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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입학 시즌이 되면서
영섭과 현영은 서울로 올라왔다. 영섭은 서울 수색에 사시는 작은 아버지 댁으로 현영은 학교 근처에 하숙집으로
하숙집으로 들어가는 날
숙영이 따라와서 방 청소도 해 주고 짐도 정리해 주었다.
보영이를 다시 좋아하게 된 현영은 숙영이의 이런 행동을 달가워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뿌리치지도 않았다.
아직은 보영의 마음을 잡지 못한 상태이어서 숙영을 놓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이날 숙영이 말했다.
“나 며칠 동안 어디를 좀 다녀와야 돼, 그동안 다른 여자 만나면 안 돼.”
“어디를? 너는 학교 등록하지 않니?”
숙영은 숙명여자대학교 약학과에 입학했다.
“응! 내 사촌 동생이 다 해 줄 거야. 다녀와서 나는 등교만 하면 돼.”
“수강 신청은?”
“동생이 커리큘럼을 보고 통화하기로 했어.”
“대체 어디를 가는데?”
“나중에 알게 될 거야.”
서울로 올라와 입학 등록을 하고, 수강 신청을 하고, 신입생 환영회 등으로 고등학교와는 전연 다른 대학 생활에 적응하느라 영섭도 현영도 바쁜 나날을 보냈다.
그 와중에도 현영이 몇 번 보영이에게 전화했지만, 통 전화를 받지 않았다.
대개 보영이가 먼저 전화를 해서 받는 편이었던 영섭도 현영에게서 보영에게 전연 전화가 안 된다는 말을 듣고 궁금한 한편 걱정도 되어 전화해보았지만, 그 전화도 보영은 받지 않는다.
그렇게 두어 달이 지난 5월 중 순경 선배들의 권유로 영섭과 현영은 같이 등산반 동아리에 들었다. 동아리에 들고 첫 모임에 참석한 날 영섭과 현영은 깜짝 놀랐다.
그 모임에서 보영이를 만난 것이다.
모임 장소로 정해진 회의실 문을 들어서던 현영이 먼저 보영이를 보았다.
“저 애 보영이 아니냐?”
창밖을 내다보고 서 있는 여학생을 보고 현영이 말했다.
“누구 말이야?”
“저기 창밖을 보고 있는 여학생 말이야.”
현영의 가리키는 곳을 본 영섭이
“그래, 보영이 같기는 한데 그 애가 여기 왜 있니? 비슷한 애겠지.”
“가보자.”
둘이 다가오는 것을 유리창에 비친 모습으로 확인을 한 보영이 천천히 돌아섰다.
“보영아!”
현영이 반가운 마음에 소리쳤고
“너! 보영이 아니냐?”
하고 영섭이 악수하듯 손을 내밀며 닦아갔다.
영섭의 손을 잡은 보영이
“그래! 나야 보영이.”
하고 활짝 미소를 지었다.
“어떻게 된 일이냐?”
“나도 등산반 동아리에 들어왔어.”
“어떻게?”
“어떻게는 나도 등산을 좋아하니까.”
“그럼! 너도 우리 학교 학생이니.”
“그래! 나도 우리 학교 학생이다.”
“그랬구나. 무슨 과야?”
“법학과야.”
“그래! 아! 참 잘됐다.”
“정말 그렇게 생각해.”
“그럼! 초등학교 동창 셋이 다시 뭉쳤잖아. 앞으로는 자주 좀 보자.”
이 말을 듣는 순간 보영의 얼굴에는 기쁨과 괴로움이 교차하는 표정이고
“그래! 그러자. 초등학교 때처럼---”
하고 웃는 보영의 웃음이 다소 어색함을 영섭은 눈치채지 못한다.
이런 말이 오가는 동안 보영은 현영이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그러는 서슬에 현영은 말도 제대로 붙이지 못하고 머뭇거리고만 있었다. 그것을 눈치챈 영섭이 물러나고 난 후에도 둘이는 서로 간단한 인사 정도만 나누었다.
소외감을 느낀 현영은 그 자리를 뜨고 싶었으나 자기가 사랑하는 보영의 곁에 머무르고 싶은 마음이 더 커 보영과 영섭이 하는 이야기만 듣고 있다.
그러면서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영섭에 대한 미움과 질투가 서서히 자리 잡기 시작한다.
여자들은 왜 영섭이만 좋아할까?
혜숙이와 보영이 심지어 숙영이까지도
고등학교 3학년 어느 토요일 날인가 집으로 가기 전 숙영이와 짧은 데이트 중이던 현영에게 영섭이 전화를 했다.
