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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장 진회하
매하
매하는 소호의 서북쪽에 위치한 작고 아름다운 마을이었다.
마을 전체가 매화에 뒤덮여 한겨울이면 매화 향기가 가득하고 하얀
매화꽃이 만발해 일대 절경을 이루고 있었다.
저녁 무렵.
매하의 마을 입구에 절세의 풍모를 지닌 두 남녀가 나타났다.
그들은 바로 강옥봉과 조옥환이었다.
강옥봉은 인피면구가 찢어졌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자신의 진면목을
드러내고 있었다. 군계일학 같은 그들의 뛰어난 용모는 지
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고, 강옥봉의 영준한 외모와 굳건한 기
상은 뭇사람들의 호팜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한데 그들이 매하로 막 들어설 즈음이었다.
돌연 한 명의 절름발이 늙은 거지가 앞을 가로막으며 구걸을 청했다.
"나으리, 한푼 줍쇼. 이 늙은 것이 배가 고파 죽을 지경입니다."
강옥봉은 무심코 은전 한 닢을 꺼내 늙은 거지의 손에 쥐여 주다가
그의 손에 똘똘 말은 종이가 있음을 발견하고 눈을 빛냈다.
그러자 늙은 거지가 은전을 받는 척하며 눈짓을 해보여 강옥봉은 총
망간에 종이 쪽지를 집어 들었다
"나으리, 고맙습니다. 복 많이 받으십시오."
늙은 거지는 은전을 받아 쥐고 몇 번이나 허리를 굽신거린 뒤 총총히
발길을 돌렸다.
조옥환이 미간을 찌푸리며 속삭이듯 물어 왔다.
"저 늙은 거지는 소협의 동도예요?"
"글쎄, 나는 저 사람을 모르오."
잠시 후 성안으로 들어간 두 사람은 어느 인적이 드문 골목으로 접어
들어 종이를 펼쳐 보니 다음과 같은 내용의 글이 쓰여 있었다.
<냉상아는 원래 성심장주가 총애하는 여인으로 성격이 오
만하고 자신의 무공에 대한 긍지가 대단한데, 이번에 자네에게 낭
패를 당해 크게 낙담하고 운하를 통해 금룽으로 가고 있네.
한데 그 뒤를 음적양과 도중웅이 은밀하게 뒤쫓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들도 냉상아가 성심장의 주요 인물이라는 것을 눈치채고 그녀를
사로잡아 성심장의 비밀을 알아 내려는 속셈인 듯하네.
만일 냉상아가 그들의 수중에 들어간다면 자칫 호랑이에게 날개를
달아 주는 격이 될지 모르니 자네가 어서 금릉으로 가서 은밀히 그
녀를 지켜보고 있다가 위기에 처하게 되면 구해 주도록 하게.
자네가 그녀를 잘만 이용한다면 우리는 의외의 소득을 얻을 수 있을
지도 모르네. 자네의 건투를 빌겠네.
치수재 악궁.>
편지를 다 읽고 난 강옥봉은 얼굴을 굳히며 조옥환을 돌아보았다.
"아무래도 낭자와는 이쯤에서 헤어져야 할 것 같소."
조옥환은 어리등절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공자는 왜 저와 헤어지려고만 하세요?"
강옥봉은 길게 한숨을 쉬었다.
"이번에 금릉으로 가는 길은 비단 흉험할 뿐 아니라 시간이 얼마나
소요될지 모르오. 그런데 낭자는 아직 유령천자의 무공을 익히지 못
한 상태요. 그러니 더 이상 나와 함께 동행하다가는 오히려 낭자가
복수하는 데 방해가 될지 모르오. 낭자는 우선 안전한 곳으로 가서
유령천자의 무공을 완벽하게 익히시오. 그 다음에 강호에 나와 다시
만납시다."
조옥환은 그의 말을 듣고 입술을 꼬옥 깨물었다.
그녀는 정말 강옥봉과 헤어지는 것이 죽기보다 싫었다.
하나, 강옥봉의 말대로 그녀에게는 꼭 갚아야 할 피빛이 있지 않은
가?
아직 무공을 완벽하게 터득하지 못한 상태로 그를 따라다닌다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것을 그녀는 냉상아를 만난 이후 절실하게 깨닫고 있었
다. 또한 이런 상태로는 복수하기가 불가능하다는 것도 그녀는 잘 알
고 있었다.
