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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르륵'
문이 열리고 닫혔다. 이제 방에는 혼자 남게 된 안찰사는 흐뭇한 미소를 흘리며 식탁 위에 올려진 오리고기에 손을 뻗었다. 지난 며칠 사이 어사와 같이 식사하는 동안 거의 맨밥만 먹어야 했던 안찰사로서는 감격의 순간이었다. 도대체가 배속에 거지라도 들어 있는지 어사는 식사시간에 음식을 남기는 법이 없었다. 관청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있는 안찰사와 어사는 늘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에서 같이 밥을 먹어야 했다. 그리고 안찰사 이정악이 반찬하나를 집어먹는 사이 다른 그릇의 반찬들은 모조리 어사의 배속으로 사라지는 일이 식사 때마다 벌어졌다. 결국 지난 며칠 사이 계속 맨밥만 먹어야 했던 안찰사였기에 식탁을 독차지한 이 순간이 감격스러웠다. 오늘만큼은 맨밥을 먹지 않아도 되었기에---.
관청의 뜨락으로 걸음을 옮기던 소구는 기쁜 표정을 지으며 밖에서 안으로 들어오는 세 늙은 승려들을 향해 달려갔다.
"사형!"
"허허, 진짜 소구로구나!"
인자한 웃음을 흘리며 방진이 소구를 향해 말을 건넸다.
"세분 사형을 뵙습니다."
무려 이십년 만에 만나는 사형들이었다. 소구 역시 즐겁지 않을 수 없었다. 일일이 손을 잡아가며 인사하는 소구였다.
"너하고 못 만난지도 벌써 이십여년이 흘렀구나."
방오 역시 얼굴에 감격했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정말 많이 컸구나."
방성은 소구의 어깨를 두드리며 더 이상 말을 잊지 못했다. 눈가에 물기가 번지고 있는 세 늙은 사형을 소구는 자신이 머물고 있는 관청의 객실로 인도했다.
"세월이 참 많이도 흘렀구나--. 우리도 이제 늙어서 이렇게 쭈글쭈글한 노인이 되어 버렸고--."
마주 않은 네 사람 중 가장 먼저 입을 연 것은 방진이었다.
"전에 집에 있었을 때 방철 사형을 만나 지난 얘기들을 듣게 되었습니다. 소림사의 다른 스님들은 모두 어디에---?"
"모두 뿔뿔이 흩어졌지--. 청나라의 병사들과 대포로 소림사가 소실되고 많은 소림의 제자들이 죽었단다. 살아 남은 승인들 대부분이 수배자가 되어 세상을 떠돌고 파계하고 속세로 돌아간 사람도 꽤 되고."
방진은 조금은 허탈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이제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왔으니 모두들 돌아올 것입니다."
소구는 재빨리 위로의 말을 건네고 그런 소구를 대견하다는 듯 바라보는 방진이었다.
"그래 그래."
눈물이 글썽해진 방오와 방성이 옆에서 고개를 끄덕이며 화답했다.
"오늘은 늦었으니 여기서 주무시고 내일 같이 소림사로 올라가지요. 병사들을 시켜서 소림사의 건물을 복원하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다른 소림사의 제자들이 오면 작업이 조금이라도 일찍 끝날 것이니---."
"그래 알겠다."
서로의 지난 이야기를 들려주느라 대화는 밤이 새도록 계속 되고--.
"꼬끼오!"
멀리서 여명을 밝히는 닭울음소리가 들릴 때 소구는 방에 혼자 남았다. 소구는 힘없는 눈길로 텅 빈 탁자를 바라보았다. 그 위에는 소구가 등봉현의 관리에게서 되찾은 돈 상자가 놓여 있었다.
"너무 하잖아. 아무리 돈이 필요하다고 해도 몽땅 다 가져가면 난 어쩌라고----."
소구의 입에서 힘없는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날이 밝을 때까지 기다릴 수 없다며 소림사로 떠난 세 명의 늙은 사형들이 소구의 돈을 들고 가 버린 것이다.
다시 빈털터리 신세가 된 소구는 한숨을 내쉬며 앞으로의 일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대로 집으로 돌아가?"
