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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장 독각응룡
한편, 제일 먼저 동부 속으로 들어간 비호 서횡과 반미륵 고우성을
비롯한 성심장의 고수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콰콰콰콰……
광한쇄골풍은 엄청난 굉음을 동반한 채 모든 것을 파괴해 버릴 듯
세차게 휘몰아치고 있었다.
강풍의 위력도 위력이지만 그 속에 포함되어 있는 끔찍스러울 정도로
지독한 한기는 적어도 피와 살로 이루어진 인간이라면 견뎌 낼 수가
없는 것이었다.
하나 절벽 아래로 피한 고우성 등은 능숙한 태도로 품속에서 각기 하
나의 단약과 보자기들을 꺼내 들었다.
이어 그들은 재빨리 단약을 복용한 후 보자기를 폈다.
그것은 우중충한 빛깔의 바람막이 피풍이었다.
그들은 급히 피풍을 둘러쓴 채 약효가 돌기를 잠시 기다렸다.
그들이 복용한 것은 조양단이라는 것으로, 복용하면 몸에서
후끈한 열기가 피어올라 웬만한 추위쯤에는 오히려 땀을 흘릴 정도로
효력이 좋은 열양약이었다.
또한 피풍은 특이한 천잠사로 짠 다음 오동나무기름에 칠 일
동안 절였기 때문에 아무리 강한 바랑이 불어와도 견딜 수 있는 것이
었다.
이것들은 모두 성심장에서 특별히 구입한 것으로, 그들은 천양금환을
입수할 수 없게 되자 그 대용으로 이것들을 준비해 놓은 것이다.
과연 조양단을 복용하고 특이한 바람막이 피풍을 하자 그토록 무서운
광한쇄골풍 속에서도 그들은 몸을 움직일 수가 있었다.
한데 고우성이 막 성심장의 고수들에게 무어라 말하려 할 때였다.
"고…… 고 대협…… 노…… 노부는 더…… 더 이상은 못…… 견디겠
소."
절벽 아래에서 금시라도 꺼져 버릴 듯한 미약한 음성이 들려 오는 것
이 아닌가!
고우성이 돌아보니 비호 서횡이 몸이 꽁꽁 얼어붙은 채 절벽 아래 웅
크리고 있었다.
고우성은 한눈에 그가 광한쇄골풍의 한기 때문에 목숨이 거의 경각에
다다른 것을 알아보았다.
그는 서횡을 살려야 하나 말아야 하나 잠시 머뭇거렸다.
그러나 고개를 들어 모래사장을 바라본 그는 결심을 굳혔다.
'아무래도 저 침사를 통과하려면 이 늙은 여우의 도움이 필요할 것이
다. '
결정을 하자 그는 서슴지 않고 서횡에게 다가가 품속에서 조양단을
꺼내 입 속에 넣어 주었다.
이어 여벌로 갖고 왔던 바람막이 피풍을 꺼내 그에게 덮어씌워 주었
다.
잠시 후, 새파랗게 얼어붙어 있던 서횡의 얼굴에 조금씩 혈색이 돌기
시작했다.
"휴우……"
그제서야 서횡은 기다란 한숨을 토한 후 비실비실 자리에서 일어났
다.
그는 크게 계면쩍은 듯 고우성을 바라보며 씁쓸하게 웃었다.
"설마 이곳에 전설로만 알려진 광한쇄골풍이 있을 줄은 몰랐소. 까딱
했으면 노부는 그대로 동태가 되어 버릴 뻔했소이다."
이어 그는 바람막이 피풍을 둘러쓰고 있는 성심장의 고수들을 돌아보
았다.
"이제 보니 여러분들은 이미 이런 사실을 알고 만반의 준비를 해온
모양이구려?"
고우성은 얼굴을 굳힌 채 심각한 음성으로 말했다.
"너무 안심하지 마시오, 서 노인. 우리가 복용한 조양단과 이 피풍이
비록 신묘하다고는 해도 광한쇄골풍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소이다.