그녀가 입술을 잘근잘근 깨문 채 상념에 잠겨 있자 강옥봉은 탄식을
토했다.
"낭자, 그럼 다음에 다시 만납시다."
조옥환이 깜짝 놀라며 쳐다보았을 때는 그는 이미 수십 장 밖으로 달
려나가고 있었다.
그녀는 눈시울을 붉히며 슬픔을 억제하지 못하고 눈물을 주르르 흘렸
다.
심신을 사로잡는 좌절감…… 은연중에 한껏 부풀어올랐던 기대가 일
시에 산산조각나자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 같았다.
조옥환이 슬픔에 잠겨 있을 때 귀에 익은 음성이 바람을 타고 바람을
타고 들려 왔다.
"옥환아!"
조옥환이 깜짝 놀라 급히 옷소매로 눈물을 훔치고 돌아보니 조금 전
에 강옥봉에게 종이 쪽지를 전해 주었던 늙은 거지가 삼 장밖에 홀
연히 서 있었다.
"아니, 노인장께서는……?"
늙은 거지는 히죽 웃더니 얼굴에서 한 장의 인피면구를 벗겨 내었다.
그 아래 나오는 얼굴을 보자 그녀의 눈에서 기쁨에 찬 빛이 흘러나왔
다.
"어머, 방 백부님!"
드러난 얼굴은 바로 강호제일의 경공 대가인 천리일순 방각이었다.
원래 방각은 조옥환의 선부인 신수검객 조비홍과
절친한 사이로 그녀가 어렸을 때부터 각별히 귀여워해 준 사람이었
다.
나루터의 주루에서 젓가락을 두들겨 신호를 보냈던 이도 바로 방각이
었다.
방각은 조옥환 앞으로 다가섰다.
"네가 강 소협과 함께 유령동부로 들어갔다는 말을 듣고 크게 걱정했
었다. 다행히 기연을 얻어 유령천자의 비급을 구한 모양이구나."
"예, 그분의 도움으로 간신히……"
그녀는 또다시 격한 감정이 들어 말을 맺지 못했다.
방각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커다란 탄식을 토해 냈다.
"아…… 네 아버지가 마화도인에게 살해당했다는 소식을 듣고도 노부
는 무공이 미약해 복수할 생각을 하지 못했는데, 이제 네가 유령천자
의 무공을 얻었다니 이 백부는 네가 정말 자랑스럽구나. 이게 모두
지하에 계신 네 아버지의 영혼이 너를 굽어살핀 덕이 아니겠느냐!"
조옥환은 눈물을 흘린 채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측은한 눈으로 그녀를 보고 있던 방각이 돌연 정색을 했다.
"이 백부가 네게 한 가지 묻고 싶은 것이 있는데 대답해 주겠느냐?"
조옥환은 눈물을 그치고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말씀해 보세요."
"너 혹시 강 소협을 사랑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
조옥환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지난날의 추억을 더듬었다.
부친이 살아 계실 적에는 한 지역을 장악하는 권세를 떨쳤기 때문에
그녀의 뛰어난 미모와 권세에 반해 구애를 해온 영준한 사나이
들은 이루 혜아릴 수 없을 정도였으나 그녀는 눈도 돌리지 않았었다.
한데 무뚝뚝하기만 한 강옥봉에겐 왠지 정신없이 빠져 드는 것이다.
방각은 조옥환을 어렸을 때부터 쭉 보아 와서 그녀의 성품을 잘 아는
지라 한동안 말이 없다가 긴 한숨을 지었다.
"네가 강 소협에게 정을 품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강 소협은 인품과
기질이 비범해서 당금 천하에서 제일가는 기재라 할 만하지.
이 백부가 보건대 강 소협은 무정한 사람이 아니지만 두 어깨에 너무
도 막중한 임무를 떠받치고 있는지라 남녀의 애정을 일부러 외면하는
것이다. 하지만 언젠가는 그도 너의 깊은 정을 받아들일 것이다."
"……"
조옥환은 자신도 모르게 처량한 생각이 들어 고개를 푹 떨구었다.
방각은 그녀의 어깨를 다독거려 주었다.
