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딩퇴마사 part.1†
#1 [이유]
#오후 5시, 학교.
“알겠지? 학원 끝나고 11시 30분 까지 그 폐건물 앞으로 모이는 거야.”
해가 질 무렵, 아무도 없을 것 만 같은 학교 교실 안, 대여섯 명의 여학생들이 뭔가를 결심한 듯이 고개를 끄덕였
다. 이들 중 한명의 손에는 글씨가 쓰여 있는 종이가 쥐어져 있었다. 많은 글씨 중 유독 눈에 띄는 말. [분신사
바]라는 단어가 시선을 확 끌어 잡았다. 이 종이를 들고 있던 여학생이 종이를 펼쳐, 다른 여학생들에게 내밀고는
걱정스러운 말투로 말했다.
“정말 괜찮을까? 혹시나 잘 못 되면……”
그러자 맞은편에 서있는 여학생이 태연하게 대답한다.
“그럴 것 같아서 미리 의뢰했지. 아직 답장은 오지 않았지만…… 뭐, 어때? 혹시나 안와도 어차피 우린 재미로
하는 거니까. 재미로.”
아직은 반신반의하는 그들이지만 딱히 다른 것을 할 것도 없을뿐더러 대답한 여학생의 말도 일리가 있으니 고개를
끄덕거렸다.
“……”
인기척 없이 가만히 여학생들의 시야 뒤편에 있는 문에 기대어 서있는 한 명의 남학생. 그는 무언가 다른 사람들
과는 다른 묘한 기분이 들었다. 검은색이 주로 이루는 교복 때문일까. 그의 분위기는 더 했다. 그는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들더니 만지작거리고는 다시 집어넣은 뒤 걸음을 옮겨 복도를 빠져나갔다.
위이잉……
그가 나가는 것과 거의 동시에 한 여학생의 핸드폰이 울린다. 그리고 핸드폰의 액정에는……
[의뢰 접수 -고딩 퇴마사-]
라는 간단하면서도 묘한 기분이 드는 문구가 적혀있었다.
# 밤 11시 30분, 폐건물 앞.
대강 본다 하더라도 가로등 불 빛 하나마저 희미하게 비추는 터에 으스스하기만 한 건물 앞, 몇 시간 전 학교에서
얘기를 하던 여학생들이 모여 들어가기를 망설이고 있었다. 12시가 되기 10분도 체 남지 않을 만큼 시간이 지나
자, 한참을 망설였던 학생들이 한 걸음 한 걸음 안으로 들어갔다. ‘저벅저벅’아주 작은 소리도 이곳 폐건물 안
에서는 천둥이 치는 것 마냥 소름끼치고 크게 들려왔다.
“왠지 으스스하다… 우리 정말 할 거야? 소연아, 답장 왔다면서? 왜 그 사람들은 없지?”
한 여학생의 말에 바로 뒤에서 따라오고 있는 여학생이 어깨를 으쓱 거렸다.
“글쎄, [의뢰접수]라는 문자를 받기는 했는데 안 보이네? 거짓말 이었나…… 그럴 리가 없다고 했는데?”
이상함을 느끼며 의아해 하면서도 걸음을 재촉했다. 이들은 걸어가면서 느낀 주변에 비릿한 쇠의 냄새와 산산이
부셔진 유리창들이 보여, 인상을 찌푸렸다. 얼마쯤 걸어가다 멈춰 선다. 마치 누군가가 여러 번 왔었는지 책상과
의자가 놓여있었고 곳곳에 다녀간 흔적이 보였다.
키기잉……
약간 떨어져 있던 책상 두 개를 서로 붙이고, 의자에 앉는 여학생 두 명. 나머지는 그냥 구경만 하려는지 주변을
둘러쌀 뿐, 어떠한 행동도 하지 않고 바라보기만 했다. 여학생 두 명이 마주보고 앉고는 초 두 개를 꺼내어 불을
붙이고 책상 끝자락에 세워놓았다. 작지만 강한 촛불 덕에 환해진 주변. 조금은 안심이 되는지 한숨을 내쉰다. 그
것도 잠시, 빨간색의 잉크 같은 것으로 그려진 원이 선명히 보이는 하얀 종이와 빨간색의 펜을 꺼내들어 내려놓았
다. 마주보고 앉아있는 두 여학생의 표정은 상당히 긴장한 듯 보였다. 왼쪽의 여학생이 빨강 펜을 집어 들었다.
그리곤 앞의 여학생과 손을 엇갈려 잡고 원을 그리며 입을 연다.
