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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서 하나님의 정의는 여러 가지 개념과 동의어로 사용된다. 그것은 무엇 보다 ‘구원’과 동일시되고 있으며 하나님의 ‘인애’와 ‘신실하심’을 드러내는 행동으 로 묘사된다. 4절에 이르러서야 명령의 대상이 나타난다. 그것은 96편에서와 마 찬가지로 ‘온 땅’이다. 그러면서 98편은 96편과 거의 동일한 진술로 마무리된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가 오신다’는 진술이 한 번 나타나고 <에무나> 대신 <메샤림> 이 나타난다는 사실뿐이다.
9절 야훼 앞에서. 참으로 그가 그 땅을 심판하시러 오신다.
그가 세계를 정의(<체덱>)로, 백성들을 그의 공의(<메샤림>)로 심 판하실 것이다.
시편 98편을 통해서 알 수 있는 사실은 하나님의 정의가 구약성서의 여러 핵 심개념들과 같은 의미로 쓰일 수 있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하면 <체다카>와 <예슈아>, <헤세드>와 <에무나>, <체덱>과 <메샤림>은 서로 상호교환이 가능한 용어 들이라는 사실이다.
시편 99편은 97편과 동일하게 ‘야훼께서 다스리신다’는 외침으로 시작한다. 그러나 이어지는 명령은 97편과 다르다. 기뻐하며 즐거워하라는 외침과는 다르게 백성들이 떨며 땅이 흔들릴 것이라고 말한다(1절). 이러한 분위기는 이어지는 진 술에서도 확인된다(2-3절). 시온에 계시는 야훼는 위대하시고 높으시다. 그분의 이름은 크고 두렵다. 그분은 거룩하시다. 세 개의 큰 단락(1-3, 4-5, 6-9절)으로 나누어지는 시편 99편은 ‘그/우리 하나님은 거룩하시다’는 진술이 후렴구처럼 반 복된다. 두 번째 단락에서 하나님의 정의에 대한 직접적인 진술이 나타난다.
4절 또한 왕의 능력은 그가 사랑하는 공평(<미쉬파트>)입니다. 당신은 공의(<메샤림>)를 견고히 세우셨으며야곱 안에서 공평과 정의(<미쉬파트 우체다카>)를 행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야훼가 ‘왕’으로 호칭된다. 야훼의 능력이 다름이 아닌 ‘공평’에서 비롯됨을 보여준다. 지상의 왕들은 말과 병거와 무기를 자신의 힘으로 삼을지 모 르나(시 20:7; 45:6-7 참조) 야훼는 자신이 사랑하는 정의를 통해서 힘을 발휘하 신다.43) 그런데 이러한 하나님의 정의가 세 번째 단락에서는 다른 식으로 표현된 다. 그것은 야훼는 자신의 종들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분이며(6절), 행한대로 갚기 는 하지만 용서하시는 하나님이라는 사실이다(8절).
시편 96-99편에 이르는 ‘야훼-제왕시’에 대한 고찰에서 다음 두 가지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첫째로 하나님의 다스리심은 하나님의 정의에 기초하고 있으며 그것을 실행하는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사실과 둘째로 그러한 하나님의 정의는 하 나님의 백성과 종들에게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증명하는 구원으로 나타난다는 사 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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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J. Scharbert, “Gerechtigkeit I,” 409.
35) R. Feldmeier and H. Spieckermann, Der Gott der Lebendigen (Tübingen: Mohr Siebeck, 2011), 474.
36) 여기에서 하나님의 공의로운 통치가 우주적인 것이며, 동시에 그것이 세계질서의 일부로 작용한다는 사실이 분명해진다. J. J. M. Roberts, “The Enthronement of Yhwh and David: The Abiding Theological Significance of the Kingship Language of the Psalms,” The Catholic Biblical Quarterly 64 (2002), 680-81.
37) James L. Mays, 『시편』 현대성서주석 (서울: 한국장로교출판사, 2002), 407.
38) 메이즈는 이러한 사실을 “이 시편은 기억하는 동시에 기대한다”라는 말로 적절하게 표현한다. James L. Mays, 『시편』, 407.
39) F.-L. Hossfeld and E. Zenger, Psalmen 51-100 (HThKAT) (Freiburg u.a.: Verlag Herder,2000), 680.
40) James L. Mays, 『시편』, 409.
41) ‘이름’이라고 번역되기도 하는 히브리 낱말 <제케르>(rk,zE)는 문자 그대로 번역하면 ‘기억하심’이다. 여기에서 감사하라는 시인의 명령을 고려할 때 하나님의 행동을 나타내는 ‘기억하심’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더 적절하게 여겨진다.
42) James L. Mays, 『시편』, 409.