"자! 힘을 내거라. 네게는 갚아야 할 원한이 있지 않느냐? 강 소협의
말대로 우선은 네가 유령천자의 무공을 익히는 게 급선무다. 나중의
일은 이 백부가 최선을 다해 성사시켜 주마."
조옥환은 묵묵히 그를 따라 걸어갔다.
곧 두 사람의 모습은 어두워 오는 밤 그림자 사이로 사라져 버렸다.
* * *
어느덧 봄이 가까워졌다.
드넓은 평원 저편에서 아지랑이가 가물가물 피어오르고 만산에
는 푸르름이 숲을 이루고 싱그러운 풀 내음은 바람을 타고 상쾌하게
풍겨오고 있었다.
금릉성!
휘휘 늘어진 버들가지 사이로 손에 손을 맞잡은 다정스런 연인
들이 쌍쌍이 거닐며 밀어를 속삭이는, 바야흐로 완연한 봄날이
었다.
강남의 고도, 금릉에도 봄의 그림자는 어느새 짙은 나래
를 펴고 있었다.
금릉의 옛 이름은 강녕이었다. 옛날 초나라의 도읍이었고,
삼국 정림 시대에는 오나라의 수도로 건업이라 불렀다. 또
한 동진 이후에는 남조의 수도로서 건강이라고도
불렸다.
그 후 많은 변천을 거쳐 명나라 초기의 제도가 되었으나 영락제가 도
읍을 북평으로 옮기고부터 이 지방을 남경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이곳은 예로부터 명승지가 많았고, 웅장한 육조 시대의 고루거
각들이 곳곳에 늘어서 있었다.
금릉성 안에서 가장 번화한 곳에 위치한 부자묘는 사방에서
대낮같이 밝혀진 불빛에 의해 더욱 돋보였다. 성내는 상점과 객점들
이 줄을 이었고, 삼교구류 등 어중이떠중이들이 와글거렸
다.
이곳에서 멀지 않은 곳에 그 유명한 진회하가 있다.
진회하는 천하제일의 홍등가로 그 명성이 널리 알려졌을 뿐
만 아니라 부근에 명승 고적이 많기 때문에 사시사철 유객들로
붐비고 있었다.
강에는 어선과 화방들이 휘황한 등불을 밤새도록 켜놓
고 있었으며 화방 안에는 풍악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그런데 많은 화방들 중에서도 제법 멋지게 보이는 한 척의 배가 하류
를 따라 미끄러져 내려가고 있었다.
그 배가 저쪽 언덕에 가까워지자 돌연 안에서 고운 목소리가 들려 왔
다.
"이제 다 왔군요."
그러자 뱃머리에 백발이 성성한 노파가 나오더니 닻을 내리고 언덕
위로 뛰어내렸다. 노파는 언덕 위에 있는 몇 채의 작은 청루
중에서 제일 옆에 있는 청루 앞으로 가더니 싸리문을 가볍게 열었다.
그 노파의 뒤를 이어 화방 안에서 냉상아와 검을 맨 소녀 셋이 급히
나오더니 언덕 위의 노파가 열어 놓은 청루 안으로 급히 들어갔다.
냉상아는 아담하고 작은 대청 안으로 들어가 노파에게 말했다.
"화방 안에서 반나절이나 시달렸더니 너무 피로하군요. 아…… 잠이
나 자야지."
노파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가씨는 매우 시장하실 테니 내가 음식을 준비하지요."
그러나 냉상아는 손을 저었다.
"아직 배가 고프지 않아요. 그보다. 혹시라도 다른 사람들에게 이곳
이 발각되면 큰일이니 신중하게 행동해야 해요."
노파는 그녀의 걱정스러워하는 표정을 살폈다.
"아가씨의 무공은 이장주님에게 직접 전수받아 당금 무림에
서는 적수를 찾아보기 어려운데 왜 남을 무서워하치요?"
냉상아는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저었다.
"그런 말씀하지 마세요. 혜산에서 만났던 무영신룡단혼도의 무공은
정말 무서웠어요. 그래서 나는 일시적인 자비심 때문에 그에게 선수
를 당하여 소맷자락이 찢어지기까지 했어요."
노파는 의아스런 표정을 지었다.
"평소 아가씨의 솜씨는 악랄하고 냉정한데 왜 그자에게는 자비심을
베풀었나요?"
