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 대 말 유신이란 귀신이
파란 하늘을 망투로 뒤집고 암흑을 이루던 시절
그때 나는 중고등을 거쳐 대학에 다닐 때였다.
그때와 지금의 상아탑 학도들은 조금 변모했지만,
당시 젊은 학도들은 이상과 현실의 괴리 사이에서 엄청나게 방황했고
정치적 사회적으로 예측하기 어려운 시대에
젊은 이상의 시대를 논하고 표현하는 것 조차 불가능했다....긴급조치 9호..
나에겐 아니 우리에겐 유일하게 육체적 정신적 정열을 가다듬고
발산할 장소가 산과 바다였다.
휴대용 축음기와 통키타 둘러 매고
성하의 여름이면 동해바다 백사장으로 갔고
그 은빛 모래에서 팬티만 걸친 채 모닥불 지피고
목까지 내려오는 치렁한 머리에 다섯줄 키타가 뿜어내는 가락에
두꺼비를 잡으며 별을 노래하였는데
그곳에서 목이 터져라 부른 노래는
송창식의 "고래사냥" 으로 기억된다.
또 꽃피는 봄, 만산홍엽의 낙엽이 우수수한 갈이면
산으로 계곡으로 달려 갔다.
그곳에서는 건전지 다 닳아 겨우 회전하는
휴대용 축음기에서 흘러 나오는 애절한 곡이
양희은의 "세노야 세노야!"
김민기의 "아침이슬" , 박인희의 "모닥불" 로 기억된다....
이런 정신적 육체적 방황기의 시대를 지나온
우리의 야영생활의 민생고 준비는
고등어 꽁치 통조림에 무 파 쓸어 군용코펠에 담고
잔 나뭇가지로 모닥불을 지폈고
준비성이 있을라 치면 깡통에 든 고체연료가 고작이었으며
조금 더 경제적 여유가 있을 경우엔 석유버너가 제일이었다.
그 석유버너의 이름 중에서 가장 성능 좋은 것이 "시나브로" 였던가?
우리는 당시 화력 좋은 이 석유버너처럼
뜨겁게 활활 타오르고 싶은 피끓는 정열이 있었다
아~~ 추억의 석유버너!
30여 년 지나 버린 지금
그 석유버너를 들으니 그때의 추억이 새롭다.
오늘 그 추억의 석유버너에 대해서 이야기를 듣고
베란다 창고를 뒤지니 주인 잃은 석유버너가 조용히 잠들고 있었다.
당시 애지중지했던 버너가 케이스만 약간의 녹을 입었을 뿐
아직도 반짝반짝 윤기가 나고 곱게 그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사진에서 보는 것의 석유버너와 그 옆은 당시의 월간 "山"지의 표지 사진...
지금 생각하면 서글프게도 지리산의 세석철쭉때의 흉측스런 야영장면이다...ㅠㅜㅠ
춘계산방기간이 시작되기 전에
이번 주에는 이놈으로 지리산을 동행해 봐야겠다.
비록 무게는 제법 나가는 놈이지만...
.................
.................
30여 년 전의 석유버너 사용법은 이랬다.
오래되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1. 연료탱크에 백등유를 8부까지만 채운다.(휘발유,경유 알콜 등 사용금지)
2. 에어조절밸브로 열고 탱크내부의 에어를 분출시켜 놓는다.
(밸브는 연채로 놓는다)
3. 에어펌핑밸브를 열고 당겨서 빼어 놓는다.(에어주입준비)
4. 노즐아래의 접시에 알콜을 넘지 않도록 채운다.(넘은 상태로 불을 지피면 화재)
5. 바람막이캡의 구멍이 바람을 등지고 캡을 노즐에 씌운다.
6. 알콜이 담겨 있는 접시에 캡의 구멍으로 불을 지펴 노즐을 예열한다.
이때 주의사항은 알콜은 불꽃이 보이지 않으니 화기에 주의한다.
7. 풀어 놓은 에어조절밸브를 꼭 잠근다.
8. 알콜이 다 연소 될 무렵에 빼어 놓은 에어펌핑밸브로 6-7회 펌핑하고
석유가 나오도록 하여 석유에 불이 지피도록한다.
알콜이 다 연소되어 노즐에서 나온 석유가 불이 지피지지 않았으면
재빨리 성냥이나 라이타로 노즐의 석유에 점화시키고
펌핑을 20회 이상 계속한다.
단, 점화시 파란불이 나오지 않고 검은 불기둥이나 끄으름이 생기면
노즐의 예열이 덜 된 상태이니 에어조절밸브를 열어 소화하고
상기 4번부터 다시 시작한다.
9. 사용도중 펌핑을 계속하여도 화력이 약할 경우 노즐이 막힌 경우이니
에어조절밸브를 열고 머리카락 굵기(?)의 핀으로 노즐을 뚫는다.
10. 또 사용도중 노즐 연결부분에서 불이 붙거나 연료가 샐 경우는
고열로 인하여 노즐이 풀린 경우이니 스패너로 노즐을 꼭 조여준다.
하하하...필봉님 여긴 서울이 아닌 컨추리한 곳입니다...지리산을 등에 지고, 아니 빌붙어 생활하죠...ㅠㅠㅠ 난 언제 한양땅에 입성하나..한양 떠난 지 20년이 넘네ㅠㅜㅠ.. 삼각산이라 불리는 북한산과 도봉산, 관악산, 좀 더 나가서 용문산, 치악산, 삼악산, 오봉산... 20대 피 끓을때 많이도 다녔죠. 지리산 어때요.