잘해야 한 시진을 견딜 수 있을 뿐이오. 그 전에 저 침사를 건너 동
부의 비급을 얻지 않으면 우리는 모두 서 노인의 말대로 이곳에서 동
태가 되어 버릴 것이오."
서횡은 신중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소이다. 마침 노부에게 한 가지 계책이 있으니 여러분들은 어서
이리로 오시오."
서횡은 급히 모래사장 앞으로 다가갔다.
고우성은 귀가 번깩 뜨여 그에게 걸어오며 물었다.
"그럼 이 침사를 건널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있단 말이오?"
서횡은 눈을 반짝이며 모래사장을 바라보았다.
"한 가지 시도해 봄 직한 방법이 있소."
"그게 무엇이오?"
"원칙적으로 침사는 인간의 능력으로는 건널 수 없는 것이오. 게다가
이곳의 침사는 끝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넓어서 아무리 경공이 뛰어
난 고수라 할지라도 건너갈 수가 없소."
고우성은 성격이 급한 인물은 아리었으나 지금은 더 이상 참지 못하
고 눈살을 잔뜩 찌푸렸다.
"그럼 건널 수 없단 말이나 마찬가지 아니오!"
서횡은 백발이 성성한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노부의 생각은 조금 다르오. 유령천자가 유령동부를 만든 것은 누군
가 인연이 있는 사람이 자신의 무공을 얻기를 바라서였을 것이
오. 그렇지 않다면 이렇게 힘들여서 동부를 만들 필요도 없고 더구나
무공비급 따위를 남기지는 않았을 거요. 그래서 말인데, 노부는 아마
도 유령천자가 이 침사를 누구도 건널 수 없게 만들지는 않았을 거라
고 믿고 있소."
고우성은 그의 말에 일리가 있음을 알고 다시 물었다.
"서 노인의 말은 침사를 건널 수 있는 비밀통로나 암도가 있을
거라는 말이오?"
"바로 그렇소."
고우성은 그제야 서횡의 생각을 알고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서 노인의 머리는 비상하구려. 그럼 어서 그 비밀통로를 찾아
봅시다."
고우성을 비롯한 성심장의 고수들은 모래사장 구석구석을 샅샅이 뒤
져 보았다.
하나 머지않아 그들은 실망스런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모래사장이
있는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이 잡듯이 뒤졌으나 통로는커녕 조그
만 구멍조차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고우성은 다시 눈살을 찌푸리며 서횡을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통로 같은 건 없는 모양이오."
서횡은 별로 실망하지도 않고 모래사장을 가리켰다.
"그렇다면 해답은 한 가지뿐이오. 통로는 바로 저 모래사장 속에 있
는 것이오."
고우성은 일시지간그의 말뜻을 깨닫지 못하고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
었다.
"그게 무슨 말이오?"
"저 모래사장은 얼른 보기엔 모두 침사로 이루어진 것 같지만 필시
그 중에 침사가 아닌 길이 나 있을 거요. 단지 침사가 그 길 위를 덮
고 있기 때문에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것뿐이오."
고우성은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다시 물었다.
"그럴듯한 말이오. 하지만 이 넓은 모래사장에서 그 길을 어떻게 찾
는단 말이오?"
"시간이 좀 걸리긴 하지만 확실한 방법이 한 가지 있소. 칼로 모래사
장을 전부 찔러 보는 것이오. 길이 있다면 분명히 뭔가가 칼에 걸릴
거요."
고우성은 그것이 어처구니없는, 비효율적인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지
금으로서는 가장 좋은 방법임을 시인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그는 씁쓸하게 웃으며 중인들을 둘러보았다.
"모두 서 노인의 말대로 가지고 있는 병기로 모래사장을 찔러 보시
오."
성심장의 고수들은 일렬로 늘어서서 모래사장의 가장자리를 찌르며
옆으로 이동했다.
십여 명이나 되는 절세고수들이 제각기 병장기로 조심스럽게 텅 빈
모래사장을 찌르고 있는 광경은 일견 우습기도 했고 해괴해 보이기도
했다.