43) F.-L. Hossfeld and E. Zenger, Psalmen 51-100, 701
3. 시편 82편에 나타난 하나님의 정의
위에서 고찰한 하나님의 정의에 대한 이해는 시편 82편에서 더 구체적인 모습으로 확인된다. 시편 82편은 하나님이 신들의 모임 가운데서 신들을 재판하시는 장면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세 단락으로 구분되는 시편 82편의 구조는 명확하다.44) 첫번째 단락인 1절은 이 시편의 배경을 제공하고, 두 번째 단락인 2-7절은 하나님의 판결내용으로서 이 시편의 중심부를 형성하며, 세 번째 단락인 8절은 시인의 간구가 나타난다. 하나님 은 재판장의 권위를 가지고 질문과 권면으로 여러 신들에게 이 땅에 정의를 실현 하지 못한 사실을 지적하며(2-4절), 그 결과로 생겨난 이 땅의 혼란스러움에 대한 책임을 묻고(5절), 직위 해제와 더불어 죽음과 종말의 심판을 선고한다(6-7절).
이러한 진술에 이어 시인은 하나님께서 일어나셔서 이 땅을 심판하시기를 바라는 간구로 시편 82편을 마치고 있다.
시편 82편의 해석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1절에 등장하는 <아다트-엘> (lae-td:[)] 과 1절과 6절의 <엘로힘>(~yhil{a/)에 대한 이해이다. 구약성서의 맥락에 서 시편 82편에 등장하는 <아다트-엘>과 <엘로힘>은 세 가지 방향에서 해석이 가 능하다.45) 이 가운데서 “참 신은 누구인가”의 문제로 해석하는 종교사적인 이해 는 하나님의 정의의 문제와 깊은 관련을 가지고 있다. 재판장의 판결내용이 담겨 있는 2-4절은 구약성서에서 말하는 ‘정의’가 무엇인가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그것 은 의로운 재판을 행하는 것인데 그것은 힘없는 사람을 도와주는 것이다. 3절에 서만 해도 가난하고 궁핍한 자들에 대한 단어가 네 번 반복된다. <달>(ld;), <야 톰>(~wOty"), <아니>(ynI['), <라쉬>(vr") 등이다. 4절에서도 동일한 의미의 단어가 두 번 반복된다. <달>(ld;)과 <에브욘>(!wOyb.a,)이다. 이러한 낱말들의 조합을 통해서 이스라엘의 가난한 자를 총체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시편에서 ‘가난한 자’는 법의 보호 밖에 있는 자, 곧 ‘권리 없는 자’(rechtlos)로서 어떤 영향력이나 신분적 배경 이 없어 무제한의 힘을 가지고 있는 대적들의 처분만을 기다리는 사람들이다.46)이들은 사회적 약자, 소외계층을 대표하고 타인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사 람들이다. 이렇게 보호받아야 할 대상들을 가운데 두고 3절과 4절에서 두 개의 동 사가 각각 앞과 뒤에 배치되어 있다. 3절에서는 “공평하게 하라”(Wjp.vi)와 “공의 를 베풀라”(WqyDIc.h;)는 동사가 사용되었고, 4절에서는 “구하라”(WjL.P;)와 “건져내 라”(WlyCih;)는 동사가 사용되었다. 시인은 이러한 동사의 배치를 통해 그들이 행해 야 할 바가 무엇인가를 효과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그것은 물질과 권력이 없어 스 스로를 보호할 수 없는 자들을 보호하고 그들을 위한 판결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이것이야 말로 ‘공동체적 신실함’이 동기가 되어 ‘구원하는’ 정의를 실행하는 모습 이다.47)
따라서 시편 82편은 참 신의 자격이 무엇인지를 똑똑히 보여주는 시편이라고 말할 수 있다. 참 신이 누구인가는 가난한 자와 힘없는 자를 돌보는 ‘구원하는’ 정의를 이루는가 그렇지 못한가에 의해서 결정된다. 이렇게 본다면 시편 82편은 신 (神) 개념을 정의의 개념으로 새롭게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48) 이것은 신관(神觀) 과 정의관의 발전 역사에서 결정적인 변화를 보여주는 것으로 평가되는데, 학자 들은 이 과정을 ‘법의 신학화’(Theologisierung des Rechts)라고 부른다.49) 이러한 법의 신학화의 과정에서 이스라엘 법의 제정과 실행의 의미가 드러난다. 하나님 의 통치원리로서 정의의 실현을 위한 법규정들이 확장되며 이러한 변화과정은 특 별히 언약책의 사회적 보호규정들에서 엿볼 수 있다(출 22:20-26).50) 언약책 안 에는 법과 정신(에토스)이 하나의 법전에 편입되고, 이로써 줄곧 상이한 집행자들 (예컨대 제사장, 장로, 재판장)에 의해서 관할되던 두 영역이 하나의 동일한 하나 님의 의지아래 통합된다.51)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와는 다르게 이스라엘에서는 입법의 근거와 주체가 하나님이시다. 이스라엘에서는 국가권력이 아니라 ‘신적인 계시가 법을 정당화한다.’52)
시편 82편은 최고 재판장으로서 하나님이 ‘참 신의 기준’으로서 ‘정의’를 요구 하고 있음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달리 표현하면 시편 82편에서 신(神) 개념 자체 가 정의에 의해서 규정되고 있다. 시편 82편에서 말하는 정의는 ‘공동체적 신실함’ 을 기초로 하는 ‘구원하는’ 정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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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J. L. Mays, 『시편』, 356.