산양로고가 붙은 베낭 모를리 없죠...투박함에서 우러나오는 강인함...저는 2인용 산양텐트는 지금도 간직하고 있는데, 아마 이놈 지금은 비가 새고 밑으로 습기가 올라와 기능을 발휘 못하겠죠...Sadlce님 적당한 날 잡아 추진하십쇼! 봄꽃이 화사하고 모자익 같은 초록이 산야를 물들기 시작하는 때가 좋을 듯...
여러 산 선배분들, 오늘은 구형장비 품평회같은 착각이 드네요..ㅎㅎ 그보다 청산님의 유신,고래사냥,상아탑같은 말을 들어니 저도 옛날 생각이 나네요 저는70년대말에 국민학교 다녔는데 아침 조례시간에 애국가 끝나면 군가같은 "나의 조국"같은 정권찬양가 부르던 시절도 생각납니다.
첫댓글 아직도 이걸 가지고 계시다니~ 감회가 새롭네요. 저도 80년대 후반 까지는 그걸 사용 했습니다. 무겁기는 했어도 화력은 좋았지요~
정말로 옛날 석유 버너를 보니 저도 옛 생각이 절로절로 나서 입가에 웃음이 번집니다.^^ 내것도 잘 있는지 찿아 봐야쥐~~~
아이구..선배님 고맙습니다. 손에 익어야 무난히 사용할 수 있겠네요..읽어보니 사용않는게 낫겠다는 생각도 드네요..아무튼 자세한 설명 감사합니다. 테스트라도 해봐야 겠습니다.
옛날 생각이 간절하네요 골동품이지요 그래도 그것 하나면 지리산 가는데 짱이였는데..
머리카락 굵기(?)의 핀으로 노즐을 뚫는다...압권입니다,저도 글을 읽고서 무심결에 뒤져보니 긴~긴 여운의 구릿빛 광채를 발하는 석유버너가 점잔케 떡하니 자리잡고 있더군요...언젠가 석유버너 간직하구 계신 분들 모여 야영한번하면 어떨까하고 재밌는 생각을 해봅니다.
테스트 한 번 하여 노즐에서의 당찬소리와 시뻘건 불길을 보노라면 이 놈 들고 지리산 능선으로 달려가고픈 생각이 절로 일 겁니다...필봉님! 생각보다 쉽습니다...Sadlce님!석유버너 가진 분들의 지리산 단체 야영 함 추진하십시요..아~~그 낭만 속으로 다시...
말 나온김에 석유버너가지고 계신선배님들 날 잡아서 비박이나 야영 함 합시다. 가까운 관악산(삼성산)도 좋고요..
하하하...필봉님 여긴 서울이 아닌 컨추리한 곳입니다...지리산을 등에 지고, 아니 빌붙어 생활하죠...ㅠㅠㅠ 난 언제 한양땅에 입성하나..한양 떠난 지 20년이 넘네ㅠㅜㅠ.. 삼각산이라 불리는 북한산과 도봉산, 관악산, 좀 더 나가서 용문산, 치악산, 삼악산, 오봉산... 20대 피 끓을때 많이도 다녔죠. 지리산 어때요.
저 역시나 컨츄리한 곳입니다, 석유버너의 그 와일드한 불길과 가공할 소음... 석유버너 추억의 야영의밤(?) 한번 하시죠.더 상상의 나래를 펼쳐본다면...가지고있는 구식장비가있다면 걸치고 가지고 모여서 남루한 야영을 한다면...꽤나 즐거운 상상 아닐까합니다.말 난김에 "산양(?) 베낭" 아시죠 함 찾아봐얄것같습니다
산양로고가 붙은 베낭 모를리 없죠...투박함에서 우러나오는 강인함...저는 2인용 산양텐트는 지금도 간직하고 있는데, 아마 이놈 지금은 비가 새고 밑으로 습기가 올라와 기능을 발휘 못하겠죠...Sadlce님 적당한 날 잡아 추진하십쇼! 봄꽃이 화사하고 모자익 같은 초록이 산야를 물들기 시작하는 때가 좋을 듯...
여러 산 선배분들, 오늘은 구형장비 품평회같은 착각이 드네요..ㅎㅎ 그보다 청산님의 유신,고래사냥,상아탑같은 말을 들어니 저도 옛날 생각이 나네요 저는70년대말에 국민학교 다녔는데 아침 조례시간에 애국가 끝나면 군가같은 "나의 조국"같은 정권찬양가 부르던 시절도 생각납니다.
관리를 잘하셔서 광이 번쩍번쩍하네요 저도 가지고 있는데 겉이 녹이 슬어있어요 요즈음은 광약도 구하기가 어렵네요 어떻게 광을 내지요?
소다가루를 융이라는 헝겁에 뭍혀 구두를 닦듯이 문질러 보시길...총무님! 효과가 조금 있을 겁니다.
靑山別曲님 고맙습니다 좀늦게 글을 봤습니다 당장 소다 사다가 닦아보렵니다
광 내는데는 치약도 좋습니다. 치약을 천이나 수건에 짜서 문질러 보세요. 번쩍 번쩍 할겁니다~
이곳에 함 가보세요. 더 많은 석유버너를 만날 수 있답니다. http://cafe.daum.net/burnerl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