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타석, 한 타석. 한 구, 한 구. 끊임없이 누적되는 기록. 하지만 숫자를 읽고 확인하는 것만으로는 기록에 담긴 의미를 쉽게 알 수 없습니다. 2017년은 KBO리그를 더욱 더 재미있게 즐길 수 있도록, 복잡한 기록을 이해하기 쉽게 풀어드립니다.
양상문
감독의 작전
번트, 도루, 투수교체, 대타. 감독이 짜낼 수 있는 작전은 한정적이지만 그 한정적인 수를 갖고도 효율을 높이는 감독이 있고, 활용이 아쉬운 감독도 있다. 그렇다면 10개 구단 감독의 성향과 성취를 기록으로 유추할 수 있을까?
효율이 다른 힐만(SK) 감독과 김성근(한화), 양상문(LG) 감독
희생번트는 감독이 지시하는 작전 중 하나. 넥센은 지난 4월 19일까지 희생번트를 단 1개도 기록하지 않은 유일한 팀이었다. 같은 기간 KIA와 한화는 10개의 희생번트를 성공했지만 넥센은 홀로 0개를 기록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넥센은 대타 작전에서 좋은 결과를 많이 만들어냈다. 대타 타율 1위의 넥센은 희생번트로 아웃카운트 하나를 굳이 허비할 필요를 느끼지 못 했을 것이다.
반면 한화는 5월 22일 현재 34차례 희생번트를 시도해 롯데와 함께 이 부문 1위에 올라있다. SK는 23번의 번트 작전을 시도했지만 그 결과나 효율은 한화에 뒤지지 않았다.
한화가 희생번트로 28차례나 주자를 진루시킨 반면 SK는 19차례밖에 진루시키지 못 했다. 하지만 희생번트로 홈을 밟은 주자는 18 대 17로 오히려 SK가 득점률이 높았다.
이러한 탓에 5월 22일 현재까지 시즌 팀 홈런 224개의 페이스로 역대 1위 대기록 작성을 향해 순항 중인 SK가 한화보다 9차례나 적은 희생번트 작전으로 한화보다 더 많은 주자를 불러들였다는 것이 특이할 만하다.
한편 희생번트 작전과 사실상 양자택일 관계에 있을 도루 작전에서는 LG가 34개의 도루를 성공시키며 이 부문 공동선두에 올라 있지만 도루로 진루한 주자 34명 중 홈으로 무사 귀환한 선수는 11명에 불과해 낮은 득점률 32.4%(8위)로 한화와 마찬가지로 그 효율이 좋지 못 했다.
자력의 조원우(롯데)감독과 무기력, 속수무책의 김한수(삼성) 감독
한화 김성근 감독 부임 이래 가장 많이 언급된 기록은 퀵후크 아닐까.
퀵후크 = 선발투수 6이닝 미만, 3실점 이하 투구
롯데는 한화 13회(5위)를 여유 있게 앞지르며 시즌 팀 퀵후크 순위 1위에 올라있다. 뿐만 아니라 퀵후크시 승률 61.1%(3위)로 단순히 개입만 많이 한 것이 아니라 롯데 조원우 감독의 퀵후크는 효율적인 작전이었음을 증명하고 있다. 지난 시즌 27회(9위)로 적은 퀵후크에도 퀵후크시 승률이 51.9%(7위)에 머물렀던 것과 비교하면 상전벽해 수준으로 달라진 것이다.
반면에 언뜻 보면 삼성은 퀵후크에 소극적인 것 같다. 하지만 삼성은 선발투수가 5이닝을 채우지 못 하고 강판된 횟수가 17차례(2위)나 된다. 그렇다는 것은 김한수 감독이 퀵후크를 하기도 전에 선발투수가 속절없이 무너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4실점으로 무너진 투수를 5회 이전에 교체한 것은 퀵후크가 아니기 때문이다.
더구나 삼성은 이번 시즌 데뷔한 투수만 벌써 4명(김시현, 장지훈, 최지광, 황수범)으로 이 부문 1위에 올라있다. 어떻게든 투수를 만들어내겠다는 김한수 감독의 의지가 발현된 것으로 볼 수 있겠지만 이 4명의 투수가 24.0이닝 동안 기록한 ERA 7.50 이라는 수치는 결과적으로 아쉬움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좌우놀이에 능한 김진욱(kt) 감독
대타 작전은 신의 한 수로 곧잘 연결되곤 하지만 실제로 결정적 순간이 아닌 이상 통상적으로 대타는 선발 출장한 선수보다 낮은 타율을 기록한다. 대타 작전은 ‘작전’이면서 ‘육성’의 일환으로도 활용되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대타 작전에는 엄청난 것을 기대하지 않는 편이 낫다.
