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후 박사 네팔 우표 시리즈 5] Yeti 네팔의 문화유적을 순례하다 -이근후 박사의 흥미로운 네팔 문화유적 우표 이야기
룸비니 동산의 보리수 아래 천막을 치고 하룻밤을 무더위와 싸운 나는 이른 새벽에 일어나 마야데브 사원과 최근에 건립한 티베트 사원, 불교사원들을 두루 둘러보았다. 이곳에서 수도하고 계신 큰 스님은 낯선 이른 새벽의 참배객을 백 년 지기나 되는 듯이 따뜻하게 맞아준다. “손님,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아십니까?” “감사합니다. 오늘요? 오늘이 4월 14일 아닌가요?” “오늘이 정말 무슨 날인지 모르시나요?” “…….” 내가 네팔력으로 새해 첫날의 첫 경배자임을 스님의 설명으로 알게 되었다. 옷자락만 스쳐도 인연이라는데, 이런 행운이 나에게 주어진 인연이 송구스럽기만 했다(P150, Lumbini Birthplace of Buddha, May 17, 1994 발행, 1994 룸비니 동산에 천막을 치고).
1994년 발행한 부처님 탄생지 룸비니 동산에 대한 우표 속에 숨겨진 이근후 박사의 흥미로운 순례 내용이다. 그는 룸비니에 천막을 치고 부처님의 진리의 소리를 듣고자 귀를 땅에 대기도 했다고 한다.
이근후 박사(이화여대 명예교수, 네팔•이화봉사단 단장, 대한우표회)의 네팔 우표 이야기 시리즈 다섯 번째인 ‘Yeti 네팔의 문화유적을 순례하다’(연인M&B, 2020.5.20.)란 흥미로운 책이 발간되었다. 이근후 박사는 이미 ‘예띠 히말라야 하늘 위를 걷다’ 등 4권의 네팔 우표 이야기를 펴낸 바 있다.
이번에 발간한 책은 네팔 현지 한국어 전문가이드 어눕 그룽(Anuo Gurung)과 므리나 라이(Mrinal Rai, 한국산업인력공단 매니저 겸 통역)와 공동으로 저작했다. ‘김민수’라는 한국 이름을 가진 어눕 구릉은 한국에서 6년 동안 근로자로 일을 하다가 귀국해서 한국어 가이드를 맡고 있다. 인도에서 대학을 졸업한 그는 이근후 박사가 이화대학병원 근무 시 네팔에 ‘이화의료봉사단’을 이끌고 갔을 때 만난 인연이 있는 베테랑 가이드다.
우표 속에 숨겨져 있는 네팔의 문화유적을 순례하는 이근후 박사의 글은 매우 흥미롭고 독특하다. 왼쪽 페이지에 네팔유적 우표, 오른쪽 페이지에는 이근후 박사가 간결하게 단편적으로 설명이 곁들어 있어 읽기에도 매우 편하다. 네팔은 우리나라보다 3년이나 먼저 우표를 발행한 나라다. 그리고 우표를 유럽이나 선진 외국에서 인쇄했기 때문에 우표 도안도 아름답고 그림도 선명하다.
책 속에는 부처님 탄생지인 룸비니 동산을 비롯하여 카트만두의 대표적인 유적지인 스와얌부나트(일명 몽키사원), 시바 신을 모신 힌두교의 성지 파슈파티나트(네팔에서 가장 성스러운 화장터), 부다나트 사원(네 팔에서 가장 큰 스투파), 가필라바스투(부처님이 29년 동안 살았던 왕궁), 아소카 필라(부처님의 탄생지가 룸비니라는 것을 증명해주는 석주), 람그람(부처님이 사리를 가장 완벽하게 보관한 사리탑), 하누만 도카, 쿠마리 사원, 카트만두 벨리, 더르바르 광장 등 네팔의 문화유적이 실린 182개의 우표가 등장한다.
“죽음이란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저 죽은 사람을 슬프게 애도하고 있는 저 사람들도 지금 당장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 있는 줄도 모르고 저렇게 슬피 울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마이란 것을 직접 볼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죽음이란 것도 직접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죽음을 이야기하는 여러 증상을 미루어 죽음을 짐작할 뿐 죽음 그 자체를 바로 볼 수는 없는 것이다(P129, 파슈파티나트).
이근후 박사는 힌두교와 불교의 사상이 묻어있는 우표 속의 문화유적을 순례하며 삶과 죽음에 대한 윤회의 사슬을 말한다. “누가 데리고 간 것이며 또 어디로 간단 말인가?” 파슈파티나트 화장터에 앉아 삶과 죽음에 대한 화두를 안고 홀로 독백을 하는 한 정신과 의사의 모습이 그려진다. 그리고 역사 이래로 수많은 철학자와 종교가들이 그 실마리를 찾아보려고 애쓴 흔적들은 많지만, 그 애쓴 흔적의 결과들이란 것이 명쾌하기는커녕 머리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어 놓고 있다고 말한다.
‘아소카 대왕은 사리가 있는 모든 탑을 붕괴하고 저기 있는 사리를 다시 나누어서 자기 마우라 제국에 84,000개의 사리탑을 만들 예정이었다. 아소카 대왕이 7개 탑을 그렇게 했지만 람그람에 방문했을 때 탑을 용왕이 지키고 있었고 코끼리들이 꽃과 물을 바치는 모습을 봤다. 아소카 왕은 람그람 사리탑을 그대로 놔뒀다(P201, 람그람).’
람그람(Ramgram)은 룸비니에 37km 떨어진 곳에 있다. 기자도 이곳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부처님의 사리탑 중 가장 완벽하게 부처님이 치아사리가 보존된 사리탑이다. 2002년 10월 9일에 발행된 람그람에 대한 우표에는 유적지의 모습이 매우 아름답게 담겨있다.
‘룸비니에서 가장 중요하고 신성한 장소는 부처나 태어난 정확한 지점을 가리키는 마커 스톤(Maker Stone)이 위치한 곳일 것이다(P253).’ 부처님이 태어난 장소인 마커 스톤은 우리가 룸비니를 방문해도 놓치기 쉬운 곳이다. 이 돌은 70×40×10cm의 크기의 역암으로 기반으로 하는 사암이다. 이 돌은 기원전 3세기에 7층으로 쌓인 벽돌의 가장 위쪽에서 발견된 것이다.
이 책은 네팔의 문화유적 우표에 대한 단순한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가 네팔을 갔을 때 놓치기 쉬운 유적지에 대한 설명도 자세하게 곁들어 있지만, 힌두문화와 불교문화가 섞인 문화유적, 그리고 네팔의 역사를 순례하며 85세 된 정신과 의사의 철학과 고뇌가 담겨있는 책이다.
첫댓글 오호! 이근후 교수님 새 책이 또 나왔네요! 반갑습니다!
잘계시지요
오랜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