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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우리 이희정 집사님께서 간증회를 해 주실 텐데, 지금 6년째 계속 이어서 매년 일독을 하신 집사님입니다. 이 시간 제가 만난 예수님을 잘 전하게 하시고 말하는 저와 듣는 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옵소서 간증을 통해 주님 홀로 영광 받으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주님은 대학교에 진학은 했으나 공허했던 저에게 찾아오셨습니다. 고등학교 때 누리지 못한 자유와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았지만 밀려드는 공허함과 허무함은 어떻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어느 가을날 주님은 한 선비를 통해 찾아오시고 성경을 통해 주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게 하셨습니다. 성경 속에 예수님은 병과 가난으로 소외된 이들을 차별 없이 사랑해 주시고 병을 고쳐주시며 그 고통에 깊이 공감하시는 분이셨습니다.
저는 그런 예수님이 좋아 생애 처음 성경을 보고 성경 공부를 통해 복음의 비밀을 깨닫고 나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구원의 주님을 만났습니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 자는 그가 계신 곳과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저는 하나님이 정말 살아계신지 궁금하여 성경 말씀을 테스트해 보기로 했습니다.
도마와 같이 의심을 하는 저에게 주님은 말씀하셨고 보여주셨습니다. 재학 시절 재무관리 전공 시험을 보는 날이었습니다. 저에겐 어려운 과목이라 이해가 잘 되지 않았고, 게다가 오픈북 시험이라니 일단 책에는 답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어서 부담스러웠습니다. 학교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다가 여러 개 꽂아져 있는 교수님의 책이 눈에 들어왔고 그중에 한 책을 집어들었습니다. 누군가 꾀알 같은 글씨로 교수님이 강의 시간에 스치듯이 얘기한 말들이 적혀 있었고, 왠지 그 구절을 적어놓고 싶은 마음에 적어서 시험에 들어갔습니다. 시험에 답안이 대부분 적어놓은 구절들이었습니다. 주님은 때를 놓치지 않고 시험을 준비하면서 본 요한복음에 내가 부활이요 생명이니 말씀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큰아이 프랑스 국적 심사를 앞두고 지하철에서 지갑과 체류증을 잊어버렸습니다. 체류증이 있어야지 아예 프랑스 국적을 받을 수 있었기에 재발급 약속을 잡았는데 2주 3주가 지나도 약속을 잡기가 어려웠습니다. 어떻게 해야 될지 고민 중에 주님은 들어보지 못한 파리 15구 분신물 센터를 생각나게 하셨습니다. 분신물 센터에 가서 상황 설명을 하니 직원이 그 지갑 있어 너 편지를 받고 왔구나 이렇게 얘기를 했습니다. 저는 편지를 받은 적이 없었거든요. 체류증을 다행히 찾아서 순조롭게 아이의 국적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둘째 아이를 출산할 때쯤 방이 하나 더 필요하여 이사를 하고 싶었습니다. 근데 은행 직원이 저의 상황으로는 방 2개, 거실 한 개 집 대출은 어렵다고 대출을 거절하였습니다. 월세와 대출금이 비슷한 금액이었기 때문에 꼭 집을 사게 해달라고 주님께 졸랐습니다. 주님은 방문한 집 거실에 햇빛 비치는 꿈을 꾸게 하시고 가진 거라고는 프랑스 정부에 내야 될 세금밖에 없는 저희들에게 대출을 승인해 주시고 그 집을 사게 하셨습니다.
돌아보면 주님은 저를 참 잘 아시고 저에게 꼭 맞게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며 말씀대로 인도하셨습니다. 1시간 정도 걸리는 출근길에서 주시는 큐티 말씀은 하루 주어진 업무를 감당하게 하시고 만나는 사람들 속에서 제 마음을 지켜주셨습니다. 무릎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내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때때로 흔들리고 지치는 마음을 붙잡아 주시고 매일 새 날을 살게 하셨습니다.