“분신사바… 분신사바…”
# 같은 시각
“뭐? 우리 학교 학생?”
의외라는 말투로 묻는 여학생의 목소리가 아무도 다니지 않는 골목을 가득 메웠다. 그나마 몇 개 불빛이 들어오는
가로등. 그 밑으로 잘도 걸어 다니는 남학생 한 명과 여학생 두 명. 자세히 보니, 아까의 그 남학생 이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지금 가는 거라고.”
여학생들이 아직도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서로를 보다가 다시 그를 따라 잡았다. 두 명의 여학생들 중, 허리
까지 머리카락이 내려온 키가 조금은 더 큰 여학생이 계속해서 물었다.
“김우현, 너 원래 우리 학교 학생들한테는 의뢰 안 받잖아? 괜히 귀찮아진다면서?”
“맞아.”
옆에 있는, 앞서 말한 여학생보다는 짧은 머리카락을 가진 여학생이 수긍하면서 뒤를 따랐다. 양쪽에서 왔다갔다
거리면서 묻는 이들이 슬슬 짜증이 났는지 인상을 팍 찌푸리고 한숨을 내쉬는 우현.
“됐으니까 그냥 따라와. 곰탱이, 꼬맹이.”
멈칫-
그의 말에 멈칫한 두 명의 여학생 긴 머리의 여학생이 소리쳤다.
“야 이 개우현아!!”
또한, 그녀보다는 짧은 머리의 여학생이 주먹을 쥐고 만지작거렸다.
“네가 오늘 죽고 싶구나? 누구보고 꼬맹이라고?”
어금니에 힘을 줘가면서 째려보는 여학생들. 그러거나 말거나 걷는 것에만 충실한 우현이다. 여학생들은 몇 시간
전 학교에 있던 여학생들과 같은 교복을 입고 있었다. 이 둘의 교복 재킷 가슴부분에는 석자의 글자가 새겨져 있
다. [장다영] [최현아]. ‘곰탱이’라 불린 여학생과 ‘꼬맹이’라 불렸던 여학생의 이름… 이었다.
현아가 자신들을 무시하고 혼자 빨리 가버리는 우현을 빠른 속도로 따라 잡더니 뛰어 올라, 발차기를 선보였다.
타악!
꽤나 빠른 속도. 다영이 보기엔 정말로 빠른 듯 했다. 그러나 우현은 별 일 아니라는 것처럼 몸을 살짝 돌려 정확
하게 피해버린다. 이것도 실력이라면 실력일 터. 도저히 남학생과 여학생이 놀 거리는 아니라고 보지만 이들이 하
는 건 왠지 모르게 낯설지 않았다.
그가 피하자 빗겨간 현아는 안전하게 착지한 뒤 소리를 질렀다.
“누가 피하래!!”
“아아…”
여전히 무시해주시는 우현이다.
무튼, 단 세 명이지만 시끌벅적하게 걸음을 옮기는 이들이다. 어느 새 시계바늘은 12시를 가리켰다. 달빛이 의미
심장한 웃음을 띠는 것처럼 희미하게 보이는 밤이기에 더욱 기분은 묘하게 흘러갔다.
10분을 더 걸어갔다. 희미하기는 했지만 꺼지지 않고 어둠을 밝히고 있던 가로등들도 사라진지 오래였다. 가로등
불빛 하나가 깜박깜박 거리고 있는 거리. 이곳에 들어서자마자 무언가에 반응을 보이 듯 미간을 좁히는 그들. 어
쨌거나 걸어갔다. 조금의 불빛도 들지 않는 폐건물 안으로……
# 폐건물 안.
“뭐야, 왜 안 돼?”
몇 번을 했었는지 싫증을 내며 볼펜을 내팽개치는 여학생. 다른 여학생들도 싱겁다는 표정이었다.
“역시 분신사바 같은 건 거짓말이었어. 그냥 가자.”
여학생의 말에 다른 여학생들은 고개를 끄덕이고 저마다 갈 준비를 하고 건물을 나서려 걸음을 돌렸다.
스으……
이들이 몸을 돌리려 할 때였다. 무언가 검은 안개… 가 서서히 뒤에서 다가온다. 아직 여학생들은 그저 기분 탓으
로 돌리려하려고 하는 것 같았지만. 절대로, 누가 봐도 기분 나빠지는 안개였다.
“어? 방금 무슨 소리 나지 않았어?”
