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여튼 제번 하옵고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시골초등학교 1학년 때 일이다. 전쟁으로 인한 피난으로 학교 공부도 제대로 할 수 없이 공부도 하다 말다 하던 어수선하던 때였다. 어느 날 유엔구호물자가 학교로 전달되어 간단한 학용품이나 장난감을 학생들에게 나누어 주게 되었다. 그런데 선생님이 큰 고민에 빠졌다. 구호물자를 학생들에게 나누어 주는 것은 좋은데 군교육청에서 학교로 지시하여 한 반에 한 학생이름으로 구호물자를 보내 준데 대한 고마움을 표시하는 답장을 써서 제출하라는 것이었다. 그 당시 상황에 비추어 담임선생님도 영어로 편지를 쓰는데 문제가 있었던 게 아닌가 생각된다. 담임선생님이 웬일로 다른 학생들보다 더 많이 연필 한 자루와 그때 처음 보았던 반 자동 연필깍이까지 세트로 나에게 주시는 것이 아닌가. 내가 좋아라 그것들을 받아 든 순간 느닷없이 선생님의 엄명이 떨어졌다.
“너 내일 까지 영어로 편지 한 통 써와“ 숙제 치고는 너무 황당한 숙제가 아닌가. 우리말로 쓰려고 해도 어려운데 이건 기가 콱 막혀 선물을 받아서 좋다는 생각이 순식간에 싹 사라져 버렸다. 어린 마음에 숙제를 할 수 없다는 항명도 못하고 얼떨결에 그냥 집에 돌아와서 혼자서 끙끙 앓고 있었다. 그래도 지방에서는 유지집안이고 아버지가 교육자이시니 어찌해서든 숙제를 해서 오겠지 하고 선생님은 생각했을 게다. 학교에서 집에 돌아와 풀이 죽어있는 나에게 할아버지께서 무슨 일이냐고 물으셨어 자초지종 말씀을 드렸다. 할아버지께서는 허허 웃으시더니 무얼 그런걸 걱정하느냐고 하시면서 당장 말씀하시는 데로 받아 적으라 신다.
“제번 하옵고, 중추가절에 댁내무고 하시며 기체후 일항만강 하옵시고 -----“ 그리고 또 다른 백지에 친절하시게도 먹을 갈아서 붓으로 한문 사자성어 쓰시듯, 그 유명한 안동 하회류씨 문중에 가서도 뽐내셨다는 일필휘지로 쓰시더니 이것도 편지에 첨부해서 선생님께 제출하라 하셨다. 나는 “에라 모르겠다. 숙제를 제출 못하는 것 보다야 낫지. 피장파장 아니냐?“ 하며 잔뜩 주눅든 얼굴로 한마디 야단쯤 들을 각오를 다지며 편지를 선생님께 제출했다. 편지를 받아 든 그 여선생님께서는 한참 동안 배꼽을 잡고 웃으시더니 하시는 말씀 “야 ~ 정말 명필이시다. 너 숙제 하느라 너무 수고했다. 고맙다“ 그 말씀에 나도 어안이 벙벙 해졌다.
제번 하옵고, 그 사건 이후로 아무리 좋은 선물도 함부로 받을 것이 아니라 생각하며 또 [제번 하옵고]란 글을 쓰면서 지나간 옛날을 회상해 본다. 이젠 [제번 하옵고] 안 해도 될 때가 차츰 다가오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