저는 할 수 없지만 저를 위해 일하고 계시는 주님을 말씀에서 보게 하셨습니다. 큰 아이가 원하는 학교를 위해 싱가포르로 떠날 때도, 둘째 아이가 교우 관계로 힘들 때도 남편의 과중한 직장 업무와 경기가 좋지 않아 상황이 좋지 않은 여행사 상황을 보며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맡겨진 일들을 감당하며 성경을 보고 일을 해나가시는 주님에 대한 믿음으로 기도하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랬을 때 주님은 저 대신 아이들과 동행해 주셔서 큰아이가 싱가포르에서 가정을 잘 끝내고 건강하게 다시 프랑스로 돌아오게 하셨고, 둘째 아이에게 좋은 학교 친구들을 허락하셔서 즐거운 학교 생활을 하게 하시며 남편에게 신실한 동료들을 허락하사 같이 업무를 감당하게 하셔서 감사했습니다.
돌아보면 분주히 뭔가를 할 때 제 뒤에서 일하시는 주님이 계셨지만 저는 그 주님의 일하심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제가 할 수 없음을 알고 조용히 주님을 바라보니 제 대신 일하시는 주님이 보였습니다. 새해에도 삶 속에서 말씀으로 동행하시는 주님과 함께 풍성한 은혜 가운데 사는 저희가 되길 소망합니다.
예 감사합니다. 귀한 간증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금년에 올해 일독에 도전해서 일독을 마친 우리 신나래 집사님 간증해 주시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오늘 성경 읽고 간증을 통해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은혜들을 나눌 수 있게 되어서 참 감사합니다. 오늘 간증에서 성경 일독을 참여하게 된 동기와 참여하면서 누린 은혜들에 대해서 나눠보겠습니다.
일단 성경 일독을 결심하게 된 동기를 말씀드리자면은 우리가 해외에서 생활하다 보면 여러 나라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자연스럽게 복음을 나눌 기회를 얻곤 합니다. 그래서 과거에 저도 이렇게 영국에 잠깐 체류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이제 저와 친하게 지내던 그룹 중에 무슬림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카페에서 주말에 뭐 했는지 얘기하다가 자연스럽게 교회에 관 얘기를 하게 되었고 예수님에 대해서 좀 얘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네 그때 제가 친구에게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사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고 우리 대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 그래서 예수님의 사랑에 대해서 그 이야기를 했는데 이제 그 친구가 엄청 놀란 표정으로 저에게 나는 예수라는 선지자를 알지만 너가 말한 그런 이야기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어 라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래서 저와 그 친구는 잠시 서로 놀란 표정으로 이렇게 마주했었는데 그때 그 친구의 얼굴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저는 이렇게 마음이 좀 깊이 무거워짐을 느꼈습니다. 왜냐하면 그 친구가 이제 당시에 저한테 예수님에 대해서 더 성경에 대해서 더 자세하게 묻는다면 제가 이렇게 더 대답할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 계기로 제가 성경을 제대로 알고 필요할 때 복음을 좀 잘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 스토리는 저에게 아주 부끄러운 일화가 되었는데요. 왜냐하면 이 일이 바로 10년 전 일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난 10년간 성경 강의라든가 공부도 나가보고 집에 성경 주석도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 배경 지식 책도 사보고 혼자 집에서 성경도 펼쳐보았지만 끝내 혼자서 일독을 마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한국에서 10년 정도 지내다가 이렇게 프랑스로 다시 오게 되면서 10년이라는 세월이 이제 파리에 다시 오니까 좀 짧게 느껴지더라고요. 그래서 작년에 제가 이제 지난 10년간 학교 입학을 위해서 또 졸업을 위해서 취업을 위해서 또 회사 생활을 위해서 이렇게 열심을 다했는데 왜 정작 하나님에 대해 아는 일에 대해서는 노력을 기울이지 못했을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또 10년이라는 세월이 이렇게 빠르게 지나가는데 혹시 내가 성경 한 번 다 못 읽고 죽게 되면 어떡하지 그러니까 좀 뭔가 성경을 한 번도 안 읽고 하나님을 만난다는 것 자체가 조금 좀 이상하게 좀 생각이 되었고 이제 몰아치는 일상생활이 또 우선이 되어서 뒤로 하고 있을 때 박미향 전도사님께서 연락을 주셨고 이 기회에 올해는 꼭 일독을 해야 되겠다고 다짐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성경 일동 모임은 성경 내비게이션을 통해서 좀 큰 맥락을 먼저 이해할 수 있어서 내용이 좀 쉽게 다가왔고 매일 한 구절씩 은혜 말씀을 나누는 시간을 통해 말씀을 꾸준히 가까이할 수 있는 힘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정말 어떤 파트에서는 성경 이야기가 넷플릭스 드라마처럼 흥미진진하고 낭만적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성경 읽던 모임을 함께하게 되면서 제 신앙에 조금씩 새로운 변화들이 찾아왔습니다.
