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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숙씨가 1922년 발표된 이 노래의 사연을 들려준다.
"박태준 선생이 계성학교를 다니던 시절에 사모했던 소녀는 신명학교 여학생이었답니다. 마산에서 음악교사로 근무할 당시 국어 교사였던 이은상 선생에게 짝사랑을 고백했다죠? 그 사연을 듣고 이은상 선생이 가사를 즉석에서 써줬답니다. 청라언덕이 이곳 동산언덕이고 백합은 그 신명학교 여학생이었죠."
아닌 게 아니라 스위츠선교사주택의 담장만 보더라도 푸른 담쟁이덩굴로 뒤덮여 있으니 동산언덕의 또 다른 이름이 푸를 청(靑), 담쟁이 라(蘿) 자를 써서 청라언덕인 것은 결코 어색하지 않다.
동무생각을 콧노래로 부르며 3·1운동길, 90계단을 차례로 지난다. 계성학교, 신명학교, 성서학당, 대구고보 학생들은 청라언덕 솔밭에 모여 3·1운동을 벌였고 오늘날 그 길에는 독립유공자 명패가 모셔져 있다. 90계단 벽에는 대구의 과거 모습을 담은 사진들이 걸려 있어 걸음의 속도를 늦추어준다.
계단을 다 내려와 큰길을 건너면 계산성당에 닿는다. 두 개의 뾰족탑이 돋보이는 대구 최초의 서양식 건물 계산성당은 고 박정희 대통령과 고 육영수 여사가 결혼식을 올린 곳이다. 그 당시 주례를 맡은 허억 초대 대구시장이 '신랑 육영수군과 신부 박정희양은…'이라고 신랑신부를 소개해서 성당 안이 웃음바다가 됐다는 이야기는 유명한 일화이다. 계산성당은 고 김수환 추기경이 사제 서품을 받은 곳이며 1984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방문한 곳이기도 하다.
성당 남쪽 마당에서 자라는 감나무인 '이인성나무'와 도로 바닥에 새겨진 이상화의 시, 태극기이상화서상돈선생 벽화 등을 차례로 감상하고 나자 발걸음은 이상화서상돈고택으로 이어진다. 현재의 대구은행 북성로 지점 뒤편에서 태어난 이상화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라는 애국 애족의 저항시를 남긴 시인. 단층 목조 기와로 지어진 현재의 집에서 이상화 시인은 1939년부터 1943년 작고할 때까지 거주했다.
이상화 고택 옆에는 서상돈 고택이 남아있다. 본채, 별채, 사랑채, 대문채로 구성되어 있다. 서상돈은 1906년 대한제국정부가 1300만원이라는 거액의 빚을 일본으로부터 빌려 쓰면서 빚더미에 올라앉게 되자 이를 갚지 못하면 나라가 망한다며 1907년 국채보상운동을 발의한 민족운동가이다. 근대로 걷기 여행 중에 방문하게 되는 두 위인의 고택은 건축미를 보여주기보다는 민족정신을 일깨워주는 곳이니 나들이객들의 정신은 한층 차분해진다.
이제 근대로 걷기 여행은 막바지를 향해 치닫는다. 이영숙 해설사는 일명 과거길이라고도 불렸던 영남대로를 걷게 하고 약령시한의약문화관에도 데려간 다음 좁은 골목길로 안내한다. 소설가 김원일의 '마당 깊은 집'의 무대였던 담벼락에 그려진 그림을 보여주기 위함이다. 벽화에서는 한 소년이 방문을 열고 화장을 진하게 한 두 명의 기생을 바라보고 있다. 그 소년은 다름 아닌 소설가 김원일이다.
'마당 깊은 집'에도 등장하는 정소아과건물까지 보고난 뒤 근대로 여행의 대미는 진골목에 위치한 미도다방(053-252-9999)으로 들어가 2,000원짜리 약차를 한 잔 마시는 것으로 맺는다. 모시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미도다방 마담 정인숙씨가 손님들을 반가이 맞이한다. 27살 때 다방 주인이 돼 33년간 그 자리를 지켜오고 있다. 진골목을 오가는 모든 이들의 연인이기도 한 정인숙씨는 미도봉사회를 만들어 독거노인을 돕고 학생들에게 장학금도 주는 봉사활동도 열심히 펼친다.
◆대구광역시 중구 골목투어=매월 2·4주 토요일, 3주 목요일 오전 10∼12시, 하절기(7·8월)와 동절기(1·2월)에는 쉼. 그러나 10명 이상 단체로 신청하면 가능. 참가비 무료. 중구청 문화관광과 053-661-2194.
◆맛집=대청마루(국밥 5000원, 053-431-1818), 한빛고을(시래기정식 5000원, 053-425-6660)
첫댓글 시간 내어 꼭 한번 가 보곺은 곳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