갑자기 학교에서 일이 생겨 집에 못 내려갈 것 같으니 집에 보내는 편지를 좀 전해 달라는 전화를 하고 영섭이 현영이가 있는 곳으로 왔다.
영섭이가 다녀간 후
“영섭씨는 언제 봐도 멋있어 보여.”
현영과 같이 몇 번 영섭을 만난 적이 있는 숙영의 말이다.
“그럼 내 친군데.”
“영섭씨와 사귀는 여자는 참 좋겠어.”
“그럼 너도 영섭이와 사귀고 싶겠네?”
“그럴 수 있다면---”
“무슨 뜻이야? 그럼 나하고 만난 것을 후회하는 거야?”
“그런 뜻을 아니지.”
“그럼! 무어야?”
“영섭씨가 멋있고 매력이 있어 사귈 수 있으면 사귀고 싶다는 말이지.”
“그게 그 말 아니야?”
“아니지, 지금은 사귈 수가 없으니 포기해야지.”
“사귀어라. 누가 붙잡냐?”
“붙잡고 있잖아. 이렇게.”
“안 붙잡으니까 가라.”
“아니야 나는 안가, 그래도 나는 네가 좋아. 나는 아주 오래오래 너하고만 사귈 거야.”
다툼은 그렇게 끝났지만, 현영은 헤어질 때까지 기분이 좋지 않았다.
동아리에서는 첫 모임으로 임원 선출과 동아리 활동 방향과 예산 내역을 보고하고 끝났다.
동아리 모임이 끝난 후
셋이는 따로 모였다.
초등학교 동창회 후에 오랜만에 모임이다.
술이 몇 잔 돌자 영섭이 물었다.
“너 어째서 우리 학교에 들어왔다는 걸 말하지 않았냐?”
“이렇게 만나는 것이 재미있잖아?”
“그래도 너무 했어, 전화도 안 받았잖아.”
“언제 네가 전화했었니?”
“그럼! 현영이는 여러 번 전화하고 나도 한 번 인지 두 번 인지했는데. 전화를 안 받기에 좋은 사람 만나 우리를 잊은 줄 알았지.”
“그런데 왜 전화벨이 안 울렸을까?”
보영이 능청을 떤다.
“네 전화 고장 난 것 아니냐?”
“아니야 오늘도 전화를 걸기도 하고 받기도 했는데.”
이러는 보영이 말에 장난을 치는 줄 안 영섭이
“자식! 너는 이해 할 수 없는 놈이야.”
“야! 나는 놈이 아니야 년이지.”
“아무튼.”
“현영이는 숙영인가 하는 애하고 잘돼가니?”
이제까지는 아무 말도 붙이지 못하고 있던 현영에게 보영이 갑자기 이렇게 물었다.
“뭐! 그냥---”
당황한 현영이 얼떨결이 대답한다.
“언젠가 집에 가는 길에 의정부에서 너희들이 데이트하는 것을 봤는데 여자애가 예쁘고 둘이 잘 어울리더라. 그리고 여자애가 너를 무척 사랑하는 것 같더라, 너 그 애 울리지 마라.”
그러며 보영은 현영을 빤히 쳐다본다.
너희들의 관계를 잘 아는 나에게 딴 수작 부리지 말라는 것 같이
현영은 보영의 눈길을 피해서 딴전을 피우지만, 얼굴에는 난처한 빛이 역력하다.
“보영아! 현영이 좀 예쁘게 보아 주어라. 현영이 너에게 얼마나 지극정성인 줄 아니? 너를 못 보는 동안 거의 매일 네 이야기를 했어.”
현영이 보영이를 좋아한다는 것을 아는 영섭이 현영이를 도와준다고 한 이 말에 둘이 동시에 영섭을 쳐다본다.
보영에 눈에는 안타까움이 현영의 눈에는 분노의 빛이 어린다.
그러나 술이 어느 정도 취한 영섭은 이것을 눈치채지 못한다.
“난 먼저 간다.”
하고 멋쩍어진 현영이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야 네가 가면 우리도 가야지.”
영섭이 따라서 일어났다.
“아니야 너희는 좀 더 있다 와.“
“우리도 간다. 이제 한 학교 한동아리에 있으니까 자주 볼 텐데 뭘.”
영섭이 일어나자 보영도 일어나며
“나도 가야 해 너무 늦었다.”
“아니야 이제 9시인데.”
하는 현영이 말에
“어쨌든 오늘은 헤어지자.”
고 영섭이 말했다.
이렇게 해서 술집을 나온 셋 중 보영이 제일 먼저 돈암동행 버스를 타고 떠나고, 다음은 현영이 술 취한다며 택시를 잡았고, 영섭은 적당히 오른 취기에 기분이 좋아 걷다가 적당한 곳에서 버스를 타기로 했다.