그렇게 중얼거리던 소구는 고개를 좌우로 맹렬히 흔들었다. 성난 누나의 모습을 떠올리는 것 자체가 끔찍한 일이었다.
"에가 모르겠다! 어떻게 되겠지?! 잠이나 자자!"
밤새도록 사형들과 대화를 하느라 잠을 못 잔 소구는 그렇게 속편한 소리를 하면서 침상에 벌렁 드러누웠다. 드러눕기가 무섭게 소구는 잠이 들고 그날 아침부터 등봉현의 관아로 사람들이 밀어닥치기 시작했다.
소림사가 복구되고 있다는 소문은 빠른 속도로 퍼져 나갔고, 소림사와 인연이 있는 사람들은 중원 천하에 널리고 널려 있었다. 중원 선종의 요람이라 칭해지는 불문의 도량으로서의 위치가 그러했고, 무림에서의 태산북두라 칭해지는 위치가 그러했다. 가장 빨리 소림사가 복구된다는 것을 옆에서 보게 된 등봉현에 살고 있는 사람들로부터 시작해서 사방에서 성금과 재물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아직 소림사가 완전히 복구된 것도 아니고 소림사의 승려들이 있는 것도 아니기에, 소림사를 복구하는데 보태라고 보내온 돈은 이 일의 책임자인 소구의 앞으로 배달되고 있었다. 그러나----.
"드르렁, 퓨--우. 드르르렁 퓨--우---."
코를 골아대며 벌써 이틀째 잠에서 깨어날 생각을 하고 있는 어사를 바라보던 호남안찰사 이정악과 등봉현령 조철은 시선을 돌려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다 다시 등뒤에 쌓여 있는 재물들을 바라보았다.
"안찰사나리, 저기서 좀 가져가도 표도 안 날 것 같은데--."
탐욕으로 번들거리는 눈을 하고 현령이 그렇게 운을 띄웠지만 안찰사 이정악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림의 떡일세. 그냥 지켜보기만 하는 게 나을 걸세. 저게 보통 돈인가? 저 돈을 잘못 건드리면 살신지화를 면치 못할 것일세."
그렇게 말하는 안찰사 역시 잔뜩 쌓여 있는 돈을 아깝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안찰사와 현령이 나가고 새벽이 되어서야 깨어난 소구는 늘어지게 기지개를 켜며 침상에서 일어났다.
소구는 눈을 깜빡이며 탁자 위에 놓여진 금은 보화를 바라보았다.
"저게 무슨 돈이지?"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일어난 소구는 탁자로 다가갔다. 아무리 좋은 반찬으로 대접한다고 해도 관청에서 나오는 음식만 먹는 것에 질린 소구였다. 밖에 나가 무엇을 사 먹고 싶어도 돈이 없어 사먹지 못하고 있는 소구의 눈앞에 돈이 잔뜩 놓여 있는 것이다. 소구는 눈을 가늘게 뜨고 주위를 살펴보았다. 잠시 후 탁자 앞에 앉은 소구는 주위를 살피면서 조금씩 손가락을 탁자 위에 있는 돈을 향해 움직여 갔다.
북경에서 아버지와 함께 운남의 곤명에 있는 평서왕부로 오게 된 오자성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잠시도 쉬지 않고 강행군으로 곤명으로 오는 일은 무척이나 힘든 일이었다.
"으 쓰라려---."
어기적거리면서 자신의 거처로 들어온 오자성은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바지를 조심스럽게 벗어 내렸다.
한달 동안 낮이나 밤이나 말을 달려야 했던 오자성의 허벅지는 쓸려나간 상처로 인해 벌겋게 변해 있었다. 바지를 벗고 침상 위에 앉아 있는 오자성은 씁쓸한 얼굴로 상처를 바라보면서 생각에 잠겼다.
자신이 생각해도 한심한 세월이었다. 북경에 볼모로 잡혀 있는 상태에서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여진족들의 눈에 자신이 조금이라도 잘난 구석이 보이면 무슨 해를 당할지 알 수 없는 상태에서 살아남으려면, 그들의 눈에 쓸모없는 인간으로 보여야만 했던 세월이었다. 이제 안전한 곳으로 돌아왔으니 그런 파락호의 생활을 할 필요는 없는 일이겠지만, 자신을 못마땅한 얼굴로 바라보던 아버지의 눈이 계속 마음에 걸리는 오자성이었다. 자신이 북경에서 벌이던 파락호의 생활에 대해 모를리 없는 아버지였다.