일단 오늘은 세 가지 은혜를 좀 나눠보고자 하는데요. 첫 번째는 지혜의 근원을 다시 배운 것입니다. 우리가 제가 이제 육아휴직을 끝나고 돌아오면서 이제 챗gpt가 저희 아들과 함께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회사도 이제 좀 전략이 많이 변하고 있고 또 기술이 좀 빠르게 생각보다 빠르게 발전한다고 좀 생각이 되는데요. 그래서 저도 이제 좀 어떠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마다 지혜로운 판단을 위해서 전문 서적도 읽고 전문가 의견도 듣고 요즘은 이렇게 AI 같은 기술도 활용하기도 합니다.
네 하지만 이렇게 성경을 읽으면서 더 분명해지는 것은 참된 지혜와 능력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래서 성경 일독을 하면서 하나님께 구하고 또 그분의 인도하심을 신뢰할 때 제가 가야 할 길과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이 더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두 번째로는 하나님과의 대화가 회복된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으며 자연스럽게 제 기도 시간이 늘어났습니다. 말씀 속에서 하나님께서 일상의 작은 순간들 속에서도 이렇게 방향을 비춰주신다는 것을 자주 느꼈습니다.
성경은 마치 제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이렇게 밝게 비춰주는 등대와 같았습니다. 크든 작든 모든 순간을 하나님께 올려드리며 대화하듯 기도하는 시간이 제 신앙을 회복시키는 큰 은혜가 되었고 인생의 방향성을 바로잡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는 이제 성경의 인물들이 새로 보이면서 또 새롭게 느끼는 것이 있었는데요. 이게 요셉의 이야기입니다. 이게 평소에 익히 알고 있는 성경 인물의 스토리가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다시 읽은 요셉 이야기는 마음을 깊이 울렸는데 일단 처음에는 어떻게 자기 형제를 상인에게 팔 수 있었을까 그래서 만약에 요셉처럼 가족이 자신을 타국가로 팔고 스스로가 권력이 있는 위치에서 그들을 다시 마주했을 때 보통은 복수를 하는 스토리가 스토리로 이야기가 흘러갔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자신을 이집트로 팔았던 형제들 앞에서 뛰어난 하나님의 섭리를 고백하며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했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생명을 구하게 하셨습니다고 말합니다.
요셉은 억울함과 고난 속에서도 상황을 하나님의 관점으로 바라보며 인내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해했던 형제들 앞에서 감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를 기준으로 결정했습니다. 그래서 이 이야기를 통해서 저는 제 자신에게 질문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내 상황을 하나님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가 내 결정 안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담겨 있는가 그래서 올해 성경 일독에서 요셉의 이야기는 모든 결정의 기준이 하나님의 사랑이어야 한다는 것을 다시 깨닫게 해준 인물이었습니다.
성경 활동은 여전히 쉽지 않지만 혼자가 아니라 공동체와 함께 하기 때문에 말씀을 통해 제 마음과 생각이 조금 변화하는 것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제가 10년 동안 마음만 있었던 그 멈춰 있던 자리를 하나님께서 이제 천천히 걸어가시게 하는 것 같아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와 능력을 구하고 일상 속에서 하나님과 더 깊이 대화하며 모든 결정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의 관점을 기준으로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저의 간증을 들어주셔서 감사드리며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올려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우리는 지금 미시오 데이 하나님의 선교 시리즈 말씀을 나누고 있습니다. 미시오 데이 하나님이 진행하시는 선교에 우리가 동참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오늘 그 말씀을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산상수훈 중에 하신 말씀입니다. 제자들을 부르신 이유가 나오고 있습니다.
너희는 세상에 소금이다. 너희는 세상에 빛이다. 너희가 착한 행실을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라.
이것이 바로 우리가 하나님의 선교 미시오 데이에 구체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입니다. 우리는 교회라는 공간 안에서 우리가 누구인가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강화합니다. 그리고 세상에 나가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정체성을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라는 사실을 드러내고 증명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지으셨고 지금도 일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일터는 세상입니다. 우리도 그곳에서 하나님과 더불어 일해야 합니다. 빛이 되고 소금이 되고 착한 행실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그 과정이 우리가 바로 미시오데이 하나님의 선교에 참여하는 과정입니다. 먼저 하나님은 우리를 세상 한복판으로 가라고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세상에 소금이고 세상의 빛이다. 소금이 접시 위에 놓여 있으면 보기는 좋지만 그 가치가 드러나지 않습니다. 물속에 들어가고 또 음식물에 들어가서 자기를 녹일 때 소금의 진가가 드러납니다. 빛은 어두움 속에서 비로소 그 가치를 드러냅니다.
