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명- 빵지 순례
저- 오상량
출 북랜드
독정- 2024년 10월 23일 수
이 가을에 읽는 시 3편-
<빵지 순례>
책제목부터 산뜻하였다. 표지가 밝고 산뜻한 제목을 잘 감싸면서도 무게감을 안고 내 눈 앞에 나타났다. <오상량?> 나는 처음 듣는 시인의 이름이다. 알고 보니 대구문인회 회원분이신데 문인 회 회원 700명에게 일일이 책을 봉투에 담아 보내주신 분이시다. 대단한 분이었다. 일부 친한 회원들에게만 보내던 우리의 얄팍한 호의를 깡그리 무시하며 제대로 본때를 보여준 넓은 아량의 시인님께 존경을 드리며 책장을 넘겨보았다. 책 제목처럼 맛있는 시들이 가득 담겨 있었다. 많은 군침 도는 빵을 고르듯, 시중에 내 마음에 담긴 시들 세 편을 꺼내어 씹어보았다.
“아직도 종이 신문 보세요?“
“네, 아주 열심히요. 이게 밥인데요.”
빵지가 없는 토, 일요일에는
폰에서 이것저것 찾아 먹는다
-빵지 순례 이야기는 이 넉 줄로 압축되겠다. 전자출판 도서가 대세인 요즈음에도 신문은 아직 배달되고 있다. 책이든 신문이든, 종이든, 사이트든, 각자 편리를 따라 선택하는 건 취향이지만 시인은 신문 보기를 밥 먹듯 일상으로 챙겨오는 분이리라. 그래서, 도수 높은 안경 끼고 신문을 한 장 한 장 넘기는 모습이 상상되어 정겹고 사이트가 간직하지 못하는 깊은 맛을 가득 품고 있는 신문의 무게를 새삼 느껴보는 깨달음을 주는 시였다.
<푸른 고래의 시간>
메고 다니던 까만 가방이 시간에 절어/주인을 닮았는지 볼품없이 퇴색되고/
가죽 복원이란 신기술을 만나/ 번들거리는 쓸 만한 모습으로 나를 반가이 맞는다
이제는 내가 가방을 닮아갈 수는 없을까
- 오래 정들인 가방을 수선하면서 세월의 더께를 벗고 다시 반들거리는 모습으로 돌아온 가방을 반기는 마음이 담긴 시다. 나도 20년 넘게 쓴 피에르 가르뎅가방 끈이 떨어지는 바람에 그 기분을 알 것 같다. 그런데 작가는 ‘푸른 고래 같은 반짝반짝한 시간 가지러 오늘도 도서관을 찾는다.‘ 이 마지막 시구가 너무 좋다. 아니 너무 존경스럽다. 신문뿐 아니라 도서관도 열심히 찾으며 독서를 즐기는 작가의 모습에 독자들은 ‘나도!’ 하며 힘을 내어본다.
<산다는 것>
사는 것은 절굿공이처럼 무거울까/겹겹이 걸친 옷 구부정한 어깨에/이 차창, 저 차창 두드리며 “이천 원, 이천 원.”//곰솥 김만큼이나 쏟는 한랭의 입김에도/승무 고깔보다 더 깊숙이 눌러쓴 헌 모자에/동공 흐린 두 눈밖에 없는 마스크 여인//뻥튀기 자루만큼이나 큰 삶의 부채
언제쯤 내려놓을 수 있을까./산다는 것, 사는 것은 뻥튀기 자루 같은 걸까
시인은 뻥튀기 여인의 삶의 무게를, 한랭의 겨울에도 삶을 고행으로 수행하며 사는 승무고깔 쓴 여인으로 승화시켜 보고 있다. 이 모습은 지금, 애처롭게 사는 이웃의 모습이요. 내 가난했던 날의 모습이기도 하다. 이렇듯, 시인의 따스한 심성으로 빚어낸 시집은 우리 모두의 가슴에 담겨 오래도록 씹히고 씹혀오는 명시로 자리 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