한 여학생이 기척을 느끼고 시선을 뒤로 돌렸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털썩-
대여섯 명의 여학생들이 전부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는 곳, 어둡기 만한 이 곳에서.
“사기다. 엄청난…사기.”
“그래…기분 더러워지는 사기네.”
“……머리 아파.”
현아, 우현, 다영 순으로 기를 느끼고 저마다 긴장한 표정… 이라기 보단 꺼림직 한 표정이 가득했다. 건물 안을
돌아다니던 세 명. 다영이 주변을 두리번두리번 거리더니 머리를 감싸 쥐고 한쪽 손으로 가장 어두운 곳 즉, 여학
생들이 쓰러져있는 곳을 가리켰다. 그녀의 가리킴에 우현과 현아는 곧바로 달려갔다.
타닥, 덜컹-
빠른 속도로 안으로 들어가 주변에 놓여 있는 의자를 발로 치운다. 이들이 보질 않아서 그랬던 것일 뿐, 분명 여
학생들의 뒤쪽에 있었던 의자들이었다. 언제 움직여졌는지는 몰라도 여학생들을 아슬아슬하게 빗겨가며 그들의 위
에 자리를 잡고 놓여있었다. 우현과 현아가 의자들과 책상들을 전부 옆으로 치우고 먼 곳으로 시선을 주시했다.
이 둘이 보는 곳은 구석도, 그렇다고 깨진 유리들과 철창들이 있는 곳도 아니었다. 쓰러져 있는 그들의 바로 뒤.
검은색 무언가로 뭉쳐있는 어느 형상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게 뭐지?”
뒤늦게 따라올까 말까 망설이다가 겨우 쫓아 온 다영이 미간을 좁히고 기분 나쁜 표정을 짓곤 물었다. 그에 대해
우현은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며 대답했다.
“이 여자애들을 쓰러지게 한 원인 덩어리겠지.”
그의 손에는 특이하게 생겼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의미심장한 그림이 그려진 부적이 들려있었다. 이윽고 우현이
부적을 내려놓은 뒤 작게 중얼거렸다.
“……사기여, 빛에 의해 사그러들거라. 환광.”
그러자 부적은 대답이라도 하는 듯 밝게 빛을 내뿜었다. 지금까지 봐왔던 여느 불빛보다도 신성한 느낌이 들었고,
바람 한 점 없는 이 내부에 서늘하면서도 따뜻한 것만 같은 바람이 불었다. 부적에서 뿜어져 나온 빛은 여학생들
을 감쌌고 검은 형상을 향해 달려들었다.
파앗!
검은 어둠의 빛과 밝은 신성한 빛이 충돌하여 엄청난 바람과 함께 대조되는 빛의 형상이 건물 밖으로 뿜어져나갔
다. 그래봤자 이런 외딴 곳에 발을 들일 일반 사람이 없으니 애초에 신경을 쓰지 않는 이들. 대조되는 빛들의 충
돌하는 시간이 늘어 가면 늘어갈 수록 의문 없는 바람은 더욱 거세져만 갔고 계속되는 사기와의 충돌에 버티기가
힘들어진 현아와 다영. 이내 무릎을 꿇거나 비틀거렸다.
“기, 김우현! 제발… 그만해. 더 이상은 못 버텨!”
다영이 겨우 소리치자 그제야 상황을 파악한 우현이 부적에서 손을 떼었다. 순간, 언제 바람이 불었으며 언제 강
한 빛을 냈고 언제 충돌을 했냐는 듯이 그 새 사라지고 난 후였다. 부적에서 빛이 사라지자 곧 재가 되어 바닥에
뿌려졌다.
“……”
이쯤 되면 조금이나마 해결이 될 것만 같았으나 현아의 표정을 보니 전혀 그렇지 않은 것 같았다. 그가 다영과 현
아를 바라보다 다시 검은 형상이 있던 곳을 바라보았다. 역시나였다. 조금이나마 사라지기는커녕, 별 다른 변화가
보이지 않았다. 아니 더 커진 듯 했다. 그래도 다행인 건 공격을 하지 않는 다는 것. 그것 말고는 마음 편히 있기
엔 너무 위험 했다. 우현은 잠시 주변에 시선을 두더니 뭔가가 생각난 듯 갑자기 책상들을 붙이고는 여학생들 주
위에 떨어져있는 초를 주워 책상 가장자리에 세워 놓고 불을 붙였다. 그 후엔 몇 분전, 여학생들이 하던 것처럼
종이를 펼치고 빨강 펜을 들었다.