그러나 냉상아는 서릿발같이 싸늘한 표정을 지을 뿐 아무런 대꾸도
없었다.
노파는 자신이 말을 잘못했다고 생각하며 즉시 화제를 돌렸다.
"이곳은 아주 은밀하고 안전하니 아가씨께서 마음 푹 놓으시고 편안
히 쉬세요."
순간, 어둠 속에서 음침한 음성이 들렸다.
"흐흐…… 그렇게는 못 할걸. 본 방은 이미 이곳이 성심장의 금릉분
타임을 알고 있었소."
그와 함께 몇 명의 인물이 대청 안으로 날아 들어왔다.
그들의 선두에 서 있는 인물은 바로 음양공자 음적양과 금시조 도중
웅이었다.
눈치가 빠른 냉상아는 이내 그들이 자신의 뒤를 밟아 왔음을 깨닫고
벌떡 일어나며 싸늘하게 소리쳤다.
"음적양! 내가 특별히 인정을 베풀어 혜산에서 살려 주었는데, 어찌
무서운 줄도 모르고 내 뒤를 따라 이곳까지 나타났단 말이냐?"
음적양이 입가에 음산한 미소를 떠올렸다.
"흐흐흐! 낭자가 화를 내는 모습은 더욱 아름답구려. 이 음 모
는 한번 당한 빛은 꼭 갚고야 마는 성미요. 그래서 오늘은 낭자
의 야들야들한 몸을 안는 것으로 그 빛을 갚으려 하는데 낭자의 의향
은 어떻소?"
도중웅이 옆에서 피식피식 웃으며 이죽거렸다.
"흐흐흐! 부총호법은 냉 낭자를 보더니 마음이 흔들리는 모양이구
려."
음적양도 미소를 지으며 대꾸했다.
"이렇게 예쁘고 아리따운 낭자에게 차마 살수를 쓸 수는 없지
않겠소? 흐흐흐……"
냉상아는 얼굴에 무서운 살기를 띠고 사납게 쏘아보고 있다가 냉소를
쳤다.
"이제 보니 네놈은 비겁할 뿐 아니라 흉악하기 그지없는 음적
이로구나, 네놈은 필시 지금까지 많은 선량한 아녀자들을 욕보였을
테니 오늘 본 낭자가 네놈을 죽임으로써 강호여인들을 위
해 후환을 거해 버리겠다."
동시에 그녀는 허리춤에서 연검을 뽑아 들고 음적양을 향해 날아들었
다.
음적양은 비록 입으로는 농담을 걸고 있었으나 그녀의 무공이 결코
자신의 아래가 아님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마음속으로 이미 단단히
대비를 하고 있었다.
그는 즉시 허공으로 몸을 솟구쳐 그녀의 매서운 일격을 피한후 대소
를 터뜨리며 쌍장을 휘둘렀다.
"하하하! 낭자가 이렇게 급히 내게 안기고 싶어하는 줄은 몰랐소. 어
서 오시오! 잠시 후에 우리 한번 신나게 즐겨 봅시다."
냉상아가 비록 성격이 차갑고 무정하다고는 하나 그래도 엄연한 여인
이었다. 어찌 음적양의 이와 같은 음탕한 말을 듣고 얼굴이 붉어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녀는 불같이 노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더욱 사납게 검을 휘둘렀
다.
팍! 팍! 팍!
날카로운 검기가 질풍처럼 장내를 휩쓸고 지나갔다.
하나 음적양은 비호처럼 몸을 날리며 그녀의 공세를 피해 갔다.
한편 노파와 세 명의 소녀들도 일제히 도중웅과 회서방의 고수들에게
맹렬히 덮쳐 갔다.
노파는 철장을 휘두르며 도중웅의 머리통을 향해 내리쳤다.
"이놈!"
도중웅은 버럭 폭잘을 터뜨리며 슬쩍 철장을 피한 후 번개같은 일권
을 내갈겼다.
쾅!
폭음이 터지며 노파의 몸이 뒤로 주르르 밀려났다. 그녀의 얼굴을 백
지장처럼 핼쑥해진 채 매서웠던 안광도 급격히 흐려져 있었다.
단 한 주먹에 심각한 내상을 입은 것이다.
