나아가는 봉헌 행렬은 하느님께 나아가 봉헌금만이 아니라 우리 자신도 하느님께 봉헌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봉헌 행렬은 예물 준비 행렬이라고도 부르는데요. 예물 준비란 그리스도의 성찬례를 위해 상을 차리고 빵과 포도주를 가져다 놓는 예식입니다. 예로부터 신자들은 성찬례를 위해 빵과 포도주를 준비해 왔습니다.
신자들은 빵과 포도주를 가져올 때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 줄 선물도 가지고 모였습니다. 처음에는 물품을 가져오던 이 선물은 11세기경부터 돈으로 변화했는데요. 이것이 오늘날 봉헌금이 됐습니다. 이 봉헌금에는 우리를 부요하게 하시려고 가난하게 되신 그리스도를 따르려는 마음이 담겼습니다.(2코린 8,9 참조)
그리고 무엇보다 성찬례를 통해 “그리스도께서는 제물을 봉헌하는 인간의 모든 노력을 당신 희생 제사 안에서 완전하게 하신다”며 “신자들의 삶, 찬미, 고통, 기도, 노동 등은 그리스도의 온전한 봉헌과 결합되며, 이로써 새로운 가치를 얻게 된다”고 강조합니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1350, 1368항)
결국 제대를 향해 나아가는 봉헌 행렬은 그저 빵과 포도주, 그리고 봉헌금만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봉헌과 결합하게 될 우리 자신도 제대에 가져가는 것입니다. 이런 봉헌 예식은 미사가 참례한 모든 이의 희생 제사임을 기억하게 해줍니다.
미사 중에는 봉헌 행렬 말고도 제대를 향해 나아가는 행렬이 더 있습니다. 사제와 부제, 봉사자들이 제대로 나아가는 입당 행렬, 복음 선포 전에 복음서를 독서대로 모셔가는 복음 행렬, 영성체를 하러 나아가는 영성체 행렬이 그렇습니다. 「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은 “이러한 행위와 행렬은 각각의 규범에 따라, 알맞은 노래를 부르는 동안 우아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말합니다.(44항)
이번 주일도 봉헌금을 잘 준비하셨나요? 현금으로 준비한 봉헌금이든, 가톨릭페이로 내는 봉헌금이든, 한 주간 우리가 겪은 모든 삶을, 우리 자신을 함께 봉헌하는 마음, 잊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