45) 이 점에 대한 자세한 논의는 필자의 졸고를 참조하라. 하경택, “시편 82편의 해석과 적용,” 『구약논단』 33 (2009. 9), 49-66.
46) H.-J. Kraus, 『시편의 신학』 (서울: 비블리카아카데미아, 2004), 366. 더 나아가 시편의 ‘가 난한 자들’의 전반적인 문제에 관하여 362-72쪽을 참조하라.
47) 하나님의 정의에 담긴 구원의 의미에 대해서 다음을 참조하라. “하나님의 정의에는 처벌 과 응보의 측면도 포함된다(시 129:4). 그러나 무엇보다도 불의와 핍박과 무고로 고통받 는 사람들에게 도움과 구원을 베푸는 것이 정의의 본래의 임무(opus proprium)이다.” H.-J. Kraus, 『시편의 신학』, 98-9
48) B. Janowski, Die Rettende Gerechtigkeit. Beiträge zur Theologie des Alten Testament 2 (Neukirch- en-Vluyn: Neukirchener Verlag, 1999), 234.
49) B. Janowski, Konfliktgespräche mit Gott: Eine Anthropologie der Psalmen (Neukirchen-Vluyn: Neukirchener Verlag, 2003), 137-39. 또한 다음을 참조하라. E. Otto, Theologische Ethik, 83; R. Albertz, Theologisierung des Rechts, 115ff; J. Assman, Theologisierung der Gerechtigkeit, 129ff.
50) O. Kaiser, “Einfache Sittlichkeit und theonome Ethik in der alttestamentlischen Weisheit,” in: ders. Gottes und Der Menschen Weisheit (Berlin u.a.: Walter de Gruyter, 1998), 29-30.
51) O. Kaiser, “Einfache Sittlichkeit und theonome Ethik in der alttestamentlischen Weisheit,”30. 배희숙은 ‘법의 신학화’가 오늘날 공정한 사회 실현을 위해 성서학자가 기여할 수 있는실천과제 가운데 하나라고 말한다. 배희숙, “구약성경적 공정한 사회,” 74.
52) E. Otto, Recht / Rechtstheologie/ Rechtsphilosophie, 203. B. Janowski, Konfliktgespräche mit Gott, 140에서 재인용.
IV. ‘인간의 정의’에 관한 구약성서의 진술들
1. ‘인간의 정의’에 관하여
구약성서에서 인간의 정의에 관한 진술은 다양하게 나타난다. 먼저 구약의 법전에서 재판을 공의롭게 하라는 명령으로 나타난다(출 23:7; 신 25:1; 16:18- 19; 레 19:15).53)
또한 정의는 공평한 추와 에바, 정직한 계량기구를 의미하기도 한다(레 19:36; 신 25:15). 그 외 내러티브와 역사서에서도 정의에 관한 진술을 쉽게찾아볼수있다.54) 특별히아브라함의선택목적을‘야훼의도를지켜공평 과 정의를 행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밝힌다(창 18:19). 다윗과 솔로몬은 ‘공평과 정의’를 행한 것으로 칭송받는다(삼하 8:15; 왕상 10:9; 대상 18:14; 대하 9:8 참 조). 다윗이 자신의 유언에서 “사람을 공의로 다스리는 자”에게 주시는 축복을 말 한다(삼하 23:3).