다영과 현아가 의아하게 쳐다보았다.
“지금 뭐하는 거야?”
“분신사바.”
“뭐? 그, 그렇지만 이 애들은 이미 시도 했다가 안 되서 포기한 것 같은데? 한 흔적이 없잖아?”
“그러니까 우리가 하자고. 최현아, 와서 잡아라.”
“응? 아, 응.”
얼떨결에 대답한 현아는 우현을 마주보고 의자에 앉아 빨강 펜을 엇갈려 잡았다. 우현이 잠시 동안을 집중하더니
서서히 펜을 돌려 종이에 원을 그리기 시작 했고 동시에 입을 열었다.
“분… 신… 사… 바… 분… 신… 사… 바…”
처음부터 쭉 여학생들과 다를 바 없었다. 단지 다른 것이 있다면 원을 그림과 동시에 외는 주문을 훨씬 느리게 한
다는 것과 그 전에, 잠시 동안을 집중했다는 것. 이 두 가지였다. 겨우 이 두 가지가 무슨 그런 차이가 있겠냐만
은. 우현이 체 주문을 다 외기도 전에 의자 밑에서부터 서서히 바람이 불어오고 볼펜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하는
것을 보면 엄청난 상황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각사각’, 볼펜이 칼집이 잔뜩 그어진 책상 위, 종이 위를
활개를 치더니 갑자기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한다.
파바박!!
꽤나 소름끼치는 소리에 멀리 있던 다영 마저 귀를 막아버린다. 쉴 새 없이 잉크로 보이는 원이 그려져 있는 선을
따라 원을 그리는 펜. 우현과 현아가 애써 막아보려고 했지만 힘을 쓸 수가 없었다.
“이, 이거 왜 그래? 멈추려고 해도 멈춰지지가 않잖아!”
현아가 힘을 버티지 못하고 거의 끌려 다니다시피 손을 움직였다. 그에 따라 바람이 더 거세게 불기 시작한다. 아
까 부적을 썼을 때와 같은 느낌. 그리 기분 좋지 않은 바람. 그것 까지였다면 다행이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잠
잠했던 검은 형상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느린 속도로 다가온다. 그러면 그럴수록 어두운 빛이 발하고 바람은
기분 나쁘게 불어왔다. 검은 형상이 더 가까이 다가온다. 바람이 세진다. 어두운 빛이 건물 내부를 장악한다. 촛
불이 스스로 꺼져버린다. 이제 남은 빛은 아무것도 없었다.
한참동안이나 의도가 아니게 펜이 움직인다. 멈추려고 해도 멈춰지지 않아 이젠 힘이 얼마 남아 버티기도 힘들었
다. 검은 형상이 드디어 이들의 옆에 섰다. 어둠이 둘을 에워싸고 삼키듯 했다. 그에 깜짝 놀란 다영이 소리쳐 이
름을 불러보지만 들리지 않는지 대답을 하지 않는다. 어둠으로 둘러싸인 막 내부에서도 다영을 불렀으나 대답이
들리지 않았다.
[…왜…왜지…왜…? 왜 날…죽인 거야…]
막 내부에서 울려 퍼지는 고요한 남성의 목소리. 그 목소리는 너무나도 슬퍼보였다. 이때에 우현이 주머니에서 아
까와 같은 부적을 꺼낸 후 소리쳤다.
“사기여, 빛에 의해 사그러들거라. 환광!”
화아악-
밝은 빛이 돌고 막 안에서 따뜻한 바람이 분다. 부적에서 나온 밝은 빛은 이 둘을 감싸고 검은 막과 부딪혀, 또
다른 막을 만들어냈다. 덕분인지 멋대로 움직였던 팔이 멈춰지고 볼펜을 내려놓을 수 있게 되었다. 현아가 한숨을
내쉬고 의자에서 일어서 밝은 막 밖에 서 있는 검은 형상을 바라보았다.
[……왜……]
다시 한 번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대체 무슨 원한이 있는 거야…”
[알고 싶어……]
계속 들려오는 슬픈 목소리에 현아는 살짝 인상을 찌푸리다가 구슬을 꺼내었다. 보라색, 푸른색의 오묘한 빛이 도
는 구슬. 손바닥 안에 폭 들어가는 크기. 일반적인 구슬이라기엔 괜스레 느껴지는 기분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묘했다. 그녀는 두 손으로 구슬을 꼭 쥐고 무언가를 중얼거렸다.
“……사기봉인.”