도중웅은 단번에 노파를 격상시킨 후 허공으로 번개같이 몸을 날려
세 소녀에게 덮쳐 들었다.
가히 금시조라는 이름이 부끄럽지 않은, 신묘한 몸놀림이었다.
세 명의 소녀는 막 회서방의 고수들을 향해 검을 휘두르다가 등뒤에
서 매서운 경력이 밀어닥치는 것을 알고 깜짝 놀라 급히 몸을 돌렸으
나 이미 때는 늦어 있었다.
파파팍!
도중웅의 양손이 번개같이 움직이며 세 소녀의 혈도를 짚자 그녀들은
신음도 내지르지 못한 채 그대로 바닥에 쓰러져 버렸다.
과연 회서방의 삼호 온서에 부끄럽지 않은 절묘한 무공이었다.
음적양을 공격하면서도 한쪽으로 주위를 둘러보고 있던 냉상아는 눈
깜박할 사이에 노파와 세 명의 소녀가 도중웅에 의해 쓰러져 버리자
절로 다급한 마음이 들었다. 게다가 음적양은 어찌 된 일인지 반격은
하지 않고 피하기만 하며 연신 음담패설을 지껄이고 있었다.
"흐흐…… 낭자의 탱탱한 젖가슴은 그야말로 일품이구려 보기만 해도
이렇게 침이 넘어가니 실제로 맛을 보면 얼마나 황홀하겠소?"
"죽일놈……!"
냉상아는 이를 부드득 갈며 더욱 맹렬하게 검을 휘둘렀다.
파파파팍!
이미 대청 안은 그녀가 내뿜는 검기에 의해 산산이 부서져 있었다.
음적양 또한 그녀의 검세를 막기가 점점 힘들어졌다.
하나 그는 음양수를 살지 않은 채 연신 몸을 날려 피하며 기회를 엿
보았다.
마침내 기다리던 기회가 왔다. 도중웅이 쓰러진 세 소녀에게 다가가자
음적양을 공격하고 있던 냉상아의 눈이 아주 잠깐 그쪽으로 돌려졌던
것이다.
그 순간은 가히 눈 한 번 깜짝할 사이도 되지 않았으나 음적양 같은
절세고수에게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음적양은 즉시 그녀에게 덮쳐 들며 오른쪽 소매를 세차게 흔들었다.
쾌쾌쾌!
무언가 시커먼 광채가 허공을 잔뜩 뒤덮으펴 냉상아의 전신을 향해
퍼부어졌다.
냉상아는 깜짝 놀라 급히 엄밀한 검세를 휘둘러 그 광채들을 막았다.
차차창!
날카로운 파공음과 함께 광채의 태반은 그녀의 검기에 막혀 사방으로
튕겨져 나갔다.
하나 그 중 몇 가닥은 그녀의 검세를 뚫고 여지없이 다리 쪽에 격중
되고 말았다.
"음……"
그녀의 얼굴이 살짝 찡그려지며 교구가 휘청거렸다.
그제서야 음적양은 득의 양양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향해 날아왔다.
"하하하…… 낭자는 이미 절명탈혼사에 격중되었으니 함부로 몸을 움직
인다면 그대로 즉사할 것이오. 그러니 순순히 내 품에 안기시오."
이어 그는 비틀거리며 서 있는 그녀의 완맥을 움켜쥐려 했다.
그때 돌연 그녀가 두 손으로 힘겹게 검을 움켜잡으며 느릿느릿 가슴
팍으로 옳겨 세웠다. 그와 한께 두 눈을 사르르 감으며 무언가 중얼
거리자 그녀의 검에서 붉은 노을이 아로새겨지는 것이 아닌가?
막 그녀의 손목을 잡아채려던 음적양은 노을빛으로 물들어 가는 그녀
의 검을 보자 대경 실색하며 있는 힘껏 뒤로 물러났다.
"나…… 낙일검이다!"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담장 밖으로 날아가 버렸다.
도중웅을 비롯한 회서방의 고수들도 그의 외침을 듣자 놀라 허겁지겁
밖으로 달려나갔다.
그들의 몸이 사라진 직후,
"으음……"
그녀는 짤막한 신음을 토하며 검을 놓치고 힘없이 바닥에 쓰러져 버
렸다.