예언서에서도 사법적 행위와 관련된 정의에 대한 언급을 많이 찾아볼 수 있 다.55) 특별히 주전 8세기 예언자들은 재판장들에 대한 매수와 약자들에 대한 불공 정한 판결을 비판한다(사 5:23; 29:21; 암 2:6; 5:7; 6:12). 여기에서 <하츠디크> 는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하다’는 의미가 된다. 여기에서 <체덱>과 <체다카>는 별 다른 차이 없이 재판장과 법률조항의 정의를 표현한다(사 1:21, 26; 암 5:24). 이 사야서에서는 최고의 재판장이요 법의 수호자로서 작은 자들에게 ‘정의’를 베풀 수 있는 통치자가 염원된다(사 11:4; 32:1 참조). 또한 그가 나라를 ‘공평과 정의’ 로 다스려 줄 것을 바란다(사 9:6[7]; 11:4-5; 16:5).56) 그것에 기초하여 ‘평화와 안전’이 생겨난다(사 32:17).57) 호세아서에서는 <차디크>가 일반적인 의미에서 ‘정직한/경건한’의 의미로 사용되고(호 14:10[9]), 호세아 10장 12절에서는 <체 덱>이 하나님에 의해서 백성들에게 선사되는 ‘구원’의 의미로 사용된다. 또한 호 세아 2장 21[19]절에서는 “내가 공의와 정의와 은총과 긍휼히 여김으로 장가들리라”라고 말한다. 예레미야서에서도 정의와 법적소송의 관계가 밀접하게 연결되어 나타난다. 예레미야는 그러한 사실을 특별히 여호야김과 요시야 두 왕의 비교를 통해 분명하게 보여준다(렘 22:13-16). 예레미야는 ‘의로운 싹’으로서 장차 오게 될 다윗과 같은 인물을 기대한다(22:13-16; 23:5; 33:15). 그는 ‘의의 처소’로서의 예루살렘의 회복을 기대한다(31:23).58) 에스겔에게서 ‘공평과 정의’를 행하는 것 은 단순히 재판장이나 왕의 의무사항이 아니라 모든 이스라엘에 대한 요구사항이 다(겔 18:5, 19, 21, 27; 33:4, 16, 19; 45:9).
지혜문학에서도 정의에 대한 이해는 크게 다르지 않다.59) 다른 책들에서와 마찬가지로 재판장과 통치자를 통한 정의와 재판의 밀접한 연결을 엿볼 수 있다. 가난한 자와 무죄한 자를 위한 의로운 판결을 요구하고(잠 17:26; 18:5), 무죄 한 자를 죄 있다고 하고 죄인을 사면하는 것을 경고한다(잠 17:15; 시락서 42:2; 잠 18:5; 24:24 참조). 의로운 재판장의 행동방식은 <체덱>이다(잠 8:15이하;16:13; 31:9). 그러나 ‘공평과 의를 행하는 것’은 함께 사는 사람에 대한 모든 인 간의 의무사항이기도 하다(잠 1:3; 2:9; 8:20; 21:3). <체다카>는 잠언에서 다른 사람에 대한 호의와 호의적인 행동을 나타내는 일반적인 용어로 나타나 ‘경건’이 라 불릴 수도 있다(잠 10:2; 11:4-6, 19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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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J. Scharbert, “Gerechtigkeit I,” 405.
54) 위의 글, 405-406.
55) 위의 글, 406-407.
56) 이사야 16장 5절에서는 <공평과 정의>가 <헤세드>와 함께 쓰였다.
57) 이점에 관하여 ‘정의로운 평화’를 말하는 다음 논문을 참조하라. 김현수, “정의로운 평화를향하여–스탠리 하우어워스의 디트리히 본회퍼 읽기에 대한 비판적 고찰,” 『장신논단』 44-1(2012. 4), 163-86.
58) 예레미야 50장 7절에서는 야훼를 ‘의로운 처소’로 지칭한다
59) J. Scharbert, “Gerechtigkeit I,” 407.
2. 제왕시에 나타난 인간의 정의
인간의 정의에 관한 진술에서도 두드러지는 내용이 재판장으로서 보여주는 정의이다. 고대 이스라엘에서 재판장의 기능을 수행했던 대표적인 사람이 왕이었 다. 따라서 이스라엘 왕에 관한 시편인 제왕시의 내용을 살펴봄으로써 인간의 정 의에 관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시편 72편은 제왕시들(2편, 20편, 21편, 45편,89편, 101편, 110편, 132편) 가운데 ‘정의’의 문제를 가장 직접적이고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시편이다. 시편 72편은 왕을 위한 기도이다. 이것은 어느 특정한 왕을 대상으로 하기보다는 일반적인 왕의 직무와 사명에 관한 기대와 염원을 담 고 있다.60) 시편 72편은 서론(1절)에 이어 다섯 개의 단락으로 이루어진 청원(2-4절, 5-7절, 8-11절, 12-14절, 15-17절)과 마지막 송영(10-20절)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가운데 정의와 관련하여 주목해야 할 부분은 서론(1절)에 이어 첫번째(2-4절)와 네 번째(12-14절) 청원 내용이다. 시편 72편은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1절 솔로몬을 위한 시
하나님, 당신의 의로운 판결들(<미쉬파트>의 복수형)을 왕에게 주 시고 당신의 정의(<체다카>)를 왕의 아들에게 주소서.