그녀가 말을 마치자마자 밝은 막 밖에서 거칠게 맴돌고 있던 검은 막이 수그러들며 점점 구슬 안으로 빨려 들어갔
다. 그리고 검은 형상을 감싸고 있던 검은 연기들도 전부 사라져간다. 아주 희미하게 검은 연기들이 남아 있었지
만 연기 사이로 보이는 남자가 둘의 시선을 확 끌어 잡았다. 막이 사라지자 다영에게도 이 둘이 보였다.
“괜찮아?”
걱정스레 물어본다. 우현과 현아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남자를 주시했다. 그러나 이들에게만 보이는 남자가 보일
리 없는 다영은 뭐가 뭔지 몰라 답답해 할 뿐이었다. 사라질 기미를 보이지 않던 연기가 사라지자 드디어 남자의
형상이 보이기 시작한다. 일반 등산복…처럼 보이는 옷에 약간의 검붉은 색 피들이 곳곳이 묻어있었다. 얼굴에도
피가 묻어 있었지만 상처는 보이지 않는 듯, 깨끗했다. 마치 눈물을 흘린… 아픔이 섞인 피눈물을 흘려 괴로워하
는 것처럼.
[너흰…누구야… 내가 찾는 사람이 아니라면… 필요 없어.]
목소리가 꽤나 잠겨있다. 슬픔이 가득한 얼굴로 이들과 눈을 마주친다. 한적한 정적을 깨고 현아가 입을 열었다.
“다영아. 너… 안 보이지? 그럼 네가 접신을… 해야 할 것 같아.”
“응? 아… 응.”
뭐가 뭔지는 모르지만 그리 좋은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대강 눈치 챈 다영이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고 현아에게 가
까이 다가갔다. 그녀가 우현을 바라보자 우현은 알았다는 듯 끄덕이고 남자를 향해 손을 뻗고 다영의 어깨를 잡았
다. 그 후엔 간결하게 말했다.
“빙·의.”
…팟!
한 순간 조용해지는가 싶더니 남자는 모습이 사라지고 다영이 뭔가 이상이 있는지 고개를 숙인다. 서로가 말이 없
었다. 그녀가 단 한마디의 말을 하기 전까지. 그저 기다리기만 했다. 잠시 후 조금 전까지만 해도 별 다른 이상이
없어보이던 다영이 흐느끼기 시작한다. 눈물방울이 볼을 타고 흘러내린다. 건물 내부에 우는 소리가 가득 찼다.
그래도 우현과 현아는 달래 줄 생각을 하지 않는다. 현재 다영… 그녀는 그녀 자신이 울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
을 아니까. 얼마간 흐느낌이 지속 되었다. 그러다가 입술을 뗀다.
“왜…왜…난…사랑했는데……”
울음과 섞여있었지만 단어만은 정확하게 이들의 귓속에 맴돌았다. 남자에게서 느껴진 것은 원한, 증오…라기 보다
는 슬픔이었다. 자신을 죽게 만든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이 강해 떠나지 못한다…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현
아는 가까이 다가갔다.
“당신을 죽인 사람이 있어요…?”
조심스럽게, 아주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설령 말을 잘 못해서 화가 되면 골치 아프게 될 거라는 생각에. 남자
(다영)는 고개를 들고 이들과 눈을 마주쳐 한참을 주시하다가 다시 말을 이어갔다.
“……여자친구…”
“왜죠…?”
마지막 물음에 대답을 하지 않고 고개를 내젓는다. 현아는 조금이라도 동정의 표시를 했으나 우현은 달랐다. 오히
려 이런 쪽에는 전혀 관심 없다는 것 마냥, 인상을 찌푸리고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은 채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래서, 복수하기를 원하는 거냐?”
[아니…]
“왜죠? 왜…? 여자 친구가 당신을 죽였는데…?”
현아가 이해가 안 된다는 말투로 묻자, 쓸쓸한 미소를 보인다.
“…사랑…하니까. 사랑하니까……날 죽였어도 미워할 수 없는 거야.”
진심으로 말하는 것처럼 느껴져, 감동을 받은 듯 한 현아와는 달리 여전히 무표정인 우현.
“귀신 주제에 꼴값을 떨어요, 아주.”
속에서만 얘기를 해도 맞을 말을 대놓고 말해 현아에게 맞을 기회를 받고 말았다. ‘짝’소리가 무슨 얼굴을 때렸
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세게 팔을 강타한다. 우현이 인상을 찌푸리며 팔을 매만졌고 그런 그가 어떻게 자
신을 쳐다보던 싹 무시하고 남자(다영)에게로 다시 시선을 돌리는 현아다.