최근 3년의 선발 타율과 대타 타율을 비교하면 이를 더 쉽게 알 수 있다. 이번 시즌 대타 성공률이 예년보다 크게 떨어진 것도 사실이지만 대타 타율이 선발 타율에 못 미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타순별로 선발 타율과 대타 타율을 비교해도 4번타순 자리를 제외하면, 대타 타율이 선발 타율을 앞지르는 타순이 단 하나도 없다. 그 중 1번타순의 대타 타율은 0.119에 불과할 정도로 그 정도가 심하다.
대타 타율이 낮은 것과 별개로, 대타 작전은 흔히 말하는 ‘좌우놀이’를 수반한다. 왼손 투수에는 오른손 타자로, 오른손 투수에는 왼손 타자로 대타 카드를 꺼내 드는 감독의 작전을 팬들은 ‘좌우놀이’라고 부르고 있다.
이번 시즌에도 이 좌우놀이를 뒷받침 할 현상은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1푼~2푼 차이가 감독이 선호하는 ‘좌우놀이’ 경향을 강력하게 뒷받침할 수준이 되는지는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허나 분명한 것은 이번 시즌만큼은 왼손 투수를 상대할 타자로 왼손 타자를 대타 카드로 선택한 작전은 100%의 확률에 가까울 정도로 실패했다는 사실이다. 10개 구단 모든 감독이 총 20차례 시도한 좌투 상대 좌타 대타 작전은 안타 2번, 볼넷 2번으로 불과 0.200에 그치는 출루율을 기록하고 말았다.
하지만 kt 김진욱 감독은 달랐다. 좌완투수를 상대로 한 우타 대타 타율은 5할(1위), 우완투수를 상대로 한 좌타 대타 타율은 3할 8리(1위)를 기록하며 좌우놀이취지 그대로의 기록을 쌓았다.
승부의 김태형(두산) 감독과 육성의 김기태(KIA) 감독
그런데 모든 감독이 대타 작전을 같은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지 않은 듯 하다.
레버리지 인덱스 = 득실차, 이닝, 주자, 아웃카운트상황으로 조합하여 순간의 중요도를 숫자로 표현한 기록. 1을 기준으로 1보다 높을수록 중요한 상황, 1보다 낮을수록 중요하지 않은 상황이라고 해석
두산 김태형 감독은 중요한 상황에 직면했을 때 주로 대타 카드를 꺼내 들었지만, KIA 김기태 감독은 덜 중요한 상황에서 주로 대타 카드를 꺼내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산은 대타 타율이 0.150로 리그 9위에 머무르고 있다. 거기에 주자가 있는 상황에서 대타 타율은 0.118, 주자가 득점권에 있는 상황에서 대타 타율은 0.083(=12타수 1안타)로 디펜딩 챔피언답지 못 한 모습을 보였다. 참고로 지난 시즌 득점권 상황에서 두산의 대타 타율은 0.314로 리그 1위였다.
하지만 감독의 기대에 부응해야 할 타자들도 중요도가 낮은 상황이 덜 부담스러웠는지, KIA 김기태 감독의 대타 타율은 0.250에 불과하지만 리그 2위로 오히려 두산보다 높은 수치를 보였다.
맥 짚은 장정석(넥센) 감독과 맥 끊은 김경문(NC) 감독
결국 작전의 백미는 감독의 대타 작전으로 경기를 뒤집는 것 아닐까? 지난주 5월 18일 목요일, 넥센과 한화의 경기에서 이 조건에 부합하는 명경기가 있었다. 이번 시즌 결정적 장면 TOP 5에 들었던 장면으로, 넥센 이택근이 한화 정우람을 상대로 쏘아 올린 대타 역전 끝내기 만루홈런이 기록된 순간이다.
리그 평균 대타 타율이 0.210에 그치고 있고, 2위 KIA의 대타 타율도 0.246에 불과하지만 초보 감독 장정석이 이끄는 넥센의 대타 타율은 0.296으로 상대적으로 높은 차이로 1위에 올라있다. 명장 김경문 감독이 지난 시즌 대타 작전에서 기록한 시즌 2할 5푼 7리보다 말도 안 되는 수치로 떨어지며 9푼 4리(32타수 3안타)로 부진을 면치 못 하는 것과 가히 대조적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각 팀 감독이 추구하는 야구를 기록적으로 이해하고 풀어낼 수 있다는 점에서 야구는 다른 스포츠에 비하여 여러 재미요소를 갖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남은 기간 동안 얼마나, 현재까지 기록으로 증명한 야구를 얼마나 직접 실천하고 추구할 수 있는지를 지켜볼 일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