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군에 입대할 무렵 기합의 하나로, “머리 박아” 가 있었는데 얼마 있다가 “대가리 박아”로 바뀌었다. 글자 그대로 머리를 바닥에 박고 엉덩이는 쳐들고 손은 허리뒤로 깍지를 끼는 기합이었다. 바닥에 박은 머리로 몸의 균형을 잡고 흔들리지 않게 하려면 쉬운일은 아니다. 그러나 한참 이 기합에 익숙해지다 보니까 머리를 박고 편하게 잠까지 자는 사람도 생길 정도가 되니까. 철모를 놓고 그 위에 머리를 박는 기합으로 변하여 한결 고통스럽고 증심잡기도 여간 어려워진게 아니었다. 이 기합은 6. 25를 잊지 말라는 뜻으로 생긴 원산 폭격이란 것이다,
분대원들이 일렬로 엎드려 팔을 핀다음 뒷 사람 어깨위로 발을 건다. 중간에 한사람이라도 흔들리면 대형이 무너져 쓰러지게 되면 다른 기합이 기다린다, 이것도 어느정도 익숙해지니까 구령에 맟춰 하나 하면 “정신”하면서 팔을 굽히고 둘하면 “통일”하면서 팔을 피는 기합으로 진화되었다. 이 또한 한강철교로 불려지던 기합이다.
그당시 하도 쥐가 많아 세태를 반영하듯 쥐잡기라는 기합도 있었는데 좁은 침상밑으로 기어들어가서 숨는것인데(한편으로는 침상밑에 기어들어온 쥐도 쫓을겸) 덩치가 큰사람은 여간 고통스러운 기합이 아니었다. 어떻든 이것도 몸을 날렵해주게 만드는데 일조한 기합이다.
순발력과 인내심을 키운다는 명분으로 매미라는 기합이 있었다. 여름매미 하면 기둥에 매달려 맴맴 하고 울어댄다. 겨울매미 하면 역시 기둥에 매달린채로 잠자는척 고개를 숙이는것이다. 힘이빠져 떨어지면 다음 기합대상이 된다.
이러한 기합들이외에도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낙오자에 대해서는 완전 군장으로 연병장을 돈다든지 모든 기합이 체력 단련과 협동심으로 이어지는 낭만이 있었고 해학도 있었다.
물론 간혹 가혹한 구타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엉덩이를 맞는 빠따 , 야간 유도점호시 가슴팍을 치는 정도가 고작이었다,
그러나 요즘과 같이 왕따나 기수 열외 같은 인격적으로 모욕을 주는 그런 기합은 흔치가 않았다. 기수열외라는 것은 선임병에 대하여 모두가 짜고 선임대우를 안해주며 무시한다는 것인데 얼마나 비겁하고 야비한 짓들인가. 예전에도 군 생활을 잘못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고문관이라고 했지만 같은 동기들간에 그렇게 대한것이지 후임병까지 무시하도록 놔두지는 않았다, 한마디로 요즘 이상한 병영 풍조는 어찌 보면 수사기관에서 쓰는 고문방법 보다도 더 잔인하고 치사한 점이 많다. 수사기관에서도 육체적인 고통은 가할망정 정신적으로 병적인 짓까지는 안하기 때문이다. 세상이 하 수선하니까 병적으로 변질되고 군입대를 앞둔 많은 부모들의 가슴을 아프게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