“그래서요…? 우리에게 원하는 것이 있어요? 말 해봐요. 도와줄 수 있는 건 모든 도와줄 테니까.”
그 누구한테도 동의를 구하지 않고 혼자서 약속한다. 그에 반발이라도 하려는 우현이지만 현아의 후한이 겁이 나
입을 싹 다물었다. 남자는 한참을 망설이다 현아를 믿어보기로 했는지 살짝 고개를 끄덕인다.
“여자 친구를…보고 싶어… 한 번만이라도… 그녀만 보면 난 이곳에 여한 따위는 없어.”
“어디 있는지 알아요?”
“아니……”
마지막 말에 끝을 흐리는 남자. 우현이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럼 어쩌자는 건데? 어디 있는지도 모르면서 뭘 바라는 거냐고.”
“그치만… 이사 간다고 했었는걸… 아마 지금 해쯤이면 이사 갔을 거야…”
“그럼 어디로 이사 갔는지 알아요? 대충이라도.”
현아가 물었다. 남자는 잠시 동안 생각 하더니 고개를 끄덕이고 말을 잇는다.
“여기서 가까운 골목으로 가면 501-3번지가 나와. 아마… 거기라고 했었던 것 같은데…”
확신을 하지 못해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 그래도 별 수 없지 않은가. 일단은 기억나는 곳이라도 가서 물어보는
수밖에. 우현이 한숨을 내쉬고 몸을 돌려 발걸음을 뗐다. “어디 가냐”는 현아의 말에 당연하다는 말투로 대답한
다.
“501-3번지. 도와준다면서? 올 거면 빨리 와라. 장다영 계속 그렇게 빙의 된 채로 놔두면 나중엔 못 버틴다.”
어쨌든 도와주기로 했던 말에 동의는 하나보다. 이렇게 투덜거리면서 따르는 걸 보면. 현아과 남자가 수긍하고 그
를 따라 나가려 했다. 우현은 내부를 빠져나가려고 하기 전, 쓰러져 있는 여학생들에게 뭔가를 중얼거리곤 조금은
큰 종이를 옆에 놓고 빠져나간다. 그가 놓고 간 종이에는… [영수증]이라는 단어가 시선을 집중시켰다가 단 번에
웃게 만들었다.
모든 것을 뒤로하고 폐건물을 빠져 나왔다. 물론 그 즉시 넓은 거리로 나간다. 거리 옆에 자리 잡고 있는 가로등
과 여러 집들. 집들은 몇몇 말고는 불이 꺼져있었고 가로등만이 거리를 나름 환하게 밝히고 있었다. 가로등 불빛
으로 보이는 집 앞 글자들을 하나하나 유심히 보면서 걸어간다. 꽤나 걸었을 것이다. 501-2번지까지 걸어온 상태.
이제 한 골목만 더 돌면 되겠다는 생각으로 걸음을 빨리 하려는데 남자(다영)가 멈칫한다. 우현과 현아가 그를 돌
아보자 남자는 떨려오는 몸을 애써 붙잡고 어느 한 곳을 가리킨다.
“지…아야…”
여자이름처럼 들리는 이름을 부르더니 또 다시 눈물을 흘린다. 우현이 그를 재촉했다.
“어디.”
“방금…오른쪽 골목으로…”
“빨리 따라와.”
먼저 말하고는 뛰어간다. 혹시나 놓치지는 않을까 빠른 속도로 뛰었다. 막 오른쪽으로 돌려는 순간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자가 눈에 들어왔다. 우현은 곧바로 그녀에게 달려갔다. 갑작스런 그의 등장에 적잖게 놀란 여자. 그러
거나 말거나 말을 건다.
“지아… 라는 이름을 가진 분이 맞습니까?”
“네, 네? 제 이름을 어떻게…?”
지아가 얼떨결에 되물었다. 대답을 듣지는 못했지만. 우현이 이름을 물어 시간을 끄는 동안 현아와 남자가 뒤에
다가왔다. 역시나 남자는 말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몸을 떨었고 현아는 그런 그를 안쓰럽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이
상황을 알 리 없는 지아는 잠시 의아하게 보다가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누구세요? 어떻게 절 아시는 거죠?”
“지아야…”
“누구세요?”
아무리 남자가 이름을 불러도 겉모습은 다영이니 이상하게 생각 할 뿐이었다. 우현은 다영의 등을 살짝 치고 중얼
거렸다.