하나 어쨌든 그들은 이 침사를 건너겠다는 일념에서 힘든 줄도 모르
고 모래사장의 구석구석을 찌르며 돌아다녔다.
그러다가 돌연 그 중 한 백의인이 기쁨에 찬 소리를 내질렀다.
"여기다!"
중인들은 반색을 하며 그곳으로 달려갔다.
고우성은 백의인에게서 장검을 건네 받고 그가 가리키는 곳을 조심스
럽게 쩔러 보았다.
과연 검이 침사를 약 한 치쯤 뚫고 들어가자 검끝에 무언가 딱딱한
것이 닿는 촉감이 느껴지는 것이 아닌가?
고우성은 크게 기뻐하며 급히 그 부분의 모래를 파혜쳐 보았다.
그러자 과연 바위로 이루어진 약 한 자 넓이의 길이 모습을 드러냈
다.
고우성은 새삼스러운 듯 서횡을 바라보며 입가에 활짝 미소를 떠올렸
다.
"과연 서 노인은 무림의 지다성이오. 나는 새삼 서 노인의
지혜에 경탄을 보내는 바이오."
서횡은 입가에 가느다란 미소를 매단 채 짐짓 겸손을 부렸다.
"별말씀을…… 그보다 더 늦기 전에 그 길을 따라갑시다."
고우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바위길에 한 발을 올려놓았다. 길이라고
해봤자 그 폭은 손바닥 길이보다 조금 더 넓을 뿐이라 조금이라도 실
수했다가는 그대로 침사로 빠질 위험이 있었다.
게다가 길이 곧장 일직선으로 나 있는 것이 아니라 마치 뱀처럼 구절
양장을 이루고 있어 한걸음 걸을 때마다 검으로 찔러서 일
일이 확인을 해야 하기 때문에 전진하는 속도가 느릴 수밖에 없었다.
그때 서횡이 고우성에게 말했다.
"고 대협, 돌아올 때를 생각해서 길 위에 있는 침사는 모두 걷어 버
리는 게 어떻겠소?"
고우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침사를 헤쳐 길이 밖으로 드러나게 했다.
그러다 보니 일 각이 넘었는데도 그들은 겨우 오십여 장을
전진했을 뿐이었다.
그것도 그들이 하나같이 무공이 절정에 다다른 고수였기에 가능했지
일반고수들이었으면 아직 십여 장도 채 앞으로 나가지 못했을 것이
다. 어쨌든 그들은 더디기는 하지만 꾸준히 침사 속에 묻혀 있는 길
을 파헤치며 앞으로 전진해 갔다.
백여 장을 더 전진해 가자 짙은 안개 사이로 반대쪽 지면이 모습을
드러냈다.
제일 앞에 있던 고우성이 뒤를 돌아보며 뚱뚱한 얼굴이 일그러지도록
가득 웃었다.
"여러분, 조금만 더 힘을 내시오. 앞으로 이십여 장만 더 가면 이 침
사도 끝이 나고 마오."
성심장의 고수들은 크게 기뻐하며 더욱 부지런히 침사를 파헤치며 앞
으로 전진했다.
한데 그들이 모래사장을 거의 다 건너와서 이제 약 십여 장 남짓만
남겨 놓은 곳에 다다랐을 때였다.
돌연,
크르르르릉……
괴이한 울부짖음 소리가 주위를 쩌렁하게 울리는 것이 아닌가?
중인들이 깜짝 놀라 소리가 들려 온 곳으로 시선을 돌리자 모래사장
이 끝나는 반대쪽 지면 저쪽에서 한 마리의 괴이한 괴물이 질풍처럼
달려오고 있었다.
그 괴물은 크기가 무려 삼 장이 넘었고, 전신에 붉은 털이 수북이 덮
여 있었다. 게다가 머리에는 날카로운 뿔이 하나 달려 있었고, 어른
의 주먹만한 눈에는 횃불 같은 안광이 번깩거리고 있었다.
"크르르릉!"
괴물은 예리한 이빨을 드러낸 채 울부짖으며 이쪽을 노려보고 있었
다.
