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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림사 사대금강 중의 하나인 방오는 침통한 얼굴로 소림사 경내에 펄럭이고 있는 청군의 군막 위에 펄럭이는 깃발들을 바라보았다.
"다시 저기로 돌아가려면 얼마나 더 많은 세월이 필요할까?"
"사형, 이제 그만 돌아갈 시간입니다."
"사제, 우리 소리 출신의 승려들이 다시 저기로 돌아갈 수 있을까?"
"모르겠습니다. 반역도로 몰려 지명수배를 당한 승인들 대부분이 파계를 하고 승적을 버린 자들이 속출하고 있습니다. 소림에서 배운 무공을 가지고 청에 대항하는 자도 있고, 또 일부는 도적으로 변한 자들도 있으니--."
침울한 얼굴로 방오의 옆에 서 있던 방성이 대답했다.
소림사에 있던 수 많은 건물들이 청군의 대포 공격에 소실되어 소림사는 예전의 모습을 갖고 있지 않은 상태였다. 폐허로 변한 소림사를 산 위에서 내려다보는 두 승인은 고개를 흔들면서 뒤로 돌아섰다.
"사제들 여기 있었구나!"
나무 위에서 한 사람이 그들 앞에 뛰어 내려 오면서 말했다.
"사형 오셨습니까?"
"사형을 뵙습니다."
방오와 방성은 사대금강의 첫째인 방진의 얼굴을 보고는 합장하며 인사했다.
"아미타불."
방진 역시 합장하며 불호를 외우며 답례한 다음 급히 말했다.
"사제들 기쁜 소식이 있네."
"무슨 소식인데 그리 기뻐하시는지요?"
"저기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네."
조급하게 말하는 방진이 뻗은 손가락이 가리킨 곳은 그들이 불법과 무공을 익힌 장소였다.
"소림사의 승인들에 대한 수배령과 폐쇄령이 모두 철회되었다고 하는 말을 들었어. 게다가 황제의 명으로 소림사를 복원하라는 명이 떨어 졌다고 하네."
방진의 말에 두 늙은 승인은 감격에 찬 얼굴로 물었다.
"정말입니까?"
"사형, 그것을 어디에서 들은 갭니까?"
방오와 방성은 동시에 물어왔다.
"방문도 붙어 있고--. 소문을 듣고 사실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개봉 백초당에 들려 방종구를 만났는데---. 모두 사실일세. 그리고 기뻐해야 할 일이 또 있다네."
"무슨 소식을 들으셨기에 늘 우울하던 사형이 기뻐하시는 겁니까?"
"백초당에 들렸을 때 방철을 만났는데--, 소구를 만났다고 하더군. 북경에 가서 할 일이 있어 소구를 만나지는 못했지만---, 이 일은 아무래도 소구와 관련이 된 일 같지 않은가?"
"소구에게 조정을 움직일 힘 같은 건 없을 터인데요?"
방오가 의아한 얼굴로 말하고 방진은 웃으면서 말했다.
"소구가 북경으로 떠나고 두달도 안되어 소림사에 대한 수배령과 폐쇄령이 철회되었다면---, 먼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방진의 말에 방성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과연 소구가 이 일을 해낸 것일까요? 제가 기억하고 있는 소구라면 먹을 것하고 잠자는 일 이외에는 아무 것도 관심이 없는 아이인데----?"
"후후, 사제들 내가 약속시간 보다 반나절이나 늦게 이곳에 도착한 이유를 생각하게."
의미심장한 웃음을 흘리며 방진은 사제들을 향해 말하고 방오와 방성은 말없이 사형 방진의 노안을 쳐다보았다. 세월은 흘러 사대금강이라 불리던 소림의 네 승려들도 노인이라 불리기에 족한 얼굴을 만들어 놓은 상태였다. 그 세월 동안 그들이 항상 바라고 있던 일은 소림사로 다시 돌아가는 일이었지만 늙어 죽을 때가지 그 일은 영원히 불가능할 것이라고 포기한 상태였다.
"나는 등봉현의 관아에 서 있는 소구를 보고 왔네."
