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3월 우근민 제주지사는 민주당에 입당한다. 6·2 지방선거를 앞둔 시점이었다. 그는 “민주당은 저의 뿌리이자 정치적 고향”이라고 했다. 하지만 민주당은 그의 성희롱 전력을 문제 삼아 ‘후보 부적합’ 판정을 내린다. 제주지사 공천을 주지 않은 것이다. 그러자 우 지사는 입당 후 13일만에 탈당한다. 무소속으로 출마한 그는 현명관 한나라당 후보에게 신승했다. 무소속으로 민선 5기 제주지사가 된다.
“민주당이 뿌리”라던 우 지사는 지난해 11월 새누리당에 입당했다. 그의 지지자 1만7000여명이 함께 새누리당 당원으로 따라왔다. 우 지사는 “제주도 발전을 위해서 일을 할 수 있는 여건이 바뀌었다”고 했다. 그는 6·4 지방선거 새누리당 공천을 노렸다. 하지만 원희룡 전 의원이 제주지사 출마선언을 하고 당에서 ‘100% 여론조사 경선’을 결정하자 경선 불참을 선언했다. 원 전 의원에게 유리한 룰이라는 이유다. 그는 지금 ‘탈당 후 무소속 출마’와 ‘불출마’를 놓고 저울질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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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근민 제주지사./뉴시스
‘민자당→새정치국민회의→열린우리당→민주당→무소속→새누리당→?’인구 60여만명에 유권자 수 46만여명. 제주도는 지금 우 지사의 선택에 시선이 모아지고 있다. 그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제주지사 선거 향배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제주도는 1995년 민선 지방선거가 도입된 이후 지금까지 20여년동안 우근민(2,3,5회) 김태환(4회) 신구범(1회) 세 사람이 도지사를 돌아가며 맡았다. 이들은 이른바 ‘제주판 3김(金)’으로 불린다. 세 사람은 72세로 나이도 똑같다. 이들 중 김태환 전 지사는 원희룡 전 의원 지지를 선언하며 2선으로 물러났다. 신구범 전 지사는 안철수 의원 측 새정치연합 예비후보로 출마를 준비중이다. 우근민 지사는 무소속 출마냐 불출마냐 선택의 기로에 있다.
이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상황에 따라 서로 당적을 바꿔가며 경쟁했었다. 특히 현직 지사인 우 지사는 지금까지 6번 당적을 바꿨다. 그 경로를 따라가다 보면 어지러울 정도다.
우 지사는 1991년부터 93년까지 두번(27,28대) 관선 제주지사를 지냈다. 이후 1995년 민선 1기 지방선거에서 새누리당의 전신이자 당시 집권 여당인 민자당 후보로 출마했다가 낙선했다. 당시 무소속 신구범 후보에게 패했다. 이후 98년 민선 2기 지방선거에서는 정권 교체가 이뤄지면서 야당에서 여당이 된 새정치국민회의로 당적을 옮겨 출마해 당선됐다. 2002년 민선 3기 선거에서도 새정치국민회의의 후신인 여당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나와 재선에 성공했다.
이후 노무현 대통령 당선 후 2004년 열린우리당이 창당되자 그는 또 곧바로 열린우리당으로 당적을 옮겼다. 하지만 그는 2004년 선거법 위반이 대법원에서 최종 확정돼 지사직을 박탈당했다. 당적도 동시에 잃었다.
야인으로 지내던 그는 2010년 민선 5기 선거에서 민주당 입당을 신청했다. 민주당은 입당을 허용했지만 그의 성희롱 전력을 문제 삼아 제주지사 후보 자리는 주지 않았다. 우 지사는 2002년 도지사 집무실에서 여성단체 회원을 성희롱한 혐의로 여성부 남녀차별개선위원회로부터 1000만원의 손해배상과 재발방지대책 수립 권고를 받았다. 이후 우 지사는 법원에 남녀차별개선위 의결 취소 청구 소송을 제기했지만 2006년 대법원은 이를 기각했다. 우 지사는 탈당해 무소속으로 출마했고, 민선 5대 도지사가 된다. 무소속으로 있던 그는 지난해 11월 새누리당에 입당했다.
정리하면 ‘민자당→새정치국민회의→열린우리당→민주당→무소속→새누리당’의 경로를 밟았다. 무소속일 때를 제외하면 정당은 어김없이 집권여당을 택했다. “양지만 쫓아다닌 철새 정치인”이라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제주도 특유의 ‘괸당’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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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근민(왼쪽) 제주지사와 원희룡 전 의원이 15일 제주국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1회 국제전기자동차엑스포 개회식에서 만나 악수를 하고 있다./뉴시스
우 지사가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건 제주도 특유의 ‘괸당’문화 때문이다. ‘괸당’은 ‘권당(眷黨)’에서 온 말로 친인척을 뜻하는 제주도 방언이다. 제주 정치권엔 “여당 야당 위에 괸당”이라는 말이 있다. 섬이라는 제주의 특성상 혈연 관계로 묶인 조직이 정치적 이념이나 정당보다 더 위력을 발휘한다는 의미다.
새누리당 관계자는 “제주도는 사실 당이 별 의미가 없다. 지역 기반과 조직이 크게 작용한다. 이 때문에 원희룡 전 의원도 우 지사를 비판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그는 “원 전 의원은 중앙정치 무대에 있다 내려갔기 때문에 자칫 잘못 비판했다가는 선거에서 낭패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원 전 의원이 ‘세대교체’란 말 대신에 ‘시대교체’란 말을 쓰는 것도 ‘괸당’ 정서를 건드리지 않기 위한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원 전 의원은 지난 16일 출마 기자회견에서 “우 지사는 1992년 제가 사법시험에 합격했을 때 당시 도지사로서 감사패를 줬다. 오늘까지 삼촌처럼 늘 격려해줬고 제주도의 발전을 위해 고민했다. 가족과도 유대가 좋은 특별한 관계”라고 인연을 소개했다. 원 전 의원은 또 “우 지사가 얼마나 고뇌의 시간을 보내고 있을지 말하지 않아도 짐작이 간다.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존중하겠다”고 했다.
만약 우 지사가 불출마를 한다면 새누리당으로선 선거가 상대적으로 쉬워질 수 있다. 하지만 그가 탈당해 무소속으로 출마한다면 선거는 만만치 않다. 3파전의 여파로 민주당에 어부지리를 줄 수도 있다. 우 지사의 선택이 중요 변수가 되는 이유다.
우 지사는 지난 15일 “도민과 당원들의 의견을 수렴해 적절한 시기에 지방선거와 관련한 입장을 밝히겠다”고 했다. 우 지사 측 관계자는 18일 전화통화에서 “우 지사가 다양한 계층의 다양한 의견을 듣고 있다. 결정을 하려면 시간적 여유가 필요할 것 같다”고 했다. 우 지사가 만약 탈당 후 무소속 출마를 결정한다면 7번째 당적 변경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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