고우성은 침사를 혜치고 전진하던 걸음을 즉시 멈추고 놀라움에 가득
찬 얼굴로 외쳤다.
"저놈은 독각응룡이구나!"
서횡을 비롯한 중인들은 일생 동안 강호를 떠돌아다녔지만 그런 괴물
은 전혀 구경해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인지라 안색이 확 달라졌다.
"책에서만 나오는 독각응룡이 아직까지 살아 있을 줄이야……"
서횡은 떨리는 눈으로 괴물, 독각응룡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때 그는 고우성이 품안에서 하나의 죽통을 꺼내 드는 것을 보고 의
아해서 물었다.
"고 대협, 그건 무엇이오?"
고우성은 죽통을 꺼내 독각응룡을 향해 겨누면서 긴장된 안색으로 말
했다.
"이건 마염묵죽통이오. 만약을 대비해서 가지고 왔는데
저놈에게 쓰기에는 더없이 적합할 것 같소."
마염묵죽통이란 말에 서횡은 깜짝 놀라 고우성의 손에 들린 거무튀튀
한 죽통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마염묵죽통은 무림의 칠대금용암기 중에서도 그 위력이 독랄하기로
이름난 것으로, 이 죽통 안에는 악독하기 그지없는 마염신무액
이 들어 있었는데 한번 죽통을 발사하면 이 마염신무액이 반
경 십 장 이내를 뒤덮어 그 안에 있는 것은 어떤 생물이든 살아남지
못했다.
고우성은 마염묵죽통으로 독각응룡을 겨냥하며 조금씩 앞으로 전진해
갔다.
독각응룡은 화광이 이글거리는 눈으로 그들이 침사를 벗어나기만을
기다리며 으르룽거리고 있었다
독각응룡과의 거리가 약 오 장 정도로 좁혀지자 고우성은 신중한 음
성으로 소리쳤다.
"이제 마염묵죽통을 발사하겠으니 모두 조심하시오."
이어 그는 힘껏 마염묵죽통의 튀어나온 부분을 눌렀다.
그러자 그 안에서 시뻘건 액체가 분수처럼 독각응룡을 향해 뻗어 나
갔다.
쭈악!
그와 함께 매캐한 비린내가 중인들의 코를 찔렀다.
파파파팍!
마염신무액이 닿는 곳에서는 시커먼 연기가 마구 피어올랐고, 풀 포
기도 녹아 내려 주위는 금세 폐허가 되었다.
"크르르릉!"
마염신무액을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뒤집어쓴 독각응룡은 마구 괴성
을 지르며 발광을 했다.
독각응룡의 전신은 마염신무액의 위력 때문에 시커멓게 탄 채 이글이
글 끓고 있었다.
"콰아아앙!"
독각응룡은 미친 듯이 몸부림치며 땅바닥을 떼구루루 굴렀다.
"저…… 저럴 수가……"
고우성은 눈을 부릅뜬 채 입을 딱 벌렸다.
독각응룡은 겉의 털과 피부가 시커멓게 탄 채 꿈틀거리면서도 바닥에
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놀랍게도 그 악독한 마염신무액으로도 독각응룡을 죽이지는 못했던
것이다.
크르룽!
독각응룡은 흉성이 발작했는지 두 눈에서 무시무시한 혈광을
흘리며 고우성 등을 향해 달려들었다.
고우성은 질겁을 하여 급히 침사 속에 나 있는 길 위로 물러났다.
순간, 독각응룡은 그를 향해 입을 딱 벌렸다.
화라락!
독각응룡의 입에서 시뻘건 화염이 쭈욱 뻗어 나와 고우성 등을 덮쳤
다.
"으헛!"
고우성은 그야말로 심장이 목구멍 밖으로 튀어나올 정도로 놀라 황급
히 뒤로 물러났다.
하나 어느새 그의 머리카락과 화의는 시커멓게 그슬려 있었다.
독각응룡은 침사에 가로막혀 더 이상 다가들지 못하고 마구 괴성을
지르며 입으로 불길을 뿜어 냈다.