"난 여진인들만을 속인 것이 아니라 아버지마저 속인 것이 되는 건가? 아무리 미운 자식이라고 해도 그렇지, 하녀 하나 보내주지 않으시다니---."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리던 오자성은 조심스럽게 상체를 일으키고 벽에 붙어 있는 서랍장으로 다가갔다. 어기적거리면서 걸음을 옮긴 오자성은 서랍을 뒤적이며 쓸린 곳에 바를 약을 찾기 시작했다.
"꺄 악!"
등뒤에서 웬 여자의 비명이 터지기에 고개를 돌린 오자성은 자신의 방 앞에 서 있는 앳된 얼굴의 하녀를 하나 볼 수 있었다. 두 눈을 손으로 가리고 있는 어린 하녀를 시큰둥한 얼굴로 바라보던 오자성은 다시 고개를 돌려 약을 찾기 시작했다.
오자성이라는 이름의 평서왕부의 첫째 공자을 시중 들으라는 명을 받고 여기 오게 된 하녀 두두는 마음을 굳게 먹고 눈을 가리고 있던 손을 내렸다. 엉덩이를 드러내고 서랍장을 뒤지고 있는 대공자의 모습이 보였다.
"비명 다 질렀으면 가서 대야에 물 좀 받아와라."
뒤도 돌아보지 않고 대공자가 내 뱉은 첫 마디였다. 두두는 멍한 얼굴로 대공자를 바라보았다. 서랍장에서 찾고 있는 물건을 찾았는지 한 손에 푸른색의 손바닥만한 병을 들고 대공자가 뒤돌아서고 있었다.
"곧 대령하겠습니다."
두두는 황급히 고개를 숙이며 대답하면서 밖으로 뛰쳐나갔다.
침상을 향해 다시 어기적거리면서 걸음을 옮기는 오자성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하녀 하나는 보내 주기는 하는구만--, 나라를 망치고 집안을 망친 요녀라고는 해도 현재 이 집안의 가사 일은 그녀가 맡고 있겠지---? 아버지가 보낸 하녀일리는 만무하고 그녀가 보냈겠군."
파락호에 색한이라 알려진 오자성의 시중을 자진해서 맡을 하녀는 아무도 없었다. 평서왕부의 안주인 역할을 하고 있는 진원원(陳圓圓)의 명에 따라 오자성의 거처로 오게 된 두두라는 이름의 어린 하녀는, 훌쩍이면서 대야에 물을 담가 다시 이제부터 자신이 모실 주인이 살고 있는 거처로 걸음을 옮겼다.
오자성은 오만상을 찡그리며 침상에 앉아 있었고, 대야를 이고 들어오는 하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봐, 어디 가서 깨끗한 면을 좀 구해 와라."
"네?"
"넌 이 상처가 보이지도 않냐? 아파 죽겠다. 약을 바르기 전에 이 피딱지들을 씻어야 한단 말이다."
"예, 대공자님. 그리고---, 전 두두라는 이름이 있습니다. 오늘부터 대공자님의 시중을 들게 된 하녀입니다."
"알았다, 알았으니까 어서 깨끗한 천을 구해 오란 말이다."
두두는 허벅지에 맺힌 피멍을 볼 수 있었지만 그와 동시에 처녀가 보면 안돼는 것도 같이 볼 수밖에 없었다. 황급히 눈을 돌리고 모기만한 목소리로 대답한 그녀는 방 밖으로 달려 나갔다.
"저년 도대체 뭐라고 한 거야? 내 말을 알아듣기는 한 건가? 체, 그럼 그렇지. 나한테 온 하녀가 제대로 된 하녀가 올 리 만무하지--."
허탈한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리던 오자성은 하녀가 오기를 기다렸다.
오자성이 그렇게 허벅지의 상처로 끙끙거리고 있을 때 평서왕 오삼계는 자신의 집무실에서 한 장의 종이를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만약 이것이 황제의 귀에 들어가는 날이면---, 으 어쩐다--? 진퇴양난이로구나."