<레쉘로모>(hmol{v.l)라는 표제어는 전통적으로 저작자를 나타내는 것으로 이해되어 솔로몬의 기도로 이해되었지만, 20절의 후기와 함께 최종본문의 상황에 서 ‘솔로몬을 위한’ 다윗의 기도로 읽을 수 있다. 어떻게 이해하든 시편 72편은 왕 을 위한 기도를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그러한 시편 72편의 성격과 내 용을 1절에서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 화자는 하나님께 왕에게 두 가지를 허락하 시기를 간구한다. 그것은 ‘의로운 판결들’과 ‘정의’이다. 여기에서 두 낱말은 서로 상응하는 개념으로 사용되었다. <미쉬파팀>은 법규정들을 의미한다고 볼 수도 있 고61) 다수의 번역본들과 같이 판단력이라 번역할 수도 있다. 필자는 <미쉬파트> 의 기본의미를 살리는 차원에서 ‘의로운 판결들’이라고 번역했다. 중요한 것은 이 것이 후반절에 있는 <체다카>와 동의어로서 대구를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 서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은 왕에게 요구되는 기본적인 직무와 사명이 ‘의로운 재 판장’으로서의 역할이라는 점이다.
2절 그가 당신의 백성을 정의(<체덱>)로 판단하며 당신의 가난한 자들을 공평(<미쉬파트>)으로 판단하게 하소서.
3절 산들이 정의(<체다카>)로 인해 백성에게 화평을 가져오고 작은 산들도 그러하게 하소서.
4절 그가 백성의 가난한 자들을 재판하고 궁핍한 자의 자손들을 구원하며 압제자들을 쳐부수게 하소서.
2-4절은 왕에 대한 첫번째 청원의 내용이다. 여기에서 화자는 지상 왕의 통치 대상을 ‘당신의 백성’과 ‘당신의 가난한 자들’이라고 부른다(2절). 이것은 이스라 엘이 하나님의 백성이요, 이스라엘 왕은 하나님을 대신하여 하나님의 의로운 통 치를 이루는 하나님의 도구라는 사실을 인지하게 한다. 왕은 하나님을 대신하여 정의와 공평 즉 <체덱>과 <미쉬파트>로 판단해야 한다. 두 낱말은 동의어로 이해 될 수 있지만, 굳이 구분하자면 <미쉬파트>가 공동체적인 삶을 위한 구체적인 규 범으로서 정의를 말한다면 <체덱>은 좀더 원칙적이고 포괄적인 의미로서의 정의 를 말한다.62) 3절은 왕의 의로운 판결이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가를 보여준다. 왕이 실행한 정의는 자연세계에까지 영향을 주어 왕이 다스리는 곳 전체가 샬롬 을 경험하게 된다.63) 4절은 왕이 실행해야 할 정의의 모습을 구체화한 것이다. 그 것은 가난한 자들을 신원하고 궁핍한 자들의 자손을 구원하는 것이다. 그것은 달 리 말하면 압제자들을 꺾는 것이다. 외부의 적들을 쳐부수기 위해 자신의 왕권을 사용하는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왕들과는 달리 이스라엘 왕들은 우선적으로 내 부의 권력자들과 압제자들을 쳐부수는 일에 자신의 왕권을 행사해야 한다. 여기 에서 주전 8세기 예언자들이 주된 비판의 내용으로 삼았던 사회경제적인 불의와 불법이 암시되고 있다. 왕은 약자와 연대하고 ‘공동체적 신실성’을 보여줌으로써 정의를 구현해야 한다. 그러한 면에서 여기에서 언급되고 있는 정의는 ‘구원하는’ 정의이다.64)
12절 그는 부르짖는 궁핍한 자를 구하며 도울 이 없는 가난한 자도 구하게 하소서.
13절 그는가난한자와궁핍한자를불쌍히여기며 궁핍한 자들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소서.
14절 그가 그들의 생명을 압박과 강포에서 구속하며 그들의 피가 그의 눈에 귀중하게 하소서.
하나님의 축복의 중재자로서 자연과 온 땅에 미치는 왕의 통치에 대한 두 번 째(5-7절)와 세 번째(8-11절) 청원에 이어 12-14절에는 네 번째 청원이 나타난다. 네 번째 청원은 첫번째 청원과 크게 다르지 않다. 궁핍한 자와 가난한 자가 좀더 자세히 설명되어 있고, 구원하는 왕의 행동이 다양하게 묘사된다. 이러한 점에서 ‘구원하는 정의’가 더욱 강조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왕은 부르짖는 궁핍한 자와 도울 이 없는 가난한 자를 곤경으로부터 구해야 한다(<나찰>의 히필형, 12절). 그 들을 불쌍히 여기며(<후스>의 히필형), 궁핍한 자들의 생명을 구원해야 한다(<야 솨>의 히필형, 13절). 가난한 자들과 궁핍한 자들의 생명을 압박과 강포에서 구속 해야 하며(<가알>의 칼형), 그들의 피를 귀중하게 여겨야 한다(14절). 의로운 재 판장으로서 왕의 역할은 사회적 약자들의 생명을 구하는 일임이 분명하게 드러 난다. 긍휼과 자비를 가지고 약자들을 돌보며 압박과 강포에서 그들의 생명을 구 하는 정의를 베푸는 것이다. 다섯 번째 청원 마지막 절(17절)은 왕에 대한 염원이 종합된다.