화라락!
고우성은 급히 불길이 미치지 못하는 곳으로 몸을 피했다. 그들의 앞
길을 가로막았던 침사는 이제 오히려 독각응룡으로부터 그들을 보호
해 주는 보호막 역할을 하고 있었다.
고우성은 마염묵죽통으로도 독각응룡을 어쩌지 못하자 크게 낙담하여
서횡을 바라보았다.
"이거 큰일났소이다. 서 노인 거의 다와서 저놈을 만났으니…… 무슨
뾰족한 수가 없겠소?"
서횡은 한숨을 내쉰 채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노부도 저런 괴물은 처음 보오. 무슨 절세의 신병이 있기 전
에는 저놈을 어쩌지 못할 것이오."
고우성이 갑자기 이를 부드득 갈아붙였다.
"빌어먹을! 그 옥정검만 도둑맞지 않았어도……"
서횡은 어리둥절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옥정검? 그 검이라면 물론 저 독각응룡을 죽일 수 있을 거요. 한데
그게 어디 있다는 거요?"
고우성은 머뭇거리다가 성심장의 팔대빈객 중 하나인 계대망이 하장
청의 손에서 옥정검을 빼앗았다가 다시 정체 모를 인물에게 도난당한
사실을 이야기해 주었다.
그리고 그 후에 하장청은 성심장에 포섭되었다는 것까지……
말을 마친 다음 고우성은 나직이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안 되겠소. 일단 다시 후퇴했다가 저 독각응룡을 해칠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한 다음 다시 옵시다."
서횡도 별반 다른 생각이 없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야 할 것 같소."
그래서 중인들은 다시 몸을 돌려 왔던 길을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다행히 서횡의 제안에 따라 모래사장읖 통과하는 길을 확실하게 만들
어 놓았기 때문에 물러나는 데는 별로 지장이 없었다.
한데 가장 앞에 가던 백의인이 갑자기 우뚝 걸음을 멈추었다.
"무슨 일이냐?"
버럭 노성을 지르던 고우성은 백의인이 가리키는 대로 앞을 쳐다보고
는 몸을 딱딱하게 굳혔다.
어느샌지 그들이 떠나왔던 절벽 아래에는 십여 명의 인영들이 우뚝
서있는 것이 아닌가?
그들의 선두에는 전신을 흥포로 친친 감은 복면인과 회의청년이 나란
히 선 채 차가운 눈으로 고우성을 쏘아보고 있었다.
고우성은 회의청년이 바로 죽림 안에서 만났던 음양수의 주인공임을
알고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귀하들은 누구요?"
홍포복면인이 음산하게 웃었다.
"흐…… 정말 몰라서 묻는 건가?"
그의 웃음 소리는 마치 쥐가 고목을 갉아먹는 듯 거칠기 그지없어 듣
는 이의 모골을 오싹하게 만들었다.
고우성은 물론 이들이 누구인지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다. 때문에
홍포복면인의 말을 듣자 그는 즉시 되물었다.
"그렇다면 귀하들은 회서방의 인물이란 말이오?"
홍포복면인은 징그러운 괴소를 터뜨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막상 자신의 짐작이 사실인 것을 알자 고우성 등은 안색이 모두 변했
다.
평상시라면 어느 누구도 두려워하지 않을 이들이었지만 지금은 사정
이 달랐다.
그들은 지금 주위가 침사로 둘러싸인 모래사장의, 겨우 폭이 한 뼘밖
에 안 되는 통로 위에 서 있는 상태였다. 이런 위치에서 공격을 받는
다면 달리 피할 데가 얼어 꼼짝없이 당할 게 뻔했다.
그제서야 고우성은 주위를 살펴보지도 않고 무작정 모래사장을 건너
왔던 자신의 소홀함을 후회했으나 이미 때는 늦었다.
홍포복면인의 두 눈이 혈광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흐흐…… 며칠 전 청요산의 천불사에서 성심장이 베풀어 준 은혜는
잘 받았다. 이번에는 본 방에서 그 보답을 각별하게 베풀어 주겠다."