예수님은 빛을 잃고 맛을 잃은 이 세상, 이 속 세상을 향해서 너희들이 나가라. 그리고 거기서 빛이 되고 소금이 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의 가치는 여러분 예배당 안에서 증명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의 가치는 우리의 일터에서 가정에서 학업의 현장에서 또 우리가 돈을 사용하는 방식에서 어떤 문제를 만났을 때 그것에 반응하는 태도에서 결정이 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인지 아니면 껍데기만 그리스도인인지는 그 순간에 드러납니다.
교회 안에서는 다 성도 같지만 우리의 진정한 가치는 저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모든 자리에서 우리가 그리스도의 제자이며 하나님 나라의 백성임을 드러내야 됩니다. 증명해내야 됩니다.
물론 주일에 주일 예배에 모이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소그룹에 모이고 예배를 드리고 교제하고 훈련하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만 우리가 일주일 동안 치열하게 살아야 되는 삶의 현장을 견뎌낼 수가 있어요. 흔들리지 않고 내 정체성이 흔들리지 않고 올곧게 나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일날 모이는 거 성도들이 모이는 시간은 충전하는 시간이고 우리가 누구인가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시간이고 또 강화시키는 시간입니다. 이것을 잘 한 사람만이 영적 전쟁터인 세상에서 흔들리지 않고 승리할 수가 있습니다.
그 교회 생활이 첫째는 중요해요. 주일 빠지지 않고 나와야 되고 모든 모임에 가능하면 참여하면서 영적으로 힘을 얻고 자양분을 얻어야 됩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 자신을 위한 거고 우리의 미션은 세상에 나가서 거기서 내가 그리스도인이라는 거, 내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을 드러내고 증명해야 합니다.
세상은 우리의 미션 필드입니다. 하나님의 선교의 현장입니다. 교회에서 아무리 잘해도 세상에 나가서 거기서 인정받지 못하면 우리는 아무 영향력이 없는 그런 그리스도인으로 전락합니다. 거기는 힘들고 어려운 곳입니다. 그러나 기꺼이 가야 합니다. 거기서 내가 누구인지 어떤 존재인지를 증명해야 하는 것이에요. 그래서 주님은 너희는 세상의 빛이고 세상의 소금이라고 말씀하셨어요.
교회의 빛이고 교회의 소금이 아니에요. 세상의 빛이고 세상의 소금입니다. 그래서 선교라는 것은 말이 아니라 세상에서 내 존재로 증명하는 사건입니다. 선교는 내가 선교해야 되겠다. 나는 그리스도인이다 이렇게 말한다고 되는 게 아니에요. 세상에서 빛과 소금이 되는 것처럼 우리가 세상에서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증명해내야 돼요. 존재로 증명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너희는 빛이 되라. 너는 소금이 되어야 된다. 그렇게 말씀하지 않고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빛이다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그리스도인이 되는 순간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순간 그 자체로 우리는 빛이고 소금입니다.
근데 뭐가 문제냐 우리가 세상에 가지 않는 거예요. 또 세상에 가서도 내가 그리스도인 내가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는 사실을 자꾸 왜곡시키는 거예요. 두려워서 부끄러워서 창피해서 드러내지 않는 것입니다. 그냥 그대로 내가 그리스도인인 거 내가 교회 와서 은혜받는 그 모습 그대로 또 세상에 나가서 그렇게 살면 그때부터 하나님의 선교에 동참하는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에 나가서 묵묵히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합니다. 타협하지 말고 세상의 가치에 매몰되지 말고 하나님 나라의 가치, 우리가 교회 와서 은혜 받고 결단했을 때처럼 그 각오를 가지고 그대로 살면 되는 겁니다.