사실 그녀에게는 지금 낙일검을 시전할 만한 힘이 없었다. 그녀는 마
지막 공력을 끌어모아 낙일검을 펼치는 흉내만 내었던 것이다. 하나
음적양은 그것도 모르고 상대의 검에서 노을빛 검광이 뿜어 나오는
것에 놀라 허겁지겁 도망을 치고 말았다.
냉상아는 낙일검강을 끌어올리느라 진력을 너무 소모시켜
서 안색이 새파랗게 변했고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순간, 낭랑한 웃음 소리가 들렸다.
"낭자의 동작이 조금이라도 늦었다면 큰일났을 텐테 정말 적시에 낙
일검을 운용했구려."
냉상아는 대경 실색하여 급히 시선을 돌렸다.
차가운 달빛이 내리비치는 담장 밑에 용모가 준수하고 몸에 청삼을
걸친 소년 하나가 우뚝 서 있었다. 그녀는 그가 혜산에서 만났던
강옥봉임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당신은 무엇 하러 또 이곳에 오셨어요?"
강옥봉은 미소를 지었다.
"낭자는 너무 두려워하지 마시오. 나는 낭자가 부상당한 틈을 타서
괴롭히려는 그런 사람은 아니오. 조금 전에 음적양이 사총했던 절명
탈혼사는 칠대금용암기 중에서도 세 번째에 속하는 악독한 것이니,
낭자는 어서 그것을 뽑아 내고 치료하도록 해야 할 거요."
냉상아는 앙칼진 음성으로 외쳤다.
"그까짓 암기가 감히 날 상하게 할 것 같아요?"
"앞으로 한 시진만 더 지나면 치료할 수 없을 텐데 어찌 내 말을 우
습게 여기시오? 나는 절대로 실없는 소리를 하는 사람이 아니니 낭자
는 내말을 명심해서 속히 치료하도록 하시오. 그럼……"
그가 짐짓 발길을 돌리자 냉상아의 안색이 돌변했다.
"잠깐……"
강옥봉은 일부러 의아스런 표정을 짓고 시선을 돌렸다.
"무슨 할말이라도 있소?"
"단지 그 말을 해주기 위해서 이곳에 온 거예요?"
"그렇소. 만약 음적양이 비겁한 수단으로 낭자를 암산하지 알았다면
나는 절대로 이곳에 나타나지 않았을 거요."
강옥봉이 금시라도 떠날 자세를 취하자 냉상아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
으며 전신에 경련이 일어났다.
안색 또한 더욱 파리하게 변했다.
강옥봉은 그녀의 표정을 살폈다.
"아마 낭자의 상세가 발작하는 모양이니 만약 나에 대한 적의
만 버린다면 한번 치료해 줄 용의가 있소."
냉상아는 노기를 띠며 급히 손을 저었다.
"나는 남의 은혜는 조금도 받을 뜻이 없으니 잔소리 말고 어서 꺼지
세요."
순간 강옥봉이 어느새 그녀에게 접근하여 번개같이 혈도를 찔러 갔
다.
냉상아는 몸을 급히 옆으로 틀면서 외쳤다.
"뉘 앞에서 감히……!"
그녀는 다섯 손가락으로 기묘한 일식을 펼쳐 강옥봉의 완맥을 움켜잡
으려 했다.
그러나 강옥봉의 동작이 더욱 빨랐다. 그는 손을 급히 움직여 한 줄
기 지풍을 매섭게 튕겨 냈다.
팟!
냉상아는 흉복부가 마비되어 옴을 느끼면서 전신의 진력이 풀려 얼굴
에 화색을 잃었다. 그녀는 이를 부드득 갈면서 눈물을 글썽거렸다.
"네가 감히 날 욕보이려 하다니…… 죽어 악귀가 되어 뼈를 갈아
마시겠다."
그리고는 부들부들 떨면서 쓰러지자 강옥봉은 냉상아의 옷을 차분한
태도로 벗겼다.
냉상아는 눈앞이 아찔했다. 욕을 당하느니 깨끗하게 죽는 것이 좋겠
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자결할 기회를 노리면서 눈물만 마구 흘렸다.
강옥봉은 그녀의 옷을 벗기면서 두근거리는 가슴을 억제하고 끓어오
르는 욕정을 꾹꾹 눌러 참았다.