택시를 잡은 현영은 기사에게 앞에 가는 돈암동행 버스를 좇아 가 줄 것을 부탁했다.
오랜만에 보영과 만남을 이렇게 끝내고 싶지 않았다.
무엇인가 계기를 만들어 보영을 잡아야 할 것 같다.
돈암동 버스 정류장에서 내려 대학 입학하면서 와있기로 한 친척 집으로 향하던 보영은 누군가가 자기를 부르는 소리에 걸음을 멈추었다.
“보영아!”
“누구세요? 너 현영이?”
“그래! 나다. 너하고 이야기기 좀 더 하고 싶어 따라왔다.”
그 말에 주위를 살피는 보영을 보며
“너 영섭이 찾니? 영섭이는 안 왔어. 내가 너하고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 왔어.”
그 말이 보영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난 너하고 할 이야기가 없는데.”하고 보영이 경계한다.
“이러지마. 네가 내 마음을 몰라서 그러냐?”
“내가 네가 아닌데 네 마음을 내가 어떻게 알아.”
“우리 어디 가서 이야기 좀 하자.”
“싫어! 늦었어.”
“이제 열 시 조금 넘었어. 네가 자꾸 그러면 강제로라도 끌고 갈 거야.”
“너 지금 나 협박하는 거야?”
보영의 말소리가 날카로워진다.
“아니 그런 것이 아니라 내가 그만큼 절박하다는 거야.”
현영이 사정하자 보영도 조금 누그러진다.
“우습구나. 왜 네가 절박하다는 것인지.”
“하여튼 좀 가자.”
그래서 둘이는 가까운 다방에 들어가서 자리를 잡았다.
“내 마음을 네가 아니까 뜸 드리지 않고 말하지. 나 정말 너 좋아해, 아니 사랑해.”
하고 현영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한다.
“사랑이란 말 그렇게 쉽게 하는 것이 아니야. 그리고 우습지 않니? 지금도 사랑해서 만나는 사람이 있으면서 나를 사랑한다니.”
“나를 떠나게 한 건 너야. 너는 나와 사귈 때 만나도 별로 반가워하지도, 즐거워하지도 않았잖아?”
“사귀고 만남이 늘 즐겁고 기쁜 거니?”
“좋아하는 사람들의 만남은 즐거운 것 아니니? 그렇지만 너는 늘 이웃집 새로 이사 온 사람 만나듯 그랬어. 그래서 너를 만나면 늘 생소한 사람 만나는 것 같았고. 허전하고 무엇인가 빠진 것 같았어.”
“우리는 다시 시작해도 그럴 거야, 그리고 어쨌든 우리 사이를 깨고 나를 떠난 건 너야.”
“네가 그렇게 만들었지.”
“아니야 너는 언젠가는 떠났을 거야. 네 마음은 항상 유동적이니까.”
“네가 내 마음을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
“초등학교 때부터 보아왔으니까.”
“그렇다면 그만큼 너는 내게 관심이 있었던 것이잖아.”
“착각하지 마. 너를 보며 너의 행동이 늘 그랬다는 걸 알았을 뿐이야.”
“내 행동? 그게 어땠는데?”
“그건 네가 생각할 문제야.”
“우리 지난 일은 잊어버리고 다시 시작하자. 숙영이와는 끝낼게”
“나는 싫어! 그리고 너 숙영이 울리면 천벌 받아.”
“너! 영섭이 좋아하는 것 아니니?”
현영이 전부터 갖고 있던 생각, 그러나 말하기 싫은 말을 한다.
이 말에 보영은 다소 당황한 것 같으나 단호하게
“내가 왜 그 대답을 해야 하니?”
“나를 만나기 싫어하는 네가 근 일 년 만에 우리 앞에 다시 나타난 것은 그래서 인거야, 그렇지?”
“마음대로 생각해라.”
“이제 생각하면 나를 만난 것도 나를 통해 영섭이에 대하여 알려고, 나에게서 영섭의 소식을 듣기 위해서지?”
혜숙이의 경우가 생각난 현영이 이렇게 말했다.
“영섭이에 관하여 알고 싶으면 내가 직접 만나지 왜 너를 통해서 아냐?”
“그럼 너의 행위는 무엇이냐?”
“네 마음대로 생각해, 나는 더 이상 너에게 할 말이 없으니까, 그리고 다신 이런 식으로 나를 찾지 마. 피곤해서 나는 가야겠다. 잘 가라.”
하고 보영은 일어섰다.
