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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이야기 '마포구 도화동 山 8'번지---- 6십 년 대 서울의 모습
만장봉 추천 3 조회 268 25.11.20 04:32 댓글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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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삭제된 댓글 입니다.

  • 작성자 25.11.20 05:39

    감사합니다 제 인생의 회고 입니다

    이때 쯤 돼나 봅니다 책 몇 권을 보자기에 싸가지고 대학입시를 보려 갔습니다
    나주 고등학교를 겨울방학이 시작되자 서울로 대학을 가기 위하여 그 추운겨울에
    상경 ,그 이튼 날 부터 시립남산도서관에서 공부에 매진 , 노부모님들이 살림을 정리를 하고
    올라오셔 대학공부를 중단하고 인쇄소 문선공 출신을 하다가 경기도 초등학교 선생이라도 해먹어야 겠다
    하여 그 후기입니다

  • 작성자 25.11.20 05:53

    추신 : 밖에는 기온이 차갑고 추워지니, 이때 쯤 젊음을 자산으로 하여 나주 산골의 촌 놈이
    고등학교를 졸업을 하고 6십 년대 가난한 농촌을 벗어 나고 파 서울로 유학의 상경 길이
    새록새록 남니다 불현듯 이 글로 나의 젊음을 회고하여 어려운 시절을 이겨 나갔던 추억이
    나서 한번 회고하여 보았습니다

  • 작성자 25.11.20 06:02

    @타트바마시 감사합니다 공감을 하여주시고 격려를 하여주시니, 참으로 눈물을 흘려가면서 가난한 환경에
    노 부모님을 모시면서 가장으로 역활 , 그리고 공부 주경야독으로 나를 형성하였다고 보아도
    거의 틀림이 없을 것 입니다 ,한국방송통신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을 하고 2학기에 행정학과 학사모가
    나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고맙습니다

  • 25.11.20 07:31

    드라마 본 것같습니다.
    도화동 산 8번지가 어디쯤인지 모르지만 서해로 흐르는 한강, 마포나루터를 묘사하신 이야기가 흑백필름으로 머리속에 그려집니다.

    공동 우물터 물동이,
    공동 화장실.
    새끼줄에 엮인 연탄은 본적 없지만
    모두들 어려운 시절 이었던 그 시대적 배경은 비슷한 연배의 외삼촌께 들어 본적 있습니다.
    방안에 둔 물이 엄동설한에 자고나면 얼어 있었다 하더라구요.

    고생하셨고 대단하셨다는 말씀 드립니다.


  • 작성자 25.11.20 07:39

    감사합니다 아마도 영화로 촬영한다면 흑백영화쯤 되는 이야기 입니다.
    작금의 5060 세대들은 거의 모르는 삶입니다 마포 꼭대기 여의도에서 본다면 북동쪽으로 보시면 될 것 입니다
    지금은 그 고지대가 아파트로 상전벽해가 되었습니다 노 부모님 모시고 가난한 시절의 회고 입니다
    제가 아마도 23세 쯤 되는 67년도 쯤 보시면 됩니다 고지대라 어렵게 살아가는 이야기입니다 이러한 고비를 거쳐
    오늘날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 있습니다 공감하여 주시어 고마움을 드림니다

  • 25.11.20 08:33

    고생하셨습니다.

    그 시절이면 저는
    대학교 2학년이었습니다.

    중학교때 옛 용산경찰서에서 도화동으로 넘어가는
    용문동에 살았었습니다.

    선생님은 모두들
    부러워하는
    천직이었지요.
    수고하셨습니다.

  • 작성자 25.11.20 09:07

    감사합니다

    용문동에 살으셨으면 부유촌입니다 ..ㅎㅎ
    하 도화동꼭대기에서 어찌나 추운지 ......

    나는 떨어진 줄 알았습니다 그래도 합격을 하였더라고요 선생이 천직인지도 모르고 먹고 살려고
    한 몸부림이지요 고맙습니다

  • 25.11.20 11:42

    감동적입니다 만장봉님 치열한 삶을 마주 하는 가운데서도 학업을 놓지 않으셨던 그 집념 학구열 존경합니다 글 감사힙니다.

  • 작성자 25.11.20 21:08

    감사합니다
    그때에는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면서 한 참 공부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러나 가난한 농촌 출신이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어려운 형편에 주경야독의 시간하고 싸워야
    내가 존재하는 시절이었습니다

  • 25.11.20 12:01

    선배님이 도화동 사실때 저는 효창국교학생으로 마당에
    닭장을 만들어 효창공원 뒤 언덕배기 판잣집동네에 가서
    병아리를 사다가 키웠습니다

  • 작성자 25.11.21 01:51

    감사합니다
    6십 년 대 만해도 서울의 산 동네가 많았습니다 .그 이후에 산 동네들의 마을을 서울시가
    정비를 하였으며, 아파트 건립 등으로 주거 정책으로 주택 난을 해결하여 나갔습니다

  • 25.11.20 18:16

    만장봉님이 저의 인천교대 선배님이시라니요. ㅎㅎ
    관등성명 대겠습니다.
    저는 80학번 인천교대 19회 졸업생 여정은입니다.
    선배님은 몇 학번 몇 회이십니까? ^^

  • 작성자 25.11.21 02:02

    아이고 반갑습니다 어쩐지 다르 더라고요
    저는 발령이 않나서 공직으로 방향을 돌려서 고생 좀 하다가 서울시에서
    정년을 하였습니다 저는 72군번에 11기 김용상 입니다 .

    보아하니 훌륭한 교육자요 보람 있는 교육의 현장에서 근무하신 거 같습니다

    계약제를 좀 해보니 서울교대 출신들이 만터군요 어느경제 신문사 기자 출신 ,사법고시 준비하다가 들어 오신 분
    저야 공무원 하다가 그냥 놀 수가 없어 초등학교로 갔지요 감사합니다

  • 25.11.20 19:32

    글자체가
    사실적이고 귀한 역사입니다.

    지난 세월을 생각하면 선배님들은 물론이겠고
    50,60년대를 살아온 후배들도 마음이 짠~하고
    한편으로는 스스로가 대견스럽습니다.

  • 작성자 25.11.21 02:01

    우리 세대가 일제 식민지의 조상을 둔 그 이후 세대들입니다
    가난의 상속을 이어 받아 어렵게 학교를 다녔고 ,신생독립 국가로써 출발하는
    어려운 난관의 세대들 입니다 식민지 노예와 같은 대우 ,가난의 후예들입니다
    감사합니다.

  • 삭제된 댓글 입니다.

  • 작성자 25.11.21 02:05

    도화동 아파트 뒤의 고층 산동네 입니다

    야트막한 야산처럼 되어있어 사면이 다 바라보입니다
    남산이 보이고 한강이 보이고 서민들의 집합소 입니다 서민들의 달동네 ..ㅎㅎ
    감사합니다

  • 25.11.21 16:35

    인천교대?

    그당시 인천의 내가 다니던 대학교에서 제일먼저 미팅을 하던 대학이 인천교대 이엇다

    그런데 부딧쳐보니 별로 이엇다

    그래서 2학년때 부터는 미팅상대 여대가 바뀌기 시작햇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고 나니 내동창들 중 인천교대 출신과. 결혼한분이 종종 보이곤 한다

    이상 나와 인천교대와의 인연을 말씀 드렷습니다

    충성 우하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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