17절 그의 이름이 영원하며
그의 이름이 해 앞에서 전파되게 하소서. 모든 민족들이 그 안에서 복을 받고 그를 복 받은 자라 말하게 하소서.
왕이 행한 의로운 재판을 통해 그의 이름이 영원하며 그를 통해(그와 함께/그 안에서) 모든 민족이 복을 받게 될 것을 바란다. 이것은 왕에게 아브라함의 복이 임하기를 바라는 것이다(창 12:1-3; 22:18; 28:14).65) 이스라엘 왕은 이스라엘의 역사의 시작점이 된 아브라함처럼 이스라엘만이 아니라 모든 민족에게 하나님의 복을 끼치는 복의 중재자요 모범자로서 기원된다.66)
이러한 시편 72편에서 기원되는 이스라엘 왕은 분명히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가지고 계시는 속성의 연장으로서 묘사된다.67) 그의 통치는 공평과 정의를 토대로 하는 신적통치에 동참하는 것이다.68) 그것은 “야훼의 우주적 통치권을 지상에 확장하고 구현하는 대리자 부왕(副王)”의 모습이다.69) 신적 통치에 동참하는 왕은 하나님이 그렇게 하신 것처럼 ‘공동체의 신실성’을 토대로 ‘구원하는’ 정의를 실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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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J. L. Mays, 『시편』, 318.
61) 쳉어는 이것이 사회적 약자의 구조와 돌봄을 규정하고 있는 언약책(출 21-23장)이나 신명 기 법전(신 15장; 23-24장)과 같은 규정들을 암시한다고 해석한다. F.-L. Hossfeld and E. Zenger, Psalmen 51-100, 320.
62) 각주 6번을 참조하라.
63) 여기에서 창조질서로서 정의의 차원이 고찰된다. 슈미트(H. H. Schmid)는 시편 82편 5절에 대한 해석에서 약자들을 구원하는 ‘정의’가 제대로 이루지지 않을 때 “땅의 기초가 흔들 리며 ... 우주적인 질서가 파괴된다”고 설명한다(H. H. Schmid, Gerechtigkeit als Weltordnung(Tübingen: Mohr, 1968), 81-82).
64) F.-L. Hossfeld and E. Zenger, Psalmen 51-100, 320.
65) 축복의 ‘통로’와 ‘모범’으로서의 아브라함의 의미에 관하여 다음을 참조하라. 하경택, 『정경 적 관점에서 본 창세기』 1 (서울: 장로회신학대학교출판부, 2013), 198-200.
66) M. L. Frettlöh, Theologie des Segens. Biblische und dogmatische Wahrnehmungen (Gütersloh: Chr. Kaiser/ Gütersloher Verlaghaus, 1998), 187.
67) J. L. Mays, 『시편』, 319.
68) J. J. M. Roberts, “The Enthronement of Yhwh and David,” 683.
69) 김회권, “시편 89편에 나타난 다윗 왕조의 정치신학,” 『구약논단』 28 (2008. 6), 120. 김회권
은 제왕시 시편 89편에 대한 연구에서 다윗 언약이 하나님의 지상통치를 위한 영원한 대리자 로 다윗왕조를 선택한 일종의 ‘왕적 하사 언약’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시온신학의 세 가지 중 심요소는 다음과 같다(J. J. M. Roberts, “The Enthronement of Yhwh and David,” 676).
1) 야 훼는 위대한 왕이시며 이스라엘뿐 아니라 열방과 그들의 신들을 다스리신다.
2) 야훼는 하나 님은 통치의 인간 대리자로서 다윗의 집을 선택했으며 그 선택을 영원한 언약으로 보증하신 다.
3) 야훼는 시온을 왕도(王都)로 정하시고 그곳을 우주적 통치의 단(壇, dais)으로 사용하 신다. 이러한 시온신학 안에서도 야훼 통치와 인간-왕 통치의 연결점이 발견된다.