"관아에 소구가 있단 말입니까?"
"그렇다네."
"수배령이 풀렸다면 우리가 떳떳하게 거리를 활보해도 된다는 말이겠지요? 관아로 찾아가 소구를 만나도 되고---?"
사대금강의 첫째인 방진은 웃는 얼굴로 방오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우 하 함---."
늘어지게 기지개를 켜며 소구는 멀거니 관아의 뜰을 오가는 아전들과 병사들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소림사에서 병사들을 철수하는 일은 보류된 상태였다.
"소실된 소림사의 건물을 복원시키려면 돈도 돈이고 흩어져 숨어 있는 소림사의 승려들에게 이일을 알리는 일도---."
어찌 되었건 이 일의 머리에 위치한 소구였다. 안찰사가 다가와 또 옆에서 보고를 하고 있는 동안 소구는 귀찮다는 얼굴로 안찰사 이정악의 주름지고 마른 얼굴을 쳐다보며 말했다.
"어떨 결에 어사패를 받고 여긴 오게 되었지만 행정적인 일은 잘 모르오. 안찰사께서 알아서 처리하시구려."
"어사대인, 이 일의 책임자는 어사십니다. 저는 보고를 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오늘부터 병사들로 하여금 부서진 건물을 수리하는 일을 맡겼지만---, 도공과 화공을 부르는 일도 그렇고 건축에 관계되는 일에 대한----."
소구가 듣거나 말거나 자기 할말을 하는 안찰사였다. 소구는 짜증이 난 얼굴로 안찰사를 다시 바라보며 물었다.
"나보고 어쩌라는 거요?"
"여기 결재하실 서류들을 갖고 왔습니다. 이것을 보시고 결재를 해 주시면 됩니다."
안찰사 이정악은 소구를 무식한 무부(武夫)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자신이 들고 있는 문서에 내용을 파악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보고를 하고 결재를 맡아야만 했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머리 속에 대석학이라 칭해도 부족하지 많을 만큼 많은 지식을 보유하게 된 소구였다. 안찰사의 생각과는 달리 소구는 서류를 한 장 한 장 살펴보면서 오자를 지적하고 건물을 복구하는데 들어가는 경비의 계산이 잘못된 부분들을 하나하나 지적해 나가고--, 안찰사는 놀란 눈으로 소구를 다시 보았다. 단지 무공이 강하고 황상의 신임을 얻어 어사가 된 줄 알았더니 학식 또한 자신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높다는 것을 알게 된 탓이었다.
게으르기는 했지만 쌓아온 수련이 헛되지 않아 자신의 앞에 들이닥친 일을 피하지는 않는 소구였다. 그래서 소구의 머리 속에는 이 순간에도 어디 숨어서 낮잠을 잘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서류의 잘못된 부분을 하나 하나 찾아서 지적하고 고쳐서 가져오라고 말을 했다.
"아니, 왜 갑자기 그런 눈으로 날 보는 거요?"
서류만 쳐다보고 있던 소구는 마지막 장을 덮고 자신을 바라보는 안찰사의 얼굴에 의아한 듯 질문을 던졌다.
"과--과연--, 어사대인이십니다."
"그게 무슨 소리요?"
"학식이 이리도 깊은 줄은 생각도 못했습니다. 사실 이 서류에는 아전들이 일부러 고문(古文)을 약간씩 섞어 어사대인이 알아보지 못하게 만든 부분이 있었습니다."
"그것 참 관청의 서류는 다 이렇소? 쉽게 풀어써서 사람들이 알아보기 쉽게 만들면 좋을 텐데--, 일부러 말을 어렵게 만들어 놓으니--. 웬만큼 공부를 한 사람이 아니면 관청의 문서를 알아보지 못하게 만드는 이유라도 있는 것이오?"
"벼슬아치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그래야 어리석은 백성들을 누르고 위에 서서 백성들을 다스릴 수 있습니다. 모든 백성들이 법을 알면 법대로 하자고 하면서 관리들의 판정에 이의를 걸고 소송이 끊이지 않을 것이니----."