선교는 그때 시작이 됩니다. 우리의 태도 삶의 방향, 우리가 결정하는 방식 관계 표정에서 시작이 됩니다. 우리가 그냥 교회에서 결정한 그 마음 그대로 일주일 동안 한번 살아보려고 노력만 해도 그냥 빛이 되고 소금이 돼서 내가 가는 곳에서 그 소금에 의해서 음식물이 맛을 내고 살아나는 것처럼 세상이 변화가 됩니까?
어두운 구석에 빛이 비치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삶으로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은 말은 많은데 삶으로 보여주지 않습니다. 말은 잘하는데 삶이 따라가지 않습니다. 그래서 말만 잘한다. 그걸로는 세상을 변화시킬 수가 없어요. 오히려 말 많이 하지 않고 그냥 무겁게 힘을 실어서 한마디 던지는 것이 임팩트가 있어요. 차라리 말하지 않고 행동으로 살아내는 것이 더 힘이 있습니다.
요즘 우리는 성경 공부도 많이 하고 유튜브도 많이 듣고 책도 많이 읽어서 입을 열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말을 진짜 잘해요. 그런데 왜 세상이 변하지 않는가?
세상은 우리의 말을 듣고 변하지 않습니다. 세상은 우리의 삶을 바라봅니다. 세상은 교회의 설교보다 그리스도인 한 명의 삶을 먼저 봐요. 제가 아무리 교회 설교를 잘해도 제가 설교를 열심히 준비해서 잘 하는 것은 여러분들을 위한 거예요.
근데 세상은 제 설교를 안 들어요. 유튜브 들어가 보세요. 제 설교 몇 명이나 듣는지 아주 슈퍼스타 목사님들 설교만 듣지 안 들어요. 그리고 요즘은 AI를 통해서 옛날에 정말 위대했던 목사님들이 다 새롭게 부활했어. 조용기 목사님도 부활하고 돌아가신 분들이 나와서 그분들 설교가 막 하니까 우리 같은 사람의 설교는 듣지도 않아요.
근데 어쨌든 설교 풍년이에요. 그런데 교회는 더 추락하고 있어요. 교회를 향해서 젊은이들이 오지를 않아요. 왜냐하면 좋은 설교가 없어서가 아니라 그 설교를 들은 우리가 세상에 나가서 그 설교대로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모습이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우리는 세상에서 보여주어야 돼요. 그것이 빛이고 그것이 소금이 되는 삶입니다.
우리가 왜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사는지, 우리가 무엇 때문에 그들과 다르게 결정하는지, 무엇 때문에 희생하고 용서하는지, 왜 억울함을 끌어안고 사랑을 선택하는지 그들로 하여금 고민하도록 이게 세상의 가치와 기독교의 가치가 다른 거잖아요. 그 지점에서 고민하도록 해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빛이 되고 소금이 되는 삶입니다. 쉬운 일은 아니죠. 자기 희생이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빛이 되고 소금이 되고 하나님의 선교에 참여하는 미셔너리의 삶을 산다는 거 우리 모두가 다 빛과 소금 미셔너리가 돼야 돼요. 그렇게 산다는 것은 희생입니다. 소금은 자기의 몸을 녹여야 되고, 빚을 내기 위해서는 자기 몸을 태워야 합니다. 물론 예수 믿으면 우리에게 평강을 주시고, 예수 잘 믿으면 영원히 잘 된 것 같이 범사가 잘 되고 강건하게 되는 축복도 주셔요. 그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보너스예요. 그러나 그것이 인생의 목적은 아닙니다.
건강한 거 얼마나 좋아요. 돈 많이 버는 거 얼마나 좋아요. 그러나 그것이 목적이 되면 그 인생은 나중에 허무하게 돼요. 우리의 인생의 목적은 빛이 되고 소금이 되는 겁니다. 그런 과정에서 하나님이 세 가지 축복을 주시기도 하고, 때로는 하나님께서 희생을 요구하기도 해요. 빛이 되고 소금이 된다는 것은 희생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숙명처럼 받아들이고, 운명과 다른 숙명은 자발적 선택이에요. 기쁘게 받아들이고 하나님이 그걸 요구하실 때 기꺼이 받아들이는 삶, 그것이 빛이 되고 소금이 되는 삶입니다.
우리가 그런 삶을 한 사람 한 사람이 이 파리 땅에서 살아갈 때 여러분 이 어두운 세상에 그리스도의 빛이 비치고 타락한 세속의 문명에 하나님 나라의 거룩한 문명이 세워지기 시작하는 거예요.