홍포복면인이 말하는 것은 성심장에서 누남광의 기보를 노리고 천불
사로 회서방을 습격한 일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그 싸움은 양파가 처음으로 격돌한 것으로, 두 파 모두 상당한
피해만 입은 채 아무런 성과도 올리지 못했었다.
돌연 홍포복면인은 성심장의 고수 중 가장 앞에 서 있는 백의인을 향
해 벼락같이 일장을 갈겨댔다.
꽈릉!
그의 양손에서 피처럼 시뻘건 기류가 뿜어 나왔다.
이것을 보자 고우성은 놀란 외침을 토해 냈다.
"혈혼장! 이제 보니 네놈은……?"
하나 그의 마지막 말은 비명 소리에 가려 들리지 알았다.
꽝!
"크악!"
장력에 격중당한 백의인은 피를 폭포수처럼 토하며 훨훨 날아 침사가
있는 모래사장으로 떨어졌다.
파스스……
몸이 침사에 닿자마자 백의인은 급격히 모래 속으로 가라앉았다.
"아악…… 사, 살려 줘……!"
아직 정신을 잃지 않은 듯 백의인은 입으로 피를 게워 내면서도 빠지
지 않으려고 바둥거렸다.
하나 그럴수록 그의 몸은 점점 더 빨리 모래 속으로 잠겨들었다.
마침내 그의 몸은 완전히 모래 속으로 가라앉고 말았다.
이 광경을 보고 있던 성심장의 고수들은 소름이 오싹 끼쳤다.
홍포복면인의 공력도 공력이지만 자칫 실수라고 해서 모래 속에 빠지
는 날에는 더욱 가공할 일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절감한 것
이다.
고우성은 이를 부드득 갈아붙이며 흥포복면인을 노려보았다.
"혈영추혼 양만균! 네놈이 감히……"
홍포복면인은 바로 우내칠대흉인 중의 한 명이자 이호 온서인 혈영추
혼 양만균이었다.
그의 혈혼장은 사람의 심맥만을 전문적으로 끊어 놓기 때문에
마도칠대장공 중에서도 상위에 속하는 무서운 장력이었다.
양만균은 음산한 냉소를 터뜨렸다.
"흐흐…… 고우성! 이런 날이 올줄을 미처 몰랐겠지? 이제 네놈들은
양단간에 결정을 내야 한다. 고스란히 장력을 맞고 저 세상으로 가든
지 아니면 침사 속으로 가라앉든지…… 으하하하하!"
이어 그는 옆에 서 있는 회의청년, 음양공자 음적양을 돌아보았다.
"이번 일에는 부총호법의 음양수가 제격일 걸세."
음적양는 고개를 끄덕이며 앞으로 나섰다.
고우성은 그가 나서자 앞이 캄캄해졌다.
가뜩이나 공포스럽기 그지없는 음양수를 이런 상황에서 마주친다면
어떤 결과가 벌어질는지는 불을 보듯 뻔한 노룻이 아닌가?
하나 음적양은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고 쌍장을 천천히 들어올렸다가
기이하게 흔들었다.
꽈르릉!
흥백의 기류가 언뜻거리며 독보적인 음양수가펼쳐졌다 앞에 서 있던
서너 명의 백의인들은 사력을 다해 쌍장을 휘둘러 맞서 갔다.
그들로서는 달리 피할 수도 없으니 이판사판으로 해보자는 식이었다.
꽝!
굉음이 터지며 음적양이 몸을 휘청거리며 뒤로 두 걸음 물러섰다.
비록 막강한 음양수를 사용했지만 네 명의 절정고수의 합공을
완벽하게 물리칠 수는 없었던 것이다.
네 명의 백의인들도 각기 몸을 휘청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하나 그 결과는 판이했다. 음적양은 단지 두 걸음 물러선 후에 몸을
우뚝 세웠지만 네 명의 백의인들은 그만 침사 속으로 빠져 들고 말았
다.
"앗!"
"으악!"