"흐흠--, 그러니까 아는 자는 안 당하고 모르는 자는 당해야 된다 이런 말도 되는 구만--."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동물들만 약육강식이 아니지요. 사람의 세상도 다른 형태의 약육강식의 세상이라 생각합니다."
"그럴지도 모르겠군요. 안찰사 어찌 되었건 이 서류는 잘못된 부분이 많으니 다시 수정해서 가지고 오시오. 이대로는 결재 해 줄 수 없소."
"예, 다시 고쳐서 가지고 오겠습니다."
안찰사는 얌전히 대답하고 서류들을 들고 다시 밖으로 나가고 소구는 의자에 앉아서 낮잠이라는 달콤한 시간을 보내기 시작했다.
등봉현의 아전들은 한자리에 모여 있었고 그 중의 하나가 안찰사가 내민 산더미 같은 서류를 쳐다보며 물었다.
"정말 그 젊은 어사의 학식이 그리도 높단 말입니까?"
"이보게들 어사의 지위가 단지 무공이 높다고 받을 수 있는 자리인 줄 알았는가? 나도 발견하지 못한 오류들을 모두 찾아서 지적한 어사일세. 이번에도 잘못된 서류가 올라가면 경을 칠 것이니 똑바로들 하게."
안찰사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투는 내용은 담담한 것이었지만 그 내용만은 결코 담당한 것이 아니었다. 말을 하고 있는 안찰사 역시 등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리고 있는 중이었다. 감히 어사를 시험하고 모독을 주려한 행위였으니 일이 잘못되면 파면은 물론 귀양까지 갈 수 있는 중죄였다.
조철은 뚱뚱한 배를 쓰다듬으면서 자신의 못생긴 딸을 쳐다보았다. 온 가족이 한데 모여서 식사하는 중이었고, 그는 방금 식사를 끝내고 차를 마시고 딸을 바라보며 물었다.
"어사대인을 본 느낌이 어떻더냐? 그 정도면 엄청 잘생긴 얼굴이 아니냐?"
"뭐가 잘 생겨요? 보기만 해도 졸음이 쏟아지는 얼굴이 가진 것도 없는 가난뱅이 같던데--."
"이년아, 혹시라도 어사 대인의 부인이 되면 넌 왕후장상이 부럽지 않은 생활을 할 터인데 그런 소리가 나오냐?"
"아버지, 꿈 깨요. 조정의 고관대작들이 여기 와 있는 어사와 친분을 맺으려고 광분한다는 소식을 못 들었어요? 제가 예쁘기라도 한가요? 제가 신분이 좋아요? 일개 지방 현령의 딸이라는 신분은 어사 앞에서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 정도는 삼척 동자들도 알걸요? 그러니까 냉수 마시고 속 차려요."
조철의 딸은 아버지에게 냉수가 든 사발을 내밀면서 말했다.
"역시 안 될까?"
냉수가 들어 있는 사발의 물을 들이키고 조철이 다시 말하고, 그런 아버지를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는 딸이 말했다.
"당연히 안되죠. 황후 장사들이 노리고 있는 사윗감이라잖아요? 출세길이 탄탄한 사람이 뭐가 부족해서 나같이 못생기고 신분도 미천하고 게다가 재산도 없는 집안의 딸을 부인으로 맞이하겠어요?"
"역시, 네가 조금만 예쁘면 어사대인의 침실에 밀어 넣어 보기라도 할 텐데---."
"제가 못생긴 건 저도 아니 아버지 그만 말하시죠."
조철의 딸 조진진은 신경질적으로 입을 열었다. 아무리 자신이 못생겼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이렇게 온 가족이 모여 있는 자리에서 자신이 못생겼다는 말이 오가는 것은 기분이 좋은 일이 아니었다.
"근데, 저 어사대인 말이다---."
"또 무슨 말을 하고 싶어서 그러죠?"
조진진은 짜증이 가득한 얼굴로 아버지의 못생긴 얼굴을 쳐다보았다.
"가난뱅이가 아닌가 봐---."