“강빙해제.”
그와 동시에 실제 몸과 영혼이 분리 된다. 그대로 가야한다. 남자가 이들에게 부탁한 것은 한 번만이라도 보게 해
달라는 것뿐이었으니까. 애써, 겨우 만난 사람이지만 이대로 가야한다. 사랑하는 사람. 지아를 이승에 둔 채….
상당히 슬퍼하는 얼굴로 가득한 남자를 주시하던 현아는 계속 안쓰럽게 보다가 남자에게 제안을 한다.
“딱 한번… 정확하게 5분만 얘기 할 시간을 드릴게요. 그 대신, 죽어서 다시 환생할 때에 당신은 이와 같은 상황
에 또 부딪히게 될 거예요. 그래도 괜찮겠어요?”
남자는 그런 말을 기다렸다는 듯 조금도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지아는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아 의아하기
만 했다. 현아가 그에 수긍하여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 구슬을 손에 들고 무언가를 외웠다. 그러자 구슬에서 빛이
일고 남자를 감쌌다. 몇 분 지나지도 않았다. 무슨 이유엔지… 지아가 놀라는 얼굴로 남자에게 시선을 고정시켰고
남자는 잠시 당황하다가 지아를 쳐다보았다.
“지아야…”
“이, 이게 무슨… 어, 어떻게?”
당황했는지 말을 더듬거린다. 그러나 곧 미안함이 가득한 눈으로 바라본다. 남자가 조심스레 말을 걸었다.
“왜…왜 날…죽인 거야…”
“주, 준혁아…”
말끝을 흐린다. 미안함이 너무 커, 눈물을 흘린다. 준혁을 똑바로 쳐다보지를 못 할 것만 같았다. 너무 미안해서.
자신이 잘 못했다는 생각에. 주저앉아 흐느낀다. 그런 그녀를 말없이 안아주는 준혁이다. 이유야 어찌 되었건, 자
신을 어떤 이유에서 죽게 만들었건, 후회를 하고 있으니까. 그런 얘기인 즉, 아직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고 있다는
뜻이 될 수 있으니까. 준혁은 그것만으로도 족했다. 이유? 그 때 자신을 미워해서 밀었건 어쨌건 상관없었다. 현
재 지아가 자신을 위해서 울고 있다는 것 하나에 만족했다.
울음이 섞인 목소리로 말을 이어간다.
“미안해…정말…나, 난…널 너무 사랑해서…그래서…다른 여자 후배들과 같이 있는 것 자체가 너무 싫었어…너무
싫어서…내 옆에 항상 두고 싶었어…정말…정말 미안해 준혁아…”
준혁이 다행이라는 미소를 보인다.
“아니…아니야…난 언제나 너 하나 였어…영원히 함께 할 사람도 너였고…. 그 누구도 내 마음속에 들어 올 자리
는 없었어…나를 사랑해주는 너만 있으면 족했으니까…너만 있으면 난 행복했으니까…아직도…널 사랑하니까.”
그의 어조는 증오, 원한. 이런 것이 아니었다. ‘행복, 안심’이었다. 자신을 죽인 이유가 자신을 미워해서가 아
니니까. 자신을 사랑해서 그런 거니까. 기분 나빠하기는커녕 오히려 기뻐하는 어조였다. 준혁은 울고 있는 지아를
안아준 뒤 일어섰다.
현아가 겨우겨우 버티고 있었고, 이제는 한계에 다다랐기 때문이었다. 준혁이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연기가 되
어. 검은 연기가 아닌… 맑은… 밝은 기를 띠고 있는 연기가 되어… 구슬 안으로 들어가려 한다. 깜짝 놀란 지아
와 눈이 마주치자 미소를 지었다.
“잘 있어라…지아야.”
스으……
사라졌다. 영원히 함께 일 것만 같았던 그가 사라졌다. 이제는 없다. 다시는 볼 수 없다… 그렇게 생각하니 눈물
이 멈추질 않는다. 하염없이 흐르기만 한다. 닦을 용기조차 나질 않는다. 이름조차 다시 부를 수가 없다. 불러도
들리지 않을 테니까….
모든 상황이 종료된 현재. 현아가 거친 숨을 내쉬며 다영과 지아를 일으켰다. 서로가 그리 기분이 좋지 않는 상
태. 우현이 발걸음을 돌려 혼자서 걸어간다. 단 한마디를 지아에게 남기고.