그들은 다급한 비명을 지르며 필사적으로 떠오르려 했으나 침사 속에
서 기이한 흡력이 밀려와 떠오르기는커녕 더욱 빠른 속도로 가
라앉고 있었다.
고우성 등이 어어, 하는 사이에 그들 네 명의 모습은 곧 침사 속으로
잠겨 버리고 말았다. 실로 너무도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 없었
다.
가만히 있자니 장력에 맞아 죽겠고, 맞받아 치자니 조금만 몸을 휘청
거려도 침사 속으로 끌려 들어가 끝장이 나고 만다. 다시 음적양이
쌍수를 몇 번 휘두르자 나머지 세 백의인들도 모조리 침사 속으로 날
아가 버리고 말았다.
이제 남은 사람이라고는 체구가 커다란 홍포노인과 청의복면인, 그리
고 서횡과 고우성뿐이었다.
홍포노인은 팔대빈객 중의 한 명인 건곤팔장 번일악
이었다. 그는 장력으로만 따지자면 천하무림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절세의 고수였다.
번일악은 이를 부드득 갈아붙이며 두 손을 번쩍 쳐든 채 음적양을 노
려보았다.
"이놈! 어디 노부도 그런 식으로 쓰러뜨려 보아라!"
그러면서 번일악은 재빨리 고우성에게 말했다.
"노부가 이놈을 막을 테니 이총관과 조 노인께서는 고사이 이곳을 벗
어나십시오."
고우성은 심각하게 굳은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알겠소. 번 형은 잠시만 견며 주시오, 일단 나와 조 노인이 저들이
있는 곳으로만 날아가면 지금까지 당한 복수는 몇 배로 갚을 수 있을
거요."
이어 청의복면노인과 서횡을 향해 소곤거렸다.
"두 분은 번 형이 손을 쓰는 순간 동시에 몸을 날리시오. 어쩌면 기
회는 이번 한 번뿐일지 모르오."
두 사람은 이미 사태의 심각성을 절감하고 있던 터라 아무 소리도 하
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곧 음적양은 번일악을 향해서 음양수를 떨쳐 냈다.
번일악은 이미 공력을 전부 끌어올린 채 준비하고 있었던지라 주위가
쩌렁한 호통을 내지르며 쌍장을 앞으로 쭉 내뻗었다.
"이-- 야-- 압!"
꽈르릉!
노도와 같은 경기가 구름처럼 피어올랐다.
번일악은 의식적으로 자신의 공세가 모래사장을 슬쩍 스치도록 했기
때문에 모래바람이 세차게 휘말려 일시지간 주위에는 아무것도 보이
지 않게 되었다.
"바로 지금이오!"
고우성과 청의복면노인, 그리고 서횡은 있는 힘을 다해 모래 속을 뚫
고 침사 위를 날아갔다.
광!
귀청이 떨어져 나가는 듯한 폭음이 터지며 번일악은 술 취한 사람처
럼 비틀거리며 거구를 휘청이고 있다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그와 함께 그의 몸은 침사 속으로 빠져 들기 시작했
다.
음적양 또한 상대의 심후한 내력을 견디지 못하고 비틀거리며 물러서
고 있었다.
그때 양만균이 노성을 질렀다.
"이놈들! 얕은 수작을 쓰다니……"
어느샌가 고우성과 청의복면노인 등은 십여 장을 날아 땅바닥에 내려
서고 있었다. 양만균은 그제서야 자신이 속았음을 알아차렸으나 이미
고우성은 다시 땅을 박차고 그들에게 덮쳐 오고 있었다.
"양가야! 네놈을 갈가리 찢어 죽이고 말겠다!"
고우성은 이미 분노가 극에 달해 있었던지라 그의 손에서는 하나같이
악독하고 흥악하기 그지없는 초식들이 뻗어 나오고 있었다.
양만군은 그의 사나운 기세에 놀라자신도 모르게 몇 걸음 뒤로 물러
섰다.
그동안에 청의복면노인은 비호와도 같이 아직 신형이 안정되지 않은
음적양을 향해 달려들었다. 서횡도 그의 뒤를 따라 회서방의 고수들
에게 달려들려 했다.
