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교회가 1950년 이후로 쌓아올린 공든 탑이 처참하게 무너져 가는 모습을 지켜본다는 것은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목사로서 너무나 괴로운 일이다. 마치 예루살렘 성이 함락되어 거룩한 성전이 이방인에 의해서 짓밟혀 폐허가 되고, 그 성의 백성들이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갔을 때 느꼈을 정죄감, 비통함, 무기력함, 좌절감과 비슷할지도 모른다. 연일 조국 교회가 왜 이렇게 되었으며,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 되었는지 고민하고 질문해 본다. 더 나아가 이제 곧 시작될 한국 교회의 ‘유배기’를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 마음이 불편하고 복잡하기만 하다. 그때 이 책의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
이 책의 저자 정약용은 ‘신유교옥’(혹은 신유사옥)에 연루되어 40세부터 18년간 전라도 강진에서 유배생활을 했으며, 그때 두 아들에게 보낸 편지(1, 2부), 흑산도에서 유배 생활을 하고 있는 둘째 형 정약전에게 보낸 편지(3부), 그리고 자신의 제자들에게 당부하는 편지(4부)등을 모아 책으로 낸 것이다. 놀라운 것은 18년 동안 유배 생활을 하는 가운데 주고받은 편지라는 것이다. 오늘날처럼 교통이나 통신이 발달될 시절이 아니기에, 한 번 편지를 보내고 답장을 받기 위해선 오랜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그래서 인지 편지 곳곳에는 상대방을 향한 애뜻함과 간절함이 배어 있었다. 하지만 가장 눈에 들어오는 것은 아들들에게 독서와 공부하는 법을 가르치는 내용이다.
특히 집안 전체가 폐족이 되어 정부 관리가 될 수 없으니 오직 독서에만 전념하라는 당부가 나의 귀에 강렬하게 박힌다. 그러면서 정약용은 아들들에게 꼭 읽어야 할 책을 소개하고, 특히 그 중에서 세상을 구했던 책을 읽으라고 권한다. 더 나아가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 그 방법(독서법)을 구체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특히 나에게 도전적으로 다가온 것은 그냥 독서만 하는 것이 아니라 편목(오늘날로 하면 목차와 비슷할 것이다)을 만들고, 요약하고, 베겨 쓰면서 자신만의 책을 만들라고 당부를 하는 부분이다. 더 나아가 정약용은 어느 한 특정 분야만이 아니라 다양한 주제에 대해서 공부하라고 권한다. 경전과 시와 역사와 심지어 농사에 대해서도 공부하라고 말한다.
여기서 한 가지 놓치지 말아야할 것이 있다. 정약용은 단순히 공부만을 강조하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사람으로 살아가야 할 도리와 의무와 삶의 태도에 대해서 계속해서 아들들에게 강조하고 또 강조한다. 비록 폐족이지만 인간으로서 선비로서 어떤 삶의 태도와 모습을 가지고 살아가야 하는지를 편지 곳곳에서 당부하고 또 당부하고 있다. 어쩌면 선비가 살아가야 하는 두 가지 삶의 원칙을 제시하는 것 같다. 하나는 인간으로서의 도리이고, 또 다른 하나는 끊임없이 공부하는 것이다. 이것은 서로 구별되는 것이 아니다. 참된 공부는 사람답게 살게 하고, 사람답게 살아가려면 끊임없이 공부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정약용은 학자이고 선비로서 그리고 아버지로서 두 아들들에게 진정한 모범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한국 교회가 허망하게 무너져 가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목사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나 자신에게 질문하고 있다. 도대체 이런 시대, 이런 상황 속에서 목사로서 매일 매일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솔직히 주변을 돌아봐도 이 질문에 답을 주는 사람도 없는 것 같다. 그런데 정약용의 편지를 읽으면서 답을 발견하고 찾았다. 독서하고 공부하고 글을 쓰는 것이다. 더불어 아빠로서 남편으로서 좋은 그리스도인으로서 맡겨진 교회 공동체의 목사로서 가장 기본적인 도리를 다하는 것이다. 특히 열심히 독서하고 그것을 정리해서 글을 남기는 것이 다음 세대, 당장 지금은 아니더라도 다음에 일어날 믿음의 세대들을 위해서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탁월한 일이라는 것이다. 전라도 강진에서 18년 동안이나 유배 생활을 하는 가운데서도 글을 읽고 공부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던 다산처럼, 한국 교회의 유배기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내가 있는 이 곳에서 독서하고 글을 쓰는 것이며, 기본적인 인간의 도리 다하는 것이다(그러고 보니 제주도도 유배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