"에?"
"그러니까 천하제일의 거부라고 알려진 사람이 누군지 아니?"
"백초당의 방종구라는 사람이라는 소문을 들은 적이 있는데--?"
"그래, 그 방종구라는 사람이 어사의 형이라는 소문이 있더구나."
조철의 말에 묵묵히 식사만 하고 있던 조철의 가족들 모두가 젓가락을 멈추고 조철을 바라보았다.
"그게 사실이에요?"
며칠 전 벌어졌던 이상한 이자 계산법에 노예가 될 뻔하고 전 재산을 뺏아길 뻔한 조철 일가였다.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니 아무래도 사실 인 것 같아."
"아니 그런 큰 부자가 겨우 십만냥이라는 돈 때문에 그런 일을 벌였다는 것을 믿으란 말입니까?!"
조철이 아들이 젓가락을 식탁에 내려놓고 울분에 찬 목소리로 소리쳤다.
"이놈아 누가 들을라! 조용히 말해라!"
조철이 황급히 소리쳤다. 지금은 몸을 사릴 때였다. 혹시라도 말이 잘못 나가면 또 무슨 봉변을 당할지 모르는 일이었다.
"죄송합니다. 아버님."
조철은 아들의 말을 들으면서 다시 딸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부와 권력의 정점에 서 있는 자가 자신의 옆에 있건만 어떻게 인연을 만들 길이 없었다. 자신이 봐도 딸의 얼굴은 봐 줄만한 얼굴이 아니었다.
석양 무렵에 세 명의 승려가 등봉현의 관아로 찾아 왔다. 바로 며칠 전까지만 해도 나라에서 수배를 하던 죄인이라고 할 수 있는 자들이었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관아의 정문을 지키고 있는 두 포졸은 잔뜩 긴장한 얼굴로 세 명의 승인들을 바라보았다.
수배령이 해제되고 며칠 지나지 않아서 이렇게 소림사의 승인들이 관아로 찾아올 줄은 생각도 못한 일이었다.
"스님들께서는---?"
"우리는 전에 소림사에서 사대금강이라 불리던 사람들 중에 세 명이오. 이곳에 방소구라는 이름의 사람이 있다고 해서 찾아 왔습니다."
합장을 하고 손에 염주를 들고 있는 세 명의 늙은 승인들 중 맨 앞에 서 있는 승려가 말했다.
"어사대인을 찾으시는 겁니까?"
등봉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소림사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라지 않을 수 없었다. 문을 지키고 있는 두 포졸도 소림사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란 사람들이었다. 비록 변발을 하고 청나라 관리의 복장을 하고 있지만 소림사에 대한 존경의 마음은 늘 품고 있었다. 두 포졸은 나이 지긋해 보이는 세 명의 노승을 바라보며 대답을 기다렸다.
"그 어사대인이 방소구라는 이름이라면 맞습니다. 이름이 맞다면 가서 소림사의 사형들이 찾아 왔다 전해 주시겠습니까?"
일행의 대표인 방진이 나서서 합장하면서 다시 한번 포졸들에게 말을 하고, 허리가 땅에 닿도록 절을 한 포졸들 중의 하나가 급하게 안으로 달려갔다.
현령 일가족이 모여 저녁 식사를 할 때, 관청 안의 한 방에서 소구는 안찰사와 함께 저녁식사를 하고 있었다.
"어사대인, 밖에 어사대인을 청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소구는 젓가락을 멈추고 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누가 나를--?"
닫혀 있는 문 건너편에 있는 자를 바라보며 소구가 물었다.
"소림사의 사대금강이라고 주장하는 세 분의 늙은 스님들이었습니다. 어사대인의 사형이라고도 말씀하셨습니다."
포졸은 들은 것을 바로 말하고 소구는 아쉽다는 얼굴로 탁자 위에 놓인 오리고기를 바라보았다.
"어사대인, 식사는 나중으로 미루고 일단 그분들을 만나야 하지 않겠습니까?"
건너편에 앉아 있는 안찰사 이정악이 반색을 하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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