그때 정신없이 양만균을 몰아치고 있던 고우성이 버럭 소리를 질렀
다.
"서 노인! 당신은 싸움에 끼여들지 말고 어서 번일악을 구해 주시
오."
서횡은 퍼뜩 정신이 들어 번일악이 있던 곳을 바라보았다.
번일악은 어느새 허리 아래까지 침사에 빠져 든 채 허우적거리고 있
었다.
서횡은 절로 다급해져서 주위를 두리번거렸으나 번일악을 구해 줄 뾰
족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서횡이 머뭇거리고 있는 사이 번일악은 머리까지 침사 속에 빠져 들
어갔다. 서횡은 혀를 차며 할 수 없이 분풀이라도 해야겠다는 듯이
회서방의 고수들에게 덤벼들었다.
고우성은 번일악마저 침사 속에 빠져 최후를 맞이한 것을 알자 분노
가 폭발하여 자신의 수비는 생각도 않고 미친 듯이 양만균을 향해 덤
벼들었다.
원래 고우성과 양만균의 무공 수준은 서로 엇비슷한 정도였다.
한데 고우성이 수비를 도외시한 채 공격만 하자 양만균은 정신없이
뒤로 밀려날 수밖에 얼었다. 양만균도 부화가 치밀어 올랐으나 워낙
고우성의 공격이 거칠어 꼼짝도 못하고 수비에만 정신을 쏟고 있었
다.
한편 음적양과 청의복면노인의 대결은 그야말로 용호상박
의 불꽃 튀는 격전이었다.
청의복면노인은 성심오로 중의 하나인 신망 조패였다.
그는 칠대흉인 중의 하나로, 원래 무공보다는 독술과 각종 동
물들을 다루는 재주가 비상한 인물이었지만 무공 또한 결코 얕잡아볼
수가 없었다.
그의 수법은 하나같이 상궤를 벗어난 기이하고 음독한 것이어
서 아직 대적 경험이 풍부하지 알은 음적양을 크게 당황하게 만들었
다.
하나 조긍씩 격전이 계속될수록 음적양은 침착을 되찾고 음양수의 가
공할 위력으로 조패를 압도해 가고 있었다.
서횡은 일곱 명의 회서방 고수들에게 둘러싸인 채 정신없이 그들의
공격을 막기에 바빴다. 그의 무곧은 장내에 있는 고수들 중에서 가장
떨어지는 축인지라 겨우 회서방의 전서급 인물 둘 정도를 당할 수준
이었다.
그런데 일곱 명의 전서급과 싸우게 되었으니 어찌 무사하기를 바라겠
는가?
그는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간신히 넘기고 연신 비명을 질러댔다.
"아이고…… 고 대협! 어서 노부를 좀 살려 주시오…… 이크! 고 대
협! 빨리 좀……
그는 연신 고우성을 애타게 부르며 이리저리 피해 다녔다.
그가 얼마나 악을 써대는지 고우성은 정신이 헷갈려 마음이 심란해질
지경이었다.
"아니, 저 미친 놈의 늙은이가 왜 저렇게 소리를 질러대? 누구 죽는
꼴을 보고 싶어서 그러나?'
고우성은 양만균 하나만으로도 벅찬 형편인데 어떻게 서횡을 도울 수
있겠는가?
오히려 서횡이 그를 자꾸 불러대는 통에 정신이 흐트러져 조금씩 열
세에 몰리게 되었다.
쾅! 쾅!
파파팍!
장내는 고함 소리와 장영, 검풍이 마구 뒤섞여 일대 아
수라장이 되었다.
한데 바로 그때였다.
스읏!
어디선가 한 명의 청의중년인이 불쑥 나타나 장내에 뛰어들었다.
첫댓글 감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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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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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보고있습니다
즐감~!
감사합니다.
침사대전~~
감사합니다
ㅈㄷㄱ~~~~~~~````````````````````
즐감하고 갑니다.
감사...
감사합니다. 그리고 잘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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