그녀의 풍만한 젖가슴과 고운 피부. 그리고 넋을 빼앗아 갈 것 같은
향긋한 체취는 사나이라면 한 번쯤 넘겨다보았을 것이었다.
그녀의 상처는 허벅지 위로 교묘한 부분 가까이에 있었기 때문에 강
옥봉의 손이 저절로 떨렸다. 아무리 의지가 강하고 여색을 싫어
하는 사람이라도 이토록 아름다운 여자의 용모와 눈부시도록 고운 피
부를 본다면 동요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하나 강옥봉은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흔들리는 마음을 억눌러 참았다.
한동안 그녀의 상처를 관찰하던 강옥봉은 주머니에서 자석을
꺼내어 상처 부위에 갖다 대었다. 잠시 후 그 자석에서 이십여 개의
소털같이 생긴 남색 절명탈혼사가 흡수되어 나왔다.
강옥봉은 백지를 깔고 절명탈혼사를 싸놓은 다음에 예리한 비수로 상
처를 찢었다. 그러나 독혈이 조금도 나오지 않자 한숨을 내쉬었다.
"절명탈흔사가 이처럼 매서우리라고는 미처 몰랐군. 조금만 늦었어도
낭자의 생명은 위험했을 게요."
냉상아는 그가 자기의 나체를 보고도 아무런 욕정을 표시하지 않고
눈초리가 야릇하게 변하지도 않자, 그제서야 그가 보기 드문 정인군
자라는 것을 알았다.
강옥봉은 다시 우장을 그녀의 명문혈에 밀착시키고 한 가닥 뜨거운
순양진력을 점차 투입시켰다.
그러자 그녀는 기분이 점차 상쾌해지는 것을 느졌으며 상처에서 검붉
은 독혈이 흘러나왔다. 어느새 심장 부위로 침투했던 독혈이 강옥봉
의 지순한 태극혼원신공의 힘에 의해 다시 밖으로 밀려나온 것이다.
강옥봉은 그녀의 옷을 하나 하나 다시 입혀 준 후 쓰러져 있는 세 소
녀의 혈도를 풀어 주었다.
세 소녀는 벌떡 일어나더니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강옥봉은 그녀들의 표정을 살피지도 않고 연이어 냉상아의 혈도를 조
심스럽게 풀어 주고 종이에 싼 절명탈혼사를 그녀의 손에 쥐여 주고
는 급히 몸을 날려 유령처럼 사라졌다.
냉상아는 꿈에서 깨어난 사람처럼 얼굴이 붉어졌고, 야릇한 감정에
사로잡혔다.
강옥봉의 손길이 닿았던 곳에 짜릿한 쾌감을 느꼈고, 자신도 모르게
마음이 끌려 시종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로 흥분되었다.
그녀는 잠시 강옥봉의 수려한 모습을 그려 보다가 종이 뭉치를 서서
히 풀었다.
"앗!"
그녀의 입에서 짤막한 경호성이 터져 나왔다. 이십여 개의 절명탈혼
사의 끝에는 검푸른 피가 묻어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너무도 감격해서 엉엉 소리내어 울음을 터뜨렸다.
잠시 후 그녀는 부드러운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매련아!"
그러자 세 소녀 중에서 호리호리한 홍의소녀가 대답했다.
"예, 무슨 분부가 계셔요?"
"너는 급히 소파파에게 가보아라."
그러자 홍의소녀는 바닥에 쓰러져 있는 노파에게 달려가 부축하여 일
으켰다.
"아가씨, 다행히 소파파께서는 약간의 내상을 입어 기절하셨을 뿐입
니다."
냉상아는 미간을 찌푸리더니 돌연 기나긴 탄식을 토해 냈다.
"음…… 한 번의 실수로 공들였던 모든 일이 수포로 돌아갔구나!"
그녀는 잠시 탄식을 토하다가 손짓을 하여 소녀들과 함께 사라졌다.
다시 조용해진 청루에는 조금 전의 흉험했던 격전을 말해 주듯 부서
진 가구들만이 바람에 날리고 있었다.
첫댓글
즐독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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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즐독하고 있습니다.
즐감하고 갑니다.
냉상아의 가슴앓이가 시작되겠군.흠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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ㅈㄷ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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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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