우리 여기 오늘 예배 마치고 나가는 순간부터 이제 여러분의 미션이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빛이 되고 소금이 되는 삶이 무엇인지를 보여줍니다. 주님은 이 땅에 오셔서 빛이 되시고 소금이 되셨어요. 그 삶은 고달픈 삶이었고 고난의 길을 걸어가신 삶이었고, 십자가에 죽으시는 삶이었어요. 그 결과 우리는 구원을 얻었고, 마귀의 권세는 무너졌고 세상에는 생명의 길이 열렸습니다. 주님을 따른다는 것은 기꺼이 이 길을 가는 거예요.
축복해 주시는데 일부러 축복을 안 받을 수는 없죠. 그러나 주님이 우리에게 십자가 희생을 요구할 때 우리가 세상에서 받는 축복보다도 더 기꺼이 받아들이는 삶 그것이 미션의 삶이고 그것이 미시오데이에 동참하는 삶인 줄로 믿습니다.
물론 이 고난 끝에는 영광이 있어요. 이것은 주님이 주신 약속입니다. 로마서 8장 18절에 생각하건데 현재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바울은 기꺼이 십자가의 길을 선택했지만 그러나 그도 바라보는 게 있었어요. 인생이 끝나는 날 그 언젠가 하나님께서 내게 주실 하늘의 영광을 바라본 거예요. 우리는 그걸 바라보고 이 땅에서 때로는 이렇게 빛과 소금이 되기 위해서 희생의 삶을 기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것이 미시데입니다. 그리고 착한 행실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라고 말씀하셨어요. 16절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착한 행실 그게 빛이 되고 소금이 되는 삶도 삶을 포함해서 우리의 인격 언어, 우리의 삶의 모든 태도를 포함하는 겁니다.
그리스도인은 착해야 돼요. 착한 사람 되시기를 바랍니다. 물론 세상적인 기준에서 착하다고 구원받는다 이런 얘기는 아니지만, 우리가 주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은 사람이면 최소한 세상 사람보다는 착해야 돼. 기도도 열심히 하고 예배도 열심히 하고 봉사도 열심히 하는데 직구죠. 못 됐어 성질이 괴팍해 그러면 하나님께 영광을 못 돌린다는 거예요.
미시오데이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산다는 것은 나를 죽이고 착해져야 돼. 그리스도인은 멋있어야 됩니다. 가까이하고 싶은 사람 뭔가 부담이 없는 사람 착한 사람들을 만나면 그런 느낌 들지 않아요. 성품과 행동과 모든 것이 품위가 있고 격조가 있어야 돼요. 그럴 때 사람들이 저게 저 사람이 어떻게 저렇게 됐지 하나님을 믿는다더라 그러면 참 안 믿는 사람들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하나님 참 살아계신 것 같네. 이렇게 영광을 돌린다는 거예요.
그렇게 하나님께 우리가 영광을 돌리는 일들이 반복되면서 세상이 변혁되는 거예요.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고요. 하나님 나라의 그 거룩한 문명이 세상에 확장돼 가는 거예요. 그것이 바로 여러분 미시오데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주님께서 우리를 세상으로 보내십니다. 우리의 가치를 증명할 곳은 세상이에요. 예배당을 떠나 그때부터 우리가 진짜 그리스도인지 가짜인지 껍데기만인지가 드러납니다.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합니다. 희생, 손해 보는 거 세상에서 기꺼이 주님을 위하여 감당하고 그리고 착한 사람 되어 모든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하나님은 나는 하나님 안 믿어 하나님 계신 것 같네. 참 하나님이 계시다면 그분은 참 멋진 분이야 하면서 영광을 돌릴 수 있도록 우리가 그렇게 살아내야 됩니다.
그것이 바로 미시오데이의 삶입니다.
◈ Messenger’s Note:
“In his heart, a man plans his course, but the LORD determines his steps.” (Proverbs 16:9)
“Nevertheless, not my will but yours, be done.” (Luke 22:42)
“And when the angel stretched out his hand toward Jerusalem to destroy it, the LORD relented from the calamity and said to the angel who was working destruction among the people, ”It is enough; now stay your hand.“ And the angel of the LORD was by the threshing floor of Araunah the Jebusite.
And David built there an altar to the LORD and offered burnt offerings and peace offerings. So the LORD responded to the plea for the land, and the plague was averted from Israel.” (2 Samuel 24:16,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