자신의 손에 들린 오배와의 연판장을 바라보며 오삼계는 고민에 빠져들고 있었다. 돌아오는 도중에 오배가 실각했다는 연락을 이미 받은 상태였다. 오배가 조정에서 힘을 잃고 유폐되었으니 혼자서 청나라의 모든 병사들을 대적해야 할 위기에 처한 것이다.
오삼계는 그 종이를 촛불 위에 올려놓았다. 이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종이로 변한 것은 한시라도 태워버리는 일이 좋았다. 게다가 반역의 의미가 내포된 이런 종이라면----.
"내가 가진 것은 태웠지만 오배가 가지고 있던 것은 어떻게 되었을까? 큰일이로구나. 그것이 만약 조정 대신들의 손에 들어간다면----."
그 후의 일은 생각하기도 싫은지 오삼계는 혼자 중얼거리다 말을 멈추고 고개를 흔들었다.
그렇게 탁자 앞에 앉아서 오삼계가 고민하고 있을 때 검은 그림자가 물이 스며들 듯이 오삼계의 집무실 안으로 창문을 통해 들어오고 있었다.
오삼계는 검은 그림자가 땅바닥에서 솟아올라 검은 옷을 입은 하나의 사람으로 변하는 과정을 무심한 표정으로 노려보았다. 늘 허리에 차고 있는 검의 손잡이에는 이미 오른손이 가 있는 상태로 언제라도 발검(拔劍)이 가능한 상태를 하고 오삼계는 입을 열었다.
"너는 누구냐?"
"평서왕 전하의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온 자입니다."
그 검은 옷을 입고 피부마저 까만 자는 두 손으로 포권하며 그렇게 입을 열었다.
"닥쳐라! 너와 같은 사술을 쓰는 자들이 어떤 자들인지 내 이미 알고 있느니라?! 나에게 무엇을 바라고 온 것이냐, 마교(魔敎)의 사악한 자여?!"
오삼계의 입에서 노성이 터져 나왔다. 오삼계는 자신의 고함을 듣고 호위하는 자신의 부하들이 오기를 바라고 있지만 눈앞의 온 몸을 검은 색으로 물들인 자는 여유만만한 미소를 흘리며 말했다.
"아무리 소리쳐도 밖에서는 이 안에서 나는 소리를 들을 수 없습니다. 평서왕 전하. 저는 다만 교주님의 심부름으로 하나의 서찰을 전하고 하나의 약속을 얻으러 온 것입니다."
"마교를 공개적으로 포교하는 것을 허락해 달라는 것이라면 무조건 거절한다!"
오삼계는 자신을 지킬 수 있는 것은 오직 자신뿐이라는 것을 깨닫고 그렇게 고함치며 검을 빼들었다.
교주의 명을 받고 오삼계를 찾아온 마교의 검은 그림자 흑영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뭔가 오해를 하고 계시는군요. 마교는 결코 포교를 하지 않습니다. 오직 선택된 자만이 마교의 제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이곳에 온 이유는 조금 전에 말했다시피 이 서찰을 전하고 교주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한 것이니 안심하시지요. 제가 평서왕 전하를 죽이기로 마음먹었다면 전하는 이미 죽어 있었을 것입니다."
말을 하면서 흑영은 조심스럽게 품속에서 하나의 봉서를 꺼내어 탁자에 봉서 한 장을 내려놓았다.
"이것이 무엇이냐?"
"직접 확인하시지요."
봉투에 독이 묻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혹시라도 중독 당할지도 모를 위험을 자초할 필요는 없었다.
"직접 봉투 안에 든 문서를 꺼내 탁자 위에 펼쳐 놓아라."
오삼계는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고, 흑영은 여전히 미소를 흘리면서 시키는 대로 봉투를 열고 안에 들어 있는 서류를 꺼내어 탁자 위에 펼쳐 놓았다.
"아니 이것은?!"
오삼계는 놀라 소리쳤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즐독하였습니다
즐감하고 감니다
감사합니다
즐~~~~감!
즐감
감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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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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