V. ‘하나님 닮아가기’Imitatio Dei로서의 정의
구약성서나 신약성서에서 논란의 여지가 없는 답변은 ‘정의의 하나님’이 모 든 현실을 도덕적으로 규정하는 근거이며 현실화 과정에 작용하는 긍정적인 힘이 시라는 사실이다.70) 이러한 정의의 하나님은 의로운 재판장과 왕의 모습으로 표 현된다. 특별히 시편에서는 하늘 혹은 성전에서 재판장과 구원자로 나타나시는 야훼께 갈채를 보낸다.71) 위에서 보았듯이 “재판장 하나님은 구원하시기 위해 재 판하시거나 재판하심으로써 구원하신다”(Der Richter Gott richtet, um zu retten bzw. er rettet, indem er richtet).72) 이것이 바로 ‘공동체적 신실성’에 기초하여 ‘구원하는’ 정의를 이루시는 하나님의 모습이다.73)
구약성서는 이러한 정의의 하나님에 상응하게 지상에서 정의의 재판장을 요구한다. 정의의 하나님이 의인을 곤경에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불의한 자와 악인 에 맞서 ‘사회적인 심급기관’(sozial Instanz)으로서 개입하시며 핍박당하고 억눌린 자들을 돌보시듯이, 지상의 왕이나 재판장도 동일한 ‘정의’를 이루도록 요청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구약성서는 재판장의 판결을 무엇보다도 압제받고 억눌리고 무 죄한 고발자를 풀어주는 결정으로서 인식한다.74) 이러한 점에서 구약성서에서는 지상의 통치자와 천상의 통치자의 기능이 분명하게 구별되지 않는다.75) 왕의 책 무는 ‘하나님의 정의의 중재자’(Mittler der göttlichen Gerechtigkeit)로서 하나님의 통치를 지상에 이루는 것이다.76)
그러나 정의를 이루는 삶은 재판장과 같은 고위관리나 통치자에게만 요구되지 않는다. 모든 사람에게 요구되는 일반적인 생활윤리이다. 잠언에서 “보좌가 정의 (체다카/체덱) 위에 굳게 선다”(잠 25:5; 16:12 이하)나 “너는 입을 열어 정의(<체 덱>)로 재판하고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위하여 판결하라”(31:9)는 진술도 있지 만, “정의와 공평(체다카 우미쉬파트)를 행하는 것은 제사를 드리는 것보다 야훼 께서 반기신다”(잠 21:3)나 “정의(<체다카>)와 인자를 구하는 자는 생명과 정의와 영광을 얻을 것이다”(잠 21:21)라는 진술도 있다. 구약성서에서 ‘공평과 정의’를 이루는 삶은 단지 통치 원칙으로서뿐만 아니라 일반인의 생활윤리로서 줄기차게 요구되는 덕목이다(창 18:19; 삼하 8:15; 사 1:21; 5:7; 9:6; 렘 22:15; 암 5:24;6:12; 시 72편).77) 이러한 의미에서 본다면 정의의 삶은 ‘하나님 닮아가기’Imitatio Dei 다. 이러한 ‘하나님 닮아가기’로서의 윤리와 경건을 보여주는 사례가 ‘쌍둥이 시편’으로 불리는 시편 111-112편의 연속에서 잘 고찰된다.78)
시편 111편을 ‘하나님 중심적인 시’라고 한다면, 시편 112편은 ‘인간 중심적 인 시’라고 할 수 있다. 시편 111편이 하나님의 행동과 속성을 중심적으로 묘사하 고 있는 반면, 시편 112편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의 삶을 중심적으로 다루고 있 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편 111편과 112편의 어휘를 비교해보면 많은 경우에 서 로 일치하고 있다. 예컨대 시편 111편에서 하나님을 묘사할 때 사용되었던 ‘은혜 로우시고 자비로우시도다’(111:4)는 어구가 112편에서도 동일하게 사용되었다 (시편 112편 4절을 개역개정에서는 ‘자비롭고 긍휼이 많다’고 번역하고 있지만 히 브리말로는 똑같은 표현이다). 또한 시편 111편 3절에서 야훼에 대하여 묘사하고 있는 ‘그의 정의(<체다카>)가 영원히 서 있도다’라는 어구가 시편 112편 3절과 9절 에서 ‘야훼를 경외하는 의인’의 삶에 두 번 반복되어 적용되고 있다. 야훼 경외를 실천하는 의인의 삶에 ‘정의’가 삶의 표징으로 부각된다. 그러한 정의의 삶은 ‘은 혜롭고 자비로운’ 행동으로 나타난다. 시편 111편에서 하나님이 하시는 행동과 성품으로 묘사된 것이 시편 112편에서 야훼를 경외하는 자의 삶에 그대로 적용되 고 있다. 이것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자가 하나님을 닮아가야 함을 보여 준다(Imago et Imitatio Dei).79) 이러한 ‘하나님 닮아가기’로서의 구약의 윤리는 정 의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거룩함’과 ‘온전함’에 대한 요구에서도 확인된다.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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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K. Koch, “Tat-Ergehen-Zusammenhang,” 4RBL, 493-95 (특히 493쪽). 이러한 사실을 야노 브시키는 ‘하나님과 정의 사이에 있는 상관성’(Korrelation von Gott und Gerechtigkeit)이라 는 말로 표현한다. B. Janowski, Konfliktgespräche mit Gott, 137.