“거기 남친 잃은 누나. 이제 그 놈 말고 딴 놈 찾아요. 그게 그녀석도 원하는 것일 테니까. 누나가 행복하게 되
는 것을.”
가로등 불빛이 환한 밤거리. 그 사이를 유유히 지나 어둠 속으로, 시야에서 사라지는 우현이다. 모두가 슬픈 현재
지만 하늘만큼은 맑은 날이었다.
★
언젠가 한 번쯤 써보고 싶었던 소설을 10번 이상의 수정을 거쳐 이곳에 드디어 올리게 되었네요.
오타 수정요청은 쪽지로 주시구요.
충고는 받지만 욕은 정중히 사절할게요.
조금의 도용은....저한테 심심치 않게 욕 들어야 하구요.
쪽지를 원하시면 ★를 앞에 붙여주세요.
[으음.......첫 편이라서 조금 진지하죠? 하지만..중간중간..으로 가다보면 코믹<-이라는 건가..무튼
코믹퓨전판타지소설이라는 걸 느끼시게 해드리겠스므니다. 이번 편의 결론,
사랑하면 둘 중 누군가가 슬퍼진다...그러니까 사랑을 하지 말자??<-어라?]
삭제된 댓글 입니다.
에..에??;;; 줄이 사방으로 보이시나요? ..... 저..전...안 보이는데..쿨럭, 죄송합니다. 다음편에서는 수정해서 올게요.ㅜ 봐주셔서 감사해요^^*†고딩퇴마사part.1†
흠.. 괜찮구나. 멋져. 다음편 기대하마 ^^ (충고 하자면.. 퓨전 판타지 = 무협 + 판타지)
쿨럭... 부, 분량이..... 나눠 올리지 그랬어...
쳇, 그럼 멀로 바꾸라는 거야..ㅜ 그냥 판타지??다른 분들도 퇴마소설...퓨전판타지로하셨는데!? 할 게 없어..ㅜ_ㅜ/ †고딩퇴마사part.1†
어! 나의 생명의 은인이신 세상의선물님이 소설을 연재하시는군요! 정성스레 읽고가도록하겠습니다!
로제(?)...<맞나..)님이시군요! 그냥 그렇게 부르겠습니다! 쿨럭...감사합니다.ㅜ†고딩퇴마사part.1†
노래 좋아요♡ 개인적으로 클래식을 무지 사랑하는데. 내용 좋네요~퇴마하는 내용? ㅎㅎ
저도 클래식 좋아한답니다.ㅎㅎ 퇴마..네! 퇴마소설이에요!†고딩퇴마사part.1†
우와 재밌어요! 줄때메 잘안보여요...ㅠ 아 전 왠지 현아가 맘에 드는걸요?0_0
에헤..그런가요? ....줄...바꿨어요..ㅜ_ㅜ 무튼 감사합니다! †고딩퇴마사part.1†
아 좋아...!!!!! 오랜만에 읽는듯...
뭐냐..;;너였냐;
나 너무 늦게 왔네 ^-^ ㅋㅋㅋ
에이에이...<-와주다니이...덜덜;;;<-†고딩퇴마사part.1†
오 님아굿 짱 재미있음... 요즘 퇴마 하는거 랑 그런거 거이 못봐서 너무 시시해서 판타지 접을까 했는데 ㅠ.ㅠ 님덕분에 다시 보네요 ㅠ.ㅠ ㄳㄳ 님아ㄳ 이 소설 대박임 ㅠ.ㅠ
..ㅜ...혹시나 해서 와봤는데....댓글이라니..허.헉...여..열심히 하겠습니다..!!! 칭찬..감사해요.ㅜ..판타지..접지마세요!!재밌는데요..하하..;;뭐...<-†고딩퇴마사part.1†
삭제된 댓글 입니다.
허.........헉, 글 대빵 잘 쓰는 .....판타지소설방에서 존경하는 리브언니....!!! 아아악!! 너무 오랜만이에요.ㅜㅜ 그동안 잘 지냈지요?!....난 여전히 언니가 부럽다구요..ㅜㅜ†고딩퇴마사part.1†
시간나면 봐야지.. 시간나면 봐야지.. 하다가 이제서야 보네요..'-';; 재밌게 잘봤어요!! 후후.. 이제부터 시작해서 언제 #6을 갈까요..? 후후..
하하..........ㅇㅕㄹ심히.....................해보셔요!!!!!!!!!!(화이팅!)<-†고딩퇴마사part.1†
역시 재미있어.
.....................뭐, 그러거나 말거.나...............<-풉.†고딩퇴마사part.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