이튿날
학교를 마치고 나오는 현영은 숙영의 전화를 받았다.
“현영씨? 만나자.”
“왜? 무슨 일 있어?”
“아니야 보고 싶어서.”
“어제 아니 그제도 만났잖아?”
“그래도 보고 싶어. 어제는 전화해도 안 받더라. 바빴어?”
“응! 동아리 모임 때문에.”
“현영씨는 나 보고 싶지 않아?”
“실없는 소리 말고.”
“실없는 소리 아니야, 나는 현영씨 하루라도 안 보면 보고 싶어.”
“그래 어디서 만나?”
“우리 늘 만나던 장소에서 6시에 만나.”
“알았어. 시간 맞춰 나갈게.”
시간에 맞추어 약속 장소에 가보니 언제나처럼 숙영은 벌써 나와 있었다가 환하게 웃으며 현영을 맞는다.
현영이 보기에 숙영은 고등학교 때보다 조금씩 야위어 가는 것 같았지만 언젠가 좀 야위었다는 현영이 말에 자라느라 그런 것 같다고 한 숙영이 말처럼 현영은 숙영이 성숙하느라 그런 것으로 알았고 그것이 숙영을 더 예쁘고 청초하게 보이게 했다.
“일찍 나왔네?”
“응! 시간이 좀 있어서.”
“그래! 공주님 오늘은 무엇으로 즐겁게 해드릴까?”
현영은 어제에 보영에게 당한 일에 대한 반대 심리 같은 것이 일어 숙영에게 평소보다 더 친절하게 했다.
“아니! 현영씨가 웬일이야? 먼저 그런 말도 다 하고.”
“언제는 안 그랬나? 그동안 조금 서운한 것이 있었으면 잃어버려 앞으로는 잘 해 줄게.”
“아니! 정말 웬일이야! 나 어제저녁에 좋은 꿈도 안 꿨는데. 아이! 좋아! 현영씨 그 마음 변치 말아.”
어린애처럼 좋아하는 숙영을 보며 현영은 이 여자가 보영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언제 헤어질지 모르지만 아니 보영이가 현영의 사랑을 받아 준다면 내일이라도 헤어지겠지만 자기에게 극진한 숙영을 생각해서 그 순간까지는 숙영에게 최선을 다하자고 마음먹는다.
그리고 왜 자기에게 그런 마음이 드는 건인지 자신이 생각해도 이상했다.
다른 때보다 더 오붓하고 흐뭇한 시간을 보낸 후 헤어질 때 숙영이
“나 또 어디를 좀 며칠 다녀와야 해. 그동안 한눈팔지 마.”
“또 어디를?”
“나중에 알려줄게.”
“너 학기 초에도 어디를 다녀왔잖아.”
“응! 이번에도 같은 곳이야.”
“먼 곳에 가는 거야?”
“가깝지만 먼 곳이야.”
“무슨 수수께끼 같네.”
“어쩜 현영씨가 영원히 풀지 못할 수수께끼지.”
“궁금하게 하지 말고 지금 이야기해봐.”
“안 되네요.”
숙영의 장난 같은 말에 별 신경을 안 쓰고 헤어져 돌아오는 길에 현영은 시계를 보고 10시가 조금 넘은 것을 확인하고 보영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응답이 없었다.
지난번 그렇게 헤어지고는 통 전화를 받지 않는다.
토요일이 되어 동아리 시간이 되었다.
보영을 만날 욕심으로 동아리 반으로 부지런히 달려간 현영은 벌써 들어와 자리에 앉는 보영이를 보고 옆으로 다가가며
‘석보영! 오늘은 일찍 왔구나.’
하고 인사를 하려는 찰나 맞은편에서 영섭이 들어서는 것을 보고
“영섭아! 여기야.”
하고 보영이 손을 들고 부른다.
“응! 그래 잘 지냈어? 현영인?”
“응! 나 여기 있어.”
영섭의 물음에 현영이 대답하며 앞으로 나가 보영에게 자기의 존재를 알린다.
“너도 일찍 와있었구나.”
대답하고 보영가 잡아놓은 보영이의 옆자리에 앉는 영섭을 보며 현영이 보영의 또 다른 옆자리에라도 앉을까 하고 살폈지만 이미 다른 사람이 앉아 있어 할 수 없이 그나마 비어있는 보영의 뒷자리로 가 앉은 현영의 마음에 어둠이 깔리고 질투심이 생긴다.
첫댓글 즐독하였습니다
즐독입니다
즐~~~감!
안가을 님!
기상조 건 님!
무혈 님!
감사합니다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즐감하고 감니다
지키미씨
다녀가심에 감사드리며
환절기에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ㄳ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