71) B. Janowski, 위의 책, 140. 야노브스키는 인자하신 왕-하나님의 모티브에 자리하고 있는 하 나님과 정의의 결합이 ‘성서신학사와 그 역사의 신관을 형성하는 데 기여한 하나의 중심적 인 사건’이었다고 평가한다. 또한 이러한 야훼에 관하여 사용된 <체덱>과 <체다카> 용례의 반수 이상이 시편에 등장한다는 점은 하나님의 정의에 관한 논의에서 시편을 주목하게 하 는 이유가 된다. 이점에 관하여 다음을 참조하라. F. Crüsemann, Jahwes Gerechtigkeit, 437ff; H.-D. Preuß, Theologie des Alten Testament 1, 200f; H. Spieckermann, Gerechtigkeit Gottes, 718f; B. Janowski, Der barmherzige Richter, 58ff.
72) F.-L. Hossfeld and E. Zenger, Psalmen 51-100, 680.
73) 시편의 청원자들은 심판과 판결을 통해 하나님의 구원이 이루어지기를 청원한다(시 7:9f;26:1; 35:1, 23f; 43:1; 74:22; 119:14; 143:2 등). 하지만 시편집에서 법과 심판의 언어 는 주변적인 역할을 할 뿐이다. 이러한 점에서 시편집은 ‘구원의 책’이라고 말할 수 있다. R. Feldmeier and H. Spieckermann, Der Gott der Lebendigen, 468.
74) J. Scharbert, “Gerechtigkeit I,” 408.
75) R. Feldmeier and H. Spieckermann, Der Gott der Lebendigen, 468.
76) B. Janowski, Die Rettende Gerechtigkeit, 234.
77) 구약성서의 윤리로서 요구되는 ‘나그네/이주민’에 대한 배려와 보호에 대해서 다음을 참조하라. 하경택, “구약성서의 관점에서 본 다문화 사회와 대응방안-<노크리>와 <게르>에 대한 이해를 중심으로,” 『장신논단』 39 (2010. 12), 61-88.
78) 하경택, 오방식, 임창복 (공저), 『시편』 3 (말씀으로 기도하기 5) (구리: 한국기독교교육교역연구원, 2012), 99. 시편 112편은 시편 111편과 ‘쌍둥이 시편’으로 불려진다. 왜냐하면 두 시편 모두 알파벳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고, 용어와 주제 면에서 상당부분 일치하기 때문 이다. 이뿐 아니라 시편 111편의 마지막 구절과 시편 112편의 첫번째 구절이 서로 일치하 면서 두 시편을 묶어준다.
79) F.-L. Hossfeld and E. Zenger, Psalmen 101-50 (HThKAT) (Freiburg u. a.: Herder, 2008), 242-45.
80)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야훼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레 19:2);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마 5:48). 김진명은 두 본문간의 비 교분석을 통해 마태복음의 예수께서 레위기 19장의 ‘거룩함’의 개념을 ‘완전함’의 개념으로 재해석했다고 평가한다. 김진명, “레 19장의 정경적 전개에 관한 주석적 연구,” 『구약논단』24 (2007. 6), 86. 신약성경에 나타나는 ‘하나님 닮아가기에 대한 직접적인 말씀은 에베소 서 5장 1절이다(“그러므로 사랑을 받는 자녀 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VI. 결 론
구약성서의 ‘정의’의 문제는 구약성서윤리와 신학을 이해하는 데 많은 경우 걸림돌이 되기도 하였다. 그것은 구약성서의 ‘정의’의 성격과 내용을 제대로 이해 하지 못한데서 기인한다.81) <체덱/체다카>를 비롯한 다양한 히브리말로 표현된 구약성서의 ‘정의’는 우선적으로 ‘공동체적 신실성’을 기초로 한 ‘구원하는’ 정의 라고 규정할 수 있다. 그것은 공동체의 약한 자들과 연대하며 돕는 인자함과 신실 함을 보여주는 구원행동이다.82) 이러한 이해는 하나님의 행동에 대한 묘사에서뿐 아니라 인간의 책무에 대한 규정과 기원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정의는 하나 님과 인간이 공유하는 덕목이다. 그러한 점에서 ‘정의’는 ‘하나님 닮아가기’의 신 학을 보여주는 구약성서의 대표적인 윤리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정의의 윤리 를 레위기 19장 2절의 어법을 따라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너희는 정 의를 행하라. 이는 나 야훼 너희 하나님이 정의롭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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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하나님의 의와 인간의 정의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다음 논문을 참조하라. 박성규, “하나님 의 의와 인간의 정의–칼 바르트 신학을 중심으로,” 『장신논단』 46-2 (2014. 6), 165-91.
82) 이러한 ‘정의’의 이해는 우리말의 용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우리말에서 ‘의로움’이 ‘옮음’
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의형제(義兄弟), 의족(義足), 의치(義齒)와 같은 낱말에 서는 ‘의’(義)가 남을 돕는 일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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